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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중독 - 먹고 싶어서 먹는다는 착각
마이클 모스 지음, 연아람 옮김 / 민음사 / 2023년 1월
평점 :
나는 음식을 절제하지 못한다. 다른 생활 습관에 있어선 보통 사람들보다 상당히 통제된 삶을 수십 년째 이어오고 있음에도 말이다.
음식에는 뭔가 기묘한 점이 있다. 위는 완전히 부풀어 더 먹을 수 없다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냄에도 뇌는 간단히 그 호소를 무시한 채 꾸역꾸역 음식을 욱여넣도록 지시한다. 대악마 루시퍼가 대주주로 있는(영화 <콘스탄틴>에 따르면) 담배 회사 필립모리스의 대표는 중독을 '그만두기 힘든 반복적 행동'이라고 정의했다. 정말 탁월한 표현이다.
그렇다. 중독은 그만두기 힘든 반복적 행동과 다름 아니다. 유튜브를 그만 보기 힘든가? 인스타그램을 끊기 어려운가? 중독이다. 중독을 이렇게 광범위하게 정의했을 때 따르는 부작용도 당연히 있겠지만 그런 건 그냥 학술의 영역으로 남겨두자. 우리의 반복적 행동이 일상행활을 힘들게 하고 건강을 해친다면, 중독보다 더 무서운 말로 정의를 해서라도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
그래도 먹기와 같은 생명 유지의 필수 행위를 '중독'으로 규정하는 것은 여전히 거북할 수도 있다. 음식을 먹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이 코카인을 흡입했을 때와 완전히 같다는 것을 알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까? 뇌는 몸속에 들어온 게 초콜릿인지 마약인지 구분하지 않는다. 뇌는 그저 '기분 좋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느끼고 더 많이 달라는 신호를 보낼 뿐이다.
<음식 중독>은 이 모든 것이 진화의 결과라고 말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은 먹는 걸 싫어하려야 싫어할 수가 없다. 그것이 생명 유지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떤 음식을 좋아하게 될까? 저자는 속도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섬유질이 많이 포함된 통곡물보다 백미가 더 해로운 이유, 혹은 그 어떤 음식들보다 액상과당이 치명적인 이유를 설명한다. 이들은 몸속에서 쉽게 분해되어 급격히 혈당을 올리기 때문에 뇌에 만족감을 전달하는 속도가 대단히 빠르다. 운동보다 먹는 게 더 좋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러너스 하이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힘들어 죽을 것 같은 단계를 지나야 한다. 반대로 후덥지근한 여름날 샤워를 마치고 차갑게 식힌 맥주를 한 모금 마신다면? 인간이 어떤 행동을 더 많이 한다면, 그 행동은 우리의 기분을 더 쉽고 빠르게 좋아지게 할 확률이 높다.
뇌는 영양보다는 열량을 더 중요하게 바라보도록 진화했다. 고열량을 쉽게 얻을 수 있다면 먹이를 찾아 헤매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여가가 생긴다. 인간은 남는 시간에 미래를 설계하고, 도구를 만들고, 종족을 번식시킨다. 시간이 많을수록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뇌가 이렇게 진화했음에도 과거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오늘날처럼 쉽게 열량을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야생의 과일은 마트에서 파는 것들에 비해 달지 않았고 사냥은 늘 성공하는 게 아닐뿐더러 에너지가 대단히 소모되는 일이었다. 현대 사회에는 고열량의 값싼 음식이 지천에 널려있다. 뇌가 만족감을 얻는 속도는 비단 혈당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음식을 얼마나 쉽고 싸게 구할 수 있느냐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재료를 직접 사와 오랜 시간 요리를 한 뒤 근사한 저녁 밥상을 차리는 건, 브이로그를 찍고 뿌듯함을 느끼는 데는 유리할 수 있지만 원초적 만족감을 제공하는 데에 있어선 느려터진 굼벵이와 같다.
설탕을 끊고, 지방을 줄이고, 통곡물만을 섭취하며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게 그토록 어려웠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이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어른이, 고작 음식을 참지 못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인간 진화의 역사는 이처럼 대단한 인내심을 발휘하는 게 '비정상'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소름 돋는 건 이 놀라운 연구의 선구자들이 수 천명의 화학자, 공학자, 심리학자, 뇌과학자, 마케터, 변호사 군단으로 이뤄진 식품 산업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식품 산업이 인간 진화의 허점을 이용하여 만들어낸 가공식품들을 역추적해 그 윤곽을 어렴풋이 밝혀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