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러건트 유니버스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승산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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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봤을 때 나에게 리뷰를 쓸 능력이 없다는 걸 알았다. 책장에 고이 간직한 일년, 용기를 쥐어짜 두 번째 정독에 도전한다. '쓰기'라는 쓰디 쓴 족쇄의 의무를 탈출하기 위해.


592p의 양장본, 후주만 35p. 타키온, 글루온, 파동 함수, 10차원 공간, 칼라비-야우 도형들, 이름만 들어도 눈 앞에 아득해 지는 전문 용어들이, 전기 나간 지하실같은 캄캄한 머리 속으로 햇빛처럼 쏟아져 들어온다. 회상의 톱니바퀴가 덜컹거리며 동작을 재개하고 기억을 떠나있던 지식들이 제자리를 찾아온다. 그리하여?


그리하여 나는 여전히 리뷰를 쓸 능력이 없다는 걸 알았다. 좀 봐줘요, 나이가 들 수록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없다'고 솔직히 고백해야 할 순간들이 많아 진답니다. 





추락하는 사과의 은혜를 입어 '중력'의 법칙을 발견한 이후로 사람들은 뉴턴을 천재로 칭송해왔다. 뉴턴은 당시의 수학이 자신의 이론을 설명할 수 있을 만큼 훌륭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자 자신이 직접 새로운 수학을 창조할 만큼 천재적이었다. 


뉴턴이 힘의 상호작용과 행성의 운동 법칙을 설명했을 때, 인류는 세상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했고 어떠한 일이라도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믿음의 대부분은 현실로 이뤄졌다. 인간은 위성을 쏘아 올렸고 달에 인간을 보냈으며 6,000km 떨어진 이웃 나라에 핵폭탄을 떨어드릴 수 있게 됐다.


뉴턴의 세계는 간결하고, 우아했으며, 명확했다. 오묘하고 비밀스러운 사물의 운동은 그것의 위치와 속도로 간략히 서술될 수 있으며 사물에 가해진 힘과 상호작용하는 힘의 크기를 토대로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예컨대 우리가 빅뱅 당시 존재했던 모든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알고 있다면 이 우주의 최후 모습을 완벽하게 예측하는 것도 이론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얘기다. 뉴턴의 역학 안에서 세계는 째깍째깍 귀여운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시계였고 신은 두꺼운 돋보기를 걸친 기계공이었다.


중력을 발견한 뉴턴이었으나 그 자신도 '그 진짜 정체는 무엇인가, 중력은 도대체 어떻게 생기는가'에 대한 해답을 주지는 못했다. 이 문제에 해답을 준 것은 약 200년 뒤에 나타난 또 하나의 천재, 아인슈타인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질량을 가진 물체가 공간을 점유하고 있을 때 그 질량의 크기에 비례해 공간에 휘어짐이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별거 없어 보이는 발견이 '중력'의 원인을 찾는 실마리였다. 중력은 '휘어진 공간 그 자체'였던 것이다. 공간에 대한 놀라운 발견도 잠시, 아인슈타인은 더 가공할 만한 폭로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시간의 비밀 말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시간은 그저 한 사건과 다른 사건 사이의 간격을 기술하기 위한 관념적 단어에 불과했으나 아인슈타인이 등장하자 시간은 구체적인 물리량으로 변화했다. 쉽게 말해, 시간 또한 공간처럼 휘어지거나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는 존재라는 걸 발견한 것이다.


이 공간과 시간에 대한 발견이 바로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의 골자라 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도출되는, 천지가 개벽할 사례를 몇 가지 적자면 다음과 같다. 


'빨리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은 느리게 움직이는 사람보다 느리게 흐른다'


'한 물체가 빛의 속도에 다다르면 질량은 '0'이 된다. 따라서 그 어떤 물체도 빛의 속도를 능가할 수 없다'


'시공간 차원에서 모든 물체는 광속으로 움직인다'


미안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 구구절절히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책의 저자 브라이언 그린도 무려 143페이지에 걸쳐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으니, 이 글에서 모든 걸 밝히기엔 내 능력도 그 긴 글을 읽어낼 여러분의 인내심도 모두 한계에 다다를 것이다. 


