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뱅이언덕]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빌뱅이 언덕 - 권정생 산문집
권정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받은지 2주일도 더 되었는데, 정말 오랫동안 읽었습니다. 


처음 책의 첫장을 넘겼을 때, 몇 줄의 글만 읽고서도, 권정생 선생님, 그분의 이름만 들어봤지, 여태껏 책 한 권 읽지도 못 한 것이 못내 부끄러워졌습니다. 어릴 적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몽실언니'의 모습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게 전부인데, 오늘에서야 선생님의 책을 읽고, 뜨겁게 눈물을 흘려봅니다. 


지금 저희가 살고 있는 시대에는 '가난'이란 말이, 겨우 펼쳐볼까말까 한, 오래된 국어 사전 속의 한 단어 같습니다. 아니, 실은 그 '가난'이란 말을 날마다 살아 있는 것으로 피부에 와 닿게 체험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들이 드러나는 일이 거의 없으므로, 마치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런, 요상스런 세상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권정생 선생님이 태어나셨던 1937년 일제강점기, 그리고 십여 년 후에 닥친 한국전쟁, 그리고 이어진 독재와 역사의 그을음 속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몫을 충실히 살아냈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삶에 대해 치열했고, 그만큼 순수했고, 속으로 강인했던 그 시절의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난 것 같아서, 눈물을 뚝뚝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연민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존경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살아보지 않았기에, 이해라기도 어줍잖습니다. 그저, 밍숭맹숭하게 흘러가면서도 타락할 대로 타락한 이 시대에 대한 반성이 조금 엮어 있기도 합니다. 


'열여섯 살의 겨울', '자연과 더불어 크는 아이들'은 몇몇 중학생 아이들과 함께 읽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렵다고도 했는데, 아마 한 번도 깊이 있게 생각해본 적 없는 주제들이어서 그랬을 겁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진지하게 한 글자 한 글자, 숨죽여 읽어내려 갔습니다. 진심이 담겨 있는 글은 마음 그대로가 전해져서, 읽는 이의 마음을 뜨겁게 덥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진리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그 자유는 사람을 믿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보잘것없는 작은 소자도 어디까지나 인간이다." (189쪽)


"인간이 인간다운 것은 살아 있는 것에 대한 기쁨과 죽음에 대한 슬픔을 느끼는 순수한 감정 때문이다.

(280쪽)  .. 복순아, 가난할수록 더 착하게 살아야 한다. 아무리 가난해도 착하게 살 수 있는 권리는 아무도 못 빼앗아 간단다. 우리 못 먹고 못 입어도 꽃 한 송이 참새 한 마리도 끝까지 사랑하자꾸나.(282쪽)"


선생님, 너무 단순한 이치의 한 말씀인데, 가슴이 무너질듯 아리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왜일까요. 그렇게 가슴에 새기고 살아야할, 죽을 때 묘비명에 정당히 새기고 싶은 그 하나의 가르침이 무릎을 꿇게 만듭니다. 더 낮아져야겠다는 다짐만 남습니다. 안 체하지 말고, 난 체 하지 말고, '~척 하는 것'들은 모조리 집어 치우고, 순전히 정직하고 착한 마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이 땅에 선생님의 귀한 이야기를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랄랄라하우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랄랄라 하우스 - 묘하고 유쾌한 생각의 집, 개정판
김영하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김영하는 똑똑한 작가다. 어느 작가라고, 똑똑하지 않은 이가 있겠냐마는,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꼭 이런 수식어를 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소설도 여러 권 발표한 바 있지만, 김영하를 알게 된 것은 '팟캐스트'를 통해서였다. 김영하의 책읽는 시간.이라는 방송을 들으면서 이미 그의 목소리와 가까워졌다. <랄랄라 하우스>를 읽는 내내 그의 목소리가 겹쳐 왔다. 나즈막하지만 분명하게 일정 온도를 지키며 진행되는 목소리가 말이다. 


<랄랄라 하우스>는 2005년에 발간되었던 책을 다시 펴낸 것이라고 한다. 다시 발행될 만큼, 이 책이 인기 있다는 것이고, 7년 가까이 지나도 책속에 비추어진 현실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는 것이고, 일부는 달라졌다면, 그 달라진 간격 또한 의미있다는 뜻일 게다. '묘하고 유쾌한 생각의 집'이라는 부제처럼, 작가가 서문에 실은 '농담을 좋아하는 유쾌하고 실없는 나'라는 말처럼, 이 책은 읽는 내내 술술 넘어가는 책장 만큼 가벼운 킥킥거림을 흩어 놓았다. 


