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선(禪)을 말하다 - 전 세계가 사랑한 프랑스 최고 문학으로 만나는 선 선(禪)을 말하다
시게마츠 소이쿠 지음, 오상현 옮김 / 스타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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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금까지 읽은 책도 적지 않지만, 너에게서처럼 커다란 감동을 받은 책은 많지 않았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나한테는 단순한 책이 아니라 하나의 경전이라고 한대도 조금도 과장이 아닐 것 같다. 누가 나더러 지묵紙墨으로 된 한두 권의 책을 선택하라면 <화엄경>과 함께 선뜻 너를 고르겠다."(법정, <무소유>, p.116)


故 법정 스님이 스무 번을 넘게 애독했고, 이처럼 경탄한 책은 바로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이다. 1943년 출간되어 평단의 극찬을 받았고, 더러는 동화이자 더러는 철학적 단편으로 남녀노소의 사랑을 받았다. 270여 개의 언어, 방언으로 번역되었고, 최소 8천만 부 이상 판매된 것으로 집계되었다. 법정스님을 비롯하여 많은 지성인과 명사들이 극찬한 책으로 짧은 이야기에 사막 속 오아시스 같은 깨달음이 가득하다.


과연 법정스님이 <어린왕자>에게 받은 감동과 깨달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저서 <무소유>에서 직접 쓰신 "어린왕자에게 보내는 편지'로 간략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지만, "행간에 쓰여진 사연"과 "여백에 스며 있는 목소리까지도" 읽을 수 있었다는 이심전심까지 가늠키는 어렵다.

<어린왕자 선을 말하다>로 선禪의 시각에서 어린왕자를 바라보고, 불교적인 깨우침을 얻어보면 유익한 단서가 될 것이다. 저자 시게마츠 소이쿠는 전직 대학교수이자 영문학자, 번역가로서 현재 임제종에 귀의하여 다양한 강의, 지도 등으로 선禪의 세계를 알리는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서구권에서는 '젠Zen' 으로 알려질 만큼 일본을 통해 선문화가 알려졌는데, 저자는 세계인들에게 올바른 깨달음과 수행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린왕자>는 선禪의 세계와 맞닿아 있었다.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사물을 정확하게 볼 수 없단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야." (p.112) 라는 사막여우의 말은 선종의 특징인 '불립문자不立文字'와 통한다. 보아뱀 속의 코끼리, 상자 속의 양, 사막 속 오아시스의 존재를 감지하는 희망, 마치 하나의 동그라미 그림인 일원상一圓相에서 '무한대의 둥근 거울과 같은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대원경大圓鏡을 깨닫는 심안心眼'의 세계다.


"별이 아름다운 이유는 거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꽃이 있기 때문이에요."( p.155) 어린왕자는 말한다. 존재의 존엄성, 불성佛性은 보이지 않는다. 물질적이고 정량적인 가치 체계에서 벗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엄성과 정성적 가치를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린왕자는 사막 장미밭에서 수천 송이의 장미를 보고 좌절한다. 마치 깨달음의 과정을 열 가지 그림으로 표현한 십우도十牛圖의 제 8그림 인우구망人牛俱忘의 단계이자 <반야심경> 구절인 색즉시공色卽是空에 비유할 수 있다. 존재는 개별성을 잃고 무無로 돌아가며, 일시적인 현상에서 본질적인 동일성(眞如)을 깨닫는 경지다. 자기별의 한 송이 장미는 장미밭의 장미와 다르지 않음을 슬프지만 깨닫는다. 인연과 현상의 차이점에서 평등과 동일성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러나 어린왕자는 여우를 만나 우정을 쌓고,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세계를 깨닫는다. 여우는 말한다. "네가 너의 장미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네가 장미를 위해서 엄청난 시간을 들였기 때문이야. ....자신이 마음의 인연을 맺은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해. 너는 너의 장미꽃을 소중히 여겨야 해." (p.112) 만물은 동등한 존엄성을 갖고 있지만,  지금 여기서 인연을 맺고 존재하는 것은 기적이며, 개성의 발현이다. 이는 십우도의 "제9그림 반본환원 返本還源, 모습이 있는 그대로 비치" (p.108)의 단계다. 평등하지만 각각의 개성을 유일한 존재로서의 가치를 발현하는 것이다. 저자는 젠 개체성(Zen Individuality)이라 표현한다.


법정 스님이 사랑한 <어린왕자>는 독자에 따라 다양한 철학과 관점으로 깨달음을 주는 텍스트이기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선종의 깨달음과 수행 과정이라는 관점은 값진 경험이었다. 어린왕자의 여정은 보이지 않는 가치, 맹목적인 일상과 타성에 젖지 않은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험이었다. <법구경>은 "자기야말로 자기 자신의 주인이다. 그 외에 누가 주인이겠는가?" (p.78)라고 한다.


또한 색즉시공의 진여眞如와 공즉시색의 소중한 인연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의 만남은 모두 '일기일회(一期一會)입니다. 인생에서 단 한 차례의 만남입니다. 무엇이든 단 한 차례만의 만남입니다. 지금 이곳에 있는 나는 다음 순간에는 별다른 내가 되기 때문입니다. 한순간 한순간 그때 그때 그것으로 완결되기 때문입니다. 이 한순간의 무게를 차분히 실감하고 한순간의 다시없는 소중함에 대해 생각할 때, 만남과 이별이 지니는 깊은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p.175)


<어린왕자 선을 말하다>를 통해 <어린왕자>를 한결 깊이 음미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사물을 정확하게 볼 수 없단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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