청담순호선사 평전
방남수.임병화 지음 / 화남출판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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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 스님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대 종정(宗正)을 역임한 분으로, 본명 이찬호, 법명이 순호(淳浩), 법호가 청담(靑潭), 우리나라 선맥(禪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인 만공(滿空) 선사에게 견성(깨달음) 인가를 받고, 도호 올연(兀然)을 받았다. 청담 스님은 1971년 세수 70세, 법랍 45세로 입적했는데, 불자라면 스님이 우리나라 현대 불교사에 남긴 족적을 모를 수 없을 것이다.

요즘 혜민, 법륜 스님 불교에세이가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나를 돌아보고 현실을 헤쳐나갈 지혜를 얻는다. 한 걸음 나아가 <청담순호선사 평전>을 접해보면 어떨까. 삶 자체가 수행이자 한 편의 현대 불교사이다. 특히 스님이 애썼던 불교 정화 운동과 마음선(禪) 사상은 현대인들에게 본보기가 되겠다.



청담 스님은 이른바 인욕(忍辱) 제일로 불렸다. 수행에 철저하였다. 남들이 자는 시간에도 홀로 호롱불을 켜고 정진한 것은 물론이고, 오후 이후에는 공양을 먹지 않거나, 첫 번째 뇌졸중 증세가 왔을 당시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하루도 빠짐없이 백팔 배 정진과 선식으로 회복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러한 정신은 교계 정화로 이어졌다. 일제강점기 이후 불교계에 왜색이 짙어져서 대처승과 주육(酒肉)식을 가리지 않는 문화가 대중화됐는데, 이러한 현실을 바로잡고자 정화 운동을 주도하였다. 나중에 조계종 종정을 지내신 성철 스님과 봉암사 결사를 맺고, 비구니 수행 정진과 철저한 계율 준수를 재현한 수행공동체를 결성하였다. 고려 시대 지눌 스님이 정혜 결사를 조직하였듯, 혼탁한 불교계에 경종을 울리는 유명한 사건이었다. 정화(淨化) 불사는 계속되었고, 대처승 조직과 대립도 마다치 않았다. 비구니 중심의 본래 계율과 정법을 지키고자 하는 운동으로 결국 대한불교조계종이 성립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청담 스님이 인욕과 교계 정화에 힘쓴 밑바탕에는 참회 사상과 마음선(禪) 사상이 있었다. "회의 참(懺)은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것이며, 회(悔)란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다." (p.83) 스님은 "인간의 '잘못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 가장 으뜸가늠 장엄이다.'고 하신 부처님의 말씀을 사무치게 되새기며 살아갈 때 처음으로 자기가 하는 일의 참뜻을 깨닫는 보람 있는 삶이 될 것이다."(p. 88) 라고 말씀하셨다. 스님이 기거했던 도선사가 참회도량이 되고, 거기에 호국참회원이 건립된 배경에는 이러한 참회 사상이 있었다.



또한, 스님은 특히 마음을 강조하였다. 현대인이 물질 만능 주의, 경쟁 스트레스 같은 각종 번뇌에 빠져 있는 상황을 직시하고, 해결책으로 오직 마음이라는 유심(唯心) 사상과 심즉시불(心卽是佛)을 강조하였다. 참회와 정진으로 본래 청정한 마음을 깨달아 참나를 찾아가기를 바랐다. 마음 사상은 선종(禪宗)의 초대 조사 보리 달마 선사부터 우리나라 만공, 만해 스님으로 이어지는 선맥(禪脈)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깨달음을 위하여 간화선(看話禪 - 화두를 참구하여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참선법)을 중요시하였다. 만공 선사에게 받은 무(無) 화두 - 조주록에 나오는 일화로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 - 개에게 불성이 없다) 라는 화두) - 를 열심히 간구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청담 스님은 교계 정화와 함께 불교의 현대화에 이바지하였다. 3대 목표인 포교, 역경, 도제양성을 강조하였고, 불교신문의 전신인 <대한불교>를 창간하였다. 초대 조계종 총무원장을 비롯하여 교단의 중책을 맡아 다양한 사회 활동과 강연을 입적하기 전까지 수행하였다. 호국 불교 정신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사회 복지같은 사회적 문제 해결이나 중생 교화에 힘쓰다가, 결국 과로로 인한 뇌졸중이 원인이 되어 입적하기에 이른다.



