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세 애착 육아의 기적
이보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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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결코 부모를 좌절시키거나 낙담하게 하려고 쓰인 것이 아니다. 또한 자신이 부모에게 찾아가서 날 왜 이렇게 키웠냐며 싸우고 원망하라고 부추기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좋은 면뿐 아니라 부정적인 부분을 온전히 인정하고 자신의 부모 역시 약한 사람이었음을 받아들여 용서해 주라고, 그리고 이제라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며 누군가에 의해 잘못 길들여진 부분을 바꿔보라고 격려해주는 책이다." (p.6)

생명체의 발달 과정에는 임계기가 있다. 임계기란, 뇌발달에서 특정 기능을 다루는 신경회로망이 집중적으로 형성되는 시기로, 이떄 적절한 자극을 주면 행동, 감각을 학습하는 데 유리하지만 시기를 놓치면 발달에 지장을 초래한다. 감각, 인격의 여러 요소 등에 대하여 다양한 임계기가 존재한다.

0 세부터 3 세까지는 아이의 감각, 인격 발달에 중요한 임계기로, 부모와의 애착 관계 속에서 다양한 감각과 자존감, 사회성, 자기조절능력, 그리고 3~5세까지 내적 작동 모델(internal working model, 자아와 타인에 대한 정신적 표상) 등이 주로 형성된다. 이 시기에 부모와 부적절한 애착관계를 형성하거나 혹은 학대를 경험하는 경우,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삶과 사회적 관계에 지장을 초래한다. 나아가 '대물림의 악순환'을 일으켜 피해자에서 가해자 부모가 되어 자녀에게 부정적인 영향이나 학대를 일삼을 가능성이 크다. 셀마 프레이머그는 이를 '요람의 유령' (p.226)으로 표현했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동안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수)는 1.24명으로 OECD 기준 꼴지를 기록했다. 핵가족화와 함께 한두 자녀 가정이 보편화되고 있다. 육아 경험은 부족해지는데 부모의 역할은 더욱 증대된 것이다.  인터넷 정보와 각종 육아서적이 많지만 사전에 철저한 임신 계획과 지식 없이 육아를 하게 되면 시행착오를 겪을 수 밖에 없는데, 많은 연구 결과는 0~5세 사이에 아이의 평생을 좌우할 발달 과정이 이우러진다고 하니, 부모로서는 큰 일이다. 과연 올바른 애착관계를 맺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엄마와 아이의 내적 작동 모델이 60~70% 일치한다. 엄마가 정서적으로 건강해야 아이가 올바로 자라난다는 방증이다. 책은 애착에 관한 어른의 심리상태를 자율형, 배척형, 집착형, 미해결형으로 분류한다. 그중 자율형이 성숙한 애착 성향이다. 그러나 부모도 아프다. 배척형, 집착형, 미해결형은 그 자체로 부모의 부모가 어떻게 잘못된 애착 관계를 맺어왔고, 그로 인해 어떤 결핍된 삶을 살아왔으며, 아이에게 어떻게 '대물림의 악순환'을 유발하는지를 나타내는 행태적 지표다. 육아서적이지만 부모의 아픔을 치유하고 성찰하는 내용이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 자체가 '잘못된 애착의 대물림을 끊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부모와의 애착 관계에 따라 대표적으로 메리 에인스워스의 '낯선 상황 절차' 실험의 4가지 분류인 안정 애착, 불안정-회피적 애착, 불안정-저항적 애착, 불안정 - 와해, 대혼돈형 애착 행태를 보인다. 책은 다양한 자녀의 행동을 분석하고, 부모가 대처해야 할 방법과 요령을 제시한다.


혹시 "내 자식은 나처럼 크지 않길 바랐는데...."하면서도 자녀에게 본인의 아픔을 되물림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거나, 혹은 종잡을 수 없는 아이의 행동에 지친 부모라면 <0~5세 애착 육아의 기적>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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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멘토 소크라테스
최성민 지음 / 시간여행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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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헤드는 "서양 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라 표현할 만큼, 플라톤은 인류의 사상사에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겼다. 주요 저작인 대화편들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스승 소크라테스는 세계 4대 성인으로 꼽히고 있다.


