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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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위대한 이름


역사를 살피다보면 종종 뛰어난 선대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볼품없는 2세의 존재에 놀라게 된다. 이유가 뭘까? 추측컨대


첫째는 큰 일을 하느라 바빴던 탓에 자식 교육 혹은 그 생산 자체에 소홀했던 탓이리라. 둘째는, 아마도 아버지의 위세에 주눅이 들어 자기 뜻을 펼치기 힘들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누구누구의 아들'로 불렸을 것이다. 그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기 위해 혁신은 커녕 매번 안전하고 고분고분한 길만 택했으리라. 위대한 아버지의 아들에게는 조금의 실수도 용납치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아무리 쉬운 길이라도 아버지의 이름이 주는 부담감은 필시 실수를 연발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 대단치 않은 일을 하면서 실수까지 한다면 그 자신마저 '아 역시 난 안되는구나'하는 패배감을 품는 게 당연한 일 아니었을까.


1095년 툴루몽 공의회에서 시작해 1099년 예루살람 해방까지 불과 5년 만에 위대한 목표를 달성한 십자군 1세대는 그 후 18년에 걸쳐 정복을 확고히 함으로써 십자군 국가의 존재를 반석 위에 올려 놓는다. 그러나 1118년, 1차 십자군 세대 중 마지막으로 남은 예루살렘 왕 보두앵이 세상을 떠난다. 위대한 세대의 완전한 퇴장이었다.



흥망성쇠, 인간사의 진리


영광 후에는 쇠락, 쇠락 후에는 영광이 따르는 게 인간사의 진리다. 전술했듯 1118년 이후로 1차 십자군이라 불리운 영광의 세대는 전원 퇴장했다. 이 공백을 틈타 이슬람 세력은 1144년 1차 십자군의 최초 함락지인 에데사 탈환에 성공한다. 에데사 탈환은 십자군 국가 방어의 최전선을 잃었다는 현실적 타격을 넘어 십자군 국가에 더이상 신의 가호가 함께 하지 않는다는 정신적 타격을 주었다. 예루살렘 해방 이후 50년 가까이 승리의 향기에 취해 있던 유럽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제후들의 십자군이라 불리운 1차 원정 때와는 달리 2차 십자군은 프랑스 왕, 신성 로마 제국 황제가 친히 참전한 왕들의 전쟁이었다. 왕들이 손수 이끌고 온 은빛 기사들의 물결. 이 중무장 기병의 위용을 보고 원정의 실패를 떠올리는 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2차 십자군 원정은 완전한 실패로 끝나고 만다. 이동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던 이들이 성도에 도착한 건 1148년 4월 3일 이었다. 여세를 몰아 전쟁을 시작했다면 좋았으련만 신앙심이 깊었던 프랑스 왕 루이 7세가 성지 순례를 원한 탓에 개전은 7월로 밀리고 만다. 혹서가 지배하는 중동의 한 여름에 군사 행동을 하겠다는 멍청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뿐만아니라 군대의 목표는 함락당한 에데사가 아니라 다마스쿠스였다. 대대로 풍요를 자랑했으며 바그다드 이전엔 이슬람의 수도로 불린 다마스쿠스다. 규모도 더 컸고 용맹했던 1차 십자군 조차 침략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고도를 감히 차지하겠다고 나선 건 왕들의 허세였을까 아니면 심각한 자만심 이었을까? 전투가 시작된지 고작 나흘, 원군이 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깨끗히, 군대를 물린 걸 보면 아무래도 허세였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지켜주었나


2차 십자군 원정 실패의 악영향은 여러모로 컸다. 왕이 친히 이끈 군대가 아무것도 못하고 물러난 것이다. 유럽의 가장 강력한 왕들도 지킬 수 없다면 과연 누가 이 땅을 지켜준단 말인가? 이같은 공포심이 십자군 국가 전역에 퍼진 것은 당연했다. 반대로 왕들을 물리친 이슬람 쪽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1144년 에데사가 함락된 이후 무려 33년이 지난 1187년 까지 십자군 국가는 단 한 뼘의 영토도 잃지 않았다. 그 이유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 기사단. 90년대 초반에 판타지를 읽었던 남자라면 로도스 기사단 이라는 이름에 가슴이 떨리는 걸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이 로도스 기사단이라는 이름은 사실 예루살렘에서 의료 봉사 활동을 했던 성 요한 기사단이 로도스 섬으로 근거지를 옮긴 뒤부터 쓰기 시작한 이름이다. 말했듯 원래 의료 봉사가 주목적이었던 이 기사단은 난세에 힘입어 전투 집단으로 거듭났다. 


