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 : 나를 깨우는 짧고 깊은 생각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 소크라테스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많은 사람이 행복을 말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당신의 행복은 무엇이냐 되묻는다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일쑤다. 막연한 바람. 생각건대, 돈을 벌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명예와 지위 경쟁에 고군분투하면서도 행복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본 경험은 글쎄다.

"행복과 불행은 내 마음의 상태다. 흔들림 없는 고요한 마음, 그것이 곧 행복이다." "이 고요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려면 수련이 따라야 한다." "삶은 자신만의 임무를 발견하고 실천해나가는 여정이다." <심연>의 프롤로그다. 마치 고대 스토아학파를 연상케 하는 구절들. 삶의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 때로는 내 안의 밑바닥 저 끝 심연(深淵​)을 관조하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고 하는 책. 행복하기 위해 생각을 단련해야 한단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현대판을 보는 듯하다.


<심연>은 저자 배철현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가 '배철현의 심연'이라는 제목으로 1년간 연재한 아포리즘을 엮었다. 종교와 신화, 혹은 일상에서 허투루 지나치는 것들이 가진 함의를 끌어내어 삶의 여러 주제를 다룬다. 예컨대, 주택의 현관(玄關), 숭고함, 사유(思惟), 진부(陳腐) 등 흔히 쓰는 단어들의 여러 어원을 되새겨보고, 인류의 원형질인 고대 역사와 철학, 신화를 곁들여 독자로 하여금 통찰을 이끈다.

"나는 과연 홀로 설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육체적으로 두 발을 땅에 딛고 설 수 있느냐는 물음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나아가 영적으로 독립적인 인간이 될 수 있느냐에 대한 물음이다. 인간은 독립적일 때 더욱 빛나기 마련이다." (p. 224)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넘어가는 길을 막고 있는 스핑크스는 다름 아닌 오이디푸스 자신이다. 스핑크스는 오이디푸스가 버려야 할 과거이자 바로 자기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괴물이다. 다른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 즉 자기 자신이라는 괴물을 죽여야만 했다." (p. 169)


가쁜 삶 속에서 존재의 가벼움에 공허감을 느낄 때, 하루에 한 템포 쉬어가며 관조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심연>의 글을 읽어나가며 마음에 닿는 구절을 묵상하는 동안, 외면의 페르소나에 가려진 내면의 깊은 동굴을 탐험하는 듯했다. 책에 담긴 에피소드들은, 헤세의 <데미안>에서 새는 알을 깨기 위해 투쟁한다는 구절처럼 기존의 관성과 타성에 대하여 성찰하고 '낯설게 보기'를 하도록 영감을 준다. 그 자체가 생각의 단련일 것이다. 스토아학파의 현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했다. "만일 당신이 어떤 일에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그 아픔은 그 일자체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당신의 생각에서 옵니다. 당신은 당장 그것을 무효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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