<나의 멘토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대화편과 소크라테스의 생애, 철학에 관한 해설서다. 무엇보다 저자 최성민 군이 19세의 고등학생이라 놀랍다. 일반 성인들도 인문, 철학에 조예가 깊지 않다면 이해가 어려운데, 바쁜 학교 공부와 입시 준비에도 평소 철학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활동을 한 학생의 저작이라 더욱 관심이 갔다.


플라톤 대화편 중 대표작인 <국가>, 주로 소크라테스의 마지막을 그리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을 통해 소크라테스의 생애와 철학을 살펴본다. 챕터 끝에 '내가 만난 사람들'이라는 사회 원로, 명사들과의 인터뷰를 실었다. 정운찬 전 총리, 백낙청 명예교수 등 학계, 정 관계 인사를 넘나드는 인터뷰였다. 무엇보다 한 고등학생이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는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역사, 인문학, 특히 소크라테스 철학을 깊이 이해하고 체화시켜 삶이 거듭난 이야기는 단지 청소년만이 아니라 성인 독자에게도 많은 본보기가 된다.


소크라테스가 불경죄와 사상범으로 아테네 법정에 설 당시는 아테네가 민주정에서 30인의 참주가 공포정치로 과두 지배를 하는 혼란기였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신이 아테네에 보낸 등에" (p.31)로 표현하며, 시민을 계몽하고 진리와 정의로운 사회를 지향했으나 결국 변론 끝에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리고 민주와 법치 의식을 가지고 의연하게 독약을 받아마신다.특히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파이돈>을 선택한 이유는 이러한 죽음의 과정을 조명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를 심화시켜 <국가>를 통해 과연 정의로운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논의를 이어나간다. 정의란 무엇이고, 통치자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상적인 정치 체제의 형태에 대한 내용을 <국가>에서 살펴본다. "소크라테스는 올바른 나라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검토하면서 무엇이 올바름인지를 차례차례 짚어나간다. 그것이 바로 책의 이름이 <국가>가 된 이유다." (p.103)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통해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다. 철학이 부재한 사회 풍토, 진정한 민주와 법치의식은 무엇인가. 특히 소크라테스가 민주정의 폐해로 말한 중우정치의 시각에서 대한민국을 성찰하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민주정의 이면을 두고 "극단적인 자유에서 가장 심하고 야만스러운 예속이 조성되어 나온다."고 말했다." (p.139) 민주정에서 독재의 맹아가 자라는 것을 나치 등으로 배웠고, 현실의 민주제 또한 고정된 시스템이 아닌 하나의 유기체로서 시민들의 관심과 역량을 통해 성숙하는 만큼, 이러한 문제의식에 많은 공감이 되었다.


책을 읽을수록 저자의 진리와 정의를 탐구하는 철학적 자세, 어려운 환경에서 좌절하지 않고 인문 정신을 삶에 체화시키는 태도,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해 반문하고 논의하는 통찰력이 경탄했다. 사회 원로 인터뷰도 두어 달 전부터 인물조사를 하고 질문을 구상하였을 만큼, 내용이 심도 있다. 저자 최성민 군은 '전국 학생 저자 책 축제'에 교육부장관상을 받았다. 이 같은 축제와 시스템이 더욱 활성화되길 바란다. 최성민 군처럼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참교육의 토양이 마련되고, <나의 멘토 소크라테스>와 같은 사회적으로 폭넓게 나누었으면 한다.

"소크라테스는 올바른 나라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검토하면서 무엇이 올바름인지를 차례차례 짚어나간다. 그것이 바로 책의 이름이 <국가>가 된 이유다."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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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류시화 지음 / 무소의뿔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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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열림원에서 출간한 류시화 시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 무소의뿔 출판사에서 재발간되었다. "이상하다./과거의 쓴 시를 자꾸만 고치게 된다./..../나는 아직 인생을 다시 쓰고 있는 중이다."라는 서시처럼, 시인이 손수 재편집한 신간이다.

 

첫 출간 당시 베스트 셀러 목록에 오르며, 시집으로서는 백만 부라는 이례적인 판매량을 기록했다. 일상적인 시어(詩語)를 사용하여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다. 다양한 울림과 메시지는 많은 독자에게 공감과 감명을 불러일으켰다.

 

 

케이블 방송사 TvN 프로그램 <비밀독서단> 27회(2016년 5월 17일 방영분) 추천도서로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 선정되었다. 패널 조승연 씨는 인도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한 시집으로 소개하며, 수록시 <신비의 꽃을 나는 꺾었다>를 낭송했다.

