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흑역사 -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톰 필립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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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을 읽으면서 진짜 웃음이 터져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피식하는 웃음이 아니라 '우하하하'하고 찐웃음이 터진다. 예상할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다. 이 정도로 맛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누가 있는지 떠올려보지만, 흠... 쉽지 않다. 한 해가 아직 한 달 반이나 남았지만 <인간의 흑역사>가 올해의 책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인간의 흑역사>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우리의 역사를 통찰한다. '흑역사'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로 인간이 저지른 뻘짓들을 나열한다. 그 기막힌 사기극과 헛발질들을 읽고 있으면 우리가 동물들 중 지능이 가장 발달한 영장류라는 사실에 헛웃음이 난다. 지능은 개뿔.


진심으로 말하건대 인간은 똥멍청이다. 왜냐고? 멸종을 자초하는 유일한 종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인간이 없다고 생각해보자. 이산화탄소가 쌓여 남극의 얼음과 북극의 동토를 녹일 일이 있을까? 인간은 현재 마지막 화산 대폭발 때보다 10배나 넘는 이산화탄소를 방출하는 중이다. 이 세상에 침팬지와 고릴라와 종달새와 뻐꾸기와 고래와 참돔 기타 등등 지능이 떨어지는 종들만 존재했다면 지구의 생명은 영원했을 것이다. 각종 병치레로 몇몇 종이 자연적으로 멸종하고 운석 충돌이나 대지진, 화산 폭발 같은 게 지구 상의 생명들을 지워버릴 순 있겠지만, 그건 그 종들이 자초한 일이 아니니 넘어가자.


이 책은 인간이 왜 엉망진창인지를 미시적으로 돌파해 나간다. 구체적 역사, 우리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기이한 웃음거리들을 끝도 없이 늘어놓는다. 나는 평소에 농담의 길이와 재미는 반비례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꼭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스탠딩 코미디 한 시간을 정신도 못 차리고 즐긴 기분이다. 이 책을 흔히 말하는 '빅 히스토리' 장르에 놓기엔 좀 애매한 감이 있지만 대중 역사서라는 관점에서 보면 전반적인 논조를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이 곧 신이 될 거라 예언하는 유발 하라리가 희망의 최전선이라면 중간에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는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있고 저 밑 똥통에 인간을 씹고 조롱하는 톰 필립스가 있다고.


혹자는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어쩌자는 말인가? 인간이 멍청한 걸 조롱하는 인간이라니, 이 무슨 위선인가? 너는 인간 아닌가? 이 책의 가치는 그저 농담, 딱 거기까지다. 현실을 타개할 해결책도, 사람들의 행동을 바꿀 경종도 울리지 못한다. 사실 나는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평가하기엔 이 책의 진심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억울해서 눈물이 날 정도랄까?


독자 여러분도 최근에 한 번쯤은, 개인의 가치관이나 정치적 신조를 막론하고,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 이렇게 한탄한 적이 있을 것이다. "나 원 참, 세상이 어쩌다 이 꼴이 됐지?"(p.11)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확실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 세상은 늘 이 꼴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살.아.있.다. 놀랍게도 <인간의 흑역사>는 인간의 똥멍청이짓들을 통해 우리를 위로한다. 톰 필립스는 머리말에 이렇게 적었다.


진짜 큰 바보짓을 저질러본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바친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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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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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너머로 달리는 말>은 가상의 국가 '초'와 '단'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초'는 말이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유목민족이다. 글자는 존재하지 않고, 풀밭에 천막을 치고 살며, 말과 사람이 먹을 것은 뺏어 먹는다. '단'은 성벽을 쌓고 그 안에 무리를 지어 사는 족속이다. 글자가 존재하며 먹고사는 방편으로 농사를 짓는다.


늙은 초의 왕은 어느 날 단의 성벽이 초원을 침범해 흉물스러운 돌덩이들이 세상을 뒤덮을까 걱정이 된다. 그는 아들에게 눈 앞에 보이는 모든 돌무더기들을 치우라는 유언을 남긴 뒤 스스로 나룻배 한 척을 타고 강 하류로 나아간다. 그 끝엔 인생을 마친 자들이 기거한다는 명도가 있었다. 때가 되어 스스로 명도로 향하는 풍습을 '초'는 돈몰이라 불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덧없는 인생을 지고 사는 인간과 그런 인간에게 붙들려 사는 말이다. 인간과 말은 교감을 하는데 말이 힘센 인간의 말에 복종하는 건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연민해 태워주는 건지 알 수 없다. 말은 인간만큼 강한 자의식을 갖고 있어 스스로 이빨을 뽑아 고삐를 풀기도, 좋아하는 암말을 따라 국경을 넘기도 한다. 말의 생은 인간의 생에 종속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종속은 그저 말의 선택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따지고 보면 이 이야기에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건 나라를 떠나 미물과 대화하는 법을 깨우친 미친 왕자 연(초왕의 둘째 아들)과 말들 뿐이다. 나머지는 왕의 명령에, 나라의 풍습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강요하는 도리에 따라 살아간다. 김훈은 그 모든 것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공멸을 택한다.