한편 성 요한 기사단과 더불어 난세의 성도를 지킨 기사단이 바로 그 유명한 템플 기사단(성당 기사단)이다.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예수회 등등 종교 관련 믿거나 말거나 식 전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 기사단은 당시에는 어디까지나 신 앞에 충성을 맹세한 기사단이었으며 전투가 벌어지면 그 누구보다도 용감하게 적진을 파괴한 기사중의 기사였다. 


비록 그 수는 적었으나 이들은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중무장한 기사였다. 게다가 크고 작은 싸움으로 전투에는 이골이 난 베테랑.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말 위에 올라탄 이 '중세의 꽃'은 일반 보병 혹은 기병과도 비교가 안될 정도의 일당백이었던 것이다.


둘째는 이 기사단이 짓고 관리해온 성채였다. 단 한 번도 전력 부족에 시달리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십자군 국가였던 만큼 요소요소에 성채를 지어 소규모 병력으로도 운영 가능한 방어 체계를 구축했던 것이다. 


셋째는 당시 이슬람 세력의 관심이 십자군 국가 보다는 자국의 통일에 있었던 탓이다. 따지고 보면 십자군 국가는 지중해에 곰팡이처럼 피어 기생하는 한 줌의 나라 아니던가. 천하제패에는 어디까지나 순서가 있는 법이다.


넷째는 그야말로 신의 가호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시리아의 대지진이었다. 오늘날에도 크고 작은 지진이 끊이지 않는 중동이니 그때라고 예외는 없었을 것이다. 특히 알레포, 모술, 다마스쿠스로 이어지는 오늘날 이라크의 북부와 시리아 전역을 통일해 더 이상 뒤통수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이슬람 세력에게 이 지진은 그야말로 뼈아픈 재난, 그리스도교도에겐 신의 가호였을 것이다. 


이상 네 가지 이유로 십자군 국가는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시간이 주어졌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것을 유용하게 쓰는 건 아니다.



마침내, 살라딘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다. 대지진의 피해를 착실히 복구한 중동의 이슬람 세력은 때마침 이집트 왕조의 분열이라는 호재를 맞게 된다. 호재는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한 그저 해프닝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이 시대 이슬람에는 확실히 호재를 호재로 알아보는 인재들이 있었다. 


분열을 틈타 이집트로 군대를 이끌고 간 것은 소수파 쿠르드족 출신의 시르쿠였다. 그는 카이로에 도착하자마자 이집트 전 영토의 3분의 1을 양도한다는 조약에 서명한다. 아군과 적군을 포함해 사상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계획된 것이었을까? 시르쿠가 예언자의 묘소에 참배를 떠난 사이 그의 조카가 일을 저지르고 만다. 카이로의 재상을 죽이고 백부 시르쿠를 그 자리에 추대한 것. 반대는 없었다. 소수파 출신 시르쿠가 이집트 최고의 권력자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최고 권력자는 취임 두 달만에 욕실에서 머리를 다쳐 죽고 만다. 뒤를 이은 건 31세의 조카, 살라딘이었다. 


중동의 이슬람 세력은 이 애송이를 여전히 자신의 부하 정도로 생각했으나 살라딘에게는 추호도 부하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이 온도차가 결국엔 화를 부르고 만다. 이제 살라딘은 눈엣가시가 됐다. 소수 민족 출신인 주제에 나이까지 어린 애송이가 성질을 살살 긁고 있으니 얼마나 화가 났을까. 그러나 살라딘을 제거하기 위한 군대는 군 최고통수권자가 죽어버리는 바람에 출진조차 하지 못했다. 이 권력의 공백을 놓칠 살라딘이 아니다. 이집트를 떠난 살라딘은 때로는 군사력을 앞세워 또 때로는 정치력을 발휘해 중동의 도시들을 하나씩 점령해 나간다. 그리고 1186년, 마침내 살라딘은 이집트와 중동을 아우르는 이슬람 역사 최초의 통합 군주가 되었다.