 

인도철학의 윤회론은 인간의 환생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소멸과 재창조를 다루는데,

 

"밝음의 한가운데로 나는 걸어갔다/ 그리고 빛에 눈 부셔 하며/ 신비의 꽃을 꺾었다/ 그 순간 나는 보았다 갑자기/ 화원 전체가 빛을 읽고 폐허로 변하는 것을" (p.18~19)

 

마치 인도신화에서 세계의 윤회는 파괴의 신 시바로 인해 멸망하고, 후에 창조의 신 브라마가 꽃 속에서 나타나는 과정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철학적 배경을 알고 있으면 시를 깊이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의 소재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이 혼자서는 완결적인 삶을 못 사는 것은, 인도철학에서 눈의 숫자만큼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고, 이를 다수의 눈을 가진 신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즉, 타인과 다른 시각을 받아들임으로써 한결 성숙하게 되는 원리다.

 

 

 

개그우먼 김숙 씨는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낭독하며,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p.16)

 

서로 사랑했던 당시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회한과 안타까움을 담은 시로 해석하였다.

 

이 외에도, 백영옥 소설가는 <저편 언덕>, 오상진 MC는 <벽에 못을 박다>를 낭송하며 감상을 소개하였다. 명작은 감상자가 다양한 매력을 느끼고, 저마다의 내면에 나름의 텍스트로서 재창조되는 과정을 거친다. 시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누군가는 인도철학에 기반한 구도시로, 누군가는 절절한 사랑의 노래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나에게 시집은 진정한 실존을 향한 여정이었다.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가 그랬듯이. 주인된 삶을 살지 못하고 타성에 젖었던 과거에서 새로운 삶,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구도의 과정이었다. 다음은 <여행자를 위한 서시>의 일부다.

 

"거짓에 잠든 세상 등 뒤로 하고/ 깃발 펄럭이는 영원의 땅으로/ 홀로 길 떠나는 아침이여/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자/ 혹은 충분히 사랑하기 위해 길 떠나는 자 행복하여라/ 그대의 영혼은 아직 투명하고/ 사랑함으로써 그것 때문에 상처 입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리/ 그대가 살아온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이니/ 이제 자기의 문에 이르기 위해 그대는/ 수많은 열리지 않는 문들을 두드려야 하리/ 자기 자신과 만나기 위해 모든 이정표에게/ 길을 물어야 하리/ 길은 또 다른 길을 가리키고/ 세상의 나무 밑이 그대의 여인숙이 되리라" (p.32~33)

 

<소금>은 어떤가. 소금은 주요한 소재로서 여러 작품에 등장한다. 바다의 상처이고 아픔이지만, 그 눈물이 있어 "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 (p.10) 삶의 아픔이 정제되어 맑고 새하얀 결정, 짠맛으로 세상 모든 것에 조미될 수 있는 필수재로 거듭나는 것이 아닐까. 내 삶의 여정은 마치 고승의 사리처럼 아픔을 승화시킨 결정이 될 수 있을까.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는 것을" (p.10)

 

 

 

과거에 시집을 접했지만, 단순히 감성적인 일상의 언어로 풀어쓴 연애시 정도로 인식하였다. 류시화 시인의  "나는 아직 인생을 다시 쓰고 있는 중이다." 라는 서시 구절처럼, 독자도 삶을 살아가면서 시를 다시금 음미하고 재해석하게 된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재출간이 반갑다.

 

그대가 살아온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이니/ 이제 자기의 문에 이르기 위해 그대는/ 수많은 열리지 않는 문들을 두드려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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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31 2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캐모마일 2016-06-01 0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덕분에 좋은 리뷰를 잘 읽고 있습니다. 책으로 친구를 맺고 책 이야기와 소감을 나누는 것이 북플의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실존의 조건 1 실존의 조건 1
김주호 지음 / 자유정신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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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중대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를 판단하는 것. 이것이 철학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 시지프의 신화

 

왜 자살하지 않느냐고 카뮈는 물었다. 그냥 살만한 것이 아니라 사는 이유를 찾으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삶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p.49)


지금도 존재와 실존에 대한 질문은 인간의 끊임 없는 숙제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인생사, 지금 여기 나의 존재의미와 실존은 무엇인가. 인류의 숙제다.