나는 그가 늘 고통받는 인간을 관망할 뿐 거기에 간여하는 않는 것에 불만을 가졌는데, 이 소설은 어쩌면 그가 세상에 내놓는 최초의 목소리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간 김훈이 써온 역사 소설은 사실과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이기에 거기에 뭔가 더하고 빼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그동안 이런 논지로 김훈의 소설을 스스로에게 납득시켜 왔다. 하지만 애초에 '그 역사'를 관망하기로 결정한 그 자체에 작가의 강력한 주장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김훈은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결말과 가장 흡사한 역사적 사실을 찾아 그것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으로 자신의 주장을 은유해왔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게 뭘까?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은 내가 읽은 김훈의 소설 중 처음으로 사실에 얽매이지 않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의 주장이 처음으로 선명하게 드러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은 그간 김훈이 써온 소설 중 그 어떤 것보다도 난해하다. 같은 말이 반복되거나 중언부언 흩어진다는 느낌. 처음으로 적나라한 주장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과 그것이 너무 적나라한 것에 대한 반감 사이에서 이리저리 흔들렸던 걸까? 역사적 사실을 다룰 때는 사실 뒤에 숨어 교묘히 주장을 가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나의 생각이 아니다, 이것은 사실일 뿐이다 라고. 김훈은 이 쪽 지평선 끝이 저 쪽 지평선 끝과 이어져 몸을 가릴 돌덩이 하나 밟히지 않는 달빛 아래 초원에 서 있다. 나 따위가 이런 대작가에게 할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그곳에서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김훈은 책 뒤에 '세상을 지워 버리고 싶은 충동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서식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이 책은 그 답답함의 소산이다.'라고 썼다. 그는 인간이 걸어가는 자리마다 쌓이는 난잡함에 망연해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를 가장 괴롭히는 건 이런 난잡한 세상에서 살아보겠다며 어지러운 글들을 토해내 밥을 벌어야 하는 자기 자신의 비루함일 것이다. 그의 인생은 어디서부터 이렇게 무거워진 걸까? 나는 그가 이 소설에 내놓은 의견에 절대적으로 공감하지만, 아직은 그게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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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밤
할런 코벤 지음, 노진선 옮김 / 문학수첩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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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테일러만큼 시니컬한 경찰이 나오는 소설이라면 안 보고 배길 방법이 없다. 쉽게 말해 싸가지가 없는 캐릭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태도. 악을 통해 선을 추구하는 아이러니. 무식할 정도로 저돌적이지만 책 꽤나 읽는 독서광. 항상 혼자 일하고, 친구 보단 적을 더 많이 만든다. 동료로서는 최악이지만 멀리서 구경하기엔 꽤나 멋있는 사람이다.


할런 코벤의 <사라진 밤>은 매력적인 캐릭터와 미지의 줄거리가 공존하는 추리 소설이다. 주인공은 뒤마. 경찰이다. 학창 시절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약했고 쌍둥이 형제와 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밤 뒤마는 사랑하는 두 사람을 동시에 잃는 비극을 맞이한다. 형제는 피 속에 다량의 마약을 함유한 채 기차에 치여 갈가리 찢겼다. 여자 친구 모라는 그날 밤 사라져 영영 자취를 감춰버린다. 이 날의 사건은 뒤마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뒤마는 쌍둥이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여자 친구의 실종과 관련이 있다고 의심했다. 그가 경찰이 된 이유?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사라진 밤>은 이야기의 부스러기를 조금씩 흘리는 재주가 뛰어나다. 길을 잃은 헨젤과 그레텔처럼 독자들은 정신없이 그 흔적을 좇아 헤맨다. 다른 곳에 시선을 팔지 못하도록 짧고 담백한 문장이 쉴 새 없이 몰아친다. 몰입감이 대단하다. 이야기의 전체적인 윤곽과 분위기는 작가의 말에 함축되어 있는데, 반전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두고두고 곱씹을 가치가 있어 여기에 그 전문을 옮겨 적는다.


뉴저지주 교외에서 살던 어린 시절, 우리 마을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괴담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철제 대문이 설치되어 있고 무장 경비원들이 지키는 으리으리한 대저택에 악명 높은 마피아 두목이 살고 있으며, 그 저택 뒤뜰에 소각로가 있는데 거기서 시체를 태운다는 내용이었다.


이 책을 쓰게 된 영감을 받은 두 번째 괴담은 마피아 두목의 저택 근처 초등학교 인근에 '출입 금지' 표지판이 있고 가시철조망이 둘러진 지역이 있는데,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한 나이키 미사일을 발사하는 관제소가 있다는 것이다.


