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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책 - 사춘기 소년이 어른이 되기까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불온서적들
이재익.김훈종.이승훈 지음 / 시공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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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책』 - '사춘기 소년이 어른이 되기까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불온서적들'.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빨간 책'이라 하면 19세 이상 섹스어필용 서적이나, 당국으로부터 불온하다고 낙인찍힌 책들이 번뜩 떠오른다. 한때 국방부에서 장하준 교수 저서 등을 금서 목록으로 지정하자, 오히려 책의 판매가 늘어나 저자와 출판사가 감사했다는 후문이 있었다. 그만큼 금지된 것들은 흥미를 끈다.

선 교육현장과 가정, 심지어 언론과 tv 매체까지 독서를 권장하고 책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하지만 대체로 권장도서들이란 세계명작 혹은 과연 현재 청소년 수준을 고려해서 뽑은 것인지, 선정자의 과도한 욕심 때문인지 모를 고루한 책들이었다. 책에 대한 강박관념만 주입시킨 채, 독서를 현학적인 고등 취미로 만들어버린 결과, 독서와 현실의 삶은 겉돌고 오히려 책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정말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책들은 '빨간 책'이 아니었을까. 『빨간 책』은 세 남자가 이야기하는 자기 삶의 '빨간 책'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담준론이 아니라 술자리에서 푸는 썰에 가깝다.

세 명의 저자 이재익, 김훈종, 이승훈 PD는 팟캐스트 '씨네타운 나인틴'을 진행 중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면 마치 팟캐스트 방송을 듣는 듯하다. 팟캐스트의 장점인 보다 자유롭고, 개인적이며, 다양한 소재들을 다루는 특성을 십분 살렸다. 이승훈 PD는 인사말부터 심상치 않다. 출판사를 따지고 든다. 소싯적에 한창 땡전뉴스로 유명했던 대통령 아들이 운영하는 출판사 출간 제의가 마뜩찮아, 맨 먼저 강풀 작가의 『26년』을 소개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이 PD. 결국 조율 끝에 "뜨거운 기억, 6월 민주항쟁"이란 부재를 단 최규석 화백 『100℃』로 운을 띄운다.

 

오락실에서 게임을 즐기는 데 동네에 최루탄 연기를 피우며 방해하는 운동권 학생들. 어른들로부터 상종하지 말라고 했던 그들의 실상을 알고부터 자신의 짧은 식견을 반성했다는 이 PD. 그의 성찰을 『100℃』 란 책 소개에 솔직하게 담았다. 뿐만 아니다. 소설가이자 라디오 PD인 이재익 작가는 묻는다. 자신이 봤던 일본 야설 『황홀한 사춘기』와 세계명작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무엇이 다른가. 후자 또한 당대에는 비난과 금서 목록을 벗어나지 못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특히 『황홀한 사춘기』의 남주인공이 테니스 강사라서 그를 따라 테니스를 배웠는데, 정말로 자신을 가르쳤던 테니스 코치가 치정살해를 당했다는 고백은 무릎을 탁 치게 한다. 친구에게 빌려줬다가 친구 엄마에게 성교육 설교를 들었던 후기까지, 『빨간 책』은 정말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H2』 , 야설 『황홀한 사춘기』 , 『조선왕조 500년』,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리차드 도킨스, 제레미 리프킨, 무라카미 류, 『체 게바라 평전』까지, 심의불문 장르불문 국내외 작가들의 다양한 책들을 소개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포인트는, 저자들만의 인생과 그들만의 시각으로 책에 대한 '썰'을 푼다는 것. 『조선왕조 500년』 구중궁궐 비사를 여성지의 란제리모델 사진보다 더 섹스 어필하게 읽었다는 김훈종 PD의 독법을 누가 나무랄 수 있을까.  그때는 알 수 없었지만 성장하면서 깨닫게 되는 고전과 철학서의 묘미까지. 그리고 소개된 책과 썰을 통해 세 PD 각각의 성향을 추리해 보는 것도 독자들에게 하나의 재미이다.

