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박할 때까지는 바다에서 내리지 않는다. (중략) 어떤 사람에게는 바다가 큰 배에 다름 아니라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 세상이 큰 버스나 기차일 수 있다. 배에 탄 사람이 그런 것처럼 버스나 기차에 타고 있는 사람도 그곳에 사는데 필요한 조건들이 두루 갖춰져 있고, 그곳에 아주 오래 머문다고 하더라도 다만 이동하고 있을뿐 진정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차할 때까지는 이 세상에서 내리지 않는다. 내릴 수 없기때문이다. 그런데 이 바다는, 이 세상은 어디로가는 중일까?
나는 아무 데도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데도 갈 수 없었다. 아무 데나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아무 데나 갈 수있는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라 무능한 사람이다. 허용된 것이 아니라 내버려두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는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의 선택의 가능성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것과 저것이없거나 이것과 저것의 차이가 없을 때 선택의 가능성은 제거된다. 즉 자유가 없어진다. 벽의 존재가 벽을 넘을 자유를 보장한다. 벽이 없는 곳에서는 벽을 넘을 수 없다. 벽이 없으면 자유도 없고 능력도 없다. 벽이 수평의 땅과 차이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벽을 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버려둠의 상태를 자유와 혼동하지 말 것. 18-19
제52장한동안 동공을 비비면서 나는 내가 깨어 있는지 아닌지를 알고자 애썼다.(Defrictis adeo diu pupulis an vigilarem scire quaerebam). 그리고 내 눈에 보이는 것이 한낱 꿈이 아님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에서, 나는 눈꺼풀을 비비고, 눈을 떠보고, 또다시 눈꺼풀을 문지르며 한참 동안을 그렇게 있었다.4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