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당신은 나의 상처이며 자존심 - 그래도 사랑해야 할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법
이나미 지음 / 예담 / 2015년 7월
평점 :
가장 힘들고 외로울 때 떠오르는 것이 가족이다. 하지만 가장 가깝기 때문에 때로는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사이. 기대가 많지만 그만큼 실망도 큰 사이가 가족이다.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 이나미 박사는 말한다. 겉으로는 직장이나 학교 등 사회생활에서의 고민과 상처로 의사를 찾지만 그 뿌리에는 가족 간의 오랜 갈등이 있는 경우가 많고, 종종 가장 크고 오래 가는 상처는 가족에게 받은 상처라고. 『당신은 나의 상처이며 자존심』은 이러한 가족 간의 문제를 다룬다.
책은 부모와 자식, 부부, 형제자매, 동서지간 등 대표적인 가족관계 유형 속에서의 갈등과 정서적 상처를 독특한 구성으로 풀어낸다. 먼저 각 사례마다 어울리는 시 한편으로 감성을 자극한 다음, 상대방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갈등을 구체적으로 재구성한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객관적인 시각으로 조언을 덧붙인다.
사례를 편지 형식으로 재구성하여, 자연스럽게 '입장 바꿔 생각해 보기'를 유도한 점은 독특하다. 편지를 통해 상대방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식이다. 저자는 각종 콤플렉스나 심리학 이론의 어려운 개념보다, 실제 수많은 임상사례를 바탕으로 다양한 유형의 갈등을 다루고, 가족 간의 '입장 바꿔 생각해 보기'를 통해 구성원끼리 정서적으로, 한편으론 객관적으로 공감과 이해, 소통하기를 권장한다.
그리고 전문의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조언을 한다. '부부는 일심동체', '가족이라면 절대로 서로에게 등을 돌려선 안 된다.' 혹은 가족은 하나라는 말은 위선이고 다른 생각을 억압하는 폭력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가족 신화'에서 벗어나 다른 가치관, 인생관을 인정해야 한다. 특히, 부부는 다른 성장환경을 안고 살아온 성인들이 이룬 가족이니만큼,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가 절실히 필요하다. 가족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성적 본능이 아닌 도덕적 책임감과 관용이라고 한다.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는 조언은 비난으로 들리며, 또한 배우자는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아주는 일심동체가 아니다. 이 책은 가족 간 소통의 기본을 가르쳐 준다.
무엇보다 저자는 가족관계에서 의존하지 말고 독립적인 마인드를 갖기를 요구한다. 가족에 대한 분노의 밑바닥에는 관계에서 철저하게 독립하지 못하고 의존적이며 끌려다니는 자신에 대한 답답함이 깔려있을 수 있다. '남여 간 사랑의 완성의 시작은 부모로부터의 정신적, 물질적 독립'(p.65) 이라는 점이 인상깊다. 미성년인 자녀는 할 수 없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와 갈등을 겪고, 고부, 장서 간의 갈등의 근간에는 이러한 의존이 깔려있다. 부부 갈등의 심연에도 부모를 향한 의존이 도사리고 있었다. 오죽하면 정신과 의사들이 부모가 다 큰 자녀들을 계속 도와주는 행동을 '독 묻는 미끼'라고 표현할까. 마찬가지로, 부모 또한 자녀에게 의지하고 성장기의 자녀처럼 통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노년의 삶을 개척해야 한다. "만약 독립 이후에 원망과 피해의식 ,정신신체화 증상 등 여러 증상이 생긴다면 좀 더 독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자아강도를 높일 것이며, 상대방이 여러 가지 불만을 호소해 온다면 강자 입장에서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상대방이 강해질 수 있도록 일종의 훈련을 조금씩 도와주는 것도 필요하다"(p. 258~259)고 주장한다.
저자는 말한다. “인간이 완벽한 존재가 아니듯이, 가정이란 공동체 역시 흠 없는 천국이 될 수 없다.” 가족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그 운명에 집착하여 헤어나오지 못하면 진짜 나를 성취할 수 없다고. 가족은 걸림돌이기도 하지만, 인생의 초석이다. 결국 내 발목을 잡고 늘어지지만, 내가 땅을 딛고 서서 도약할 수 있게 도와줄 발판이기도 하다."(p. 307)
『당신은 나의 상처이며 자존심』을 읽는 동안, 가족 간의 시각차가 크다는 점을 깨달았다. 나와 비슷한 입장에 공감을 하기도 했고, 나아가 다른 가족 구성원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저자의 조언을 통해서 갈등 속에 숨겨진 구성원의 심리를 알 수 있어서 유익했다. 가장 인상적인 조언은, 건전한 가족관계를 이루는 기초가 부모에게서 정서적, 물질적 독립을 하고 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것이었다. 독립적인 자아를 가진 사람만이 상대방에게 현실적인 기대를 하고, 요구 대신에 존재 자체를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그림자는 부모가 만들었지만, 그 그림자를 걷어내고, 그 그림자와 결별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인 것이다."(p. 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