자기 땅에선 더 이상 우환이 사라진 살라딘의 눈에 띈 건 당연 지중해에 잔뜩 몸을 웅크린 십자군 국가였다. 1187년 3월 13일, 다마스쿠스에 도착한 살라딘은 1095년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우르바누스 2세가 그랬던 것처럼 이슬람 세계 최초의 '지하드(성전)'을 선언한다. 


나는 1차 십자군의 성전이 '불과 5년 만에' 예루살렘 해방이라는 대업을 이뤘다고 쓴 바 있다. 그러나 살라딘의 지하드는 고작 7개월 만에 예루살렘을 재탈환함으로써 마무리된다. 7개월이다. 계절이 고작 두 번 바뀌는 새에 역사가 바뀐 것이다. 


이제 십자군에게 남은 건 정말 한 줌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안티오키아, 트리폴리, 티루스 뿐이었다. 그러나 바다로 이어진 이 한 줌의 땅이 또다시 반격의 실마리가 되니, 그 전쟁의 주인공은


전설의 사자왕 리처드였다.


3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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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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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꽃이 기사라면, 역시 역사의 꽃은 '전쟁'이 아닐까? 하물며 시대는 중세다. 번쩍이는 갑옷으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중무장한 기사가 우람한 유럽산 준마를 타고 행진하는 것이다. 뒤따르는 수만의 보병들은 하늘마저 가릴 기세로 흙먼지를 피어올린다이른바 크루세이더, 성기사의 출진이다.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


중세는 아직 중앙 집권 체제가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왕이 존재하긴 했으나 그 권력이 절대적인 건 아니었고 이에 각 지역의 영주들이 서로 수많은 기사를 거느리고 치열한 영토 전쟁을 벌이던 시대였다는 말이다. 


십자군 원정을 위해선 당연 막대한 병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서로의 영토를 호시탐탐 노리던 이 군웅할거의 시대에 도대체 누가 자신의 병력을 차출해 해외 원정에 나설 수 있었겠는가?


앞 뒤가 꽉 막힌 상황에선 도리어 허를 찌르는 역발상이 판국을 뒤집을 수 있는 법이다. 내가 집을 비운 사이 도적떼로 변할 이웃이 두려운 거라면, 이웃과 나 모두를 원정 보내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를 위해선 '대의'가 필요하다. 말 그대로 큰 뜻. 사사로운 이익은 접어두자는 대인배의 마음. 이제 문제는 누가, 어떤 대의를 사람들의 마음 속에 심어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문제의 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때는 중세다. 말씀의 힘이 너무 강해 사람들을 우매하게 만들정도 였다는 암흑의 시대.


1095년 11월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클레르몽에서 공의회를 개최한다. 대성당 앞을 가득 메운 군중 앞에서 교황은 결의에 찬 연설을 시작한다. 전반부는 예의 그리스도교 세계를 뒤덮은 윤리의 타락에 대한 개탄이다. 이렇게 가다간 신의 노여움을 사 모두가 멸망할 것이니 이제 우리끼리의 싸움은 그만두어야 한다. 그럼 이렇게 보전한 힘을 어디로 돌려야 하는가? 이교도. 그 불신앙의 무리는 성도 예루살렘을 차지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지중해를 장악하고 우리 코 앞까지 그 불쾌한 입김을 내뿜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형제들은 그들에게 납치되 노예로 팔려가고 개종을 강요 받는다. 우리는 이 만행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우리는 군대를 이끌고 적진으로 쳐들어가 이교도를 심판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전혀 참신할 게 없는 이 연설은 그러나 다음으로 이어지는 일갈에 내용을 초월한 신화가 되고만다.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


뒷 이야기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1095년 11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십자군이 탄생한다. 