청담 스님이 지나온 족적은 불교 본래의 계율과 정신에 입각한 인욕 수행의 길이자, 그것을 바탕으로 한 현대 한국 불교계 정화 운동의 산실이었다. <청담순호선사 평전>은 스님의 일생과 사회 운동, 중반 이후부터는 마음 사상과 선(禪) 사상을 깊이 깊게 다루고 있다. 하나하나 허투루 다룰 수 없는 탓에 책이 두껍다. 천천히 읽어가다 보면 우리나라 불교계 역사, 선맥(禪脈)과 교리, 무엇보다 불교계의 거목이었던 청담 스님의 수행 정신과 사상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참회와 마음 사상은 불자를 넘어 현대인에게 많은 귀감으로 다가온다. 세파에 휘둘리며 스트레스와 번뇌에 신음하고 있다. 청담 스님의 말씀과 일생을 통해 참나를 떠올리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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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수업 - 하루에 하나, 나를 사랑하게 되는 자존감 회복 훈련
윤홍균 지음 / 심플라이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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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재미있지 않은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능력이 결국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능력에서 시작된다니 말이다. 나를 아는 만큼 사랑 능력도 커진다."(p. 35)



많은 사람이 자존감 부족으로 고생한다. 심리학 책, 자기계발서를 몇 권씩 읽고 순간순간 감동한다. 내 이야기구나 공감한다. 스스로 마음이 좁아지고 위축되는 원인을 깨닫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껏 살아온 관성을 고치기 어렵다. 좌절과 노력을 반복하며 고민하기 일쑤다.



하지만 심리학 책마다 내용이 제각각이고, 지식이 늘어나는 만큼 원망도 늘어난다. 부적절한 부모에 대한 원망, 자존감을 쪼그라들게 만든 트라우마에 천착한다. 헬스 트레이닝 지식만으로 다이어트가 되지 않는다. 실천 없는 이론과 순간의 감동은 쉽게 잊혀지고 요요현상처럼 자존감이 부족한 나로 돌아간다. (Part 3. 5절 심리학 책을 아무리 읽어도 자존감이 그대로인 이유)



자존감의 기본적 정의는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이다.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고, 만족하고 있는지에 대한 지표"이기도 하다. 이는 자기효능감, 자기조절감, 자기안정감의 세 가지 축으로 이루어진다. (p. 16~17) 자존감은 단순히 자신감 문제가 아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자각하고, 선택의 기로에서 결정 능력을 높여주며, 인간관계의 양상을 좌우한다. 열등감과 무기력감, 부정적 감정을 동반한다. 자존감은 삶 전반의 문제인 것이다.



<자존감 수업>은 정신과 전문의 윤홍균 박사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 있다. 지금은 의학박사라는 선망의 직업을 갖고 있지만, 재수학원 입시에 낙방하고 의대 유급을 당했던 소심한 청춘이었다. 그래서 정신건강 전문의 과정을 선택하고 자존감 문제에 천착하였을 것이다. 책은 자존감의 근본적인 정의와 오해와 편견을 풀어나가며 시작한다.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의 연애 패턴, 인간관계, 특히 자존감 회복을 방해하는 부정적 감정과 구체적인 해결책은 실제로 도움이 될 것이다. 버려야 할 습관들과 극복할 것들, 실천법으로 내용을 심화한다.



나를 돌아보고 내적수용성을 높이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책에 적어보고, 트라우마 없는 삶을 가정해보며, '~ 하지 않겠다.' 보다 '~을 하겠다','~이 되겠다'라는 긍정형 목표 세우기는 직접 적어보길 바란다. 실제 사건과 생각, 행동을 감정과 구분하는 습관을 익힌다면 감정 조절이 한결 쉬워지겠다. 악영향을 끼치는 부정형 의존을 벗어나 스스로 결정력을 기르고 자립과 세련된 의존을 익히는 법은 꼭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걷기, 나를 사랑하는 표정 짓기, 혼잣말하기는 뇌를 활발하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손쉬운 노하우다.



