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토의 지붕
한수영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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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집을 그려보세요" 하면 명왕 3동의 집처럼 그린다. 그것도 달랑 한 채, 그림 솜씨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내가 살 집이라고 하나만 그렸나 보다. 명왕 3동을 그려놓은, 책 표지처럼 이렇게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있는 그림을 그릴 것이지 나는 왜 한 채만 그렸을까. 아마도 새하얀 스케치북에 아주, 아주 커다란 집 한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명왕 3동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어 민수와 민수의 청진기가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동네다. 하지만 담도 없고 외벽에 창문이 덩그러니 보이는 이런 집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 졸고 있는 한가로운 모습의 명왕 3동의 거리지만 이제 곧 철거될 이곳은 떠나는 사람들, 떠날 사람들이 함께 머물며 살아간다. 명왕 3동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우리 이웃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특별한 사람은 없지만 모두 열심히 살아간다. 가방 끈 긴 삼촌과 김약사 정도나 특별하다고 할까. 하지만 명왕 3동에 둥지를 튼 이상 이 사람들도 그리 특별한 존재가 되지는 못한다. 다른 이들처럼 하루 하루 살아내는 것도 힘들 뿐이다.
 
갑자기 뭔가가 나의 눈 앞을 쌩~하고 바람을 가르며 지나간다. 흠, 팽할머니다. 어쩜 저렇게 빠르실까. 지붕에 올라 앉는 민수를 고양이로 보고 막대기로 밀어내는 분이지만 이렇게 빠르게 바람을 가르며 달려간다. 독설가이긴 하지만 이 마을에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다. 술만 먹으면 이야기를 풀어내는 녹두장군, 그는 언제나 무릉도원을 꿈꾼다. 아니, 전생에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는지도 모르지만 현실에서도 겨울잠을 자며 꿈속에서나마 꽃이 많이 핀다는 그 마을을 꿈꾼다. 술을 마시곤 아무데나 앉아 이야기를 풀어내는 녹두장군의 이야기를 듣는 행운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은 아니다. 한가한 민수나 삼촌 정도 뿐이다.  
 
명왕 3동에도 꽃 피는 봄이 오는 것일까. 집이 날아가게 생겼는데 따뜻한 봄날이 올까만은 삼촌과 민수 어머니의 사랑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안정된 직업이 없는 삼촌이라 민수 가족의 힘든 일상에 짐 하나 더 올리게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되지만 사람들에게 이 사건은 명왕 3동을 떠날 때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지는 사건이 되어 준다. '플루토의 지붕'을 읽으면 민수가 맛깔스럽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쓰고, 짠 맛이 많이 나 먹으면 바로 뱉어내고 싶지만 삼촌의 민수 엄마에 대한 사랑이 달콤한 맛을 선사한다. 엄마의 샴푸 냄새에 취한 삼촌의 사랑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행성이 아니라는 '명왕성'은 여전히 자기 궤도를 돌아가고 사람들도 이 땅 위에서 여전히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명왕 3동이 사라지고 없지만 민수와 청진기가 들려준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고 우리들 마음속에서 함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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