인간도 그것을 바란다


아무리 성스런 시대라도 인간 모두가 성스러운 건 아니다. '신이 그것을 바라셔도' 어디까지나 행동하는 건 인간. 이 인간들 모두가 순수한 목적을 가지고 십자군에 가담했다고 믿는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당신을 탓할 수 밖에. 


불신앙의 무리로부터 성도를 해방하고 그리스도교 형제를 구원한다. 대다수의 영주들은 이런 믿음을 갖고 팔레스티나로 향했다. 그러나 일부는 그곳에서 한 몫 벌고자 하는 현실적 목적을 갖고 있었다. 유럽 본토에 영지를 갖지 못한 다수의 기사들이 참전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한편 다수의 범죄자들도 이 성스런 무리에 합류하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이 전쟁은 성전이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십자군에 참전하는 것만으로도 완전한 면죄부를 부여했다. 지금까지 온갖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이 마지막 한 번의 범죄를 통해 천국행 티겟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의 '민중 십자군'이 결성된 것도 바로 이 1차 원정 때였다. 현실의 고통이 너무 컸던 탓에 죽음 이후의 천국이 그토록 절실했던 걸까? 비록 전투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채 전멸했지만 민중 십자군의 의의는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신의 말씀에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당시의 모든 인간이 응답했다는 것. 이로써 '성전'은 전 인류(유럽인)의 소망이 된 것이다.



신과 인간은 무엇을 얻었나


신도 바라고 인간도 바랐으니 애초에 성공할 수 밖에 없었던 전쟁 아니었을까?


같은 그리스도교끼리의 끝없는 영토 전쟁으로 절대 불가능해 보였던 성전은 불과 5년만에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것으로 일단락 된다. 


성도가 해방된 것이다. 


모스크는 성당으로 개조되고 예루살렘 대주교가 임명됐다. 참전한 주요 영주들은 에데사에서 안티오키아, 트리폴리 그리고 예루살렘의 군주가 되었다. 


비교적 순조로워 보인 이 전쟁은 참전한 그리스도교쪽 영주들의 우수한 능력에 힘입은 바가 컸지만, 역시 상대가 되는 이슬람 세력이 보여준 창피할 정도의 분열을 무시할 수 없었다. 당시 이슬람 세계는 이집트를 중심으로 하는 파티마 왕조와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하는 아바스 왕조로 분열되어 있었고 같은 왕조 내에서도 형제간, 민족간 영토 다툼이 심해 코 앞에서 이교도의 침략이 벌어지고 있어도 그것이 라이벌의 영토라면 오히려 고마워할 정도였다. 이들은 아직 '성전'을 기치고 내건 십자군의 진의를 몰랐던 것이다. 상대가 종교를 앞세워 단합했다면 이쪽도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들도 알라 앞에서 하나인 이슬람교도 아닌가. 그러나 이런 희망은 거의 100년이 지나기까지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 이슬람 세계의 최고 영웅 


'살라딘'이 등장하기 전까지 말이다.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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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토마스 프랭크 지음, 김병순 옮김 / 갈라파고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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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류가 종말할 때까지 결코 풀리지 않을 정치계의 미스테리를 다루고 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예컨대 우리 나라 노인들은 기초 노령 연금을 더 많이, 그것도 합리적 재원 마련으로 지급하겠다는 문재인보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것도 더 적게 주겠다는 박근혜를 압도적으로 지지한다. 과거에는 지극히 서민적인 임금 근로자들이 각종 규제를 철폐해 대기업을 살리고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겠다는 이명박에게 서슴없이 표를 던지기도 했다. 정치적 판단은 고작 나 하나 잘 살겠다고 내리는 게 아니라는 고귀한 신념 때문이었을까? 


어림도 없어!


더욱 불행한 건 이 같은 현실이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 인류가 우매한 정치적 판단에 신음하고 있다는 말. 그러나 다행인 건 이 같은 현실이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 인류가 힘을 모아 그 이유를 파헤치고 함께 대책을 세울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은 미국의 사례를 다루고 있다.



