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페미니스트 여자의 몸을 말하다
문현주 지음 / 서유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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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월경은 틀림없이 부럽고도 자랑할 만한, 남성적인 일이 될 것이다.(...)의회는 국립월경불순연구기금을 조성하고 의사들은 심장마비보다 생리통을 더 많이 연구할 것이며 생리대는 연방정부가 무료로 나눠줄 것이다."(글로리아 스타이넘,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재인용, p.8~9)



영화 <히스테리아 (Hysteria, 2011)>가 떠오른다. 바이브레이터 역사를 다룬다는 소개에 혹해서 CGV 아트관에서 관람했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여성의 자주성을 조명하였다. 정신질환 히스테리의 어원은 여성 자궁인 히스테라에서 기원한다. 닥터 모티머 그랜빌은 상류 여성층의 히스테리 증상 치료로 명성이 자자한 병원에 취직하여 이름을 떨친다. 그 치료법이란 여성에게 오르가즘을 제공하는 것. 병원은 문전성시를 이루나 닥터 그랜빌은 손에 마비가 온다. 고심 중에 손기술을 대신할 만한 갖가지 도구를 만들어낸다. 이른바 바이브레이터. 그는 병원장 딸인 샬롯을 만나게 된다. 자주적이고 성 평등을 외치는 그녀가 정신질환자가 아닌 당당한 한 인격체임을 인정한다. 결국 재판장 참고인으로 피고인 샬롯에 대한 편견이 잘못된 것임을 밝히고 자주적 여성이라는 의학적 소견을 증언한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는 번영과 동시에 보수적인 사회였다. 프로이트가 성 에너지에 천착했던 기저에 당시 시대상이 반영됐다는 의견이 많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의 성적 문제, 고유의 질병이 제대로 조명될 리도 없고, 도리어 자궁은 히스테리 질환을 유발한다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닥터 페미니스트 여성의 몸을 말하다> 저자 문현주 한의사는 "여성과 남성은 세포 단위에서부터 차이가 많"다고 한다. 같은 질병이라도 성별에 따라 예후와 증상 차이가 난다. 반면, 의학 연구 샘플과 대상은 남성에 맞춰져 있다. 상대적으로 의학의 혜택에서 소외된 것이다. "성 차이를 고려한 의학(gender-specific-medicine)"이 필요하다. 생물학적 성(sex)뿐 아니라 사회적 성(gender)까지 고려한 관점이다.



책은 월경과 임신, 출산 같은 여성이 생애주기별로 겪는 몸 이야기, 고통을 유발하는 이유 등을 상세히 담았다. 남자인지라 월경통에 관심이 생겼다. 직접 경험하지 못하니 공감까진 아니라도 이해는 해야지 싶다. 사회적 성 차이를 알아가는 데 생물학적 성 차이가 뒷받침되어야 하지 않을까. "월경은 단지 자궁과 난소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몸에 있는 다양한 기관들이 서로 밀고 끌고 협력하고 간섭하면서 발생하는 생리현상입니다. 특히 시상하부-뇌하수체-난소로 이어지는 내분비계는 월경의 핵심축이지요."(p.38) 자궁근종, 자궁내막증뿐 아니라 몸의 조화가 깨어지면 월경통이 심해진다. '질병 없는 아픔'의 대표적 사례라니 여성으로선 답답할 일이다.



