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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 무심코 읽었다가 쓸데없이 똑똑해지는 책
오후 지음 / 웨일북 / 2019년 7월
평점 :
제목은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이지만 마냥 웃기는 책은 결코 아니다. 저자는 문과 출신으로 과학을 정식으로 공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상을 바꾼 중요한 과학 이슈에 대해 세밀한 취재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써냈다. 나도 문송으로 수학과 과학에 젬병이지만 이런 책을 써낸 저자에 대해 박수를 보낸다. 철학자들이 결코 도덕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인간의 선을 논하는것과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다.
책에서 저자는 부모님이 자신이 작가라는걸 모른다고 말한다. 저자의 소개글이 재미있어서 올려본다.
"낮에는 노동을 하고 밤에는 글을 쓴다. 글을 쓰는 것도 노동이므로 결국 하루 종일 일을 하는 셈. 주 40시간 노동이 목표지만 한동안 이뤄질 것 같지 않다. 어떤 권위에도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려 노력하지만, 사랑에는 언제나 보호장치 없이 휘청이며 힘겹게 버티고 있다.
뜨거운 욕조에서 차가운 아이스크림 먹기, 와인 코르크 따기, 키스하기 직전의 설렘,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오후의 햇살, 연인과 함께 맞는 휴일 아침을 좋아한다. 물론 대부분 시간은 골방에서 영화를 보며 지낸다.
혈액형은 소심함의 대명사 A형,
별자리는 자유로운 쌍둥이,
사주는 연쇄살인도 할 수 있다는 괴강살,
MBTI는 정의로운 사회운동가 ENFJ,
손금을 보면 단명, 관상을 보면 장수,
기원전부터 재수 없다는 왼손잡이,
전체주의에 대한 이유 있는 불신,
민주주의에 대한 이유 없는 낙관,
재미없는 것은 죄악이라는 신념,
이 모든 것이 합쳐져 평범한 작가가 되었다.
이상한 이야기만 골라서 하는 독서 클럽을 운영 중이고,
여행칼럼 연재를 시작했으나
시작과 동시에 코로나19가 터졌다.(소개글 발췌)"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원래 더 많은 소재를 다뤘지만 분량 문제로 인해 7개의 이슈로 압축했다고한다. 목차를 통해서 각 장의 주요한 내용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질소를 찾아 나선 인류의 대장정
2. 너와 / 나의 / 연결 고리: 진시황과 프랑스 혁명 사이
3. 지금은 플라스틱 시대: 플라스틱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4.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 성전환, 수술, 그리고 끝나지 않는 이야기
5. 허세가 쏘아 올린 작은 별: 까라면 까는 소련의 우주 노동자들
6. 잠자는 인문학은 과학의 꿈을 꾸는가: 빅데이터로 바라본 사회, 빅데이터가 바꿀 사회
7. 기상무한육면각체의 비밀: 날씨는 우리를 어떻게 바꾸고, 우리는 날씨를 어떻게 바꾸나
식량을 증산하기 위한 질소비료부터 기상학까지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각각의 이슈에 대해 역사와 정치, 사회, 철학을 통해 어떻게 보면 문과적인 시선으로 과학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후기에 자신을 캐나다 출신의 유명한 사기꾼 페르디난드 데마라에 비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 조선 시대 역사서를 쓰는 사람 중에 조선 시대에 살았던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데마라는 의대를 다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군의관으로 일하며 한국전쟁에서 수 많은 군인을 치료한걸로 유명한 사람이다. 단지 의학서적을 참고해 수술까지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데마라의 행위를 본다면 꼭 과학자만 과학을 논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책의 시작은 독일의 유명한 화학자 프리츠 하버로 시작되는데 그는 인공비료와 질소고정, 그리고 독가스등으로 유태인이지지만 독일의 전쟁에 크게 기여를 한 인물이다. 하버의 사례를 통해 밀도있게 당시의 상황과 맞물려 재미있고 쉽게 과학 교양서를 써냈다. 일단, 과학을 모르더라도 흥미진진하게 읽거나 들을 수 있는 책이다. 과학에 대해 재미있게 접근하고 싶은분들에게 추천드린다.
플라스틱 블라인드 사이로 햇살이 들어온다. 플라스틱 충전재로 채워진 베개를 한동안 베고 누워 있다가 플라스틱 시계를 확인하곤 깜짝 놀라 일어난다. 플라스틱 냉장고 문을 열어 플라스틱 물병을 꺼내 물을 마시고, 플라스틱 칫솔을 들고 플라스틱 변기에 앉아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한다. 칫솔은 플라스틱 살균기로, 사용한 휴지는 플라스틱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플라스틱 속옷 위에 플라스틱 옷을 입는다. 플라스틱 비닐을 플라스틱 재질의 가방에 넣고, 플라스틱 케이스로 된 스마트폰과 플라스틱 이어폰, 플라스틱 카드를 챙긴다. 마지막으로 플라스틱 시계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 「지금은 플라스틱 시대」 중
데이터는 누구도 예측 못한 놀라운 결과 하나를 내놓았다. 사람들은 허리케인이 올 때 ‘딸기맛 팝타르트’를 평소보다 7배 더 많이 산다는 것이다. 왜 하필 딸기맛 팝타르트인가? 모른다. 그걸 어찌 알겠는가. 하지만 데이터는 딸기맛 팝타르트라고 답했고, 월마트의 배송 트럭은 허리케인이 지나갈 것이라 예측되는 지점에 딸기맛 팝타르트를 배송했다. 각 지점은 재빨리 선반 위에 딸기맛 팝타르트를 깔았고, 딸기맛 팝타르트는 불티나게 팔렸다.
언젠가 딸기맛 팝타르트와 허리케인의 연관성이 밝혀질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분명 설명 가능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월마트 경영진이 인과 관계를 밝히는 과정을 거쳐서 합리적으로 정책을 세웠다면, 이미 허리케인이 지나간 다음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데이터가 제시한 해답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아들였다. 빅데이터가 종교로 탄생한 순간이다.
- 「잠자는 인문학은 과학의 꿈을 꾸는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