종교, 민중의 아편


마르크스가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말했을 때 이 말은 종교가 사람을 타락시키는 마약이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이것은 종교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준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종교는 진짜 마약이 됐다.


믿기 힘들겠지만 미국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기독교 국가다. 신실한 사람들이 넘쳐나. 천사의 존재를 믿는 성인의 비율이 전세계에서 1위이기도 하다. 이 신실한 사람들이 선거에서 어떤 힘을 발휘하느냐, 낙태에 찬성하는 후보라면 그가 아무리 훌륭한 공약을 제시하든 묵사발로 만들어 버린다. 고우 투 헬 베이비 킬러!


진보 정당은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때문에 낙태에 대해 보통 긍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문제는 이 사악한 베이비 킬러들이 약자를 위한 경제 정책까지 내놓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가난한 동시에 신실한 우리의 기독교인들에게 이 따위 경제 정책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말씀에 반하는 베이비 킬러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타오른다. 


이 믿음의 사람들이 베이비 킬러를 다시는 정치계로 돌아올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묵사발 내고 있을 때 그들이 뽑아준 보수 의원들은 이 고마운 하나님의 사람들로부터 노조와 직장과 연금과 의료보험을 뺏은 뒤 그들을 가난의 구렁텅이로 빠뜨려 묵사발 내버린다. 은혜를 원수로 갚아도 상관없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과 보수주의자들 사이의 암묵적 동의다.



진보, 그 잘난 척하는 개새끼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잘난척을 싫어한다. 잘난척에는 모종의 우월감과 함께 듣는 사람을 깔보는 듯한 태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성격과 성향, 인종과 지역을 막론하고 자신을 깔보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행동하고, 그것이 바로 감정을 가진 동물의 본성이니까. 그래서 대중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정부를 비판하며 전통적 가치를 비웃는 진보주의자들에 태도에 신물이 난다. 그 발언의 좋은 취지와 내용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꼴보기 싫은 놈들은 뭘해도 꼴보기 싫은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진보주의자들이 이전 세대의 업적을 송두리째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사실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은 특별히 보수가 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게 아니다. 그들은 그저 열심히 직장을 다녔고 시키는 일에 충실했으며 성실히 법을 지켰다. 주말엔 어김없이 교회에 나갔으며 언제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했음은 물론이다. 심지어 나라가 필요로 할 땐 자원해 전쟁에도 참전했다. 그렇게 흘린 땀과 피로 비로소 살만한 나라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 모든 행동이 노예근성의 발로이며 믿음에 근거한 낙태 반대를 종교적 광신으로 치부한다면 그 누가 '네'하며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그들에게 중요한 건 자기들이 이룩해온 역사에 대한 존중이지 이를 통한 경제적 이득이 아닌 것이다. 마치 박정희 정권 하에서 조용히 자신의 일에만 몰두했던 사람들이 그것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경제적 이득과는 정반대에 선 그 후손들을 열렬히 지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너희가 정말 약자를 위한 당이냐?


남을 탓하기 전에 우리 자신부터 돌아보자. 진보 정당은 과연 약자를 위한 정당인가? 미국 민주당의 경우 이미 노동조합의 이익을 대변하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지 오래다. 그들은 전통적 지지 기반인 노동조합 대신 부유한 화이트칼라를 영입하고 기업을 회유하는 데 더 큰 노력을 기울여왔다. 왜냐고? 그들이 더 많은 정치 자금을 대주니까! 그러니 진보 정당이 자유무역협정(FTA는 노무현 정권이 추진했다), 민영화, 규제 철폐 등에 열을 올리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이들이 이렇게 대놓고 이중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이렇게 해도 자신들의 지지 기반이 딱히 선택할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약자를 위한 정책은 보수당보다 조금만 나으면 된다. 이 같은 안이함이 많은 수의 진보 정당 지지자들을 지독한 보수주의자로 만든다.