 

당시에 인터넷도, 다양한 전자 매체도 없던 시대. 외려 책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갔던 그들의 이야기가 무엇보다 재밌었다. 우리네 인생이 꼭 모범생의 생활과 정도로만 가지 않았듯, "우리는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또 잘못 배운다."고 솔직하게 썰을 푸는 그들의 입담이 무엇보다 재밌었다.  자신만의 독법과 자신만의 인생으로 책을 이해했던 썰을 읽으면서, 책이란 매체가 얼마나 도발적이며 섹시한가를 깨닫게 했다. 내 인생의 빨간 책은 무엇인가. 책은 내 인생에 어떤 의미인가. 마치 술자리의 썰을 듣고 왔는데, 집에 와서 곱씹어 보니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였다고나 할까. 『빨간 책』 이후의 내 독서인생은 보다 도발적이고 섹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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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탄생 - 창조, 발명, 발견 뒤에 숨겨진 이야기
케빈 애슈턴 지음, 이은경 옮김 / 북라이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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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차르트, 아인슈타인, 칸딘스키, 라이트 형제, 우디 앨런 등등 인류의 역사에서 위대한 창조적 성과를 낸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하나같이 비범하다. 범인들은 따라잡을 수 없고, 창조의 역량은 위인의 전유물이거나, 혹은 뛰어난 일부가 가진 축복 같다. 그러나 사물 인터넷(loT)의 개념 창시자로 유명한 기술혁신가 케빈 애슈턴은 저서 『창조의 탄생』을 통해, 이러한 '창조 신화'를 여지없이 깨 버린다.  

이러한 '창조 신화'에 대한 믿음은 학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세기 인지심리학자 터먼은 IQ지수를 바탕으로 천재유전학을 입증하고자 했다. 우생학을 믿었던 그는, IQ와 창조적 역량 간의 상관성을 밝히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그 후, 많은 실험 연구 결과 창조성과 지능지수 간의 유의미한 상관관계는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창조적인 학생군이 덜 창조적인 학생들보다 지능지수가 낮은 경우가 빈번했다.


저자에 따르면, 창조는 마법의 순간이 아니다. "창조는 걷기와 같은 사고의 결과이다. 왼발이 문제이다. 오른발이 해결책이다.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반복한다. 성공을 결정짓는 요인은 보폭이 아니라 걸음 수이다." (p.105)  창조는 노동이며, 창조적 행위는 '문제 - 해결' 프로세스의 점진적 단계를 밟아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창조적 행위는 특별한 것이 아닌,  그것은 인간 본연의 행위이다. 신경과학자의 연구는 천재나 일반인이나 창조 과정의 프로세스는 동일하다고 한다. 창조의 성과는 특별하지만, 창조의 과정은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창조할 수 있으며, '창조성 신화'의 베일이 벗겨진다면 진정 창조성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단언한다. 물론, 창조적 역량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창조, 발명, 발견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과 과학적인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창조성의 실체를 밝히고 보다 창조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많은 창조적 인물들은 심리학자 카를 던커가 말한 사고 프로세스. "왜 그것은 작동하지 않는가?", 그것이 작동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의 무한 루프, 끊임 없는 실험과 실패를 통해 창조하였다. 이 과정에서 문제를 재정의하고,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며,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 책의 원 제목인 "HOW TO FLY A HORSE"의 모티브가 된 라이트 형제, 칸딘스키, 스티브 잡스, 바닐라 대량생산법을 처음 발견한 흑인 노예 에드몽 등 여러가지 사례를 보면, 일반적인 사고과정이 끊임없이 이루어진 결과 창조가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창조는 이러한 과정을 포기하지 않는 열정이 가장 중요했다. 창조는 노동이고 노력인 이유이다. 창조는 천재의 영역보다는 성실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스티브 잡스의 경우를 통해 왜 LG 프라다폰은 아이폰이 될 수 없었는가를 보니 참 아쉬운 감정마저 들었다.


또한, 창조적 역량을 방해하는 것은 바로 익숙한 것과 통념이다. 창조도 인간의 본연의 행위지만, 익숙한 것을 선호함도 본성이다. 제멜바이스는 산모의 산욕열과 임상용 시체 간의 상관관계를 밝혀 산모의 병원 감염 치사율을 줄였지만 의료계에서 매장당했고, 주디 포크먼은 암 종양과 혈액 사이의 인과관계를 연구했지만 혁신적인 연구물을 내기 전까진 이단아로 매도당했다. 당시의 의학적 상식과 통념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는 산성이므로 무균상태일 것이다 라는 추정에 기반한 의학적 통념은 유산균 요구르트 광고로 유명한 노벨상 수상자 마셜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을 증명하기까지 지속되었다. '무주의 맹시'  때문이었다. 실제 의사들은 엑스레이와 CT사진으로 암 발생 여부는 밝혀내었지만, 고릴라 사진을 삽입한 것은 눈치채지 못했다. 전문가로서의 선택적 주의가 창조 과정을 방해하는 경우이다. 더 적게 생각하고 효율적이지만, 창조의 과정을 저해한다. 그리고 인지의 부조화를 일으켜서는 안 되는 것이다. 초심初心을 가져야 한다.


