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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미
티에리 종케 지음, 조동섭 옮김 / 마음산책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네가 만든 거미줄 위에서 움찔움찔 거리는구나. 산채로 사로잡힌 녀석을 둘러싼 거미줄을 하나씩 벗겨내는 나를 바라보는 눈에는 독기가 가득해. 거미줄이 다 벗겨지면 과연 무엇이 나올까. 물론 넌 알고 있겠지. 어떤 녀석인지 네 맘에 꼭 드는 녀석으로 잡았을 테니까. 거미줄을 벗겨내다 죽여 버리게 되면 어쩌나. 그러면 이 이야기가 끝을 맺지 못할텐데, '미갈' 너의 이야기가 세상에 풀려나오는 걸 상상해봐 멋지지 않아? 몸서리치지 않는 이가 없을 게야. 독거미가 등장하는 잔혹한 SF 장르를 상상한 독자라면 심장마비로 죽어 버릴지도 모르지. 가슴 속에 얼음이 들어찬 듯 아주, 아주 서늘할 거야. 이것이 네가 바라는 건가? 아니야, 넌 더 엄청난 것을 바랐을 게야. 하지만 어쩌지. 세상이 때론 공평할 때도 있거든. 주거니 받거니 하며 사는게 삶이야. 그렇지?
티에리 종케의 '독거미'에 등장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리샤르, 이브, 알렉스, 그리고 또 한 명의 남자. 굳이 이름을 밝히자면 또 한 명의 남자 '뱅상', 나는 이 뱅상이라는 이를 맹세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알렉스의 독백으로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어느날 사라졌다는 것 밖에 알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누군가에게 납치당한 그가 자신의 이름을 뱅상이라고 밝혔을 때의 충격이란, 오랜시간 함께 한 벗이 납치당한 듯 했다. 알렉스와 뱅상 그리고 리샤르와 이브의 연결점은 어디일까. 이들이 운명적으로 만나지게 될 때가 있기는 할까. 계속 나아가고 싶었다. 아니,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가 영문을 모른 채 끌려 간 곳은 아무도 살지 않는 어느 이름 모를 무인도는 아니었다. 우리들처럼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안정된 삶을 누리는 것 처럼 보이는 리샤르, 그가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다.
리샤르의 처음 감정은 '복수'였을 것이다. 가장 잔인한 복수. 그러나 삶은 뜻하는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서 더 잔혹하다. 이브의 고통을 즐기는 리샤르의 모습은 이해할 수도, 이해되지도 않았다. 정신병원에 있는 비비안에게 애정을 드러내는 그의 모습조차 비비안의 고통을 즐기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런 나에게 뱅상이 리샤르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 주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리샤르의 모든 것이었다. 그리고 뱅상의 모든 것이었다.
운명이라는 것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알렉스가 등장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뱅상이 철저하게 지켜냈던 알렉스가 리샤르의 곁에 오게 된 것은 순전히 운명이라는 고약한 녀석 때문일 것이다. 한 곳에서 만나질 수 밖에 없었던 이들에겐 과거에 일어났던 일의 끔찍함보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공포심이 더 크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이며, 무엇을 덮을 수 있을까. 티에리 종케의 '독거미'가 가지는 큰 매력은 '복수'라는 이름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그냥 잊혀질 수도 있는 단 한 편의 글이 아니라,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며 나를 휘감은 거미줄처럼 숨막히는 공포와 전율을 선사한다. 진실에 가까워질 수록 벗어나려 버둥거려 보지만 진실에 가까워질 수 밖에 없는 공포, 이것이 '독거미'의 매력인 것이다. 책을 덮고도 한동안 이브의 기억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녀가 옭아맨 거미줄을 끊어낼 수가 없다. 아니, 끊어내고 싶지 않다. 이미 강한 '독'에 중독 되었으니.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