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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볼 - 불공정한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과학
마이클 루이스 지음, 윤동구 옮김, 송재우 감수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비효율이라면 질색하는 서구 문명 사회가 자기 고유의 논리적 체계로 포섭하지 못한 영역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스포츠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부자 구단 첼시는 연간 수 백억을 들여 스타 선수를 영입하지만 여지껏 단 한번도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돈 쓰기로 따지면 첼시의 엉덩이도 우습게 걷어 찰 맨시티는 같은 리그의 하위권팀 5개를 살 수 있는 돈으로 리그 3위를 얻어냈다. 바다를 건너 미국으로 날아가 보자.
미국에서 '돈지랄'로 유명한 곳을 꼽자면 뭐니뭐니해도 월스트리트겠지만 오늘은 스포츠에 대해 얘기하는 날이므로 미국 야구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부자 구단인 뉴욕 얭키스는-발음이 참 좋다 - 2002년 개막일 당시를 기준으로 총 1억 2,600만 달러의 연봉을 선수단에 지급했다. 그래도 이 팀은 곧잘 플레이 오프에 진출하고 종종 월드 시리즈 우승도 거머쥐니 맨시티 보다는 봐줄만 하다. 그러나 이정도 돈이라면 편의점에서 껌을 사오듯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해도 전혀 이상할게 없는 액수다. 공교롭게도 월스트리트와 양키스는 모두 뉴욕에 있다.
그렇다면 이 정도 돈을 들이고도 언론과 지역 주민,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내가 이 구단의 관계자라고 자랑할만한 일을 단 하나도 해내지 못하는 팀이 있을까? LA 다저스와 텍사스 레인저스 그리고 뉴욕 메츠와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바로 그들이다. 이 네 팀은 메이저리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부자구단이지만 메이저리그 최종 성적에서(2000년대 초반) 줄줄이 꼴찌를 차지했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예전 구단주가 바로 조지 부시다!) 그렇다면 반대로 빈약한 재정 상황 속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는 팀이 있을까? 바로 이 책의 주인공 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 그들이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뉴욕 얭키스가 1억 2,600만 달러를 쏟아 부으며 메이저 리그에 배금주의를 실현하고 있을 때 고작 3,400만 달러만을 투자해 양키스와 맞서 싸운 전설적인 팀이다. 비록 그들은 2000년과 2001년 포스트 시즌에서 얭키스와 맞붙어 단지 아웃 카운트 몇 개 만을 남겨 둔 채 패배하고 말았지만 그 누구도 오클랜드를 비난할 수는 없었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같은 지구에 속한 텍사스 레인저스가 한 경기 승리를 위해 무려 300만 달러를 지불할 때 고작 50만 달러만을 지불하는 팀이었다. 메이저 리그에서 오클랜드보다 많은 승수를 올리는 팀은 애틀란타 브레이브스가 유일했다. 덕분에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무려 4시즌 연속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는 쾌거를 거두었으며 그 중 두 번이 바로 위에서 말한 양키스와의 혈전이었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이하 A's) 승리를 위해 취한 전략은 간단했다. 바로 낭비를 하지 않는 것. 메이저 리그의 부자 구단들이 선수의 타율과 도루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A's는 출루율과 사사구를 얻어내는 능력에 집중했다.
그들의 논리는 간단 명료했다. 점수를 얻으려면 아웃 카운트를 낭비해선 안된다. 따라서 A's가 타자에게 요구하는 능력은 무슨 일이 있어도 누상에 진출하는 참을성이었다. 아무 공에나 방망이를 휘두르는 습관은 A's에선 '지옥에나 꺼져버릴' 저주에 속했다.
A's는 지난 수십년간 메이저 리그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직관적 미신을 - 수 십년간 메이저 리그에서 종사해온 베테랑들의 비과학적 직관 - 쳐부수기 위해 촘촘하게 짜여진 과학적 통계를 활용했다. 그들의 계산에 따르면 A's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 위해 얻어야 하는 승수는 95게임 정도였다. 그리고 95경기를 승리로 가져가기 위해서 상대팀보다 최소한 몇 점을 더 획득해야 하는지 계산해 보았다. 그것은 135점이었다!