일반 직장인들은 왜 창조적 역량을 발휘하기 어려울까. 실험에 따르면, 내적 동기는 창조를 향상시키지만 외적 동기는 악화시킨다.(p. 259)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외적 보상만을 위해 일할 때 가장 압박감이 심하고 창조적 성과가 낮게 나타나는데, 이는 일반 직장인이 출근할 때의 상황이다. 그리고 조직의 창의적 역량은 "일단 증명해 봐" 식의 도전과 행동 중심의 파트너십 조직구조에서 발휘되는데, 과연 우리나라 직장 현실은 어떠한가. 물론, 기업 내에서 창조성을 증진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다. 그러나 허울뿐인 경우가 많다. 일례로 브레인스토밍. 그러나 저자는 브레인스토밍에 가진 막연한 환상의 실체를 밝힌다.

『창조의 탄생』은 창조에 관한 신화와 일반적인 통념에 근거한 대중 심리학을 과학적인 실험 결과와 역사적 사례를 통해 여지없이 깨 부순다. 책을 놓을 수 없는 이유이다. 특히, 창조의 역사란 천재들의 획기적인 성과가 아닌, 평범한 사고과정을 통한 시행착오의 연속이라는 저자의 견해가 인상적이었다. 꼭 IT 산업, 연구원, 아이디어 산업 등에 종사하지 않아도, 일선 현장에서 창의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경우가 상당하다. 인생의 많은 문제들도 마찬가지이다. 책을 통해 창조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창조적 과정을 구체적으로 배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비록 인류 역사에 남을 위대한 창조는 못하더라도, 내 인생은 보다 창조적으로 꾸려나갈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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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Axt 2015.7.8 - 창간호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엮음 / 은행나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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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설을 위한,
소설독자를 위한,
소설가들에 의한,
격월간 소설 잡지 악스트 『Axt』 창간!


격월간 소설 잡지『Axt 』.악스트는 독일어로 '도끼'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명언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에서 모티브를 얻었듯, 한국문학, 그중에서도 한국소설시장의 침체, 독자들의 외면을 깨고자 하는 취지에서 출간되었다. 여름의 무더위와는 별개로, 한국 문단계는 한파가 불었다. 출판시장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한국 작가의 문학 작품을 찾아보기가 어렵고, 무엇보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으로 인해 위상까지 실추된 지경에 이르렀다. 문단의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때,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야심차게 격월간 소설 잡지를 기획한 것이니 독자로서는 반갑고 기대가 된다. '소설을 위한, 소설독자를 위한, 소설가들에 의한, 격월간 소설 잡지'를 표방한 본격 소설 잡지. 『Axt』 악스트.


무엇보다 격월간에 '소설독자를 위한' 본격 소설 잡지란 점이 의미있다. 기존의 문예지들은 계간에다, 일반 독자에게 입문의 장벽이 너무 높았다. 마치 고시계 잡지와 같은 준엄한 모습, 한자로 된 제목으로 이미 독자를 압도한다. 책을 펼치면, 한국문단계 그들만의 리그를 위한 소식지, 전문가용 잡지인 듯해서 위축되었다.


반면에, 악스트는 세련되고 대중 친화적이다. 디자인부터 세련된 대중 예술 잡지처럼 작정하고 만든 느낌이다. 내용도 문단의 소식과 논평, 준엄한 비판 대신, '소설을 위한' 서평, 장, 단편 문학작품, 작가 인터뷰를 수록하였다. 가격도 대중친화적인 2,900원. 이 점이 문예지에 관심이 없던 독자들의 구미를 당긴다.