쉽게 말하자면, 엉뚱한 것인데, 작가로서 김영하는 생각비틀기의 귀재다. 주변의 사소한 경험, 미미해보이는 관찰, 그 어느 하나도 쉽게 놓치지 않고 포착함으로써 이야기를 생산해 내는 능력자이다. 책을 읽다가 아이디어가 반짝이기도 하고, '골탕 먹이다'나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는 관용적 표현 한 마디, 그래서 이 책은 새로운 관점을 발견할 수 있는 재미가 있다. 


예를 들면, 철학적 개념을 몸으로 체험하기 위하여, 자기 이름 부르기를 해보라고 권한다. 20분 정도 자기 방안에서, 큰 소리로 자기 이름을 불러보라고. 그러면 기분이 이상해지며, 너무 많이 하다간 병원으로 보내질 수도 있다는 식이다. 짧은 글이지만, 마지막에 사족처럼 붙인 몇 마디가 킥킥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또, 어렸을 적에는 자신이 펜글씨를 잘 못 써서 선생님에게 특별훈련을 받으며 '마음을 편히 먹고 천천히 쓰라'는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 개인용 컴퓨터로 글을 쓰며, 더 이상 펜글씨 교본과 타자는 필요가 없어졌으니, 그 많던 타자 펜글씨 강사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하며 살고 있겠는지 궁금해하는 식이다. 엉뚱하고 묘하게 튀어 나가는 발상. 


물론, 그의 글 속에는 탁월한 문제제기와 충분한 통찰력이 들어 있다. 그래서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개를 갸우뚱 하다가 이내 끄덕끄덕이게 만드는 것이다. 태극기 팔이에게서 나타나는, 단일민족의 사상, 한국 문학과 소설의 위기, 들어서자마자 주문부터 컵 치우기까지 모두 고객이 해야 하는 스타벅스적 삶, 질문의 힘 등은 쉽게 지나치기 쉬운 삶의 한 단면을 콕 집어서 쫙 펼쳐놓고, 쭉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마른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밤새 폭우가 쏟아졌다. 여름 동안, 몇 번이나 더 그럴려는지.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떠 보니, 포털싸이트에는 박원순 시장의 수해를 줄이려 지난밤을 지새운 행정이 이슈가 되어 있었다.그래서 그의 트윗을 쭉 다 읽어 보았다. 그의 트윗은 짧지만, 내게는 자극적 영양제들이었다. 자신이 가진 권력을 시민들을 위해 옳은 일에 쓰겠다는 멘션도 있었다.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나는 요즘 곳곳에서 자극적 영양제들을 찾는다. 이 여름, 마음의 습기를 몰아낼 수 없다면, 적당한 영양제를 찾아가며 시간을 충실히 쌓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헤르만 헤세 세트

헤세의 사랑/ 헤세의 인생/ 헤세의 예술

 

'나는 이렇게 마음먹었다. 내 삶은 초월하는 것, 한 계단 한 계단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고.'『유리알 유희』

그는 나에게 언제나 삶이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데미안이 그랬고,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그랬다. 한없이 세상에 표류하다가 중심을 잃고 휘청거릴 때, 그의 이야기는 평온하지만 뜨거운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사랑, 인생, 예술, 이 세 가지야 말로 인생의 전부가 아닌가?

 

 

 

 

 외로움의 온도

 조진국

 

이웃블로거의 포스팅에 '친구의 새 책'이라는 글과 함께 이 책이 실려 있었다. 나는 요즘 무척이나 외롭다. 신경숙의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라는 제목이 항상 마음속에 간판처럼 걸려 있다.

그 간판 옆에 나란히 걸어두고 싶다. 때때로, 아주 자주, 가끔, 외로울 테니까.

 

 

 

 

 

 

 

 

 

 독과 도

 윤미화

 

 처음 듣는 이름인데, 이 저자는 꽤나 유명하구나. '울자, 때로는 너와 우리를 위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책이다. 같이 울어주는 것이야 말로 상대를 최대한 이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FTA, 4대강, 교육, 왕따, 공저무역, 환경, 동물 등등 살면서 만나는 많은 이슈들을 그냥 넘겨 짚지 않고, 책을 읽고 기록한 글 모음집이다. 이제는 거부할 수도 없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함께 고민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이 책 속에 담긴 쓴소리를 기쁘게 읽고 싶다.