다음으로 A's는 자신들이 보유한 인내심 많고 까다로운 선수들이 얻어올 점수와 상대팀에 뺏길 점수를 계산해 보았다. 만약 부상이나 시즌 중 트레이드 같은 변수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800점에서 820점을 기록할 것이고 650점에서 670점 사이의 점수를 내어줄 것이었다. 이로써 A's는 93경기에서 97경기를 승리할 것이고 결국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A's는 선수를 트레이드함에 있어서도 이같은 통계와 철학을 철저하게 적용했다. 특히 그들은 팬들을 비롯 야구 관계자들까지 광분하게 만드는 선수들의 갖가지 기록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았다. 예를 들어 매년 3할 2푼 7리를 치는 타자가 있다면 그는 분명 메이저리그의 톱 타자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친 안타가 타점이나 득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3할 2푼 7리라는 기록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한단 말인가? 그래서 A's는 2할 7푼 4리를 치지만 출루율과 장타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선수들을 선호했다. 앞선 타자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누상에 진출해 있었기 때문에 다음 타자의 장타는 그들을 홈으로 불러들이기가 아주 쉬웠던 것이다(혹은 장타 두개 - 2루타, 2루타면 쉽게 1점을 얻을 수 있다).
A's의 투수 선택법은 타자와 정반대라고 생각하면 쉽다. 그 말은 어느 마이너 리그 투수가 4구를 잘 내주지 않고 장타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A's의 레이다망에 걸려들었다는 얘기다. 추가로 A's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투수는 경기 상황을 창조하고 게임의 색조를 설정할 줄 알아야 했다. 이 말은 투수가 어떠한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게임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갓 졸업한 고교생 투수들에게는 확실히 기대하기 힘든 능력이었다.
A's는 153km를 뿌리며 혜성같이 등장한 고교생 괴물 투수가 어느새 희미해진 꼬리를 끌며 메이저 리그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마는 일을 아주 단순한 통계를 통해 확인했다. A's는 이 단순한 통계를 통해 투수의 경기력이 구속이 아닌 나이와 경험에 비례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이와같은 이유로 A's의 드래프트 1순위 명단은 그들의 관점에서 언제나 굉장한 선수들로 가득 채워졌다. 한가지 다행인건 메이저 리그에 속한 나머지 29개의 구단 중 어느 한 팀도 이 명단을 굉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따르는 또 다른 행운은 A's가 지명하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자신이 1순위에 지명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한 선수들이라는 것이었다. A's의 1순위 지명자들은 다른 구단이 지명하는 스타 선수들과 달리 높은 계약금 문제로 아웅다웅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1순위에 지명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보상받았다고 생각하는 선수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알아준 A's에 쉴새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를 표했고, 다른 팀의 1순위 지명자들이 받는 계약금 보다 수십만 달러가 적은 계약서에 손 쉽게 서명했다.
<A's에 과학적 통계와 진정한 경영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단장 빌리빈>
A's에 과학적 통계와 진정한 경영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수십년 동안 메이저리그를 지배해 오던 엉터리 미신을 쓰레기통에 쑤셔 넣은 인물이 바로 A's의 단장 빌리 빈이다.
빌리 빈은 선수 시절 최고의 신체 조건과 괴물같은 운동 신경을 지닌 초특급 인재였다. 스카우터들은 예의 베테랑의 직관을 덧붙여 '빌리 빈의 장미빛 미래'라는 터무니 없는 소설을 썼고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옹골찬 젊은이에게 '지옥에나 꺼져 버릴' 바람을 넣어 프로 야구팀과 계약하게 했다. 이후 빌리 빈은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를 수시로 들락거리며 20대를 허비했고 27세에 이르러 야구를 그만두게 된다.
그의 통산 타율은 2할 1푼 9리, 홈런은 3개였다.
빌리 빈이 선수 시절 스카우터들로 부터 배운 건 그들이 하는 말이 모조리 거짓말이라는 것이었다. A's의 단장에 취임한 뒤에도 빌리 빈의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스카우터들이 고교 출신 괴물 선수를 발견해 돌아와 침을 튀기며 온갖 미사여구를 쏟아 내도 빌리 빈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 수 많은 미사여구들은 바로 18세의 빌리 빈이 들었던 얘기였기 때문이다.
빌리 빈이 스카우터들의 미사여구 대신 선택한 것은 그 동안 메이저리그가 손대지 않은 먼지 묻은 데이터와(출루율과 장타, 사사구 비율) 그 데이터를 분석할 컴퓨터였다. 그는 이 둘을 이용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가난한 구단 A's를 2000년대 최강의 팀으로 변신시켰다.
2011년 현재, 그는 여전히 A's의 단장직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