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실은 어때 .
편합니다, 내가 말했다. 우리 작업이야 예술이죠.
그가 이발사의 어깨 너머로 미소를 지었다. 내 말을 확인할 도리는 없었다. 그의 목소라에서 가느다란 증오가 배어 나왔다. 분홍빛 콧방울이 번들거리고 관자놀이가 불끈거렸다.
어제 네 얼굴이 얼마나 더럽던디. 그가 말했다. 모자 구멍마다 먼지가 내장처럼 주렁주렁 걸렸던걸.
상관없어요, 내가 말했다. 석탄 먼지는 털처럼 보송하고 손가락만 해요. 그래도 작업이 끝나면 지하실을 말끔히 치워놓죠. 하루하루 작업이 예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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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그래.
- 아이가 첫 단어를 생각하는 사이 그녀는 장갑을 벗고 자신의 눈시울 아래를 만져보았다. 좀 전에 아이를 안으며 눈물이 고였던 자리가 움푹 패어 있었다. 왼쪽 가슴 아래 고였던 더운 물은 늑골 아래까지 흥건하게 흘렀다. 자신의 몸이 반으로 꺾인다면 그 자리일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왼쪽 늑골 바로 아래에서, 절반으로 꺾이며 부서질 것이다. 하지만 운이 좋을 수도 있다고 그녀는 고쳐 생각했다. 그 자리가 바깥에서부터 다시 얼어붙어준다면, 어쩌면 이 밤을 무사히 넘길 수있을지도 모른다.
시작한다. 행복.
복덩이.
이야기꾼,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이런, 너무 빨리 끝났네.
엄마가 졌으니까 이번엔 먼저 해.
심장.
장사꾼, 너무 시시해.
알았어. 다시 하자. 네가 먼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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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일
북노마드 편집부 엮음 / 북노마드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와우북페스티벌에 갔다가, 연희책방의 매대에서 골랐다. 책방지기와 몇 마디를 주고 받다가, 이 책의 표지에 '책방 연희' '아마도책방' '밤수지맨드라미북스토어' 등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 책방 이름이 새겨져 있어 덥석 집어 들었다. 

서점을 해도 될까, 서점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해도 될까'를 고민한다. 왜냐면 서점이 그리 돈이 되는 일이라고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서점을 해서는 안 될 법이 없다. 아직도 새로운 브랜드의 치킨집이 오픈을 하고, 동네에는 삼겹살집 옆에 곱창집, 숯불돼지갈비집이 늘어서 있다. 그러니까 서점을 해도 된다. 

다른 잡지나 인터넷 기사에서 책방지기들에 대한 인터뷰들을 자주 찾아 보았다. 운영의 지혜와 현실적 고민들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미래에 대한 고민도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말해주는 이들이 있었다. 이 책에도 오래 고민한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 사람들이 있다. 아홉 명의 책방지기들은 같은 질문에 다르게 대답하고, 다른 대답 속에서 우리는 같은 생각을 읽는다. 특별히, 마지막에 윤동희 북노마드 대표가 쓴 글을 읽는 것이 좋았다. 이 디지털 시대에 책방의 의미와 사람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전파되는지 생각하게 한다. 

이 책 속의 글들을 읽고 나면, 이 작은 공간들이 더 오래 유지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악수를 청하고 싶고, 책방에 걸음하고 싶다. 책방에 가는 것은 여전히 즐거운 일이다. 그곳은 책방지기들의 생각과 마음과 손길과 눈빛이 깃들어 있다. 어떤 책을 한 권 사서 나와도 좋다. 그 책을 열어 볼 때마다, 나는 그곳에 누구와 갔었어. 혼자 걷다가 들어가서 우연히 이 책을 만났어. 그 동네 산책하기 좋은 이유는 이 책방이 있어서일지도 몰라. 라고, 한 줄의 기억을 덧붙일 수 있게 될 테니까. 아이폰 속의 사진을 한 장만 봐도, 그날의 햇빛, 바람, 기분이 다 생각이 나는데, 책도 그렇게 시간과 이야기를 품고 내 책장 속에 꽂혀 있을 것이다.  