'창간호에는 소설서평 16편, 장편소설 3편, 단편소설 3편과 함께, 메인 커버스토리에 등장한 천명관 작가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시인 함성호씨의 서평 「우주와 인간의 신비음」을 먼저 읽었다. 박상륭 작가의 『잡설품』(2008)의 서평으로, 해당 작품을 바탕으로 난해하기로 정평난, 그러나 소설 독자라면 한번쯤 독파하고 싶은 박상륭 작가의 작품세계를 간단히 살폈다. 시인은 박상륭 작가가 구사하는 한국어를 '유리어'(아마도 죽음의 한 연구에서 나오는 도시 '유리'인 듯) 라고 칭하며, 그의 소설은 항상 슬프다고 한다. "그 유장한 사유와 끝 모를 깊이에 허우적대면서도 왜 이렇게 슬픈 것일까?"


소설뿐만 아니라, 한국 화가들의 현대 미술까지 몇 작품 소개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상선 화가의 작품 '카프카' - "의미를 만들지 않는다. 그나마 있는 의미도 지워낸다." - 가 인상적이었다. 또한 노라조 <니 팔자야> MV의 감상평과 뮤직비디오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다룬 점이 독특하다. 물론 잡지의 본령은, 처음과 끝은 소설이지만 이러한 기획도 소소한 재미를 주었다.


무엇보다, 천명관 작가의 인터뷰는 작정하고 실은 듯하다. 문단권력의 일선에 있는 이른바 '선생님들'에 대한 비판은 신랄하다. 대학의 문학 관련 학과를 근거지 삼아 문단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정해진 '선생님들'은 문학상 심사위원이 되어 작가들을 평가하고, 단편 중심의 획일화된 기준에 따라 상을 수여하는데, 작가라면 '이 리그'를 포기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천명관 작가는 이들을 '문단마피아' 라고 정의한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 이후, 문단 사정에 어두운 일반 독자들도 '문단권력'이란 말을 각종 언론에서 귀동냥으로라도 접했다.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한 결과, 문단은 독자들과 괴리되었다. 천명관 작가의 문단에 대한 비판, 도발적인 인터뷰를 창간호에 실은 이유는, 소설 잡지 악스트의 방향성을 천명하기 위함이 아닐까 짐작된다.

잡지에는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고, 장편소설 연재 코너가 있다. 특히, 다이어리 픽션이라는 장르를 표방한 임현 작가의「가능한 세계」, 김엄지 작가의 「예지3」가 독특했다.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전경린 작가의 「승객」. 잡지에 수록된 단편소설로, 담담한 일상을 담고 있지만 뭔가 여운이 있는 작품이었다.

마지막으로 편집자 일동의 맺음말. "문학은 그냥 즐거운 겁니다. Axt가 쾌락을 위한 도구가 되었으면 합니다. 문학의 즐거운 도끼가 되면 좋겠습니다."(p.256)  멋있다.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꺠는 도끼여야 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명언을 모티브로 한 격월간 소설 잡지 『악스트』가 창간호의 야심을 잃지 않고, 문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길 소설 독자로서 기원한다.


 

 

 

차례


 

 

 

우주와 인간의 신비음. 함성호 시인의 잡설품 서평

 

 

 

이상선 화가의 작품 '카프카' - "의미를 만들지 않는다. 그나마 있는 의미도 지워낸다."

 

 

 

 

 

 

 

 

노라조 <니 팔자야> MV의 감상평과 뮤직비디오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다룬 점이 독특하다.

 


 


천명관 작가의 인터뷰

 

 

 

 

 

전경린 작가의 승객.


 

 

"문학은 그냥 즐거운 겁니다. Axt가 쾌락을 위한 도구가 되었으면 합니다. 문학의 즐거운 도끼가 되면 좋겠습니다."(p.256)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꺠는 도끼여야 한다." - 프란츠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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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열린책들 세계문학 229
알베르 카뮈 지음, 최윤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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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령 알제리 오랑. 평범한 항구도시에 재앙이 닥친다. 갑자기 쥐떼들이 폐사하고, 길가에 고양이 사체가 난무한다. 이윽고 시민들이 페스트를 앓기 시작하고, 시 행정당국은 늦장대처를 하다 결국 도시가 폐쇄된다. 소설 『페스트는』는 역병 페스트가 창궐하는 폐쇄된 도시 오랑과 시민들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 알베르 카뮈는 『이방인』, 『페스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카뮈 전공자 최윤주씨가 번역, 열린책들에서 출간하였다. 


