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잉 인피니트 - FTX 창립자 샘 뱅크먼프리드는 어떻게 55조 원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는가
마이클 루이스 지음, 박홍경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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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만 해도 5천만 원을 하던 비트코인이 어느새 1억 4천만 원을 넘었다. 웬만해선 놀라지 않는 성격인데, 적잖이 당황하게 된다. 이것이 무엇이길래, 도대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금본위제가 폐지된 이후 돈은 상호주관적실재가 됐다. 예전엔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하기 위해선 반드시 새로 발행할 화폐 가치만큼의 금을 보관하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과거에는 은행에 돈을 들고 은행이 정확히 그만큼의 금을 내줄 수 있어야 했다. 돈은 유통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금 자신이 낳은 분신이었다.


각국의 중앙은행은 이것이 너무나 불편했다. 코로나 대재앙으로 시민 1명당 30만 원의 돈을 주고 싶은데 갑자기 그 정도의 금이 어디서 나오겠는가? 새로운 금맥이 발견될 리도 없고, 금광의 생산량을 갑자기 늘릴 수도 없다. 그나마 이런 고민은 금광을 가진 나라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정부는 내키는 대로 돈을 찍고 싶었고(이것이 바로 통화정책이다) 금본위제는 사라졌으며 돈의 실재적 가치도 같이 날아가버렸다. 돈에게 남은 건 실질적 가치뿐인데 이것은 100% 우리의 믿음에서 나온다. 돈이 가치를 갖는다는 우리의 믿음. 그 돈을 발행하는 국가에 대한 믿음. 그 돈의 가치가 일정하게 유지될 거라는 믿음. 그러나 믿음이란 언제든 지옥으로 떨어질 준비가 되어있는 연약한 존재 아니던가?


비트코인의 창시자 나카모토 사토시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대응하는 정부의 방식에 신물이 났다. 월가에 엄청난 구제금융이 쏟아져 들어갔는데, 그건 부자들의 파산을 막기 위해 가난한 납세자들의 돈을 쓰는 것이었다. 누군가 중앙에서 이 모든 권한을 쥐고 있는 한 이러한 일이 반복될 수 있다고 판단한 사토시는 그 어떤 기관의 보증도, 관리도 필요 없이, 그 돈을 소유한 사람들끼리 상호 보증하는 화폐인 비트코인을 창시한다.


비트코인이 허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가진 돈, 은행 어플에 찍힌 그 숫자가 얼마나 허상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그 가치를 마음대로 조정할 중앙기관이 없고, 심지어 발행량이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비트코인은 실물 화폐보다 훨씬 믿을만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사용자는 창시자의 예상을 넘어선다. 땅속에 묻혀 아무도 모르던 비트코인을 발굴한 건 창시자의 숭고한 의도에 이끌린 열정이 아니라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 FTX의 샘 뱅크먼프리드는 그 욕망이 가장 활발하게 타오르기 직전 우연히 이 세계에 발을 디뎠고, 우연히 전 세계 30대 미만의 사람 중 가장 많은 부를 거머쥐었다가, 하루아침에 25년형을 선고받은 범죄자가 되었다. <고잉 인피니트>는 마이클 루이스의 책답지 않게 구성이 산만하고 느닷없이 끝나버린다. 절정을 향해 차곡차곡 이야기를 쌓는 저자 특유의 드라마틱 저널리즘의 힘이 약하다. 나는 이것이 의도된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샘 뱅크먼프리드가 벌어들이는 돈, 그가 쓰는 돈, FTX와 알라메다 리서치와 바이낸스와, 기타 암호화폐 시장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쏟아내는 돈의 단위는, 마치 가장 큰 단위의 수를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 게임을 보듯 신기루처럼 느껴진다. 도저히 가슴에 와닿지 않는 그 숫자들, 그러다 갑자기 사라져 버린 숫자들. 독자가 느끼는 그 당혹스러움, 그 헛헛함, 그 어리둥절이 바로 당시 암호화폐라는 로켓을 타고 우주로 향하던 사람들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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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재나 마르틴 베크 시리즈 1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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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정말로 신비하다. 전개만 보면 진작에 책장을 건너뛰며 후루룩 넘겼을 게 분명한데, 이상하게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평범하고 지루한 이야기가, 짧지도 않다. 형사는 대단한 추리력도, 체력도 없다. 그는 아내에게 잔소리를 듣고, 전철로 출퇴근을 하며, 택시비를 걱정하는 소시민이다. 그가 이 사건의 해결에 기여한 점이라고는 그저 끝까지 견디며 자리를 지킨 것뿐이다.


