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책 - 사춘기 소년이 어른이 되기까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불온서적들
이재익.김훈종.이승훈 지음 / 시공사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빨간 책』 - '사춘기 소년이 어른이 되기까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불온서적들'.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빨간 책'이라 하면 19세 이상 섹스어필용 서적이나, 당국으로부터 불온하다고 낙인찍힌 책들이 번뜩 떠오른다. 한때 국방부에서 장하준 교수 저서 등을 금서 목록으로 지정하자, 오히려 책의 판매가 늘어나 저자와 출판사가 감사했다는 후문이 있었다. 그만큼 금지된 것들은 흥미를 끈다.

선 교육현장과 가정, 심지어 언론과 tv 매체까지 독서를 권장하고 책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하지만 대체로 권장도서들이란 세계명작 혹은 과연 현재 청소년 수준을 고려해서 뽑은 것인지, 선정자의 과도한 욕심 때문인지 모를 고루한 책들이었다. 책에 대한 강박관념만 주입시킨 채, 독서를 현학적인 고등 취미로 만들어버린 결과, 독서와 현실의 삶은 겉돌고 오히려 책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정말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책들은 '빨간 책'이 아니었을까. 『빨간 책』은 세 남자가 이야기하는 자기 삶의 '빨간 책'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담준론이 아니라 술자리에서 푸는 썰에 가깝다.

세 명의 저자 이재익, 김훈종, 이승훈 PD는 팟캐스트 '씨네타운 나인틴'을 진행 중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면 마치 팟캐스트 방송을 듣는 듯하다. 팟캐스트의 장점인 보다 자유롭고, 개인적이며, 다양한 소재들을 다루는 특성을 십분 살렸다. 이승훈 PD는 인사말부터 심상치 않다. 출판사를 따지고 든다. 소싯적에 한창 땡전뉴스로 유명했던 대통령 아들이 운영하는 출판사 출간 제의가 마뜩찮아, 맨 먼저 강풀 작가의 『26년』을 소개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이 PD. 결국 조율 끝에 "뜨거운 기억, 6월 민주항쟁"이란 부재를 단 최규석 화백 『100℃』로 운을 띄운다.

 

오락실에서 게임을 즐기는 데 동네에 최루탄 연기를 피우며 방해하는 운동권 학생들. 어른들로부터 상종하지 말라고 했던 그들의 실상을 알고부터 자신의 짧은 식견을 반성했다는 이 PD. 그의 성찰을 『100℃』 란 책 소개에 솔직하게 담았다. 뿐만 아니다. 소설가이자 라디오 PD인 이재익 작가는 묻는다. 자신이 봤던 일본 야설 『황홀한 사춘기』와 세계명작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무엇이 다른가. 후자 또한 당대에는 비난과 금서 목록을 벗어나지 못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특히 『황홀한 사춘기』의 남주인공이 테니스 강사라서 그를 따라 테니스를 배웠는데, 정말로 자신을 가르쳤던 테니스 코치가 치정살해를 당했다는 고백은 무릎을 탁 치게 한다. 친구에게 빌려줬다가 친구 엄마에게 성교육 설교를 들었던 후기까지, 『빨간 책』은 정말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H2』 , 야설 『황홀한 사춘기』 , 『조선왕조 500년』,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리차드 도킨스, 제레미 리프킨, 무라카미 류, 『체 게바라 평전』까지, 심의불문 장르불문 국내외 작가들의 다양한 책들을 소개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포인트는, 저자들만의 인생과 그들만의 시각으로 책에 대한 '썰'을 푼다는 것. 『조선왕조 500년』 구중궁궐 비사를 여성지의 란제리모델 사진보다 더 섹스 어필하게 읽었다는 김훈종 PD의 독법을 누가 나무랄 수 있을까.  그때는 알 수 없었지만 성장하면서 깨닫게 되는 고전과 철학서의 묘미까지. 그리고 소개된 책과 썰을 통해 세 PD 각각의 성향을 추리해 보는 것도 독자들에게 하나의 재미이다.

 

당시에 인터넷도, 다양한 전자 매체도 없던 시대. 외려 책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갔던 그들의 이야기가 무엇보다 재밌었다. 우리네 인생이 꼭 모범생의 생활과 정도로만 가지 않았듯, "우리는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또 잘못 배운다."고 솔직하게 썰을 푸는 그들의 입담이 무엇보다 재밌었다.  자신만의 독법과 자신만의 인생으로 책을 이해했던 썰을 읽으면서, 책이란 매체가 얼마나 도발적이며 섹시한가를 깨닫게 했다. 내 인생의 빨간 책은 무엇인가. 책은 내 인생에 어떤 의미인가. 마치 술자리의 썰을 듣고 왔는데, 집에 와서 곱씹어 보니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였다고나 할까. 『빨간 책』 이후의 내 독서인생은 보다 도발적이고 섹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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