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류시화 지음 / 무소의뿔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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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열림원에서 출간한 류시화 시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 무소의뿔 출판사에서 재발간되었다. "이상하다./과거의 쓴 시를 자꾸만 고치게 된다./..../나는 아직 인생을 다시 쓰고 있는 중이다."라는 서시처럼, 시인이 손수 재편집한 신간이다.

 

첫 출간 당시 베스트 셀러 목록에 오르며, 시집으로서는 백만 부라는 이례적인 판매량을 기록했다. 일상적인 시어(詩語)를 사용하여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다. 다양한 울림과 메시지는 많은 독자에게 공감과 감명을 불러일으켰다.

 

 

케이블 방송사 TvN 프로그램 <비밀독서단> 27회(2016년 5월 17일 방영분) 추천도서로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 선정되었다. 패널 조승연 씨는 인도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한 시집으로 소개하며, 수록시 <신비의 꽃을 나는 꺾었다>를 낭송했다.

 

인도철학의 윤회론은 인간의 환생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소멸과 재창조를 다루는데,

 

"밝음의 한가운데로 나는 걸어갔다/ 그리고 빛에 눈 부셔 하며/ 신비의 꽃을 꺾었다/ 그 순간 나는 보았다 갑자기/ 화원 전체가 빛을 읽고 폐허로 변하는 것을" (p.18~19)

 

마치 인도신화에서 세계의 윤회는 파괴의 신 시바로 인해 멸망하고, 후에 창조의 신 브라마가 꽃 속에서 나타나는 과정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철학적 배경을 알고 있으면 시를 깊이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의 소재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이 혼자서는 완결적인 삶을 못 사는 것은, 인도철학에서 눈의 숫자만큼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고, 이를 다수의 눈을 가진 신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즉, 타인과 다른 시각을 받아들임으로써 한결 성숙하게 되는 원리다.

 

 

 

개그우먼 김숙 씨는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낭독하며,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p.16)

 

서로 사랑했던 당시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회한과 안타까움을 담은 시로 해석하였다.

 

이 외에도, 백영옥 소설가는 <저편 언덕>, 오상진 MC는 <벽에 못을 박다>를 낭송하며 감상을 소개하였다. 명작은 감상자가 다양한 매력을 느끼고, 저마다의 내면에 나름의 텍스트로서 재창조되는 과정을 거친다. 시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누군가는 인도철학에 기반한 구도시로, 누군가는 절절한 사랑의 노래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나에게 시집은 진정한 실존을 향한 여정이었다.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가 그랬듯이. 주인된 삶을 살지 못하고 타성에 젖었던 과거에서 새로운 삶,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구도의 과정이었다. 다음은 <여행자를 위한 서시>의 일부다.

 

"거짓에 잠든 세상 등 뒤로 하고/ 깃발 펄럭이는 영원의 땅으로/ 홀로 길 떠나는 아침이여/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자/ 혹은 충분히 사랑하기 위해 길 떠나는 자 행복하여라/ 그대의 영혼은 아직 투명하고/ 사랑함으로써 그것 때문에 상처 입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리/ 그대가 살아온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이니/ 이제 자기의 문에 이르기 위해 그대는/ 수많은 열리지 않는 문들을 두드려야 하리/ 자기 자신과 만나기 위해 모든 이정표에게/ 길을 물어야 하리/ 길은 또 다른 길을 가리키고/ 세상의 나무 밑이 그대의 여인숙이 되리라" (p.32~33)

 

<소금>은 어떤가. 소금은 주요한 소재로서 여러 작품에 등장한다. 바다의 상처이고 아픔이지만, 그 눈물이 있어 "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 (p.10) 삶의 아픔이 정제되어 맑고 새하얀 결정, 짠맛으로 세상 모든 것에 조미될 수 있는 필수재로 거듭나는 것이 아닐까. 내 삶의 여정은 마치 고승의 사리처럼 아픔을 승화시킨 결정이 될 수 있을까.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는 것을" (p.10)

 

 

 

과거에 시집을 접했지만, 단순히 감성적인 일상의 언어로 풀어쓴 연애시 정도로 인식하였다. 류시화 시인의  "나는 아직 인생을 다시 쓰고 있는 중이다." 라는 서시 구절처럼, 독자도 삶을 살아가면서 시를 다시금 음미하고 재해석하게 된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재출간이 반갑다.

 

그대가 살아온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이니/ 이제 자기의 문에 이르기 위해 그대는/ 수많은 열리지 않는 문들을 두드려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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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31 2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캐모마일 2016-06-01 0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덕분에 좋은 리뷰를 잘 읽고 있습니다. 책으로 친구를 맺고 책 이야기와 소감을 나누는 것이 북플의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