작품의 이해를 위해선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페스트는 에필로그, 프롤로그를 비롯한 총 5부로 이루어진 17~18세기 고전주의 비극 작품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저자 카뮈에 따르면, 도시 오랑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를, 페스트의 전염성이 심해지자 도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창설한 보건대는 레지스탕스 운동을 의미한다고 언급하였다.( p. 403~ 407)

 '도시 자체는 솔직히 말해 볼품이 없'는, '알제리 해안에 위치한 그저 그런 프랑스의 도청 소재지에 불과'( p.11)한 도시 오랑에서 갑작스레 발병한 페스트는 마치 비극 작품에서 영웅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운명과, 그것으로 인한 삶의 흥망성쇠, 부침을 연상케 한다. 이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비극적 형식미를 살렸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프랑스의 대다수 국민에게 나치 치하의 삶을 페스트로 허구의 형상화를 한 점이 인상적이다. 일반 국민들에게 나치 점령이란 페스트처럼 거대하고 종잡을 수 없는 역사적 재난이자 부조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지스탕스를 조직하여 저항한 역사는 큰 의미가 있고, 작품은 이를 보건대로 구체화하였다.


그러나 이야기를 전개하는 '서술자'는 도시 오랑과 보건대의 활약을 비장미를 살리거나 숭고하게 포장하지 않는다. 소설의 관점인 서술자의 기록에 따르면, "시민들이 지금 서술자의 입장이 된다면 보건대의 역할을 과장하려는 유혹에 굴복할 게 분명하다.....서술자는...영웅주의와 의지에 대하여 지나치게 감동적인 예찬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당시 페스트로 인해 상처받은 우리 시민들의 찢기고 절박한 심정을 이야기하는 역사가 노릇을 계속해 나가려 한다."(p.171~ 172)고 서술하면서, 문학적 감동보다는 보다 객관적 시각에 입각한 르포타주의 형식을 일관적으로 유지한다.


오히려 이 점이 작품을 가치 있게 만든다. 단순히 영웅적인 활약상을 담지 않고, 재앙 하에서 인간의 실존을 소설로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기 때문이다. 목숨을 위협하는 위기, 혹은 재앙이 닥칠 때  인간 본성과 실존의 군상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폐쇄된 도시에서, 시민들은 초반에 페스트를 잊기 위해 쾌락에 탐닉하고, 오히려 도시의 열기가 뜨거워진다. 결국 페스트의 기세가 심해지자 더러는 뒷거래를 통해 도시에서 탈출하고자 하고, 더러는 보건대를 조직하여 헌신하고, 종교인들은 역병에서 하느님이 주신 의미를 덧붙이기도 하며, 더러는 무기력하게 페스트를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의사 리유, 말단 공무원 그랑, 신부 파늘루, 보건대 봉사자 타루,  기자 랑베르, 살인미수 용의자 코타루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페스트라는 재앙 앞에서 그들의 가치관, 실존의 행태가 드러난다.


부조리한 세상과 저항의 기록. 특히 페스트의 종교적 의미를 역설하던 파늘루 신부가, 열살 아이가 병으로 신음하다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고뇌했던 것처럼, 역사와 인생의 많은 고통, 재앙들은 실로 합당한 이유나 의미를 찾기 어렵다. 그런 부조리에 무기력하게 편입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항하는 것. 보건대의 활약을 과장하지는 않았지만 의미있게 다룬 이유이다. 비록 서술자는 마지막 장에서 이것이 승리의 기록보다는 실패의 기록에 가깝다고 표현하지만, 작품을 읽는 독자는 내심 긍정과 희망을 발견한다.

근래 대한민국에서 중동호흡기 증후근 메르스가 창궐하여 국민이 불안에 떨었고, 정부의 미흡한 대처를 성토하는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그래놓고 메르스 관련 유언비어를 엄단하겠다는 정부의 발표. 과도한 불안이라며 국민의 걱정을 폄하했던 정부에게, 부조리에 저항하는 인간 실존의 르포타주 『페스트』를 추천한다. 인간을 이해하고 나랏일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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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의 상처이며 자존심 - 그래도 사랑해야 할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법
이나미 지음 / 예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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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힘들고 외로울 때 떠오르는 것이 가족이다. 하지만 가장 가깝기 때문에 때로는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사이. 기대가 많지만 그만큼 실망도 큰 사이가 가족이다.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 이나미 박사는 말한다. 겉으로는 직장이나 학교 등 사회생활에서의 고민과 상처로 의사를 찾지만 그 뿌리에는 가족 간의 오랜 갈등이 있는 경우가 많고, 종종 가장 크고 오래 가는 상처는 가족에게 받은 상처라고. 『당신은 나의 상처이며 자존심』은 이러한 가족 간의 문제를 다룬다.

