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키보드 - 법의학의 성지, 독일 최고의 전문가가 들려주는 강력범죄의 세계
미하엘 초코스 지음, 박병화 옮김 / 에쎄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대 사회에서 범죄는 스펙터클이다. 경지에 이른 미디어는 폭력과 살인을 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눈길만 줘도 범죄자의 성격이 줄줄이 그려지는 전능한 프로파일러와 손만 대도 단서가 수집되는 천재 법의학자의 이미지가 여기서 탄생했다. <CSI>,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며 이 직업을 꿈꿔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현실이 편집된 이야기와 얼마나 다른지는 여기에 매료된 모든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수사는 대개 지루하다. 용의 선상에 오른 주변인을 끈질기게 탐문하고 어떨 때는 피해자의 몸에 새겨진 문신 하나를 들고 온 도시의 문신 가게를 찾아가야 한다.


법의학적 단서는 찾아낸 살인 도구가 피해자에게 사용된 것이 맞다는 걸 증언하거나 찾아야 할 도구가 어떤 형태인지를 알려주는 데 그친다. 현장에 뿌려진 핏방울은 용의자가 누구인지보다는 잡혀온 용의자의 진술에 거짓은 없는지 밝힌다. 실제 수사는 이렇게 모인 수많은 단서들을 돼지 같은 인내심으로 하나씩 맞춰 나가는 10만 피스짜리 직소퍼즐 같다. 척, 보는 순간 번쩍하며 사건의 시종이 정렬하는 천재적 추리 쇼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죽음의 키보드>는 딱 그 괴리를 보여주는 책이다. 내용은 실제 독일에서 벌어진 사망, 살인 사건으로 구성된다. 드라마를 기대해선 안 된다. 케이스 스터디로 접근해야 한다. 나는 이런 류의 책들을 주로 글을 쓰기 위한 참고 자료로 활용한다. 자기가 쓰는 글에 살인 사건을 등장시키고 싶다면 작가는 살인에 대해 알아야 한다. 하지만 무슨 수로? 예전엔 취재가 답이었지만 요즘은 이런 책처럼 쉽게 접할 수 있는 자료들이 많다.


<죽음의 키보드>를 통해 알게 된 가장 흥미로운 사실. 법의학의 성지는 CSI의 미국이 아니라 '독일'이었다는 것이다. 독일의 의과 대학에서 직업적 명성을 쌓거나 교수로 고위직에 오르려면 최소 1~2년은 미국의 유명대학에서 경력을 쌓아야 하지만 법의학은 반대다. 법의학에 관한 한 독일은 여전히 국제적 표준 역할을 하며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객원 연구원들이 방문한다고 한다. 무려 16세기! 카를 5세 황제 치하에서 우발적, 고의적 살인 및 상해치사, 유아 살해, 의료 과실 같은 형사 사건에 의료 전문 지식의 도입을 규정하는 것이 '법령'으로 반포된 나라라고 하니, 경험의 양과 질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