 

 

 

 

 

 

지지않는다는 말

김연수 산문집

 

빨간 코끼리, 운동화를 신은 코끼리는 밍기적밍기적 걷는 것이 아니라 어디론가를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 것만 같다. 나도 따라 가고 싶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무라카미 하루키 산문집

 

하루키는..끊임없이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참 부지런한 작가이고, 그 글들이 하나 같이 독자들에게 사랑받는다고 생각하면, 참 부러운 작가이다.

나도 꾸준히 그의 이야기를 사랑하는 독자 중의 한 사람이다. 신작이 나왔다고 하니, 또 기대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제동이 어깨동무합니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김제동이 어깨동무 합니다 -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며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오래 전부터 김제동이 보여준 행적들로 인해, 그에 대한 신뢰감은 이미 가지고 있는 터였다. '힐링캠프'에서 김제동은 욕망이 억압되어 있고, 내면적 자유가 부족한 캐릭터로 통한다. 전에 심리학자 김정운 교수가 나와 김제동의 심리상태를 그렇게 진단한 이후, 다음 날엔 이슈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그가 말 한 마디 하는 데에도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스트레를 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말에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런 김제동의 주위엔 실로 많은 사람들이 있다. '사람이 재산이다.'는 말은 나로서도 손에 쥐어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때, 주위를 돌아보고 깨달은 사실이었다. 물질이나 명예보다도 나의 존재가치를 지켜주는 것은, 오랫동안 곁에 남아준 사람들이었다. 이 인터뷰집에는 백작청, 조용필, 문재인, 법륜 스님, 윤도현, 조수미, 하정우 등 17명의 인사가 등장한다. 


각 사람의 인터뷰는 분량이 길지 않았다. 김제동이 만난 사람들 또한 그만큼이나 언행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 말 속에 내포되어 있는 진정성까지 놓치지 않기 위해 꼼꼼이 읽었다. 현장에 밀착되어 그들의 대화에 동참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글도 더러 있었다. 


각자 다른 분야에서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과의 대화 속에는 시대에 대한 고민이 있고, 삶의 가치를 발견하려는 열정이 있다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죠. 당당히 세상과 맞서라는 겁니다.'"(백낙청 편, 33쪽)


"어떤 사람의 말과 생각은 그 사람이 아니에요. 그 사람의 행동과 선택이 그 사람이더라고요."(안철수/ 박경철 편 53쪽)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어려운 사라들을 배려하고, 연대하고, 잘못된 제도를 개선하는 일들에 참여한다면 '사람 사는 세상'이 그리 먼 것만은 아닐 거라고 믿어요."(문재인 편 73쪽)


마지막 부분에는 김제동 심층 인터뷰가 실려 있다.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외로움을 많이 타는 한 사람으로서 산과 자연에서 위로를 얻는 방법을 찾아가는 김제동. 진솔한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면, 그의 이름 뒤에 따라다니는 수많은 가면들도 결국,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붙여 놓은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함께 행복하지 않으면 나도 행복할 수 없다, 사람은 웃을 때 가장 행복하다. 혁명과 웃음은 동의어다. 웃음에는 좌도 없고 우도 없다......"


그는 분명 소심하지만, 소신을 지켜 가며, 소통의 방식을 고민하고 문을 여는 사람임에는 틀림 없다. 우리가 고민하는 만큼 세상이 나아진다는 것도, 틀림없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둥글게 서로 이어 잡은 손들- 그 소통의 고리에 끼어들어 조금이나마 더 큰 원을 만들어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 박범신 논산일기
박범신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세이라 하면, 작가의 특수한 체험이 개성적인 문체와 어울려 빚어내는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박범신 작가가 논산에서 2011년 겨울을 보내며 쓴 이 글들은, 지극히 개인적으로 사사로이 쓴 '일기'다. 페이스북에 널리 공개된 일기. 청년작가답게 새로운 매체 안에서 연륜 있는 필력을 보여준다.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에서는 하나하나의 내용을 제대로 집중해서 보는 것이나 일 주일, 한 달 전의 생각의 흐름을 이어보는 것이 어려웠다면,  종이에 인쇄되어 한 권으로 묶여 나와준 책이 고맙다. 


