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밤
할런 코벤 지음, 노진선 옮김 / 문학수첩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잭 테일러만큼 시니컬한 경찰이 나오는 소설이라면 안 보고 배길 방법이 없다. 쉽게 말해 싸가지가 없는 캐릭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태도. 악을 통해 선을 추구하는 아이러니. 무식할 정도로 저돌적이지만 책 꽤나 읽는 독서광. 항상 혼자 일하고, 친구 보단 적을 더 많이 만든다. 동료로서는 최악이지만 멀리서 구경하기엔 꽤나 멋있는 사람이다.


할런 코벤의 <사라진 밤>은 매력적인 캐릭터와 미지의 줄거리가 공존하는 추리 소설이다. 주인공은 뒤마. 경찰이다. 학창 시절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약했고 쌍둥이 형제와 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밤 뒤마는 사랑하는 두 사람을 동시에 잃는 비극을 맞이한다. 형제는 피 속에 다량의 마약을 함유한 채 기차에 치여 갈가리 찢겼다. 여자 친구 모라는 그날 밤 사라져 영영 자취를 감춰버린다. 이 날의 사건은 뒤마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뒤마는 쌍둥이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여자 친구의 실종과 관련이 있다고 의심했다. 그가 경찰이 된 이유?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사라진 밤>은 이야기의 부스러기를 조금씩 흘리는 재주가 뛰어나다. 길을 잃은 헨젤과 그레텔처럼 독자들은 정신없이 그 흔적을 좇아 헤맨다. 다른 곳에 시선을 팔지 못하도록 짧고 담백한 문장이 쉴 새 없이 몰아친다. 몰입감이 대단하다. 이야기의 전체적인 윤곽과 분위기는 작가의 말에 함축되어 있는데, 반전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두고두고 곱씹을 가치가 있어 여기에 그 전문을 옮겨 적는다.


뉴저지주 교외에서 살던 어린 시절, 우리 마을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괴담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철제 대문이 설치되어 있고 무장 경비원들이 지키는 으리으리한 대저택에 악명 높은 마피아 두목이 살고 있으며, 그 저택 뒤뜰에 소각로가 있는데 거기서 시체를 태운다는 내용이었다.


이 책을 쓰게 된 영감을 받은 두 번째 괴담은 마피아 두목의 저택 근처 초등학교 인근에 '출입 금지' 표지판이 있고 가시철조망이 둘러진 지역이 있는데,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한 나이키 미사일을 발사하는 관제소가 있다는 것이다.


어른이 된 후에 나는 두 괴담이 모두 사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p.7).


그러나 400페이지짜리 추리 소설이 350페이지가 넘어서까지 뚜렷한 몸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슬슬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마어마한 진실을 꺼내 놓기에 50페이지는 너무나 부족하다.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비약을 감행하고 길고 길었던 터널은 너무나 급작스럽게 끝이 난다. 어둠에 적응이 되었던 눈은 강렬한 햇빛 아래 오히려 실명하고 만다. 설마설마했던 게 진짜였을 때 느꼈던 실망감은 아쉽다는 말로는 부족한 갈증을 남긴다.


그래도 최근에 이만큼 몰입해서 읽었던 소설이 있었나 싶기는 하다. 할런 코벤. 내게는 생소한 이름이었지만 이미 수많은 책이 번역된 인기 작가였다. 이 정도로 유명한 사람을 여태껏 모르고 지내왔다는 것도 참 신기하다. 비록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지만 <사라진 밤>은 할런 코벤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한 소설이다. 나는 올해 안에 그의 책을 서너 권 더 읽어볼 생각이다. 넷플릭스에 있다는 그의 드라마들도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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