누구를 뽑아도 세상은 바뀌지 않을 거라는 좌절은 극단적인 정치 혐오와 무관심으로 이어질 때(대한민국의 경우) 더 큰 문제를 낳는다. 아무도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는 상황에선 진짜 약자를 위한 당이 나와도, 각성한 정치인들이 마음을 고쳐 먹어도, 말짱 헛수고가 되버리기 때문이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안타깝게도 이 책은 어떠한 해결 방안도 제시하지 않는다. 사실 이 책은 미국 사회가 보수화된 계기를 심도 있게 파헤치기 보다는 사람들의 바보같은 선택을 조롱하고 비아냥 대는 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한다. 이 같은 서술 방식은 나같은(이미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을 독자로 만들기엔 충분하지만 정작 이 책이 필요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기엔 역부족이다. 그 누가 300페이지에 걸쳐 자신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책을 사보겠는가?


과거에 나는 이 모든 난장판의 원인을 대중의 무지 탓으로 돌리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행동이자 이 멍청이들 속에서 오직 나 혼자만이 제정신이라는 자만심의 발로이기도 하다.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나는 적들의 얼굴 속에서 오히려 그 해답을 본다. 우리는 적들과 좀 더 가까워져야 한다. 영화 <대부>에서 대부 말론 브란도는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 알파치노에게 일생의 가르침을 준다.


친구는 가깝게, 적은 더 가깝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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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감정수업 -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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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감정수업>은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나는 내 글에 '4가지 얼굴로 말하는 감상'이라는 부제를 달고 싶다.



지루함


이 책은 48권의 소설을 통해 48개의 감정을 설명한다. 내용을 알지도 못하는 소설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들 수는 없기에 이같은 형식은 필연적으로 줄거리 소개를 동반한다. 마치 게임을 하기 전에 들어야 하는 지루한 규칙들처럼. 뒤이어 쏟아져 나오는 구태의연한 의미 설명은 '지루함'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준다. 더 큰 문제는 이 형식이 48가지 감정을 설명하는 내내 단 한 번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대담함인가!


동일한 형식 속에서 되풀이 되는 48개의 이야기는 사실 1개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1개의 이야기를 48가지로 말하는 걸 '다채롭다'고 한다면 48가지의 이야기를 1개로 말하는 걸 '지루하다'고 한다. 주간지의 칼럼에나 어울리는 형식으로 518p의 책을 만들었다는 건 이 책을 손에 든 순간 느껴지는 묵직함이 감동의 무게가 아니라 지루함의 무게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 뭔가 배울 수 있다면 오직 한 가지, 형식이 내용을 낳는다는 창작 원칙일 뿐이리라.



욕망


48권의 소설 중 25권이 자사의(민음사) 소설이라는 사실을 통해 이 출판 괴물의 의도가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이 괴물은 소비자를 어떻게 유혹 할지도 잘 안다. 제목에는 '수업'이라는 글자를 달고 수업을 할만한 '멘토'를 모셔온다. 각종 상담과 TV출연으로 가장 핫한 선생님을. 도무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감조차 잡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멘토'와 '수업'만큼 구미가 당기는 아이템은 없으니까. 


<강신주의 감정수업>은 자사의 책을 더 많이 팔고 싶은 출판사의 욕망과 쌓아온 입지를 경제적 가치와 대중적 명예로 환산하고자 한 저자의 욕망이 결합한 결과다. 욕망이 가장 추해지는 순간이 언제일까? 그것은 이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날 때이다. 


물론 저작권 문제를 좀 더 쉽게 처리하기 위해 자사의 소설을 중심으로 기획했을 수도 있다.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무려 23권이나 다른 회사 책을 넣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네요, 흐흐'하는 음흉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이유가 뭘까?



과대평가


이 책은 각 챕터의 끝에 '철학자의 어드바이스'라는 코너를 달아 또 한 번 지루한 설명을 감행한다. 자기 삶을 스스로 꾸릴 수 있는 사람, 자기 앞에 놓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에게 시시콜콜한 충고는 오히려 모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도를 감행한 이유는 이 책이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씌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 가장 잘 어울리는 부제는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다. 16쇄라는 판매부수는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다.