혹시 책을 읽고 나서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좌절할 사람이 있을까봐 이야기를 하나 해주고 싶다. 아인슈타인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건 '상대성 이론'이지만,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건 '광자의 발견'이었다. 왜냐고? 당대 최고의 석학들조차 당시에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의 명예에 만족하고 안분지족, 산 속에 들어가 조용한 여생을 보냈더라면, 뉴턴에게 뺏어온 천재의 칭호를 평생 간직하며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이 배고픈 천재를 말릴 수 있었겠는가? 천재 물리학자의 지칠줄 모르는 연구는 급기야 '광자 가설'을 도입한 빛의 광전 효과 입증에서 빛을 발했다. 아인슈타인은 그 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리고 천재의 칭호를 내려 놓을 위기에 처했다. 바로 그 발견으로 부터 양자 역학이 촉발되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이 양자 역학을 받아들였다면 그는 살아 생전에 천지를 두 번이나 개벽시킨 전무후무한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죽는 순간까지 그는 양자 역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은 기독교인들이 결정론적 운명관을 옹호할 때나 쓰는 말이 됐지만 원래는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던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말이 있다. 그것은 아인슈타인이 자신이 왜 양자 역학을 받아들이지 않는지를 밝히면서 한 말이었다.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


우선 양자가 뭔지 부터 짚고 넘어가자. 위키 피디아에서는 양자를 '플랑크 상수 단위를 가지고 있고, 나눌 수 없는 물리량을 뜻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앞뒤 다 자르고 복잡한 내용을 뭉게버릴 권한이 주어진다면 이렇게 이해해도 좋다. 양자는 아주 작은 입자다. 빛을 구성하고 있는 광자, 원소를 구성하는 전자 등이 이에 속한다. 문제는 이 조그만 양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거시 세계의 사물들과는 아주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양자의 놀라운 행동 패턴을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양자(전자)는 동시에 여러곳에 존재할 수 있다'


'양자는 벽을 뚫고 지나갈 수 있다(이건 벽을 구성하는 입자들 간의 간격보다 양자가 더 작기 때문이 아니다. 유령처럼 말 그대로 '뚫고 지나간다'는 것이다)'


'양자는 그 속도와 위치를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


'양자의 상태가 어떻게 관측될지는 확률적으로만 예측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바로 이 '확률'의 문제였다. 신께선 만드신 이 우주는 단 하나의 법칙에 의해 매끄럽고 우아하며 정확하게 동작한다. 이것이 아인슈타인의 믿음이었고 그가 평생에 걸쳐 연구한 분야였다. 그런데 양자 역학의 우주는 뭐 하나 제대로 예측할 수 있는게 없다. 전자나 광자의 상태가 어떻게 관측될지는 오로지 확률적으로만 예측될 수 있을 뿐이다. 예컨대 당신이 매일밤 당신의 미래에 대한 응답을 달라고 기도를 올려도 신이 해줄 수 있는 대답은 고작 '네가 성공할 확률은 57.4%느니라' 밖에는 안된다는 것이다. 


양자 역학이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운명은 얼마든지 개척할 수 있다'라는 믿음을 물리적으로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래를 결정되어 있지 않다. 당신은 훌륭한 소설가가 될 수도 물리학자가 될 수도 심각한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 단지 개개의 결과가 벌어질 확률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양자 얘기는 그만하자. 어차피 양자 세계의 현상을 이해하는건 불가능하다. 양자 역학은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의 상식 세계와는 너무나 차이가 있고 그 현상을 실제로 관측하는건 절대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그것이 왜 불가능한지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은 토머스 영의 '전자의 이중 슬릿' 실험을 살펴보라. http://ko.wikipedia.org/wiki/%ED%8C%8C%EB%8F%99-%EC%9E%85%EC%9E%90_%EC%9D%B4%EC%A4%91%EC%84%B1)





너무 멀리 돌아온 감이 있지만, 사실 '엘러건트 유니버스'는 초끈이론에 대한 책이다. 그리고 난 이 시점에서 힘이 다 빠졌다. 뉴턴의 고전 역학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고등학교 시절 화학2로 도피해야 했던 나에게 상대성이론과 양자 역학을 읽고 이해하고 쓰는건 양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히 알아내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초끈이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각자 이 책을 사서 읽어보라 라고 하는건 거짓말이고 마지막 힘을 짜내 몇 자 더 적어본다.


초끈이론은 '만물의 이론'의 강력한 후보다. 만물의 이론은 무엇이냐, 바로 아인슈타인이 죽기 직전까지 매달려 있던 통일장 이론. 즉 이 세계를 설명하는 단 하나의 완전 무결한 법칙이다. 이 세계를 지탱하는 힘은 크게 '중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 '전자기력'으로 나눌 수 있는데 과학자들은 완전히 별개로 작동하는 이 힘들이 사실은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하나의 법칙의 '다른 모습'일거라고 생각한다. 왜냐고? 신이 완벽하다면 이 우주를 작동하게 하는데 4개나 되는 법칙이 필요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모든 과학자들이 이런 신학적 견해를 갖고 있는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이 우주가 그렇게 비효율적일리 없다'는 믿음으로 만물의 이론을 탐구한다).