<여자의 몸을 말하다>는 섹스, 임신과 출산, 모유수유, 산후조리 주의점, 갱년기까지 여성과 관련된 전생애를 다룬다. 10대 딸에게 이야기하듯 진행하여 남성 독자가 읽기에도 수월하다. 남녀의 몸 차이를 이해하는 과정은 젠더 이해와 상통한다. 저자가 닥터 페미니스트를 자청하는 이유겠다. 한편으론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터부시되었던 여성 의학 담론을 읽을 수 있어서 고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남녀는 같은 질병이라도 증상이 다를 수 있는데, 남성 통증과 가까운 증세를 보이는 여성 환자 치료가 잘 이루어진다는 현실, 되새겨 볼 이야기다. 한의학에선 여성은 자궁을 포함하여 육장육부라 할 정도로 자궁의 역할을 중요시하였고, 옛부터 여환자 한 명을 고치는 것이 남자 열 명 고치기 어렵다고 하였을 만큼 남여 성차이를 고려한 의학이 발달하였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월경통을 겪는 환자가 한의원을 내방하는 이유다. 저자가 성별 차이를 고려한 종합적인 관점에서, 나아가 사회적 성 의학 담론까지 고려할 수 있었던 기저에는 한의학적 시각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2차 성징을 시작한 딸에게, 혹은 여성 질환을 앓거나 생애주기별 몸 담론을 알고 싶은 성인 여성에게, 의학계에서 젠더 담론을 이해하고픈 독자에게도 도움이 되겠다. 마지막으로 여성을 제대로 알고자 하는 남성 독자에게도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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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그대의 품위를 깨달으라 - 발터 카스퍼 추기경의 대림 성탄 특강
발터 카스퍼 지음, 김혁태 옮김 / 생활성서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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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여, 그대의 품위를 깨달으십시오. 그대가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명심하십시오!"(대 레오 교황, p.168~169)



연말연시다. 기독교인에겐 대림절 시기다. 대림절은 크리스마스 전 4주간 예수님의 재림과 성탄 맞이를 하는 절기로, 크리스천에겐 의미가 큰 기간이다. <사람아, 그대의 품위를 깨달으라>는 교의 학자인 발터 카스퍼 추기경이 한 대림 성탄 특강 모음집이다. 카스퍼 추기경은 다양한 교황청 활동과 신학 학자로 유명하지만, 가톨릭 평신도 입장에선 사상이나 저서가 난해하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번에 출간된 대림 성탄 특강은 크리스마스의 종교적 의미를 되새기고, 추기경의 사상을 쉽게 다가갈 기회다.



책은 대림절의 의미를 되새기고, 하느님과 예수님의 은총을 떠올리며, 인간으로 강림하셔서 인간을 홀로 두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기린다. 마지막으로 그 뜻을 이어받은 교인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메시지를 던져준다.



"깨어 있으라.", "재림의 때는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마르코 복음 인용, p.44~45)

"이 모든 것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하는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지친 모습에 안일한 태도와 흐릿한 정신으로 산다면 정말 큰 위험입니다." "그리고 오늘 가능한 것은 오늘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이 세상의 일상 한가운데가 대림의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의 삶 한가운데서 우리에게 임하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p.44~46)



"오늘날 우리의 과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자신이 아침의 작은 샛별이 되는 것, 정의와 사랑의 태양을 예고하는 샛별이 되는 것! 이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온 세상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으로써 실현됩니다."(p.62)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느님은 몸소 인간이 되심으로써 이 물음에 명백하고도 최종적인 답을 주셨습니다. 그 답은 이렇지요.

"인간은 누구나 다 자비를 입을 자격이 있고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다!"(p.129)



"복음서의 세 현자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는 이것입니다.네 자신의 별을 따라가라! 네 양심의 목소리를 쫓아라!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져라! 본질적인 존재가 되어라! 그리고 길을 나서라! 하느님을 찾게 될 것이다.


바로 오늘날

스스로 자신의 두 발로 선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합니다.


시류의 압력과 생각에

자신을 굽히지 않는

그런 그리스도인들이!"(p.150)



그리스도인이여, 그대의 품위를 깨달으십시오. 그대가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명심하십시오!"(대 레오 교황, p.168~169)



연말연시 크리스마스는 연인들의 세상이었다. 올해는 시국이 어수선해서 국민이 매주 토요일 밤을 촛불로 밝히고 있다. 대림절을 맞아 카스퍼 추기경의 특강을 읽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임하신 사랑과 희생정신을 떠올린다. 예수님께서 겪으신 십자가 희생은 말한다. 인간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스스로 천하게 살지 말라. 하느님이 주신 양심을 함부로 팔지 말 것이다. 사람아, 그대의 품위를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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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03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 모씨는 품위를 잃은 지 오래 됐는데 그녀를 사모하는 사람들은 그녀와 지아비를 위대한 인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을 추종하는 이들도 양심을 팔아먹었어요.
 
