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4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4
이종호 외 지음 / 황금가지 / 2009년 7월
평점 :
역시 공포 문학은 '다음 단편이 무엇을 담고 있을까'하는 기대감에 책을 읽는 것이 즐겁다. 여름이면 찾아오는 "전설의 고향"보다 더 재밌었다면 아무도 믿지 못하겠지? "에이, 그래도 시각적으로 공포심을 자극하는 전설의 고향이 재밌지"라고 혹자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편들을 읽으며 나의 머릿속에서 상상되는 장면들의 선명함은 아마 "전설의 고향"의 시각적인 재미를 훨씬 넘어설 것이다. 뭐, '구미호'와 비교하면 우위를 가리기 힘들겠지만 말이다.
단편 [도둑놈의갈고리]를 읽으면서 어쩌면 이렇게 여성의 심리상태를 세밀하게 표현해 놓았을까, 깜짝 놀랐다. 몰카를 소재로 한 이 단편은 한 남자에 의해 인터넷에 유포된 동영상이 그를 사랑한 평범한 한 여성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잘 보여준다. 인터넷과 관련한 단편으로는 [배심원]이 있는데 읽고 있다 보면 그 주인공이 '나'인 것 같아 정말 무서울 정도다. 인터넷으로 인해 생기는 새로운 범죄들속에서 '나'라고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겠는가. 한 사람을 난도질하는 뭇 사람들의 익명성을 내세운 살인 행위는 정말 소름이 끼친다.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을 읽다보면 귀신, 유령들이 나오는 소설은 잠깐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그리 무섭지 않은 소설임을 깨닫게 된다. 진정한 공포란 이성적인 마음을 야금야금 먹어가는 내 안에 숨겨져 있던 또 다른 나의 얼굴을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 단편 [더블]을 읽으면서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한 명 더 존재한다면 함께 이 세상에 공존하기 보다는 내가 살기 위해 한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을 왜 '나'라고 하지 못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내가 무서워졌다. 비록 책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를 대변하는 존재로 나타나긴 하지만 내 것을 빼앗는 또 다른 '나'가 존재한다면 나 또한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익명성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나는 단편 [더블]에서 죽은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다는 생각을 한다. 당사자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건진 생명이겠지만 그 누가 죽으면 어떠냐, 하는 생각은 타인이기에 품을 수 있는 잔인함이 아닐까.
지금도 영화 "딥 임팩트"와 "아마겟돈"을 보면 지구를 구하는 영웅들의 희생에 가슴이 벅차오르는데 이 때 서민들은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이 사태를 어떻게 관망할 것인지 그 당시에 전혀 생각도 해보지 못했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면 단편 [폭주]를 읽어 보라. 곧 멸망할지도 모르는 세상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그 끔찍함에 할 말을 잊게 될 것이다.
단편 [플루토의 후예]와 [불귀]는 평소에도 접하기 쉬운 공포물을 다루고 있어 익숙한 느낌이 들었고, 단편 [행복한 우리 집에 어서 오세요]는 좀비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끔찍하면서도 가슴 먹먹함을 느낄 수 있었다. [도축장에서 일하는 남자]는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공포 문학을 100% 다 이해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내가 처한 입장에 따라 공포심을 다르게 느낄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설레임을 안고 첫 출근한 회사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겪게 될 사람이 소설속에만 존재하는 '한윤수'뿐은 아닐 것이다. 살아가는 모든 일이 끔찍하게 여겨질 때 차라리 지금 내가 있는 곳이 '공포 문학 세상'이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지는 않을까. 모든 것이 꿈이길 바라게 되는 상황이 오게 된다면 나는 단편들속의 주인공들과 다르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어 책을 덮고 잠드는 것조차 무섭게 느껴진다. 소설속의 주인공은 누구든 될 수 있는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