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의 감정수업 -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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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감정수업>은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나는 내 글에 '4가지 얼굴로 말하는 감상'이라는 부제를 달고 싶다.



지루함


이 책은 48권의 소설을 통해 48개의 감정을 설명한다. 내용을 알지도 못하는 소설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들 수는 없기에 이같은 형식은 필연적으로 줄거리 소개를 동반한다. 마치 게임을 하기 전에 들어야 하는 지루한 규칙들처럼. 뒤이어 쏟아져 나오는 구태의연한 의미 설명은 '지루함'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준다. 더 큰 문제는 이 형식이 48가지 감정을 설명하는 내내 단 한 번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대담함인가!


동일한 형식 속에서 되풀이 되는 48개의 이야기는 사실 1개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1개의 이야기를 48가지로 말하는 걸 '다채롭다'고 한다면 48가지의 이야기를 1개로 말하는 걸 '지루하다'고 한다. 주간지의 칼럼에나 어울리는 형식으로 518p의 책을 만들었다는 건 이 책을 손에 든 순간 느껴지는 묵직함이 감동의 무게가 아니라 지루함의 무게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 뭔가 배울 수 있다면 오직 한 가지, 형식이 내용을 낳는다는 창작 원칙일 뿐이리라.



욕망


48권의 소설 중 25권이 자사의(민음사) 소설이라는 사실을 통해 이 출판 괴물의 의도가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이 괴물은 소비자를 어떻게 유혹 할지도 잘 안다. 제목에는 '수업'이라는 글자를 달고 수업을 할만한 '멘토'를 모셔온다. 각종 상담과 TV출연으로 가장 핫한 선생님을. 도무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감조차 잡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멘토'와 '수업'만큼 구미가 당기는 아이템은 없으니까. 


<강신주의 감정수업>은 자사의 책을 더 많이 팔고 싶은 출판사의 욕망과 쌓아온 입지를 경제적 가치와 대중적 명예로 환산하고자 한 저자의 욕망이 결합한 결과다. 욕망이 가장 추해지는 순간이 언제일까? 그것은 이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날 때이다. 


물론 저작권 문제를 좀 더 쉽게 처리하기 위해 자사의 소설을 중심으로 기획했을 수도 있다.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무려 23권이나 다른 회사 책을 넣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네요, 흐흐'하는 음흉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이유가 뭘까?



과대평가


이 책은 각 챕터의 끝에 '철학자의 어드바이스'라는 코너를 달아 또 한 번 지루한 설명을 감행한다. 자기 삶을 스스로 꾸릴 수 있는 사람, 자기 앞에 놓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에게 시시콜콜한 충고는 오히려 모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도를 감행한 이유는 이 책이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씌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 가장 잘 어울리는 부제는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다. 16쇄라는 판매부수는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다.



연민


반골 기질이 다분한 철학자였던 강신주가 이토록 상업적인 기획과 영합한 이유가 무엇일까?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을까?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실마리 조차 잡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극약 처방도 필요한 법이니까. 그러나 저자 자신이 말하듯 연민은 결코 사랑이 될 수 없다. 그것은


타자의 불행을 감지했을 때 출현하는 감정이기에, 연민의 밑바닥에는 다행히 자기는 그런 불행을 겪지 않았다는 것, 나아가 불행한 타자를 도울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p. 130~131)


나도 이 철학자의 연민이 좋은 결과를 낳았으면 좋겠다. 연민에 힘입어 계몽된 독자들이 마침내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그러나 이 희망은 인류가 출현한 이래 단 한 번도, 현실이 된 적이 없다. 



독자의 어드바이스


강신주의 다음 책이 철학이었으면 좋겠다. 이 모든 영합이 심사숙고라면 진저리치는 요즘 사람들을 철학으로 이끌기 위한 미끼였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성경에는 '칼로 흥한자 칼로 망한다'는 말이 나온다. 나는 그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상담으로 흥한자 상담으로 망한다'.


부디 그의 명예가 영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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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5-18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강신주 리뷰 중 가장 속시원한 리뷰군요...

한깨짱 2014-05-19 12:47   좋아요 0 | URL
생각이 같은 독자를 만나다는 건 정말 흥분되는 일이군요! 감사합니다!

양손잡이 2014-05-19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신주 팬이지만 이 책은 오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작품의 주제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내용들...

한깨짱 2014-05-19 12:47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에도 이 책은 오점이 확실합니다. 기획이 너무 뻔해요. 급하게 쓴 것 같기도 하고. 정성을 안 들인 것 같기도 해요. 정말 별로 입니다.

바라리 2017-08-02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신주의 책보다 더 내용이 비천한 아무런 근거도 없는 무조건 씹고 보자식 리뷰

한깨짱 2017-08-02 13:08   좋아요 0 | URL
무조건 씹자라니... 바라리님이 제 글에 반응한 바로 그 근거에 의해 저도 강신주님의 글에 반응한 것 입니다. 제 생각에 아무런 근거가 없다면 바라리님의 댓글도 마찬가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