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더티 워크 -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은 누구에게 어떻게 전가되는가
이얼 프레스 지음, 오윤성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평점 :
더티 워크는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손으로 해결하고 싶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는 필수 노동을 일컫는 말이다. 단어가 드러내듯 일하는 환경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결한 노동을 뜻하기도 하지만 일하는 과정에서 도덕적, 감정적, 심지어 신체적 부상을 입을 확률이 높은 일도 포함된다.
<더티 워크>는 그 직종을 크게 4개로 꼽아 밀착 취재한다. 첫째는 교도관, 둘째는 미군의 드론 조종사, 셋째는 도살장 노동자, 넷째는 석유시추선의 일꾼이다. 한국 독자라면 이 4개를 모두 듣고 났을 때 다소 어리둥절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은 교도관. 군부 독재 시절에는 교도소가 부정한 권력을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교도관을 부역자로 보는 시선도 있었을 것이다. 일례로 나는 그 어떤 미디어에서도 교도관이 좋게 그려진 걸 본 적이 없다. <1987>의 유해진 정도가 기억나는데 이것도 사실은 그 악독한 형무소에도 이렇게 옳은 신념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는, 역설적 반증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에서 교도관이라는 직업은 남자 기준 6.8 대 1, 여자 기준 11.6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쟁취하는 공무직이다. 미국처럼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나 직업 선택권이 거의 주어지지 않는 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뛰어드는 삶의 현장이 아닌 것이다.
드론 조종사의 경우 한국군은 이제 막 육성을 시작했다. 아마 이 직군이 완전히 궤도에 오른 뒤에도 미국처럼 다른 나라의 영공을 날아다니며 요인을 암살하고 마을을 폭격해 민간인을 학살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군은 베트남전을 제외하면 다른 나라를 침범해 공격한 적이 없고, 대부분의 성인 남성이 병역 의무를 지기 때문에 더티 워크의 필수 조건인 '위임'을 충족하지 않는다.
석유시추선 노동자는 말할 것도 없다. 한국에서 석유가 났다면 해당 노동자들은 더티 워커가 아니라 영웅이 됐을 것이다. 도살장 노동자에 대해서만 어느 정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데, 곰곰이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다. 하림 닭고기 공장에 다니는 생산직 노동자를 떠올려보자. 깨끗한 최첨단 가공 시설에서 위생복을 입고 땀 흘려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들. EBS의 <극한직업>에 나올 수는 있어도 대기업 생산직을 사회적으로 멸시받는 일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소고기 도살장으로 가도 비슷하다. 쇠사슬 장갑을 끼고 고기를 잘라내는 정형사는 심지어 꽤 높은 소득을 얻는 전문직 아닌가!?
그래서 이 책은 잘 와닿지가 않는다. 더티 워크가 성립하고 유지되는 사회적 메커니즘을 밝혀내고,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노동자들이 겪는 도덕적 딜레마, 감정적 상처, 정신적 트라우마를 다루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의미 있게 읽기 위해선 책이 제시한 4개의 직군을 대체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더티 워커를 찾아 대입해야 한다.
찾는 조건은 간단하다. 첫째, 이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나는 하기 싫어야 한다. 둘째, 나는 그 노동으로 인해 상당한 혜택을 받고 있다. 셋째, 그 일을 생각하면 불평등, 차별, 사회적 무시가 떠올라 마음 한편이 불편해지거나 죄책감이 일어난다.
생각만 해도 죄책감이 드는데, 그 일이 계속 유지되는 이유는 나 하나가 행동을 바꾼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무력감 때문이다. 그러니 할 수 있는 일은 더티 워커를 마주칠 때 상냥하게 인사를 건네거나, 더운 여름날 차가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대접하는 정도일 뿐. 이런 행위가 개개인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줄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분들이 처한 환경 자체를 더 높은 수준으로 이끌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더티 워크의 핵심 특징이 '선량한 사람들'의 암묵적 동의에 기초한 노동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이 결과에 만족하기에 이 문제를 깊이 따지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p.457)
하지만 이 동의가 영원한 것은 아니다. 실제 인류의 역사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 여겨졌던 것들이 너무나 쉽게 무너지면서 열리는 길을 따라 대범한 걸음을 내디뎌왔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