맥킨지, 발표의 기술 - 맥킨지식 프레젠테이션 활용의 모든 것
진 젤라즈니 지음, 안진환 옮김, 이상훈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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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이었다. 발표나 조별 과제를 제출하는 수업은 기피 대상 일 순위였다. 자료를 수집하고 리포트를 작성하는 것도 문제지만, 프레젠테이션을 만들고 발표자로 뽑힐 때면 시쳇말로 망했다 싶다. 사회생활에 접어든 후, 아직 프레젠테이션 책임까진 맡지 않는다. 다만 보고서를 작성하고 코멘트를 해야 하면 떨리기 일쑤다. 물론 정해진 양식은 어느정도 갖춰져 있지만, 더 잘만든다고 해서 나쁠 건 없다. 보고서 잘 쓰고 프레젠테이션 곧잘 하는 직원은 그지없이 예쁘다고 칭찬받지 않는가.



그리고 프레젠테이션을 작성하고 발표할 때, 누가 먼저 무엇이 중요한지, 혹은 순서는 어떻고 만들 때 유의사항이나 견본을 보여주면서 매뉴얼을 세세히 가르쳐 준다면 천군만마를 만난 기분이다. 그런 동료나 선배 만나기가 별 따기다. 프레젠테이션 책을 찾는다.



<맥킨지, 발표의 기술>도 마찬가지다. 맥킨지는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 회사로 정평 난 덕분인지, 경제 경영, 특히 프레젠테이션, 협상, 보고서 작성 매뉴얼은 '맥킨지' 관련자가 쓴 서적이 꽤 눈에 띈다. <맥킨지, 발표의 기술> 저자는 비주얼 커뮤케이션 디렉터를 맡고 있고, 이번에 원제 <Say It with Presentation> 번역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저자가 전문가인 덕분인지, 책 자체가 짜임새 있고 재밌는 프레젠테이션을 읽는 듯하다. 구상부터 발표까지를 단계별로 챕터화하고, 구체적인 노하우를 제시한다. 프롤로그 "청중의 권리장전", 섹션1. "상황을 정의하라", 섹션2. "프레젠테이션을 설계하라", 섹션3. 프레젠테이션을 전달하라", 에필로그로는 "성공적인 프레젠테이션의 십계명"을 담았다. 독자가 프레젠테이션 단계를 장악하고, 필요한 챕터를 찾기 쉽게 만들었다.



먼저 '청중의 권리장전'이 나온다. "이 사실을 기억하라. 프레젠테이션을 싫어하는 당신보다 프레젠테이션 내내 자리를 지켜야 하는 청중들이 프레젠테이션을 더 싫어한다. 농담이 아니다." (p.22) 기술이 필요하다. 첫째로 목표를 명확히 정해야 한다. 목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반드시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며, 청중이 행동하도록 구상하는 단계가 우선이다. 대체로 목표가 불명확하면 중구난방이고 실속 없게 마련이다. 프레젠테이션 성공 여부는 당신이 목표를 달성했는가로 판단한다.



그 후 본격적인 프레젠테이션 설계로 이어진다. 정교하게 줄거리를 짜고, 서론 작성 시에는 PIP 공식(목적, 중요성, 미리 보기)을 유념한다. 결말을 계획한 다음, 상상력을 발휘해서 효율적인 전달 방식으로 프레젠테이션을 꾸민다. 적절히 활용 가능한 비유, 이미지, 예술 등 다양한 표현 방식을 세세히 나열하였다. 당장 참고 예를 모아서 도움이 되고, 시간이 된다면 '상상력은 어디서 오는가?"챕터를 읽고 아이디어 노하우를 익히면 훨씬 유용하다.