저자는 두 사람이다.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 한 회사에서 서로 다른 잡지를 담당하던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전기가 통했고, 연인으로 발전했다. 셰빌에게는 아이가, 발뢰에게는 아내가 있었기에 두 사람은 발뢰의 이혼 후에야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결혼제도에 대한 불만으로 부부가 되진 않았지만 발뢰가 죽을 때까지 두 사람은 함께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썼다.


소설을 같이 쓴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내 눈에는 갈등과 싸움의 광경만이 끝없이 펼쳐진다. 줄거리는 누가 짓고 인물은 누가 만드는가. 모든 걸 같이? 아니면 서로 나눠서? 이 힘든 일을 두 저자는 시리즈의 마지막까지 해냈다. 무려 10권이다. 발뢰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두 사람의 작업은 비로소 매듭을 지었다.


셰발과 발뢰는 처음부터 10권을 생각했고 그때부터 완전한 의견일치를 보았던 게 분명하다. 이야기엔 분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한 필의 비단처럼 매끈하다. 두 사람이 기자 출신이라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현실의 경찰이 현실의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사실을 엮어내면 된다. 취재를 나눠하기도 좋고, 이야기를 붙이는데도 문제가 없다. 이게 바로 <로재나>의 핵심이다.


<로재나>는 소설이지만 마르틴 베크의 사건 일지, 혹은 일기, 혹인 관찰기의 성격을 띤다. 사건은 간간이 들어오는 단서를 기점으로 약간의 진전을 보이지만 여전히 느릿느릿 움직인다. 다만 우연을 다루는 방식이 절묘하다. 피해자가 찍힌 사진이 나타나고, 8mm 필름이 발견되고, 거기에 용의자가 찍혀있고, 순찰을 돌던 순경이 우연히 용의자를 발견하고. 전혀 극적이지 않아 이야기의 풀을 죽일법한 고약한 우연들이 아주 매끄럽게 붙어있다. 오! 하는 느낌과 함께 독자는 마르틴 베크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부분이 정말로 신비롭다.


<로재나>는 1965년에 출간 됐다. 당시 스웨덴에서는 이언 플레밍의 007 같은 시리즈가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 장르의 틈바구니에서 이런 가미되지 않는 맛이 어떻게 독자의 입맛을 사로잡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출간 즉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중장년 층은 당혹스러웠고 젊은 세대는 열광했다고 한다. 외부에는 부르주아 복지 국가로 알려진 유토피아 스웨덴. 그 그늘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건조한 소설은 도대체 어떤 힘을 숨기고 있는 걸까?


두 작가가 이 장르를 선택한 이유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라서였다고 한다. 골치 아픈 기사는 눈에서 멀리하고 싶지만 같은 얘기도 소설로 풀어내면 여름휴가에도 따라갈 수 있다. 이 영리한 작가들의 위대한 시작이,


바로 <로재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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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어스 포커 (완역본) - 월스트리트 천재들의 투자 게임, 《빅 쇼트》 작가의 대표작!
마이클 루이스 지음, 장진영 옮김 / 이레미디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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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어스 포커>는 마이클 루이스의 씨앗이자 뿌리이다. 이 책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데, 이 작가의 시작이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아직 모든 작품을 읽어본 건 아니지만) 자기 자신이 주인공인 유일한 책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당연히 후기작들에 비해 부족한 점은 많다. 나는 영화 <머니볼>을 적어도 10번 이상 봤고 감독 베넷 밀러(베스트는 <폭스 캐쳐>다)를 무지하게 좋아하지만 해티버그가 역전 홈런을 때리며 오클랜드를 20연승의 고지에 올려놓는 장면에선 두고두고 땅을 쳤던 사람이다. 원작 <머니볼>에서의 묘사가 훨씬 생생하고 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마이클 루이스는 그런 남자다. 오로지 글만을 이용해 영화보다 생생하게 장면을 연출하는 사람.


그래도 풋풋한 맛이 있다. 왜 그런 기분 있지 않은가. 대가의 젊은 시절을 바라볼 때 나오는 흐뭇한 느낌 같은 것 말이다. <라이어스 포커>에는 이후 마이클 루이스가 펼쳐나갈 세계의 단편들이 곳곳에 박혀있다.


