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열린책들 세계문학 229
알베르 카뮈 지음, 최윤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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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령 알제리 오랑. 평범한 항구도시에 재앙이 닥친다. 갑자기 쥐떼들이 폐사하고, 길가에 고양이 사체가 난무한다. 이윽고 시민들이 페스트를 앓기 시작하고, 시 행정당국은 늦장대처를 하다 결국 도시가 폐쇄된다. 소설 『페스트는』는 역병 페스트가 창궐하는 폐쇄된 도시 오랑과 시민들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 알베르 카뮈는 『이방인』, 『페스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카뮈 전공자 최윤주씨가 번역, 열린책들에서 출간하였다. 


작품의 이해를 위해선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페스트는 에필로그, 프롤로그를 비롯한 총 5부로 이루어진 17~18세기 고전주의 비극 작품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저자 카뮈에 따르면, 도시 오랑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를, 페스트의 전염성이 심해지자 도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창설한 보건대는 레지스탕스 운동을 의미한다고 언급하였다.( p. 403~ 407)

 '도시 자체는 솔직히 말해 볼품이 없'는, '알제리 해안에 위치한 그저 그런 프랑스의 도청 소재지에 불과'( p.11)한 도시 오랑에서 갑작스레 발병한 페스트는 마치 비극 작품에서 영웅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운명과, 그것으로 인한 삶의 흥망성쇠, 부침을 연상케 한다. 이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비극적 형식미를 살렸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프랑스의 대다수 국민에게 나치 치하의 삶을 페스트로 허구의 형상화를 한 점이 인상적이다. 일반 국민들에게 나치 점령이란 페스트처럼 거대하고 종잡을 수 없는 역사적 재난이자 부조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지스탕스를 조직하여 저항한 역사는 큰 의미가 있고, 작품은 이를 보건대로 구체화하였다.


그러나 이야기를 전개하는 '서술자'는 도시 오랑과 보건대의 활약을 비장미를 살리거나 숭고하게 포장하지 않는다. 소설의 관점인 서술자의 기록에 따르면, "시민들이 지금 서술자의 입장이 된다면 보건대의 역할을 과장하려는 유혹에 굴복할 게 분명하다.....서술자는...영웅주의와 의지에 대하여 지나치게 감동적인 예찬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당시 페스트로 인해 상처받은 우리 시민들의 찢기고 절박한 심정을 이야기하는 역사가 노릇을 계속해 나가려 한다."(p.171~ 172)고 서술하면서, 문학적 감동보다는 보다 객관적 시각에 입각한 르포타주의 형식을 일관적으로 유지한다.


오히려 이 점이 작품을 가치 있게 만든다. 단순히 영웅적인 활약상을 담지 않고, 재앙 하에서 인간의 실존을 소설로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기 때문이다. 목숨을 위협하는 위기, 혹은 재앙이 닥칠 때  인간 본성과 실존의 군상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폐쇄된 도시에서, 시민들은 초반에 페스트를 잊기 위해 쾌락에 탐닉하고, 오히려 도시의 열기가 뜨거워진다. 결국 페스트의 기세가 심해지자 더러는 뒷거래를 통해 도시에서 탈출하고자 하고, 더러는 보건대를 조직하여 헌신하고, 종교인들은 역병에서 하느님이 주신 의미를 덧붙이기도 하며, 더러는 무기력하게 페스트를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의사 리유, 말단 공무원 그랑, 신부 파늘루, 보건대 봉사자 타루,  기자 랑베르, 살인미수 용의자 코타루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페스트라는 재앙 앞에서 그들의 가치관, 실존의 행태가 드러난다.


부조리한 세상과 저항의 기록. 특히 페스트의 종교적 의미를 역설하던 파늘루 신부가, 열살 아이가 병으로 신음하다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고뇌했던 것처럼, 역사와 인생의 많은 고통, 재앙들은 실로 합당한 이유나 의미를 찾기 어렵다. 그런 부조리에 무기력하게 편입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항하는 것. 보건대의 활약을 과장하지는 않았지만 의미있게 다룬 이유이다. 비록 서술자는 마지막 장에서 이것이 승리의 기록보다는 실패의 기록에 가깝다고 표현하지만, 작품을 읽는 독자는 내심 긍정과 희망을 발견한다.

근래 대한민국에서 중동호흡기 증후근 메르스가 창궐하여 국민이 불안에 떨었고, 정부의 미흡한 대처를 성토하는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그래놓고 메르스 관련 유언비어를 엄단하겠다는 정부의 발표. 과도한 불안이라며 국민의 걱정을 폄하했던 정부에게, 부조리에 저항하는 인간 실존의 르포타주 『페스트』를 추천한다. 인간을 이해하고 나랏일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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