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있는 인문 수업 정치학 호모아카데미쿠스 3
고양사회교사모임 지음 / 이룸북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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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아카데미쿠스 시리즈 제 3권 <쓸모 있는 인문 수업 정치학>이 출간되었다. 1권 '사회학'을 읽었는데, 촛불 집회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정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지라 이번 '정치학'도 소장하게 되었다. 이 시리즈의 장점은 대학 입학생 교양 과정에서 다루는 인문 지식을 현실과 접목시켜 설명하는 데 있다. (뭣보다 조목조목 정리를 잘 해놨다. 게으른 독자와 한 권 읽고 아는 척하고 싶은 독자에게도 안성맞춤이다.)



요즘은 중등 교과 과정이 선택제로 바뀌어 문과생도 다방면의 사회 학문을 배울 기회가 없다고 한다. "일례로 2017학년도 수능 사회탐구 영역 응시자 중에 ...'법과 정치' 과목을 선택한 비율은 9.8%" 정도였다. 나도 대학에서 사회과학 관련과에 입학하지 않았다면 정치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사회에 발을 디뎠을 것이다. 


 

목차는 국민의 관심사를 반영하였다. '1장 헌법'과 '2장 권력 분립' 논의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전후로 뜨거운 주제였다. 헌법 교양서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영화 <변호인>에서 배우 송강호 씨가 부림 사건 재판을 모티브로 한 법정에서 '대한민국 헌법 제 1조'를 외치는 장면이 다시금 회자되었다.

헌법 제 1조 1항 민주공화국의 정의는 무엇일까. 민주주의의 어원은 '민중에 의한 지배'라는 뜻이고, 공화는 라틴어 'res publica', '공익, 공공적인 것'에서 나왔다. 즉, "다수의 민중에 의해서 움직이며. 공공의 이익을 우선으로 실현하기 위한 국가체제"를 일컫는다. 또한 인권과 기본권의 차이점은 무엇이고,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종류를 헌법재판소의 주요 결정 25선 판례로 살펴본다. 그 외 헌법 전문의 의미와 시사점, 헌법 재판과 재판소 역할 개괄, 제헌 헌법의 정신과 한때 뜨거운 감자였던 개헌 논의도 알아본다.



"2장 권력분립"에선 앞서 헌법 논의를 토대로 권력 분립의 정신과 수단 같은 이론적인 배경을 설명한 다음,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특히 지난 10년 간의 정권 동안 갖가지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국정원도 빠질 수 없다. 사법경찰권과 무기휴대권을 가지는 것은 물론, 예산과 회계가 비공개로 이뤄지고, 국가 기밀 사항에 대한 증언이나 자료 제출 거부권 등 정보기관으로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하여 폐지한 정보관 제도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되살아난 점은 특기할 사항이다. 그후 댓글 공작, 민간인 사찰 등 끊임없는 정치적 구설에 시달렸으니 말이다.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이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를 비롯하여 '3장 언론', '4장 선거', '5장 정당'은 민주 사회를 이루는 중요한 제도이다. 언론 매체와 대안 언론, 탐사 보도 등의 담론, 선거구 개편 논의, 정당의 정의와 한국 정당 정치의 문제점은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정치 주제다. 특히 탐사 보도는 MBC <피디수첩>,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경우처럼, 사회 부조리를 조명하고 해당 정부기관에서조차 진상을 밝히지 못한 문제들을 파헤치는 역할을 한다. 권력을 비판하고 경종을 울린다. 담당 PD들이 좌천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는데, 언론인의 질곡과 언론 중립성 침해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되기도 한다.

'6장 노동', '7장 복지','8장 정치인의 자질'은 피부에 와 닿는 일상의 문제이자 이른바 보수, 진보를 가르는 논쟁 이슈들이다. '노동자'와 '근로자'의 개념 차이부터 노동 3권을 비롯한 노동자의 권리와 주요 이슈(6장 노동), 복지의 개념과 국민건강보험, 진주의료원 사태 같은 공공의료 확충 문제, 복지를 바라보는 이념적 쟁점을 성실하게 다뤘다.(7장 복지) 마지막으로 정치인의 자질은 페리클레스와 막스 베버, 마키아벨리 등 정치철학자들이 주장한 정치인의 자질을  살펴본 다음, 선고공보물 체크하기처럼 현실 정치에 접목시켜 설명한다.(8장 정치인의 자질)



사회인이 되고 나 살기 바쁜 요즘에는 정치 개념이나 정치적 입장을 물어보면 난감해진다. 정치를 막연하게 알기 때문이다. 그나마 정치 이슈를 검색하고 투표는 꼭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이번에 <쓸모 있는 인문 수업 정치학>은 일선에서 법과 정치를 가르치는 교사들이 민주시민의 자질 함양과 민주 사회 실현을 목표로 집필했다. 무엇보다 정리가 잘 돼 있었다. 목차도 현실 정치 테마와 관심사를 고려하여 설정했고, 이론과 현실 이슈를 잘 버무렸다.