연민


반골 기질이 다분한 철학자였던 강신주가 이토록 상업적인 기획과 영합한 이유가 무엇일까?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을까?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실마리 조차 잡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극약 처방도 필요한 법이니까. 그러나 저자 자신이 말하듯 연민은 결코 사랑이 될 수 없다. 그것은


타자의 불행을 감지했을 때 출현하는 감정이기에, 연민의 밑바닥에는 다행히 자기는 그런 불행을 겪지 않았다는 것, 나아가 불행한 타자를 도울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p. 130~131)


나도 이 철학자의 연민이 좋은 결과를 낳았으면 좋겠다. 연민에 힘입어 계몽된 독자들이 마침내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그러나 이 희망은 인류가 출현한 이래 단 한 번도, 현실이 된 적이 없다. 



독자의 어드바이스


강신주의 다음 책이 철학이었으면 좋겠다. 이 모든 영합이 심사숙고라면 진저리치는 요즘 사람들을 철학으로 이끌기 위한 미끼였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성경에는 '칼로 흥한자 칼로 망한다'는 말이 나온다. 나는 그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상담으로 흥한자 상담으로 망한다'.


부디 그의 명예가 영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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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5-18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강신주 리뷰 중 가장 속시원한 리뷰군요...

한깨짱 2014-05-19 12:47   좋아요 0 | URL
생각이 같은 독자를 만나다는 건 정말 흥분되는 일이군요! 감사합니다!

양손잡이 2014-05-19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신주 팬이지만 이 책은 오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작품의 주제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내용들...

한깨짱 2014-05-19 12:47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에도 이 책은 오점이 확실합니다. 기획이 너무 뻔해요. 급하게 쓴 것 같기도 하고. 정성을 안 들인 것 같기도 해요. 정말 별로 입니다.

바라리 2017-08-02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신주의 책보다 더 내용이 비천한 아무런 근거도 없는 무조건 씹고 보자식 리뷰

한깨짱 2017-08-02 13:08   좋아요 0 | URL
무조건 씹자라니... 바라리님이 제 글에 반응한 바로 그 근거에 의해 저도 강신주님의 글에 반응한 것 입니다. 제 생각에 아무런 근거가 없다면 바라리님의 댓글도 마찬가지겠지요.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3 (20주년 기념판) - 피라네시와 함께 탐험하는 아름다움의 세계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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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그림이 있었다. 이것은 미가 아니었다. 차가운 동굴 벽에 뜨겁게 살아나는 들소를 보며 태초의 인류는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들에게 그림은 주술이자 종교였다.




알타미라 동굴벽화



그리고 미가 탄생한다.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의 전설적 그림 경연을 논할 필요도 없이 이 시대의 미는 명확했다. 무엇이 더 실제와 똑같은가? 그들은 예술가이기 전에 엔지니어이자 과학자였다. 무언가를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선 영감보다 세밀한 관찰력과 집중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창을 든 사람>. 로마 시대 모작. 원작은 폴리클레이토스. 기원전 440년경



아리스토 텔레스는 예술의 본질을 미메시스(모방)라 말하며 이 그리스 예술을 옹호했다. 그렇다면 모방은 무엇을 주는가? 재인식의 기쁨이다. 실제와 똑같은 그림과 조각을 보면서 '아, 이것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었구나'를 새삼 깨닫는 것. 하지만 예술의 본질이 고작 이런 것일까? 모방은 아무리 잘해도 모방일 뿐, 절대 실제를 뛰어넘을 수 없지 않은가. 예술의 본질이 현실의 모방인 이상 예술은 현실보다 저급할 수 밖에 없다. 저급한 것을 지속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그리하여 여기 진리가 탄생한다. 



