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미스터 하필
김진경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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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의 공간, 너럭바위에 떡하니 나타난 시체, 지수는 참 난감하다. 이 상황에서 시체를 보고서도 왜 신고하지 않냐고 말해야 하나? 그저 자신의 공간을 침범 당해 기분이 나쁜 지수는 이 시체에게 이름을 붙여준다. "미스터 하필", 왜 하필이면 그 곳에? 라는 뜻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빚쟁이들이 몰려오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사는 지수는 학교에서 모래무지처럼 지낸다. T중학교에 갔을 때 자신이 몸을 숨길 모래가 없어 얼마나 낯설어 했던가. 하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과 같은 모래무지들과 어울리며 학교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간다. 물론 학교로 찾아오는 사람들만 빼면 그럭저럭 버티기 괜찮았을 것이다. 지수에게 빚쟁이들이 자주 찾아오면서 지수는 실어증에 걸려 버린다. 마음속으로야 봇물터지듯 할 말이 많지만 소통에 문제가 있는지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그 때 코끝을 스미는 악취, 미스터 하필과의 마음속 여행이 시작된다.

 

지수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른들만의 세상이다. 하필과 대화를 하며 어린시절을 추억하는 지수를 보며 세월이 흘러 지수가 잃어버리는 것이 무엇인지, 또한 내가 어른이 되어 세상에 버린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이제 나는 아이들의 말은 잃어버린 채 어른들만이 쓰는 언어만 사용한다. "꼭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살아온 시간들, 나는 그렇게 내 어린 날의 추억도 가둬버리고 있었다. 흰장미를 좋아하는 지수에게 아버지는 흰장미가 아이들의 장미라고 말한다. 흑장미는 어른들을 나타내는 빛깔이라고 했을 때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이미 세상이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것이리라. 흰장미는 너무 깨끗하고 순결해 보여 만지는 것이 불편하다. 이에 반해 흑장미는 나를 끌어당기는 어떤 마력을 느끼게 한다. 흑장미의 다른 느낌은 '죽음'일텐데 삶과 죽음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이니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미 밝음의 이면에 어둠도 함께 있음을 알아가는 것일게다.

 

세상에서 지워진 사람 미스터 하필, 노숙자인 그가 자살을 선택했을 때 자신은 물론 세상은 그를 잊고 말았다. 물론 노숙자가 되었을 때 세상은 벌써 그를 버렸는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이름이 유명하고 성공한 사람의 안내가 아닌 이렇듯 지워진 사람과의 마음속 여행은 그 무게가 더 묵직하게 다가와 무엇이든 흘려 들을 수 없게 만든다. 지워진다는게 어떤 것인지 그 아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수의 성장소설 같지만 지수 가족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역사다. 5.16을 오점일육으로 읽어 선생님에게 뺨을 맞은 지수, 데모의 주동자였던 셋째 형, 아버지와 당숙의 대까지 올라가면 일제 시대까지 거슬러가게 되니 역사가 되는 것이다. 녹록치 않은 인생의 무게를 느끼며 지수보다 내가 얻은 것이 많은 여행이었다. 시체와 소통한다는 것이 현실에서 가당치 않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오히려 이런 관계가 더 현실감있게 다가오니 조금은 아이들의 세상을 엿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쉽지 않은 세상에 이렇게 나를 이끌어주는 안내자가 있다면 덜 외롭고 힘들텐데, 그래서 지수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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