정치에 관심은 있는데 읽을 책을 고민하는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정리가 잘된 정치 교양서를 찾는 독자도 마찬가지다. 고시용 입문서로 쓰이는 서울대 교수 공저 <정치학의 이해>나 정당 정치에 관심이 있다고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같은 저서를 갑자기 독파하기엔 무리가 있다. 깊은 학술 담론을 알고 싶다면 바람직하지만, 당장 필요한 지식을 바란다면 <쓸모 있는 인문 수업> 시리즈가 적합하다. 적어도 대학 신입생 수준의 교양 정치 입문서 역할을 톡톡히 한다.



닫는 글로 '직접 민주주의 실현 방법에 대한 고민을 남기며'로 맺음한다. 직접 민주주의의 방안과 일상에서 느끼는 정치적 효능감을 다루려고 했으나 못 넣은 아쉬움을 토로한다. 개정판이 출간된다면 '9장 직접 민주주의'를 만날 수 있겠다. 끝으로 일선 기자와 정치인처럼 각 장의 주제에 맞는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인터뷰를 부록으로 실었다. 

P.S  '호모 아카데미우스' <쓸모 있는 인문 수업> 시리즈 경제학, 법학, 철학이 곧 출간된다고 한다. 독자가 알고 싶어하는 학문적 개념과 이론을 정리해서 짚어주고, 그걸 바탕으로 현실 담론을 끌어내는 '인문 수업' 입문서 시리즈. 쓰고 나니 출판사 홍보용 서평으로 오해받을까 걱정이다. 그래도 만약 네이버 지식인에 "요즘 정치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정치를 알고 싶은데 어떤 책을 봐야 할까요?"라는 질문이 올라온다면, 이번 고양사회교사모임 교사분들이 쓴 <쓸모 있는 인문 수업 정치학>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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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0-16 09: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설사 출판사 홍보용 서평이라도 좋습니다.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양을 기르고, 사회를 보는 비판적 안목을 갖게하는, 좋은 정치학 입문서인 것 같네요

캐모마일 2017-10-16 14:02   좋아요 2 | URL
저도 동감입니다. ‘쓸모 있는‘ 이란 시리즈 제목이 허언이 아닌 듯 합니다.
 

밀레니엄 시리즈가 워낙 유명해서 읽어보고 싶었는데, 구판이 절판된 이후 책을 구하려면 중고서점을 뒤져야했습니다. 이번에 시리즈가 재개되는 동시에 깔끔한 표지의 양장본으로 바뀌었고, ebook도 나온 덕분에 더욱 많은 독자들이 밀레니엄 시리즈를 쉽게 접할 수 있겠네요. 반가운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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秀映 2017-10-13 2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권으로 돼있어서 좋은거 같아요^^

캐모마일 2017-10-13 22:08   좋아요 0 | URL
네.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샀던 구판은 두 권으로 돼 있었는데 신판은 한 권 양장으로 나와서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해지고 소장하기도 좋아졌네요.^^

캐모마일 2017-10-13 22:10   좋아요 0 | URL
아직 댓글 이벤트 중이라 응모 가능합니다.

秀映 2017-10-13 2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감사합니다^^
 
다산의 제자 교육법 - 자투리 종이와 천에 적어 건넨 스승 다산의 맞춤형 가르침
정민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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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제자교육법>은 다산 정약용 연구로 유명한 정민 교수의 신간이다. 다산(茶山)이 "제자들에게 증언(贈言) 형식으로 건낸 가르침을 모아 갈래별로 나눠 엮었다."(p.5) 저자는 십 년이 넘게 다산이 남긴 각종 필첩 자료를 찾아 다녔고, 친필첩 절반 이상이 제자들에게 적어준 글이란 점에 착안하여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한다.(머리말 참고) <삶을 바꾼 만남>, <다산 선생 지식경영법>, <다산어록청상> 같은 책과 다산 연구로 유명한 저자라 믿음이 간다.

