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 산문
장기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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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의 노래를 좋아한다. 그는 가사에 영어를 적지 않는다. 한글 고유의 음률을 찾는 능력이 대단하다. 다른 노래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신선함이 있다. 장기하의 음악은 이 세상에서 딱, 장기하만 할 수 있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는 이 독보적 음악인이 탄생하게 된 과정과 창작의 비밀을 한 5% 정도 밝히는 책이다. 수필이 다 그렇듯 나머지는 흘러가는 이야기들이다. 하루키를 꽤나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비슷한 맥락이 엿보이기도 한다. 재미없는 부분을 숨텅 숨텅 넘기더라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 무해한 책이다. 산문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장기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싸구려 커피>와 <달이 차오른다>를 처음 들었던 EBS 음악 방송이 기억난다. 그건 일종의 공개 코미디 같았다. 무표정에 선글라스를 낀 여자 두 명이 딱 봐도 PC방 폐인처럼 생긴 가수 옆에서 춤 같지도 않은 몸짓을 했다. 어쩌면 그는 '병맛'을 최초로 상업화하는 데 성공한 대중 가수인지도 모른다.


사실 '장기하와 얼굴들'처럼 '웃긴 노래'를 만드는 홍대 인디 밴드는 여럿 있었다. 그중 '불나방 스타 소세지 클럽' 같은 밴드는 음악적으로도 굉장히 훌륭했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건 '장기하와 얼굴들'이 '거의' 유일하고 최근까지도 활발한 활동 + 대중적 성공을 한 것으로 치면 견줄 팀이 있으려나?


장기하의 노래가 21세기 청년들이 처한 막막한 현실을 진정성 있으면서도 너무 어둡지 않게 그렸다는 걸 성공 요인으로 꼽는 사람도 있다. 그를 지금의 위치에 있게 한 <싸구려 커피>만 놓고 보면 말이다. 하지만 진정성이라는 걸 자기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정할 경우 <싸구려 커피>는 완전히 기만적인 노래였다. 장기하 본인이 직접 밝혔듯 그는 싸구려 커피로 대변되는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


그는 확실히 학력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우리 사회에선 똑똑한 놈이 미친 짓을 하면 우리가 볼 수 없는 뭔가가 그에게는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는 학력을 떠나 실제로 똑똑했다. 특히 인디적 감성을 지닌 채로 방송을 활용하는 면에선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다. 적당한 거리와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그 영향력은 충분히 활용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내가 무슨 장기하 안티처럼 보이는데, 앞에서도 말했듯 나는 그의 음악을 매우 좋아한다. 그는 운이 좋았던 것도, 학력의 도움을 받은 것도, 대중 매체를 영악하게 활용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 근본엔 뛰어난 음악성과 성실이 있었다. 장기하는 세상이 준 선물을 '원 히트 원더'로 낭비하지 않았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장기하의 노래를 틀었지만 한 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꺼버렸다. 노래가 너무 찰져서 집중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음악적 영혼이 '밴드'에 있다고 믿지만 장기하 식으로 말하면 그건 그냥 '니 생각이고' 어쨌든 그는 이제 솔로로 전향해 자신의 음악 세계를 펼치려 한다. 솔직히 한 2~3년 하다가 다시 밴드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장기하와 얼굴들' 외의 다른 팀을 보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 이 팀도 그의 첫 밴드는 아니었으니까.


p.s - 아이유와의 연애담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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