<자존감 수업>은 마치 백과사전처럼 자존감을 파헤치고 구체적인 실천법을 매 챕터마다 넣어놓았다. 그러나 직접 적어 보고 고민해보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후딱 페이지를 넘기고 싶은데, 마치 수행 평가 같아서 귀찮을 때가 있다. 책에 나온 감정 조절 노하우와 긍정형 목표를 세워서 인내해 보면 유용하겠다. 그리고 혼자 우울하고 부정적 감정이 몰려오면 걷기, 나를 사랑하는 표정 짓기, 혼잣말하기를 떠올리고 실천하면 어떨까. "어떤 순간에도 잊지 말자. 당신은 밀림의 왕이다. 세상의 중심이다. 당신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다."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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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6-09-14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캐모마일님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캐모마일 2016-09-21 20:2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공자의 인생 강의 - 논어, 인간의 길을 묻다
신정근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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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공자의 어록을 제자들이 집대성한 대표적인 동양 고전이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로 시작하는 구절은 익히 들었고, 한문이나 동양 철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인상 깊은 문구 몇 개쯤은 외우고 있다. 반면, 산문 형식으로 체계적으로 주제를 분류하지 않은 탓에, 해제나 풀이를 읽지 않으면 책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거나 핵심 사상을 관통하기 어려울 수가 있다. 좋은 해설이 필요한 이유다.


<공자의 인생강의>는 신정근 교수의 EBS <인문학 특강> 논어 강의를 엮었다. 다사다난한 21세기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화두를 논어의 핵심 키워드로 풀었다. 혼란스러운 약육강식의 춘추전국시대, 여러 나라를 주유하면서 인간의 도리와 바른 치세에 힘썼던 공자의 생애를 되짚어보며 온고이지신(溫故以知新)하는 시간이었다.


책은 먼저 배울 학(學)에 집중한다. <논어> 첫머리가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으로 시작하는데, 다른 덕목보다 앞세우는 까닭을 짚어본다. 인간은 신이 아닌지라 나의 이상을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해선 배움의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사랑을 앞세우면서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이때의 단점은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이다. - <양화> " (p.30) 처럼, 배움이 없는 신념은 맹목적이고 책임윤리가 없다. 공자 생전에 여러모로 겸양의 자세를 취했지만 호학(好學)에 있어서는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던 것은, 백가쟁명과 패권이 난립하는 난세 속에서 끊잆 없는 좌절을 맞보면서도 이상향을 위해 노력했던 본인의 일생과 맞닿아 있었던 것은 아닐까. <현문> 편에 나오는 문지기는 공자를 이렇게 평한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무엇이든 해보려고 하는 사람이다." (p.196) 공자의 후학들이 배울 학(學)을 앞세운 까닭은 이러한 공자의 인간적인 노정과 난세 속에서 바른 정치와 위민을 꿈꿨던 이상을 집약한 글자였기 때문이겠다. 배움이란 글자 속에 공자의 인간적인 면모가 절절히 드러나 있는 것이다.


학(學) 이외에도, 정(政), 서(恕), 군자(君子), 예(禮), 신(信), 인(人) 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논어)를 조명한다. 마지막으로 이들과 공자의 핵심 사상인 인(仁)과의 관계를 정리한다. 경공이 정치에 관하여 묻자 공자는 정명(正名)사상을 설파했다. 이름에 걸맞게 맡은바 직분에 충실해야 한다는 뜻인데, 저자는 세월호 참사를 예로 든다. 위난이 닥칠수록 본분을 망각한 행태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그것이 참사로 이어진다. 그리고 각종 대립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우리나라 풍토 속에서 되새겨볼 만한 관용의 정신인 서(恕)도 빼놓을 수 없다. 스스로 수신하고 타인에게 덕을 베푸는 군자(君子)의 길, 신뢰(信)를 바탕으로 한 예(禮), 그것들이 모여서 인간(人)의 길과 어짊(仁)을 이루어나간다.