어른이 된 후에 나는 두 괴담이 모두 사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p.7).


그러나 400페이지짜리 추리 소설이 350페이지가 넘어서까지 뚜렷한 몸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슬슬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마어마한 진실을 꺼내 놓기에 50페이지는 너무나 부족하다.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비약을 감행하고 길고 길었던 터널은 너무나 급작스럽게 끝이 난다. 어둠에 적응이 되었던 눈은 강렬한 햇빛 아래 오히려 실명하고 만다. 설마설마했던 게 진짜였을 때 느꼈던 실망감은 아쉽다는 말로는 부족한 갈증을 남긴다.


그래도 최근에 이만큼 몰입해서 읽었던 소설이 있었나 싶기는 하다. 할런 코벤. 내게는 생소한 이름이었지만 이미 수많은 책이 번역된 인기 작가였다. 이 정도로 유명한 사람을 여태껏 모르고 지내왔다는 것도 참 신기하다. 비록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지만 <사라진 밤>은 할런 코벤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한 소설이다. 나는 올해 안에 그의 책을 서너 권 더 읽어볼 생각이다. 넷플릭스에 있다는 그의 드라마들도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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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 산문
장기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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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의 노래를 좋아한다. 그는 가사에 영어를 적지 않는다. 한글 고유의 음률을 찾는 능력이 대단하다. 다른 노래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신선함이 있다. 장기하의 음악은 이 세상에서 딱, 장기하만 할 수 있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는 이 독보적 음악인이 탄생하게 된 과정과 창작의 비밀을 한 5% 정도 밝히는 책이다. 수필이 다 그렇듯 나머지는 흘러가는 이야기들이다. 하루키를 꽤나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비슷한 맥락이 엿보이기도 한다. 재미없는 부분을 숨텅 숨텅 넘기더라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 무해한 책이다. 산문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장기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싸구려 커피>와 <달이 차오른다>를 처음 들었던 EBS 음악 방송이 기억난다. 그건 일종의 공개 코미디 같았다. 무표정에 선글라스를 낀 여자 두 명이 딱 봐도 PC방 폐인처럼 생긴 가수 옆에서 춤 같지도 않은 몸짓을 했다. 어쩌면 그는 '병맛'을 최초로 상업화하는 데 성공한 대중 가수인지도 모른다.


사실 '장기하와 얼굴들'처럼 '웃긴 노래'를 만드는 홍대 인디 밴드는 여럿 있었다. 그중 '불나방 스타 소세지 클럽' 같은 밴드는 음악적으로도 굉장히 훌륭했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건 '장기하와 얼굴들'이 '거의' 유일하고 최근까지도 활발한 활동 + 대중적 성공을 한 것으로 치면 견줄 팀이 있으려나?


장기하의 노래가 21세기 청년들이 처한 막막한 현실을 진정성 있으면서도 너무 어둡지 않게 그렸다는 걸 성공 요인으로 꼽는 사람도 있다. 그를 지금의 위치에 있게 한 <싸구려 커피>만 놓고 보면 말이다. 하지만 진정성이라는 걸 자기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정할 경우 <싸구려 커피>는 완전히 기만적인 노래였다. 장기하 본인이 직접 밝혔듯 그는 싸구려 커피로 대변되는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


그는 확실히 학력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우리 사회에선 똑똑한 놈이 미친 짓을 하면 우리가 볼 수 없는 뭔가가 그에게는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는 학력을 떠나 실제로 똑똑했다. 특히 인디적 감성을 지닌 채로 방송을 활용하는 면에선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다. 적당한 거리와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그 영향력은 충분히 활용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내가 무슨 장기하 안티처럼 보이는데, 앞에서도 말했듯 나는 그의 음악을 매우 좋아한다. 그는 운이 좋았던 것도, 학력의 도움을 받은 것도, 대중 매체를 영악하게 활용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 근본엔 뛰어난 음악성과 성실이 있었다. 장기하는 세상이 준 선물을 '원 히트 원더'로 낭비하지 않았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장기하의 노래를 틀었지만 한 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꺼버렸다. 노래가 너무 찰져서 집중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음악적 영혼이 '밴드'에 있다고 믿지만 장기하 식으로 말하면 그건 그냥 '니 생각이고' 어쨌든 그는 이제 솔로로 전향해 자신의 음악 세계를 펼치려 한다. 솔직히 한 2~3년 하다가 다시 밴드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장기하와 얼굴들' 외의 다른 팀을 보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 이 팀도 그의 첫 밴드는 아니었으니까.


p.s - 아이유와의 연애담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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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강의
이중텐 지음, 강주형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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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이 천하를 제패한 건 놀라운 일이었다. 오늘날로 따지면 동장도 되지 않았을 사람, 아마 읽는 법도 쓰는 법도 몰랐을 일자무식이 초나라 귀족 출신의 항우를 꺾고 천하의 주인이 된 것이다. 경영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두고두고 곱씹을 케이스 스터디라 할 만하다.