<실존의 조건>은 실존에 대한 철학 에세이이자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한 8가지 조건'에 대한 단상이다. 오두막 산장에서 산 아래 광장, 작은 절 돌계단과 언덕, 차가운 바람이 부는 산 정상과 가파른 절벽, 오두막 카페까지. 책은 철학자의 산행 과정과 머릿속에 떠오르는 실존을 향한 철학적 단상들을 나열한다. 산을 오르듯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독자는 나름대로 아포리즘들을 음미하면서 실존에 대하여 고찰하고 음미하게 된다.


책 목차인 1권  1장. '연극을 떠나다', 2장. '사람을 목적하다', 3장. '존재를 보다', 4장. '나를 가라앉히다', 2권 1장.'질서를 무너뜨리다', 2장. '존재를 형상화하다', 3장. '모방을 벗다', 4장. '생각을 멈추다' 는 [나]라는 실존을 회복해가는 과정이자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한 8가지 조건이다.


<실존의 조건>에서 말하는 [나] 실존은 어떤 모습인가. 실존을 향한 탐구로 삶의 자기화를 이루고, 평등한 자유와 최대 다수의 최대 자유를 획득하려는 의지와 힘을 가진 자아다. 이는 극화(劇化)되고, 억압되고, 위장된 도덕관에 갇힌 삶에서 벗어나 절대 도덕과 진리를 찾는 여정이다.


"삶이 극화되면,  자신을 적절하게 치장하는 일이 자신을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 그리고 유일한 일이 될 것이다."(p20)  또한 억압이란, 노예적 삶, 풍요의 억압, 권력과 기득권이 주입하는 가치와 행사의 억압, 위장된 도덕의 억압이다. "위장된 도덕은 무엇인가. [나]를 잃게 만드는 것, 의미 없이 조직과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 성실함으로 위장된 극히 제한된 자유정신, 이것이 위장된 도덕이다."(p.57)


니체의 <도덕의 계보>와 미셸 푸코의 고고학처럼 일반 상식과 억압, 도덕체계를 부정하여야 한다. 결국 기존의 자아를 부정하고 새로운 자기 사유 공간을 만들어 삶의 자기화를 달성해야 하는 것이다. 대상화(對象化)된 나와 세상의 대상(對象)까지 포섭한 통합적 사유체계를 달성해야 한다. 이를 통해 실존 [나]를 회복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최대 다수의 최대 자유를 향한 의지(意志)를 실천해야 한다. 마치 차라투스트라가 민중의 어둠을 밝히기 위한 횃불을 밝혔던 것처럼.


"우리 삶의 가치는 타자(他者)에 의해 평가될 만큼 그렇게 보잘것없지 않다."(2권, p.213) 편견, 내면화된 사회적 관성과 타성, 거기에 물든 자아까지 부정하고, 실존과 자유를 향한 철학적 여정에 참여하는 경험은 색달랐다. <실존의 조건>을 통해 실존 철학의 소양을 기르고, 혹은 철학적 소양을 더욱 함양한 다음 책을 접해본다면 실존을 향한 여정을 더욱 깊이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삶의 가치는 타자(他者)에 의해 평가될 만큼 그렇게 보잘것없지 않다."(2권,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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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선(禪)을 말하다 - 전 세계가 사랑한 프랑스 최고 문학으로 만나는 선 선(禪)을 말하다
시게마츠 소이쿠 지음, 오상현 옮김 / 스타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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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은 책도 적지 않지만, 너에게서처럼 커다란 감동을 받은 책은 많지 않았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나한테는 단순한 책이 아니라 하나의 경전이라고 한대도 조금도 과장이 아닐 것 같다. 누가 나더러 지묵紙墨으로 된 한두 권의 책을 선택하라면 <화엄경>과 함께 선뜻 너를 고르겠다."(법정, <무소유>, p.116)


故 법정 스님이 스무 번을 넘게 애독했고, 이처럼 경탄한 책은 바로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이다. 1943년 출간되어 평단의 극찬을 받았고, 더러는 동화이자 더러는 철학적 단편으로 남녀노소의 사랑을 받았다. 270여 개의 언어, 방언으로 번역되었고, 최소 8천만 부 이상 판매된 것으로 집계되었다. 법정스님을 비롯하여 많은 지성인과 명사들이 극찬한 책으로 짧은 이야기에 사막 속 오아시스 같은 깨달음이 가득하다.