경쾌하게 하면 된다. 자본주의에 질려서, 회사에 몸 바치기 싶어서, 남들이 정해놓은 가치관에 휘둘리고 싶지 않아서,
바反사회적인 게 아니라 단지 비非사회적이어서, 그래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작은 가게를 열었을 뿐인데 너무 많은 일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일이 곧 삶이 되는 시대다. 직업이 아닌 생업을 만들어 지키는 자가 행복한 시대다.『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의 저자 이토 히로시는생업은 삶과 일이 합쳐진 것으로, 작은 일들을 조합하여생활을 구성해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일이 곧 삶이 되는시대에 서점의 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성세대의 생산과소비의 관습을 따르지 않는 것, 삶을 살아가며 나만의구체적인 ‘실마리를 찾아내는 것. 단순하게, 담백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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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혼자도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족의 탄생
김하나.황선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유투브를 통해 이 두 사람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 미디어가 나로 하여금 책을 사게 만들었다. 


이 두 사람이 같이 산다는 것은, 
'여자 둘'이 같이 살기 때문에 이슈가 되었던 것일까? 
'여자 둘'이 제법 '근사하게' 트렌드에 맞는 인테리어를 하고, 고양이를 키우며 살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 '여자 둘'이 직업적으로 글을 잘 쓰고 말을 잘 해서일까? 
나는 이슈가 되었던 이유를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책 속의 사진들은 가끔 내가 훔쳐 보는 인스타그램 속 눈길을 끄는 사진들과 닮아 있다. 정갈하고 소담한 집. 
두 사람이 번갈아 한 편씩 쓴 이야기도 읽기에 어렵지 않았다. 우리 주변에서 보는 여러 인물들 중 두 사람이었다. 
정리를 잘 하는 사람, 잘 안 하는 사람, 하나를 사서 오래 쓰는 사람, 여러 개를 동시에 쓰는 사람, 어떤 것이든 기준을 세우면 그 둘 중의 하나가 되는 법이다. 밥을 빨리 먹나 늦게 먹나, 약속을 잘 지키나 못 지키나, 그것은 상대적인 것이니까. 

'캠핑클럽'에서 이효리가 말했다. 
"우리가 같이 계속 붙어 있으니까, 누구는 늦게 일어나는 사람, 누구는 빨리 일어나는 사람, 그렇잖아? 각자 살 때는 아무 문제 없는데! 그러니까 우리는 따로 살아야 해!"

따로 사는 것이 편한데, 같이 사는 두 사람의 이야기다.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것이 얼마나 귀찮고 힘든 일인지, 견디기 힘든 순간을 얼마나 자주 마주하게 되는지,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결국,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이 잘못해서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같이 살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은 다르게 느껴졌다. 어른이 되면서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수용하면서 자기의 독립된 생활을 알차게 꾸려 나가는 것, 동거인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 보고, 무례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친절과 배려를 생활 속에서 이루어 내는 것, 진정한 친구를 사귈 줄 알고, 그 친구와 많은 것을 공유하면서도 자기를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것, 질투하거나 편협한 마음에 휘둘리지 않고, 상생하는 법을 알아가는 것. 
이 두 사람이 쓴 이야기들 속에 엿보았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를 배웠다. 

내가 해내지 못했고 실패했던 일들을 이렇게 잘 하는 사람들도 있구나... 

사람은 다르다. 다름을 온전히 인정해 주자. 그 사람이 나와 다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누군가와 같이 살게 되면서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타인이 강력한 주의 환기 요인이라는 사실이다. 지나치게 골똘해지거나, 불안에 잠식당할 확률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과일 깎아 먹으며 나누는 몇 마디 얘기로도 어떤 울적함이나 불안은 나도 모르게 털어버릴 수 있고, 함께 살면 그 현상이 수시로 일어나 부정적 감정에 사로잡힐 겨를이 없어지기도 한다. 집 안 어디엔가 누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얻게 되는 마음의 평화 같은 것도 있다. 아니, 꼭 집 안에 있을 필요도 없다. 누군가 집으로 항상 돌아온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다. 처음에도 밝혔지만 나는 오랫동안 혼자 사는것을 정말 좋아했고 종일 TV 한번 켜지 않고도 혼자 있는 시간을잘 보내는 편이었는데도 말이다. 마치 혼자 여행 다니다가 누군가와 함께하게 되면 마음이 놓이면서 그제야 이전에 얼마나 긴장한채, 신경을 잔뜩 곤두세우고 다녔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과도 비슷했다.
à la page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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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인의 에세이 「힘 빼기의 기술」에 나는 이렇게 추천사를 썼다. ˝설거지나 고양이 구경을 주된 일과오 파자마 차림인 채 하루를 보내나 싶다가도 김하나의 생각은 아주 멀리까지 다녀온다.˝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보기에 남들은 모를 나태함이나 느슨함을 발견하게 된다면, 거꾸로 그렇게 근거리에서 관찰하기 때문에 매일의 묵묵한 성실함도 먹격하게 된다.
à la page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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