우선 강을 거슬러 오르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런던 경제대학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은 이력 때문일까? 마이클 루이스는 예측 가능한 경로를 따라 번듯한 세계에 발을 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우편물 관리팀의 야간 당직자로 취업했다 세계 최고의 채권 트레이더가 된 남자나 아무도 망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 채권을 공매도하기 위해 직접 상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이 남자의 주요 먹잇감이다. <라이어스 포커>는 이 맛이 조금 연하긴 하지만 여기서 등장하는 루이스 라니에리가 <빅 쇼트>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책을 <빅 쇼트>의 프리퀄이라고 하기엔 양심이 허락지 않지만 설정집 정도로는 봐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마이클 루이스가 살로몬 브라더스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아마 <빅 쇼트>도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살로몬 브라더스에 다니며 경험한 일을 기록한 르포이자 에세이다.


둘째는 이게 이야기인지 진짜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생생하게 전해지는 현장감이다. 이는 크게 두 가지에서 오는 것 같다. 하나는 깊이 있는 정보, 둘은 구성 능력이다. 두 번째는 좀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마이클 루이스의 책에는 거의 삼국지 수준으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심지어 그들에겐 모두 고유한 서사가 존재한다! 저자는 수많은 정보들이 어느 순간에 어느 순서로 나와야 하는지 절묘하게 아는 것 같다. 얼핏 보면 서로 다른 이야기가, 그것도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펼쳐지는데도 불구하고(영화 <빅 쇼트>를 떠올려보라. 주요 인물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는다) 이야기는 늘 극적인 방식으로 한 곳을 향해 수렴한다. 문장력이 좋은 건 당연한데, 문장 자체를 잘 지어낸다기보다는 문장을 늘어놓는 순서를 잘 안다고 말하는 게 더 맞는 평가일 것이다. 사실을 가지고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에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라이어스 포커>는 마이클 루이스의 농익은 작품들에 비해 모든 스탯에서 하나 둘 정도가 빠진 느낌을 주는 책이다. 구성의 탄탄함도, 인물의 매력도, 사건의 흥미 측면에서도 다 그렇다. 하지만 마이클 루이스라는 이름을 지우고, 처음이라는 말에 담긴 이해를 몇 움큼 꺼내보면, 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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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드
힐러리 맨틀 지음, 이경아 옮김 / 민음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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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로 둘러싸인 페더호튼은 과거에 박제된 야생의 마을이다. 주민들은 몽매하고 미신에 빠져있다. 그곳에 가톨릭 교회가 존재한다는 건 기적이었다. 교구 신부는 무신론자였다. 수녀원장은 폭군이었다.


어느 날 홀연히 페더호튼에 들이닥친 주교는 이 어리석은 마을을 개조하기 위해 변화를 요구한다.


"현지어 미사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나? 생각해 본 적은 있고? 나는 그런 미사에 대해 생각 중이네." (p.20)


교구 신부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말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 사람들이 이해하게 될 거라는 뜻입니까?"

"바로 그걸세."

"라틴어 미사가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저는 이곳 사람들이 영어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서 고생 중입니다." (p.21)


이상의 대화는 결코 과거의 손을 놓지 않으려는 교구 사제의 보수성과 페더호튼 주민들의 무지, 그리고 현지 사정도 모르고 무리한 행정을 펼치는 주교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교구 신부가 반항하는 법은 이렇게 말하는 것뿐이었다.


"이 어리석은 돼지야."(p.39)


정말 막장이 아닐 수 없다.


하늘이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주교가 파견한 젊은 신부 플러드(Fluud)가 나타난다. 그의 등장 이후 페더호튼에서는 주교의 바람대로 '변화'가 나타난다. 새까만 신부복에 깃든 이 신부는 악마인지 천사인지 모를 신비한 행동을 거듭한다. 잠들어 있던 페더호튼이 깨어나고 그 기지개와 함께 우연인지 기적인지 모를 사건들이 한데 뒤엉켜 쏟아진다. 마치 홍수(Flood)처럼.


나는 예전부터 종교를 만든 건 악마라고 생각해 왔다. 종교는 인간이 신과 직접 소통하는 것을 이단으로 간주한다. 종교는 교리 없이는 신앙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기독교가 교회에 오지 않는 것을 신을 믿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죄로 간주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기독교의 가장 큰 적은 이교도가 아니라 늘 팬데믹이었다.


