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벤자민
구경미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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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된 직업이 없는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조금은 섬뜩하게 다가온다. 이연주의 부탁으로 동창인 안수철이 사채업자 김길준을 감금했을때 영화 "올드보이"가 생각나고 '왜 연주는 자신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김길준을 감금해달라 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김길준을 벌주고자 한 의도는 자신때문에 자살한 선배 유광호를 닮은 조용희에게 협박을 했기 때문일까? 단지 그 이유뿐?" 아마도 유광호에 대한 미안함을 그렇게라도 풀어보려고 했던게 아닐까. 그러나 조용희의 부인인 김선숙에게 연주가 "너 미행당하고 있다"라는 말을 들은 뒤 생각나지 않는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방어를 한 이유라는 것을 알았을땐 이연주도 "마음이 아픈 사람이구나" 싶어 내 마음까지 아파왔다.

 

정신과 약을 먹지 않고 벤자민 화분에다 부어버리는 연주, 자신은 과거를 하나씩 찾아가지만 약을 먹은 벤자민은 죽어가기에 연주는 벤자민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나는 연주를 만나면 묻고 싶은 질문이 많다. "왜 김길준의 집을 찾아갔어요? 왜 김길준의 동생과 결혼하려고 했어요? 아무리 가족이 된다고 해도 형의 일을 집안에서 안다면 가족이라고 해서 받아주겠는가" 한마디쯤 해 주고 싶어진다. 김길준이 실종되고 그의 아내가 받은 대우를 보면 알수 있지 않은가. 김길준의 자식까지 있지만 집안에서는 붙박혀 있는 물건쯤으로 생각해 전혀 존재감이 없었으니까.

 

결혼식을 앞두고 안수철에 의해 납치된 연주, 자신의 부탁으로 감금된 김길준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그녀를 보면서 내심 화가났다. 한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권한을 누가 주었는가, 김길준의 집에 드나드는 것을 미안한 마음에 하는 행동이라고 변명한다고 해도 얼마만큼의 강심장이면 그럴 수 있을까. 결혼식을 하지 못하게 된 연주를 조금은 동정하게 되지만 이정도의 상황은 그녀에게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을 하지 않던 김길준의 동생 김세준이 연주와 결혼하기 위해 직업을 가졌다고 그녀로 인해 변화된 것이 있지 않냐고 주장을 한다고 해도 분열된 가족의 모습을 보면 큰소리 칠 입장은 아닌 것 같다.

 

연관된 사람들이 직접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가다보니 마지막에 가서는 인과관계들이 모두 드러나게 된다. 연주는 뿌옇게 안개가 끼어있던 과거의 기억을 안수철에 의해 찾게 되고 자신의 행동의 이유들을 하나씩 알아가게 된다. 안수철도 목적이 있어 연주의 부탁을 들어 주었지만 이제 연주가 설 땅은 없어진 셈이다. 가족들에게도 갈 수 없는 그녀는 이제 어디로 가서 정착을 해야할까.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면 자신의 과거를 덮고 새롭게 살 수 있을까.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생활을 보니 마음이 쓸쓸해진다. 살아가다 보면 툭툭 끊어서 말하는 연주의 대답이 그리워질 것 같다. 나도 때론 세세한 말보다 간단하게 던지듯이 대답을 하고 싶어질때가 많으니까. 사람들이 내 말 한마디에 모두 이해를 해 줬으면 좋겠지만 이상한 사람 취급하기에 모두 설명을 해 줘야 하는 번거로움을 느낄땐 가슴이 갑갑하기도 하니 점점 마음이 닫혀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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