젊은 나이도 아니었던 평범한 중년 남자가 세상 밖으로 나온 계기는 뭐였을까? 자고로 영웅은 난세에 태어나는 법이라 했다. 그렇다면 당시의 난세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간략하게 살펴보자.


아마 춘추전국 시대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춘추는 공자가 지은 역사서 <춘추>에서 기원한 말로 중국의 고대 국가 '주'가 명목상으로만 존재하고 여러 제후국들이 경쟁을 펼친 시기다. 오월동주니 와신상담 손자병법의 주인공 손무 등이 모두 이 시대에서 비롯되었다.


전국은 주로 춘추가 제와 진의 양강체제로 굳어지던 시기 두 나라에서 내전이 발생해 진나라가 한, 조, 위 씨 성을 가진 대부들에 의해 쪼개진 것을 경계로 삼는다.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유명 만화로는 <킹덤>이, 사자성어로는 '합종연횡'이 있다. 그리고 너무나 유명해 따로 거론할 필요도 없는 '진시황'이 이 시대를 마무리 짓는다.


진시황의 천하 통일은 2년을 넘기지 못했다. 시황 사후 전국은 다시 분열한다. 그리고 초나라가 고향이었던 두 영웅, 항우와 유방의 일대 결전, 초한지가 시작된다.


이 시대의 영웅은 두 주인공을 비롯해 한신, 소하, 장량, 범려, 번쾌, 여후 등이 있다. 범려를 제외하면 전부 한나라 사람들인데 <초한지 강의>는 주로 이들의 생애와 처세를 평한다. 이는 그만큼 항우가 인재 관리를 못했다는 의미도 되지만 이 시대의 영웅들은 사실 형세를 살피며 그때그때 유방과 항우 사이를 왔다 갔다 했기에 항우에겐 조금 억울한 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사실 유방이나 항우 모두 욕심이 많았고 고집스러운 데가 있었다. 안목이 떨어지는 것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래서 인재들이 자기를 알아봐 주지 않는다며 양쪽 진영을 왔다 갔다 한 것이다. 하지만 유방과 항우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점잖은 사람이라면 이를 '듣는 능력'이라고 할 테지만 나는 '교활함'이라 말하고 싶다.


항우와 유방의 차이는 '교활함'이었다. 항우는 표정과 행동에서 자신의 속내가 다 드러나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방은 아무리 자기 신하가 미워도, 아무리 그 사람을 죽이고 싶어도 형세와 상황에 맞춰 처신하는 법을 알았다. 듣는 능력이 강조되는 이유는 이 과정에서 여러 신하들이 방법을 일러줬고 유방 스스로도 그것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교활함은 유방의 인생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그를 구해준 최고의 덕목이었다. 그는 대장부의 체면이라는 걸 잘 따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유방은 틈만 나면 상대를 속였다. 죽을 것 같으면 넙죽 엎드려 싹싹 빌었고 때가 아니면 언제든 속내를 숨겼다. 그리고는 뒤에서 복수할 날만을 기다렸다. 그는 공신들에게까지 세작(스파이)을 붙여 동태를 감시했고 질릴 정도로 그들을 떠봤다. 나는 교활함이란 것이 가치평가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유방이 교활했기 때문에 나쁜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방의 성공에는 교활함이 있었으며 이는 태생적 성격에서 기인한 것도 있지만 나이에서 우러나오는 삶의 지혜였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항우와 유방의 차이를 논하는 수많은 글들 중에서 그들의 나이차를 언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려한다. 초한의 역사를 보면 항우는 그저 힘만 믿고 까부는 철부지 바보였고 유방은 노련함의 대가였다. 아무리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너무 지나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나이차에(15살) 집중하면 그렇게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과 인생의 달고 쓴맛을 모두 본 중년을 떠올려보자. 청년은 명문가 출신에 세발솥을 번쩍 들어 올릴 정도로 힘이 센 장사였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젊은이는 남의 말을 듣고 자신의 뜻을 꺾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힘이 모든 걸 좌우하던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자가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항우가 실패한 건 그가 고집불통 멍청이였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 비범한 젊은이였기 때문이다. 그는 똑똑한 신하들의 말을 듣지 않고도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했다. 사면초가로 들어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항우는 유방을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고 있었다. 그토록 수많은 인재가 이미 유방에게 돌아선 때인데도 말이다.


항우가 다섯 살만 더 많았다면, 그래서 성공과 함께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거기서 지혜를 깨달았다면. 역사에 가정은 없는 법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이 가정을 통해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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