출처: http://www.orthodoxartsjournal.org/medieval-art-from-catalonia/



중세 시대의 화가들은 결코 보이는대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들은 '아는대로' 그렸다. 신의 위대함을 알기에 예수는 항상 가운데, 가장 크게 그려야 한다. 원근같은 눈속임은 중요하지 않다. 진리는, 본질은 우리의 눈과 얼마나 떨어져 있느냐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예수가 우리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한들 그 위대함이 줄어들리 있겠는가? 그리하여 중세의 예술은 어린 아이의 그림처럼 유치하게 보인다. 하지만 몰라서 그랬던 게 아니다. 오히려 알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천년 동안 짓눌러온 성스러움의 무게에 지쳤던 걸까? 14세기 이탈리아, 내륙의 도시 피렌체에서 거대한 복고 열풍이 불기 시작한다. 이른바 르네상스. 미의 부활이다.




<아테네 학당>. 라파엘로 1510~1511년



르네상스라는 말은 '고대의 부활'이라는 뜻이다. 고대가 어디냐. 바로 그리스. 예술은 다시 자연을 미메시스하기 시작했고 미 또한 다시 단순해졌다. 예술의 역사가 여기서 멈췄다면 우리의 여정도 훨씬 쉬웠을 터. 그러나 중세의 종교적 진리가 그랬던 것처럼 르네상스의 규칙과 질서가 사람들을 숨막히게 했었나 보다.




<성 리비노의 순교>. 루벤스, 1633년 작



루벤스는 윤곽을 지우고 구도에 혼돈을 더했다.




<모자를 쓴 여인>. 마티스, 1905년 작



마티스는 대상으로부터 색채를 해방시켰다.




<아코디오니스트>. 파블로 피카소, 1911년 작



피카소는 대상으로부터 형태를 해방시켰다. 형태도 색채도 더이상 현실의 사물을 지시하지 않을 때 그림은 도대체 무엇이 되려 하는걸까?


내용이 사라진 예술을 대변하는 건 칸트의 형식 미학이다. 예술의 본질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에 있다는 주장. 그 형식의 아름다움이 곧 예술의 아름다움. 이제서야 나의 해바라기 그림이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만큼 비싸게 팔리지 않는 이유를 알겠다. 나는 고흐의 내용을(해바라기) 훔칠 수는 있다. 그러나 그의 형식(스타일)을 훔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음 사각형에 이르러 예술은 완전한 침묵에 도달한다. 이 절대적 암흑 속에 어떤 형식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검은 사각형>. 말레비치, 1912년 작



이 완전한 침묵 앞에서 미학은 난데없이 모방론으로 회귀한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예술이 도대체 무엇을 모방한단 말인가? 그것은 바로 자연. 침묵하는 자연을 모방한다.


과거의 인류는 나무가 돌이 별이 바람이 들려주는 얘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근대는 합리적 이성을 앞세워 자연을 파괴했고 자본주의는 숲의 아름다움을 바다의 숭고함을 생명의 소중함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한다. 만물이 화폐의 액수로 환원되는 것이다. 이 획일성의 폭력에 자연은 침묵으로 저항한다. 현대 예술이 대중의 '코드'를 따르지 않고 철저히 이해될 수 없는 것으로 남으려는 이유는 이 침묵을 모방하기 때문이다. 불가해와 의도적 소통의 부재는 자연과 예술이 현대 사회에 저항하는 방식이다.


예술의 탈주는 혁신을 통해 이루어진다. 동일성의 폭력에서 벗어나려면 기존의 코드를 깨고, 늘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야 한다. (p. 146)


그러나 새로움이 극단에 이르렀을 때 이 새로움은 과연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외눈박이 마을에선 두눈박이가 비범한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두눈박이가 됐을땐? 그땐 오히려 외눈박이가 비범한 존재가 되는 게 아닐까? 동일성의 폭력을 피해 끊임없이 비범한 것이 되려한 예술은 모든 것이 비범해지는 순간 외려 평범함으로 복귀한다. 예술은 사물 그 자체가 되고 더이상 예술과 비예술을 가르는 차이가 사라진다. '예술이 더 이상 없기 때문이 아니라, 에술이 너무 많기 때문에 예술은 죽는 것이다(p.343)'라고 한 장 보드리야르의 묵시론적 선언은, 


그래서 위대하다.




<샘>. 뒤샹, 1917년 작



예술은 죽었고, 우리의 미학도 여기서 끝이다.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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