마지막으로 전달할 차례다. 떨리는 시점이다. 사전에 전달의 기술을 숙지하고, 기기와 시각자료를 이용하고, 연습하면 대처력이 길러진다.  "이제 나는 그런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무엇이 변한 것일까? 아마도 가장 큰 변화는 더 이상 틀릴까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p.144)" 완벽한 사람은 없다. 사소한 실수까지 두려워하면 전체를 망치게 된다. 그리고 질문을 받으면 3. "대답을 생각하기 위해 잠깐 멈춰라."  4. "더도 덜도 아닌 그 질문에만 대답하라." 5. "질문자에게만 대답하지 말고 모든 청중에게 대답하라." 등은 적절한 답변에 도움을 준다. 유머 활용법은 발표 시에 윤활제가 될 것이다. "성공적인 프레젠테이션의 십계명"을 읽고 사전에 유념하고, 발표 후에 미흡한 점을 반성하는 매뉴얼로 활용하면 유용하겠다.



자기표현의 시대다. 대학에서도 프레젠테이션 수업이 늘어나고, 입사 후 조직 내 직급이 올라갈수록 표현, 연설, 발표 기술이 절실해진다. <맥킨지, 발표의 기술>은 저자가 맥킨지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로서 프레젠테이션 전문가다. 책은 독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고, 발표 단계별로 챕터를 나눠서 짜임새가 있다. 그 자체가 잘 만들어진 프레젠테이션 표본을 연상케 한다.

사족이지만, <대통령의 글쓰기>가 다시금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 연설비서관을 지낸 강원국 씨의 저서로, 재직 당시 자전적 경험담과 전직 대통령들의 글쓰기, 연설 수칙, 비법을 담았다. 두 대통령은 이구동성으로 민주 시대 리더는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연설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권위주의 시대는 힘이 권력이었지만, 민주 시대는 국민에게 자기 주장을 설득하고 지지를 받는 것이 정당한 권력이다. 자기 입장만 호소하고 질문조차 용납되지 않는 연설은 권위주의 잔재다. 연설이 아니라 상명하달이다. 발표, 혹은 연설 목적이 무엇인지조차 고려하지 않은 행태다. '청중의 권리장전', 프레젠테이션 기술, 십계명'은 실무 비결이지만, 결국 목표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 설득이고 소통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그동안 발표를 꺼려왔던 사고방식이  달라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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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불멸주의자 - 인류 문명을 움직여온 죽음의 사회심리학
셸던 솔로몬.제프 그린버그.톰 피진스키 지음, 이은경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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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p.15, <시지프 신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인간의 근본적 질문이다. 구약성경에서 에녹은 하느님과 동행하다 최초의 승천자로 이름을 남겼지만, 그것은 종교적 신화고 인간은 죽는다. 필멸성은 죽음이란 문제를 철학적으로 고민하게 한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등 메멘토 모리 문학은 인간에게 필멸성을 일깨우고, 더 가치 있고 나은 삶을 모색하도록 이끈다. "한마디로, 죽음의 공포는 인간 행동의 기저에 있는 주된 원동력이다. 이 책은 죽음의 공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인간 행동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p.9)는 심리학 관련문헌을 탐구하면 자주 접하는 연구 결과다.



그럼에도 왜 제목을 <슬픈 불멸주의자>라고 했을까.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이 어떻게 가장 고귀한 인간 행동이나 가장 비도덕적인 인간 행동 양쪽 모두의 기저를 이루는지를 밝히고, 이러한 통찰이 어떻게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진보로 이어질 수 있는지 고찰하는 것이다." (p.9) 즉, 인간은 불멸성을 추구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며,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파장을 심리학, 인류학, 고고학 등 다양한 간 학문적 연구 성과를 토대로 밝혀낸다. 셸던 솔로몬 교수를 비롯한 저자들은 25년여간 죽음의 공포가 인간사에 미치는 영향(,p.8)을 조사했다.