다산은 18년 강진 유배 생활 중에 5백여 권의 방대한 학술 업적을 남겼다. 이른바 다산학이다. 제자 육성에도 힘썼는데, <논어>의 유교무류(有敎無類)란 구절처럼 다양한 신분과 지위에 있는 이들과 교류하였다. 저자의 전작 <삶을 바꾼 만남>에도 나오는 황상과 혜장 선사, 정수칠과 윤씨 형제들, 우리나라 차 연구로 유명한 초의 선사 등, 제자들과 더불어 아름다운 일화를 남겼다.

다산은 제자에게 각자 처지와 능력에 맞게 증언(贈言)을 적어주었다. 때로는 더욱 권면하도록 이르고, 때로는 생계의 방침을 일러주고, 때로는 질책도 마다치 않았다.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하던 제자에겐 가난을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일렀고, 과수원과 특용 작물을 길러 생계에 보탬이 되도록 권했다. 부와 생계에만 매달리면 짐승과 다를 바가 무엇이냐 일갈하였다. 과거 제도의 폐단을 비판하고 참된 공부 자세를 강조하면서도, 과거 시험 준비생에겐 정암 조광조와 퇴계 이황 선생도 과거를 통해 나아갔으니 힘써 입신하도록 독려했다.

다산은 <대학>에 나오는 성실한 뜻(誠意), 바른 마음(正心)과 효제충신을 근간으로 가르쳤다. 현란하고 통속적인 문장(예컨대, "나관중을 시조로 삼고, 시내암과 김성탄을 그 아랫대의 조상으로 삼아"(p.208))보다 경학과 고문에 뿌리를 두고 도탑게 공부하기를 당부하였다. 실학을 바탕으로 조선을 경장하려 했던 학자로 알려졌지만, 공부에 관해서는 근본을 누차례 강조한 점이 인상적이다. 승려란 직분 때문에 공부에 매진하지 못하던 초의 선사에게 <논어> 공부를 "마치 임금의 엄한 분부를 받들듯 날을 아껴 급박하게 독책하도록 해라."(p.240)고 지도하였다. 아마도 시류에 휩쓸려 사람의 근본을 도외시한 학문계 현실을 아쉬워하고, 입신양명을 목적으로 과거 시험문만 연습하며 학문적 뿌리를 다지지 않는 세태를 비판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는 공부란 배움이 절반이고 가르침이 절반이라고 가르쳤다. 증언은 제자를 위한 조언이자 스스로에게 보내는 자경문이었다. 신유박해 사건으로 고신을 받고 하루아침에 고관에서 강진 유배객 신세로 떨어지고, 그것도 모자라 형제와 가문이 평지풍파를 맞았다. 매서운 시절, 다산은 좌절하는 대신 마음을 다잡았다. 강진에 처음 도착하여 주막집 주인의 배려로 방을 얻었고, 사의재(四宜齋)라 이름지었다. 사의재란 맑은 생각과 엄숙한 용모, 과묵한 말씨, 신중한 행동 네 가지를 뜻한다. 공부에 매진하다가 복사뼈가 세 번 뚫렸다는 과골삼천(踝骨三穿)의 일화를 남겨 제자 황상에게 본보기가 되었다.

 

 

증언엔 사물과 자연에서 얻은 감상, 전원 생활에 대한 이치가 담겨 있다. 다산의 감성을 엿볼 수 있다.유배 중 머물던 귤동 뒷산인 '다산(茶山)'을 호로 삼을 만큼, 차를 사랑하고 자연의 정취를 즐길 줄 알았다. 자연에서 텃밭을 가꿔 일용할 양식을 얻었고, 유배 생활의 시름을 달랬으며, 자연 그 자체를 배움터로 여겼다. 그 감상과 이치를 여러 제자에게 적어 주었다. 하나하나 깊이와 품격이 느껴진다. 정약용은 시대를 넘어 현재를 사는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비록 직접 사사하진 못하나, 그가 남긴 증언첩을 통해 살아 있는 가르침을 배운다. <다산의 제자 교육법>, 귀한 책을 만나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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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0-08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스승 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런 스승이 얼마나 있을까요?