<공자의 인생강의>는 <논어>의 핵심 사상을 축약하여 쉽게 고전에 다가갈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그리고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되짚어보고, 우리나라의 현재를 성찰하고 반성해 본다. 고전의 저력을 다시금 깨닫는다. 이후에 원전을 읽는다면 <논어>의 구절 절에 담긴 공자의 생애와 사상이 더욱 절절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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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 나를 깨우는 짧고 깊은 생각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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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 소크라테스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많은 사람이 행복을 말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당신의 행복은 무엇이냐 되묻는다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일쑤다. 막연한 바람. 생각건대, 돈을 벌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명예와 지위 경쟁에 고군분투하면서도 행복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본 경험은 글쎄다.

"행복과 불행은 내 마음의 상태다. 흔들림 없는 고요한 마음, 그것이 곧 행복이다." "이 고요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려면 수련이 따라야 한다." "삶은 자신만의 임무를 발견하고 실천해나가는 여정이다." <심연>의 프롤로그다. 마치 고대 스토아학파를 연상케 하는 구절들. 삶의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 때로는 내 안의 밑바닥 저 끝 심연(深淵​)을 관조하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고 하는 책. 행복하기 위해 생각을 단련해야 한단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현대판을 보는 듯하다.


<심연>은 저자 배철현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가 '배철현의 심연'이라는 제목으로 1년간 연재한 아포리즘을 엮었다. 종교와 신화, 혹은 일상에서 허투루 지나치는 것들이 가진 함의를 끌어내어 삶의 여러 주제를 다룬다. 예컨대, 주택의 현관(玄關), 숭고함, 사유(思惟), 진부(陳腐) 등 흔히 쓰는 단어들의 여러 어원을 되새겨보고, 인류의 원형질인 고대 역사와 철학, 신화를 곁들여 독자로 하여금 통찰을 이끈다.

"나는 과연 홀로 설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육체적으로 두 발을 땅에 딛고 설 수 있느냐는 물음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나아가 영적으로 독립적인 인간이 될 수 있느냐에 대한 물음이다. 인간은 독립적일 때 더욱 빛나기 마련이다." (p. 224)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넘어가는 길을 막고 있는 스핑크스는 다름 아닌 오이디푸스 자신이다. 스핑크스는 오이디푸스가 버려야 할 과거이자 바로 자기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괴물이다. 다른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 즉 자기 자신이라는 괴물을 죽여야만 했다." (p. 169)


가쁜 삶 속에서 존재의 가벼움에 공허감을 느낄 때, 하루에 한 템포 쉬어가며 관조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심연>의 글을 읽어나가며 마음에 닿는 구절을 묵상하는 동안, 외면의 페르소나에 가려진 내면의 깊은 동굴을 탐험하는 듯했다. 책에 담긴 에피소드들은, 헤세의 <데미안>에서 새는 알을 깨기 위해 투쟁한다는 구절처럼 기존의 관성과 타성에 대하여 성찰하고 '낯설게 보기'를 하도록 영감을 준다. 그 자체가 생각의 단련일 것이다. 스토아학파의 현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했다. "만일 당신이 어떤 일에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그 아픔은 그 일자체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당신의 생각에서 옵니다. 당신은 당장 그것을 무효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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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의 위험한 도덕주의자 - 우리는 왜 도덕적으로 살기를 강요받는가
기타노 다케시 지음, 오경순 옮김 / MBC C&I(MBC프로덕션)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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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없는 성질 급한 독자를 위해 우선 결론부터 말한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딱 한가지이니까.