그런데 이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중력은 질량을 가진 물체의 자기 소개고 전자기력은 하전 입자들의 댄스 파티다. *강한 핵력? 이분은 양성자들이 벌이는 이혼 소송을 중재하면서 평생을 산다. 중성자를 유혹해 파멸시키는건 *약한 핵력의 역할이다. 결국 힘들은 입자로부터 출발하거나 입자간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다. 자! 그럼 우리의 다음 질문은 입자란 무엇인가다. 왜 어떤 입자는 전자가 되고 어떤 입자는 쿼크가 되어 전자기력과 핵력을 만들어내는가(중성자와 양성자의 구성 요소)? 입자들은 빅뱅 당시부터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던 걸까? 초끈이론의 대답은? 


아니올시다.


결론부터 말하면, 만물의 기본 요소는 '끈'이다. 맙소사! 우리의 우주는 수 많은 치실이 떠다니는 무시무시한 장소였던 것이다! 하지만 치실 따위가 어떻게 이 모든 일들을 해낼 수 있었을까? 들어보라! 끈들은 서로 다른 모양과 '진동 패턴'을 갖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진동 패턴'에 따라 어떤 입자는 쿼크가 되고 어떤 놈은 전자가 된다. 


탭댄스를 출줄 안다고? 자네는 좋은 쿼크가 될 수 있겠군! 


우주의 근본 원리가 우리에게 희망찬 암시를 해주는 것 같지 않은가? 당신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당신은 그 무엇도 될 수 있다! 놀라운 세상이야!


사실 초끈이론은 이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10차원 시공간과 맞닥뜨리고 그 시공간이 끈으로 꿰매어져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여야 한다. 140억년이나 되는 우주의 역사를 이해하는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누군가 물리학 책을 소개해달라고 하면 나는 무조건 이 책을 꼽는다. 영국의 물리학자 어니스트 러더포드는 "무언가를 전문용어 없이 일상적인 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면, 그것은 당신이 그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증거다"라고 말했다. 


지난 백년 동안 우주는 무려 두 번이나 천지개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한 번은 아인슈타인에 의해, 또 한 번은 양자 역학에 의해) 우리에겐 여전히 머나먼 정글이다. 물리학자들이 무능한걸까? 아니면 일반인이 이해하기에 우주는 너무나 심오하고 복잡한 걸까? 브라이언 그린은 이 막막한 현실 속에서 꿈을 잃지 않고 빛을 비추는 우주의 등대다. 당신이 이제 막 물리학을 찾아 우주를 나섰다면, 이 보다 밝은 불빛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져 있다. 이중 양성자는 서로를 밀어내는 척력을 갖는데, 이 척력보다 더 큰 힘으로 이들을 묶어 줘 원자핵의 붕괴를 막는게 강한 핵력이다. 


*약력은 방사성 물질이나 중성자의 붕괴를 일으킨다.


*브라이언 그린의 TED 강연도 명품이다. 절대 강추! http://www.ted.com/talks/view/lang/en//id/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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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란 2012-11-16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들을 읽다보면 느끼는 게 있다면 자연의 물리라는게 인간 언어나 지식의 한계 너머 있는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중력. 양자같은 이야기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내로 끌어 이해하기 위한 시도가 있긴 하지만, 만유의 법칙을 찾는 것 자체가 인간의 끊임없는 도전이라고 포장하지만, 인간은 그저 인간일뿐, 티끌과 비교해 결코 더 나은 가치있는 존재가 아니라는걸 깨닫는 것이 나의 결론입니다. 또 중언 부언....결론도 없이 그저...
다 제끼고 결론은 브라이언 그린의 책은 일반인이 접근할 수 있는 재밌는 책입니다.

한깨짱 2012-11-21 13:55   좋아요 0 | URL
브라이언 그린의 재미를 알고 있는 독자를 만나다니 정말 반갑네요! 양자 역학은 정말 흥미로운 분야인 것 같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우리를 왜 만들었나요? 하고 질문하는 존재인가 봅니다. 존재의 이유에 대한 미지가 인간을 계속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 같기도 하고요. 어쨌든 이 책이 재미있는건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