 

책은 부모와 자식, 부부,  형제자매, 동서지간 등 대표적인 가족관계 유형 속에서의 갈등과 정서적 상처를 독특한 구성으로 풀어낸다. 먼저 각 사례마다 어울리는 시 한편으로 감성을 자극한 다음, 상대방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갈등을 구체적으로 재구성한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객관적인 시각으로 조언을 덧붙인다.

사례를 편지 형식으로 재구성하여, 자연스럽게 '입장 바꿔 생각해 보기'를 유도한 점은 독특하다. 편지를 통해 상대방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식이다. 저자는 각종 콤플렉스나 심리학 이론의 어려운 개념보다, 실제 수많은 임상사례를 바탕으로 다양한 유형의 갈등을 다루고, 가족 간의 '입장 바꿔 생각해 보기'를 통해 구성원끼리 정서적으로, 한편으론 객관적으로 공감과 이해, 소통하기를 권장한다.

 

그리고 전문의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조언을 한다. '부부는 일심동체', '가족이라면 절대로 서로에게 등을 돌려선 안 된다.' 혹은 가족은 하나라는 말은 위선이고 다른 생각을 억압하는 폭력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가족 신화'에서 벗어나 다른 가치관, 인생관을 인정해야 한다. 특히, 부부는 다른 성장환경을 안고 살아온 성인들이 이룬 가족이니만큼,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가 절실히 필요하다. 가족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성적 본능이 아닌 도덕적 책임감과 관용이라고 한다.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는 조언은 비난으로 들리며, 또한 배우자는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아주는 일심동체가 아니다. 이 책은 가족 간 소통의 기본을 가르쳐 준다.

무엇보다 저자는 가족관계에서 의존하지 말고 독립적인 마인드를 갖기를 요구한다. 가족에 대한 분노의 밑바닥에는 관계에서 철저하게 독립하지 못하고 의존적이며 끌려다니는 자신에 대한 답답함이 깔려있을 수 있다. '남여 간 사랑의 완성의 시작은 부모로부터의 정신적, 물질적 독립'(p.65) 이라는 점이 인상깊다. 미성년인 자녀는 할 수 없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와 갈등을 겪고, 고부, 장서 간의 갈등의 근간에는 이러한 의존이 깔려있다. 부부 갈등의 심연에도 부모를 향한 의존이 도사리고 있었다. 오죽하면 정신과 의사들이 부모가 다 큰 자녀들을 계속 도와주는 행동을 '독 묻는 미끼'라고 표현할까. 마찬가지로, 부모 또한 자녀에게 의지하고 성장기의 자녀처럼 통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노년의 삶을 개척해야 한다. "만약 독립 이후에 원망과 피해의식 ,정신신체화 증상 등 여러 증상이 생긴다면 좀 더 독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자아강도를 높일 것이며, 상대방이 여러 가지 불만을 호소해 온다면 강자 입장에서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상대방이 강해질 수 있도록 일종의 훈련을 조금씩 도와주는 것도 필요하다"(p. 258~259)고 주장한다.

 

저자는 말한다. “인간이 완벽한 존재가 아니듯이, 가정이란 공동체 역시 흠 없는 천국이 될 수 없다.” 가족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그 운명에 집착하여 헤어나오지 못하면 진짜 나를 성취할 수 없다고. 가족은 걸림돌이기도 하지만, 인생의 초석이다. 결국 내 발목을 잡고 늘어지지만, 내가 땅을 딛고 서서 도약할 수 있게 도와줄 발판이기도 하다."(p. 307)

 

『당신은 나의 상처이며 자존심』을 읽는 동안, 가족 간의 시각차가 크다는 점을 깨달았다. 나와 비슷한 입장에 공감을 하기도 했고, 나아가 다른 가족 구성원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저자의 조언을 통해서 갈등 속에 숨겨진 구성원의 심리를 알 수 있어서 유익했다. 가장 인상적인 조언은, 건전한 가족관계를 이루는 기초가 부모에게서 정서적, 물질적 독립을 하고 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것이었다. 독립적인 자아를 가진 사람만이 상대방에게 현실적인 기대를 하고, 요구 대신에 존재 자체를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그림자는 부모가 만들었지만, 그 그림자를 걷어내고, 그 그림자와 결별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인 것이다."(p.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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