작가 스스로 '취북일기'라고 하며, 반쯤은 취해서 쓴 글들이라 고백한 바 있다. 하지만 논산 조정리 집에서 지내며 평범하게 쓴 하루의 기록이라기엔 모자라다. 그 취했다는 것이 고작 술 몇 잔에 취했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박범신 작가가 논산에 대한, 문학에 대한, 그리고 삶과 세상에 대한 사랑에 취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사랑은 끝나지 않은 셈이다. 아니, 끝날 수 없는 것이다. 


작가는 스스로 '왜 논산으로 가는 것일까' 의문을 품고 떠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라고 했다. 고향이라는 이유보다는 그리워하기 위해 떠났다는 것이 맞는지 모른다. 글의 내용에 따르면, 그는 '결혼 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부터, 짐을 싸고 걸핏하면 '떠나겠다'고 대책 없는 유랑의 슬픈 노래를 불렀다.'(28쪽)고 한다. 중국, 아프리카, 히말라야 등, 오지로 떠나는 여행은 수도 없이 많았다. 


세상을 살아가는 작가이자 인간으로서의 고뇌가 드러나는 순간들마다 그는 짐을 싼다. 버리기 위해 자유를 찾아 짐을 싸고 떠났다가, 이내 다시 채워지면 또 골방에 틀어박혀 자신을 비워내는 일의 반복. 떠나거나 틀어박히거나 결국은 자기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인데, 그 어느 순간에도 그는 마음 편히 놓인 적이 없는 것이다. 비워지고 채워지고 하면서 그 간극을 견뎌내는 것이 작가의 삶이라 했던가.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 비로소 머물 수 있어 글을 쓴다. 삶의 족적을 남기고 싶은 것도 욕망이고, 그 흔적을 물새처럼 아무 것도 없이 다 지우고 싶은 것도 욕망이다."(91쪽) 


"그런데 여기, 딜레마가 있다. 창조적인 작업은 내 안의 나를 더 극적으로 분리해서 저희끼리 싸움을 시키는 게 좋은데, 내 안에서 그런 내적 분열이 상시로 일어나면 개인적 일상은 매우 위태롭고 불안한 상태에 놓일 수 있다는 것. 내적 분열은 방부제와 같아 우리 삶을 매순간 생생하게 만들지만, 대신 일상을 가지런히 유지하려면 자기 억제의 고단함을 견디어야 한다는 것이다."(157쪽)


박범신 작가는 39년여의 세월동안 50권 이상을 썼다. 그러니 그 손가락이 글쓰기의 습관과 지향을 가진 것처럼, 그의 삶에도 그러한 반복되는 무늬가 생겼을 것이다. 책에 실린 것은 하루하루 단편적으로 태어난 글이지만, 근 3개월 동안의 글 속에는 반백년 가까운 시간에 깃들었을 외로움과 그리움이 보였다. 유랑에 대한 갈망을 져버리지 못하는 것도, 사무침이 있는 자리가 필요해서가 아니었을까. 작가는 외로움, 그리움, 사무침을 원동력으로 긴 세월을 지내며 삶의 열정을 녹인 글을 써 왔으리라. 


작가는 소설 쓰기에 대하여 '오욕칠정의 진흙밭을 기록하는 사람이다.' '소설쓰기는 정글 속을 지나는 것과 같다.'고 한 말했다.  소설을 사랑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통찰력이다. 


"어떻게 해도, 나 자신을 변화시켜 보다 높은 지점으로 삶을 계속해서 들어 올릴 수 없다면, 왜 살아야 하는가, 라는 고통스러운 문제와 다시 직면한다."(219쪽) 이건 삶에 대한 통찰력이다. 


물고기, 아내, 아버지, 가끔 집에 찾아 오는 손님들, 호수를 거닐다가 혹은 비가 내리는 날의 상념들, 입체적으로 남은- 젊은 시기의 추억들, 많은 이야기들이 책 속의 호수 사진처럼 잔잔히 흐르고 있다. 쓸쓸해지고, 우울해지는 그를 달래기 위해 많은 이야기들이 스스로 조정리 집에 깃든 것이 틀림 없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홀로 가득 차고, 수시로 따뜻이 비어 있는 그곳'에서 써내려간 이 글들과, 같이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게 된다. 


'사랑이 없으면 / 우리들은 무엇으로 자기를 극복할 수 있겠는가.' 작가가 아침에 눈을 떠서 괴테의 이 시구를 떠올리는 것은, 그의 삶이 온통 일일이 다 말할 수 없는 사랑들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 사랑이야기 덕분에, 살아 있는 동안에는 쉬지 않고 사랑해야 함을 배웠다. 마음이 식어갈 때마다 다시 열어볼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