과연 법정스님이 <어린왕자>에게 받은 감동과 깨달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저서 <무소유>에서 직접 쓰신 "어린왕자에게 보내는 편지'로 간략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지만, "행간에 쓰여진 사연"과 "여백에 스며 있는 목소리까지도" 읽을 수 있었다는 이심전심까지 가늠키는 어렵다.

<어린왕자 선을 말하다>로 선禪의 시각에서 어린왕자를 바라보고, 불교적인 깨우침을 얻어보면 유익한 단서가 될 것이다. 저자 시게마츠 소이쿠는 전직 대학교수이자 영문학자, 번역가로서 현재 임제종에 귀의하여 다양한 강의, 지도 등으로 선禪의 세계를 알리는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서구권에서는 '젠Zen' 으로 알려질 만큼 일본을 통해 선문화가 알려졌는데, 저자는 세계인들에게 올바른 깨달음과 수행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린왕자>는 선禪의 세계와 맞닿아 있었다.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사물을 정확하게 볼 수 없단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야." (p.112) 라는 사막여우의 말은 선종의 특징인 '불립문자不立文字'와 통한다. 보아뱀 속의 코끼리, 상자 속의 양, 사막 속 오아시스의 존재를 감지하는 희망, 마치 하나의 동그라미 그림인 일원상一圓相에서 '무한대의 둥근 거울과 같은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대원경大圓鏡을 깨닫는 심안心眼'의 세계다.


"별이 아름다운 이유는 거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꽃이 있기 때문이에요."( p.155) 어린왕자는 말한다. 존재의 존엄성, 불성佛性은 보이지 않는다. 물질적이고 정량적인 가치 체계에서 벗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엄성과 정성적 가치를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린왕자는 사막 장미밭에서 수천 송이의 장미를 보고 좌절한다. 마치 깨달음의 과정을 열 가지 그림으로 표현한 십우도十牛圖의 제 8그림 인우구망人牛俱忘의 단계이자 <반야심경> 구절인 색즉시공色卽是空에 비유할 수 있다. 존재는 개별성을 잃고 무無로 돌아가며, 일시적인 현상에서 본질적인 동일성(眞如)을 깨닫는 경지다. 자기별의 한 송이 장미는 장미밭의 장미와 다르지 않음을 슬프지만 깨닫는다. 인연과 현상의 차이점에서 평등과 동일성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러나 어린왕자는 여우를 만나 우정을 쌓고,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세계를 깨닫는다. 여우는 말한다. "네가 너의 장미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네가 장미를 위해서 엄청난 시간을 들였기 때문이야. ....자신이 마음의 인연을 맺은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해. 너는 너의 장미꽃을 소중히 여겨야 해." (p.112) 만물은 동등한 존엄성을 갖고 있지만,  지금 여기서 인연을 맺고 존재하는 것은 기적이며, 개성의 발현이다. 이는 십우도의 "제9그림 반본환원 返本還源, 모습이 있는 그대로 비치" (p.108)의 단계다. 평등하지만 각각의 개성을 유일한 존재로서의 가치를 발현하는 것이다. 저자는 젠 개체성(Zen Individuality)이라 표현한다.


법정 스님이 사랑한 <어린왕자>는 독자에 따라 다양한 철학과 관점으로 깨달음을 주는 텍스트이기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선종의 깨달음과 수행 과정이라는 관점은 값진 경험이었다. 어린왕자의 여정은 보이지 않는 가치, 맹목적인 일상과 타성에 젖지 않은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험이었다. <법구경>은 "자기야말로 자기 자신의 주인이다. 그 외에 누가 주인이겠는가?" (p.78)라고 한다.


또한 색즉시공의 진여眞如와 공즉시색의 소중한 인연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의 만남은 모두 '일기일회(一期一會)입니다. 인생에서 단 한 차례의 만남입니다. 무엇이든 단 한 차례만의 만남입니다. 지금 이곳에 있는 나는 다음 순간에는 별다른 내가 되기 때문입니다. 한순간 한순간 그때 그때 그것으로 완결되기 때문입니다. 이 한순간의 무게를 차분히 실감하고 한순간의 다시없는 소중함에 대해 생각할 때, 만남과 이별이 지니는 깊은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p.175)


<어린왕자 선을 말하다>를 통해 <어린왕자>를 한결 깊이 음미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사물을 정확하게 볼 수 없단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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