캐모마일 2017-10-10 23:58   좋아요 1 | URL
동감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여전히 존경받는 이유는 실학을 집대성한 학문적 성과는 물론이고 스스로 본을 보여주는 삶을 사셨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음 감옥 -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앙드레 샤르보니에 지음, 권지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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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두려움이 사라질수록 기쁨은 늘어나고, 삶은 단순하면서도 경이로워진다. 그리고 나와 행복 사이에는 두려움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p.22)



<마음 감옥>의 부제는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저자는 쓸데없는 두려움으로 고통받고, 자존감을 떨어뜨리며, 스스로를 가두는 현상에 주목한다. 스스로 위축되었다고 느끼는 독자, 나아가 범불안장애, 공포증과 같은 신경증을 앓는 독자에겐 '마음 감옥'이란 제목이 와 닿을 것이다.



원래 공포는 생존 본능에서 기인한다. 위험이 닥쳤으니 긴장하고 조치를 취하라는 경고다. 문제는 비이성적인 공포다. 두려울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인다. 자존감을 떨어뜨려 잠재력을 갉아 먹는다. 심하면 신체화 증상을 동반하여 뚜렷한 이상이 없는데도 몸이 아프고, 강박증, 불안증, 공포증과 같은 장애를 일으킨다. 저자에 따르면, 원인은 정신이 만들어낸 거짓말이다. 거짓말은 일종의 최면과 같다. 현실 인식을 왜곡하여 부정적인 생각과 공포를 만든다.



저자는 비이성적 두려움이 거짓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거기서 벗어날 것을 충고한다. 자아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고의 집합체기 때문에 타자의 시선에서 '나'를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나'와 감정을 동일시하지는 않되, 감정에 적절히 대응하는 감성 지능을 길러야 한다. 대체로 부정적인 인식을 만드는 정신적 사고보다 직관에 의지한 삶을 지향한다. 오감을 깨우고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비이성적인 두려움 중 대부분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명제 때문이다. 유치할 정도로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우리가 가진 모든 문제 뒤에는 언제나 사랑이나 안전의 결핍이 있다."(p.87) 



"일, 우정, 사랑에서 모두 성공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비이성적인 두려움 때문에 막혀 있고, 그 두려움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한 일의 책임자다. 그것이 유쾌하든 불쾌하든 우리는 이를 피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맹점'이다."(p.180~181)



"우리가 두려움에 떨기 시작하면 두려움의 진동이 파장을 일으킨다. 그러면 친화력의 법칙에 따라 비슷한 진동끼리 반향을 일으키는 에그레고르가 발생한다. 동일한 진동은 서로 끌어당긴다"(p.188)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두려움의 진동을 보낸다. 결국 그는 불편함, 무력감, 부끄러움 등을 발산한다. 그렇다면 그는 청중으로부터 무엇을 받을 수 있을까?(p.198)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사고의 무한히 고도화된 조합이다. 결국 '나'는 내가 아니다."(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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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 그들은 누구인가 - 대한민국 최고의 범죄학 박사 이윤호 교수의 연쇄살인범 53명의 프로파일링
이윤호 지음, 박진숙 그림 / 도도(도서출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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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 그들은 누구인가>는 대한민국 최초의 범죄학 박사 이윤호 교수가 쓴 해외 연쇄살인범 53명의 프로파일링이다. 저자는 현재 동국대학교 경찰사법대학장과 대학원장을 맡고 있고, 범죄 관련 각종 학회장과 정부 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범죄학 전문가다.



연쇄살인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표준대국어사전에 따르면, 한 명이 연쇄적으로 사람을 죽임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로, 그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연쇄살인범이라고 한다. (p.11) 학술적으로는 다른 세 곳 이상의 장소에서 시간 간격을 두고 세 건 이상 살인을 저지르는 범행을 일컫는다.



이윤호 교수는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은 53명의 연쇄살인범을 조명한다. 범행 경위와 수법, 성장 배경과 프로파일링을 통한 심리적 분석, 그리고 범행이 미친 사회적 파장과 영향을 다룬다. 에드먼드 캠퍼, 테드 번디, 안드레이 치카틸로같은 유명한 살인마가 대표적이다.

 

 

53명 중에는 시체를 강간하거나 식인을 하는 사례가 더러 있고, 특히 성적 유희와 결합된 살인이 많았다. 사탄 숭배의 종교적 의식 차원에서 피해자를 학대, 시체를 다져서 성기 일부를 먹은 시카고 살인광 패거리도 있다. 피해자 집계는 적게는 수 명에서 페드로 로페즈 같은 경우 몇백 명을 넘었다. 공식적으로 피해자가 2백 명이 넘는 악마 의사 헤럴드 시프먼이나 악마 간호사 제니니 앤 존스는 정확한 사망자 집계조차 어려운 지경이다.