인간은 어떻게 죽음의 공포를 관리했을까. '문화적 세계관'과 '자존감'을 든다. 문화적 세계관이란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믿음의 체계, 우주의 기원에 대한 사고와 윤리, 도덕관을 망라하는 신념 체계다. 예컨대, 신앙으로 불멸성을 꿈꾸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주 예수께서 영생을 약속하셨다는 크리스천의 믿음을 보라. 자존감은 스스로 만족하고 본인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감정(p.70)이다. 앞서 <시지프 신화>에 나온 카뮈의 말처럼, 실존적 불안과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 자존감이 필요하다.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는가. 낮은 자존감을 포장하려고 나르시시즘이나 인격장애 심리의 기저에는 죽음의 공포가 있을지 모른다.



공포를 관리한다고 죽음을 피할 수 었다. 우리는 호모 모르탈리스(mortal : 필멸의)이기 떄문이다. 선사시대부터 각종 예술과 신화, 종교가 발생한 데는 이러한 필멸성이 작용했다. 불멸성의 추구다. 진시황이 동남동녀 삼백 명을 보내 불로장생약을 찾아오게 하거나, 염상섭의 <삼대>에서 할아버지가 어린 소녀와 동침하는 것도 '실체 불멸성'을 위해서다. 나아가 종교적 사후세계, 연금술, 도교의 양생법도 맥락을 같이 한다. 지금도 젊어지기 위해 줄기세포, 태반주사 시술을 받지 않는가. 미용 또한 인간의 육체성을 가리기 위한 심리가 기저에 있다. '육체와 영혼의 불편한 동맹(제3부 8장)'이다. 또한 '상징적 불멸성'이 있다. 유교적 방법과 비슷하다. 자신의 DNA가 담긴 자손을 낳고, 그들이 나를 기려준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기듯 부와 명성을 추구한다. 이러한 행위가 상징적 불멸성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죽음의 공포는 도리어 인간 파괴 행위로 나타나기도 한다. 공포를 관리하기 위해 문화적 세계관과 자존감은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불멸성의 욕망과 맞닿아서 집단적 존재를 확장하고 존속시키려는 열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내 신념을 남에게 강요하고, 영토와 명성, 부를 빼앗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 현대에 들어서도 나치즘이나 파시즘, 문화대혁명, 각종 전쟁과 분쟁이 일어난다. 또한 영혼 불멸성에 대한 믿음은 영혼과 육체의 이원론으로 나타났고, 육신은 저열한 단계로 취급되었다. 육신의 초라함을 꾸미기 위해 화장을 하고, 제모와 문신, 성형을 한다. 줄기세포 시술을 받고 태반주사를 맞으며, 마취제인 프로포폴 주사가 논란이 되기도 한다. 죽음의 공포는 그뿐만 아니라, 정신적 질환의 주요 원인이다. 실제 불안장애, 공황장애, 자해를 넘어서 다양한 자기애적 인격장애도 결국 기저엔 죽음의 공포로 귀결된다.



<슬픈 불멸주의자>라는 제목이 이해가 간다. '종교, 경제, 과학, 예술에서 테러까지 죽음의 두려움 앞에 드러난 인간 행동의 탐구'다. 호모 모르탈리스가 불멸성을 추구하기 위한 고군분투를 담았다. 실제로 인류사의 비극, 정신분열적 행위,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유한성이 슬프다. 슬픈 불멸주의자다. 책은 '메멘토 모리'와 슬기롭게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끝을 맺는다. 결론이 식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호모 모르탈리우스의 슬픈 파괴 행위를 긍정하고 부추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심리학적 토대 위에 종교학, 인류학, 고고학을 넘나드는 서술은 흥미로웠다. 25년 간 솔로몬 교수를 비롯한 공저자 3명의 연구 성과를 한정된 서평에 담기엔 내 필력이 한참 모자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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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28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분간 죽음을 주제로 한 책은 안 읽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저 책 표지 보자마자 읽기 시작했습니다.