'도덕이 어쩌고저쩌고하며 떠들어대는 놈의 말은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 (p.8)

우선 저자가 기타노 다케시다. 감독, 주연을 맡은 <하나비>는 한일 문화가 공식 개방된 후 첫 상영된 ​일본 영화였다. 그 후로 <키즈 리턴>, <기쿠지로의 여름> 등 그의 영화는 호불호가 갈리긴 했지만 한국 관객에게 다케시를 각인시켰다. 비교적  한국에 덜 알려진 일본 텔레비전 방송에서 코미디언이자 문화예술가로 활동하는 모습은 독설과 기행으로 가득차 보였다.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성인채널에서도 쉽게 도전하지 못할 캐릭터이지 않을까.


<위험한 도덕주의자>가 출간되었다. '우리는 왜 도덕적으로 살기를 강요받는가'. 그만의 독특한 가치관과 신랄한 입담으로 기존의 도덕을 파헤친다니 흥미로웠다. 처음의 기대처럼 책은 우리가 당연시하는 기존의 도덕과 가치들을 비판, 성찰한다. 시대에 맞고 스스로 사고하는 주체적인 도덕의식을 역설한다.

'착한 일을 하면 기분이 좋다.',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부모님 말씀을 잘 따르자'라는 문구를 의심 없이 받아들여 왔다. 노동과 근면의 가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왜 그래야 하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다케시는 의문을 품는다. 강요하지 말고 행위의 가치를 스스로 느껴보게 하라고. 

"사람의 머릿속까지 손을 넣어 들쑤시려 해서는 안 된다. / 아무런 논의도 없이 '이것이 도덕입니다'라며 마치 수학의 명제와 같은 논조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잘못된 거다." (p. 20)


"미련해도 성실하게 노력만 하면 승부에서 이길 수 있다는 얼토당토 않은 환상을 아이들에게 심어줘서는 안 된다. 계속 그런 식으로 나간다면 성실한 거북이는 모두 머리가 영약한 토끼의 먹잇감이 되고 만다. / 적어도 「토끼와 거북이」는 다시 써야 한다." (p. 90)


"어느 시대든 권력자는 사람들을 부려먹고 싶어 한다. 그 점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p.148)

​기성의 도덕관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모두 까기식의 결론은 아니다. 물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금기는 가르쳐야 하지만, 그 이상의 천편일률적인 주입식 도덕 교육은 오히려 양심을 마비시키고 도덕적 사고력을 떨어뜨린다. 시대와 동떨어진 각주구검(刻舟求劍)식의 논리, 꼰대가 되기 십상이다. 무엇보다 도덕을 역이용하는 부도덕한 인간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된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유태인 학살의 실무자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 '악의 평범성'을 역설했다. 학살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는 아이히만의 답변을 듣고 직무에 충실했으니 도덕적 행동을 했다고 옹호할 수는 없다. 사고가 뒷받침되지 않는 도덕은 생각과 판단이 무능해지는 참사를 일으킨다.

 결국, 나의 도덕,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도덕을 생각해야 한다. 다케시는 말한다. "메멘토 모리가 도덕의 토대다." (p. 205)라고.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명심하고 실존을 고민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교육도 그렇다. "(성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확실하게 보여주는 편이 교육에도 좋지 않을까. / 아니, 이건 농담이 아니라 출산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성교육이라고 생각한다." (p.210) 도덕적 엄숙주의를 넘어 나의 실존과 관련된 질문과 해답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가치관과 예민한 양심. 기타노 다케시의 독특한 작품 세계와 기행 속에는 이러한 사고가 뒷받침하고 있었을까. 그가 탐탁지 않은 독자라도 한 번쯤 도덕에 관한 유쾌한 독설과 비판은 경청할 만하다.

<위험한 도덕주의자>는 기타노 다케시 본연의 유머스런 독설과 비판으로 가득차 있다. 보기에 따라 가려운 곳을 긁는 듯한 시원함을 느낄 수도, 하나하나 걸고넘어지는 비판에 불쾌감이 들 수도 있다. 특히 웃어른을 무조건 공경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면 상당히 불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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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8-10 1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도덕에 초점을 맞춰 살면 자신의 도덕관이 옳다고 착각하면서 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상대방의 행동에 마음 안 들면 자신의 도덕관을 가르치려고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