사제복은 왜 검을까? 나는 속을 드러내지 않는 그 칠흑의 빛을 볼 때마다 악마가 떠올랐다. 그들은 끊임없이 죄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죄를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자비로운 신은 우리의 죄를 모두 사하여 주지만, 사제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다시 죄인이 된다.


전통적 관점에서 플러드는 악마처럼 보인다. 아무도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 설교인지 유혹인지 모를 묘한 말들. 나는 플러드가 악마 코스프레를 하는 천사 측의 스파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종교라는, 악마에 사로잡힌 불쌍한 영혼들을 유혹해서, 울타리를 넘어, 다시 자유의 세계로 인도하는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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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
마이클 루이스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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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루이스 정주행 중이다. 이번 주인공은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 행동경제학이라는 분야는 이제 너무 유명해졌으니 간단히 짚고만 넘어가자. 기존의 경제학은 판단 주체들이 지극히 합리적이라고 간주했다. 인간은 어리석지 않다는 것이다. 가장 논리적인 사람들이 모여있는 주식 시장이 주기적으로 버블을 형성하는 것만 봐도 얼마나 터무니없는 가정인지를 의심해 볼 수 있지만, 주류 경제학자들의 눈에 그러한 현상은 실수, 혹은 완벽히 똑똑하지는 못한 소수의 '모지리'들이 끼어있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주식 거래를 경제학 교수들에게만 허락한다면 시장은 언제나 합리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행동경제학은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실수를 저지른다고 말한다. 여기까지는 특별한 주장이 아니다. 행동경제학은 이 말에 '체계적'이라는 단어를 붙임으로써 비로소 주류 경제학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인간은 실수를 남발한다. 그것도 아주 체계적으로.


마이클 루이스가 <머니볼>을 쓸 때만 해도 그는 행동경제학이 뭔지 잘 몰랐다고 한다. 물론 그 단어가 무엇인지 정도는 알았다. 하지만 자신의 책 <머니볼>이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편견과 편향, 체계적 실수와 얼마나 가까웠는지는 몰랐던 것이다. 주변에서 그런 얘기가 들려오자 마이클 루이스는 행동경제학이란 게 뭔지 제대로 파볼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는 이스라엘로 날아간다.


행동경제학의 아버지라 부를만한 사람은 놀랍게도 두 명의 이스라엘 '심리학자'였다.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 대니얼은 항상 자신의 주장에 의심을 갖는 자신감이 부족한 남자였고 아모스는 자신의 생각을 항상 확신하는, 그리고 거의 모든 것에서 그 생각이 맞았던 천재 중의 천재였다. 아모스는 대니얼을 만나자마자 저 수줍고 움츠린 남자가 사실은 천재라는 것을 바로 알아보았다. 두 사람이 공동 연구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을 때도 사람들은 대개 아모스가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대니얼이 그걸 받아 적는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대해 아모스는 이렇게 말했다. "정확히 그 반대라니까!"


공동 연구는 그래서 참 어렵다. 누구의 공이 더 큰가. 이 연구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누구 때문에 이 연구가 성공한 것인가. 사이먼 앤 가펑클이 그랬고 퀸도 마찬가지였다. 그 끝은 늘 불행이었고 대니얼과 아모스에게도 특별한 건 없었다. 그래도 초중반까지는 두 사람의 결속이 대단했다. 서로가 영혼의 파트너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두 사람이 게이라는 의심을 살 정도였다. 두 사람은 논문의 아이디어가 누구의 머릿속에서 나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대화를 하면서 덧붙여 나갔으니까. 누구의 이름을 첫 번째 논문 저자로 쓸 것인가에 대해서도 그들은 동전을 던져 결정할 정도였다. 두 사람은 자웅이 동체인 지적 생명체였다.


파국은 세상의 오해가 아모스의 공을 더 높이 쳐주면서 시작됐다. 분명한 공동 연구였음에도 맥아더 천재상은 아모스에게만 수여됐고 아카데미 회원 자격도 마찬가지였다. 스탠퍼드는 종신 교수직을 두 사람 모두에게 제안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진짜 천재 아모스만 데려오면 옵션처럼 대니얼이 따라붙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무지는 샴쌍둥이를 둘로 갈라 한 아이를 잔인하게 살해했다.


<생각에 관한 생각>은 굉장히 재미있는 책이지만 아주 두껍고, 그래서 도전이 쉽지 않다. 나는 오히려 이 책을 먼저 읽을 것을 추천한다. 두 사람의 핵심 연구들이 잘 정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더 재미있는 뒷얘기들이 주구장창 쏟아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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