캐모마일 2016-11-30 00:43   좋아요 0 | URL
아는 내용도 꽤 있었지만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소닉 2016-11-30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캐모마일 2016-11-30 00:45   좋아요 0 | URL
슬픈 불멸주의자. 제목이 인상적이었는데 책을 읽고 아 이래서 슬픈 불멸주의자구나 이해가 가더군요...
 
마음을 숨기는 기술
플레처 부 지음, 하은지 옮김 / 책이있는마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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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음을 숨기는 기술>. 사회생활에 절실할 때가 있다. 상대를 읽고 내 의중을 드러내기 위해 이심전심, 공감력이 중요하지만, 협상이나 관계 시에 자기 속내를 드러내면 독이 될 경우가 많다. 바로 전략적 상황이다. 내 심리와 행동에 따라 상대방이 이익을 위한 대응을 할 때, 생각을 읽히면 상대방이 전략을 짜는 데 정보로 활용된다. 빈틈이다. 미국이 세계 각국을 도청했다는 위키리크스의 폭로만 봐도, 상대방의 의중을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정보인지 알 수 있다.



<마음을 숨기는 기술>은 상대에게 심중을 숨기고 빈틈을 보이지 않는 기술이다. 반대로 땀을 흘리고, 턱을 쓰다듬는 행위, 거짓 웃음, 부자연스러운 언어가 어떤 신호인지 알려준다. 예컨대, 손이 눈썹 근처의 뼈를 만진다면 몹시 창피하다는 뜻이고, 눈동자가 왼쪽 아래를 향한다면 기억을 더듬고 있으며, 눈썹이 미묘하게 위로 올라가는 것은 알면서도 질문을 던지는 행동이다. 이러한 행동을 조심하거나, 독심술로 활용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마음을 숨기려면 마인드컨트롤이 필요하다. <마음을 숨기는 기술>이 단순히 특정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혹은 침착하고 당황하지 말라는 당위적 수사에서 한발 나아간다. 바로 마인드 컨트롤 기술이다. 자기절제와 욕망을 다스리고, 분노를 남에게 표출하지 않고 배출하기, 공포 다스리기, 임기응변, 독립적 사고를 하고  열등감을 통제하여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 법은 일상생활에 중요하다. 침착함과 안정감을 찾기에도 도움이 된다. 내 마음을 숨기려면 불안해서는 안 된다.



저자 플레처 부는 FBI 특수요원으로 활동하다 중화권 기업을 대상으로 관리 컨설팅 업무를 맡고 있다. FBI  재직 당시에 경험했던 사건들, 예컨대, 동료가 연쇄살인범을 심문했던 이야기나 조직 내 마인드 컨트롤 훈련법을 소개한다. 그리고 경영 환경에서 위기에 대응할 때 마인드 컨트롤이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실제 예를 통해서 다룬다. 그리고 삼국지와 중국 고사까지 인용한다. 상앙이 유세 당시에 진효공의 심중을 간파하여 기용된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아마 중화권 기업을 컨설팅하면서 중국 문화를 연구한 까닭이겠다.



<마음을 숨기는 기술>은 처세부터 독심술, 마인드 컨트롤까지 다룬다. 인간의 감정을 조절하는 변연계는 동물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마음을 그대로 표출하고 때로는 비현실적인 공포나 불안에 휘둘린다. 마인드 컨트롤, 독심술은 상대의 감정을 읽고, 내 본능을 이성적으로 제어하고 숨기는 것이 관건이다. 마치 심리학 서적을 읽는 듯하다. 남에게 심리적으로 휘둘린 경험이 많거나, 감정 조절에 실패하여 손해를 봤다면 <마음을 숨기는 기술>을 추천한다. "때로는 진실은 가면 속에 묻어두자. 오늘만큼은 이겨야 아름답기 때문이다."라는 책 표어보다 깊이 있다.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 속성을 다루고, 관리하는 FBI 훈련, 리스크 관리 컨설팅 경험이 묻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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