학술적인 연쇄살인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다중살상범이나 테러범도 포함했는데,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으로 유명한 컬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 2011년 한국 언론에 자주 거론됐던 노르웨이 극우주의자 브리이비크, 버지니아 공대 조승희 총기 난사 사건 등이다. <TV 서프라이즈>에 나왔던 인도의 산적 영왕 풀란 데비, 테드 카진스키도 분석한다.



연쇄살인범이 가진 소아 성애나 시체 애호증같은 변태적인 성적 지향과 범죄 행태는 서평에서 다루기 부적절할 듯하다. 일명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라 말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 자기애적 인격장애나 기타 여러가지 인격장애의 유형을 가졌고, 성장기 시절 불우한 가정 환경으로 피해자에게 분노와 그릇된 애정욕구를 투사하거나 피해자를 통제하고 괴롭히는 데서 성적 쾌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풀란 데비와 같은 몇몇 살인범을 제외하면, 영화 제목처럼 "악마를 보았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범죄학과 프로파일링 기법은 그런 악마를 연구하고 실체를 밝히며 범죄 예방과 사법 체계 개선에 기여하는 학문이다. 심리학적으로 범죄자를 분석하여 살인자의 범행 동기나 의도를 파헤친다. 우리나라 성범죄자 신상공개와 같이 미국의 메간 법, 윌리엄 휘팅 사건으로 제정된 2000년 영국 사라법, 게이시 사건으로 '실종아동 찻기 법'이 만들어진 것처럼 형사법, 범죄예방 관련법률 자문 역할을 한다. 그리고 법정에서 변호 논리로 활용되는 '정신이상 무죄변론Insanity defense'. 즉 범행 당시에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주장하는 등 여러 변론에 대한 진위를 밝히는 데 조언한다.(p.104)

우리나라도 각종 혐오 범죄나 잔혹한 살인이 일어난다. 최근 인천에서 자퇴 여고생이 초등학생을 살해하고 시체를 절단, 유기하여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재판 당시 주범 김 양은 조두순 사건처럼 정신이상 무죄변론으로 심신미약, 아스퍼거 증후군을 주장했으나 인정되지 않았다. 2014년 김해에선 한국판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 사건이 일어나 재판 중에 있다. 오원춘 사건도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구설에 오르고 있다. 비록 연쇄살인 범주에 들어가진 않지만, 사회가 양극화, 파편화가 진행될수록 이러한 잔혹 범죄가 늘어나지 않을까 염려된다.

앞서 인천 여아 살해사건의 경우 공범 박 양은 무기징역을 받은 데 반하여, 주범 김 양이 소년법을 적용받아 20년 형량을 선고받아 논란이 되었고, 소년법 개정 요구를 촉발시켰다. 콜럼비아의 경우도 무기징역이 없고 최고 형량이 정해져 있어 국민 법감정과 괴리되었다는 비판 여론이 많다. 미국 악마 간호사 존스는 영유아를 수십 명 살해했으나 교도소 과밀수용 문제로 형기의 3분의 1을 채우고 2017년 올해 가석방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녀의 엽기적 행각을 다룬 영화 <죽음의 약물>, <다중 살인> 등을 본 시민들은 공분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형사법 체계와 수형 체계 개선도 범죄학의 주요 테마다.



마지막으로 표창원 교수가 쓴 <한국의 연쇄살인>을 읽은 독자라면 한번쯤 권하고 싶다. 챕터 마지막 부분의 해외 연쇄살인 사례를 짧게 다루는데, <연쇄살인범, 그들은 누구인가>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연쇄살인범을 단순히 악마라 치부하고 비난할 것만 아니라, 악을 끊임없이 해부하고 주의해야 보다 성숙한 사회적 담론이 형성된다. 그리고 형사법이나 교정 체계도 국민 법감정에 부응하는 동시에 범죄학에 근거하여 합리적인 방향으로 지속적인 조율이 필요하다. TV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가 7%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미제 사건이나 범죄 사건에 국민들이 가지는 관심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이제 몇몇 대학이나 경찰관련학과, 전문가 대상이 아닌, 대중들을 위한 범죄학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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