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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찬 ㅣ 예찬 시리즈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0년 10월
평점 :
그 영화 어땠어? 그 책 괜찮아? 라는 물음에, 기껏 잘 대답해 봐야, '응, 좋아.' 수준일 때가 많다.
나쁜 것, 좋지 않은 것, 덜 좋은 것은 왜 그런지 꼬치꼬치 이유를 말하기 좋은데,
좋은 걸 좋다고 말하는 건 왜 그런지 꼬박꼬박 이유를 대기가 쉽지 않다.
관심이 덜 하고, 집중이 덜 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최고의 작가 미셸 투르니에는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그는 끝없이 타오르는 관심과 집중을 보여줌으로써,
오랫동안 우려낸 차의 진한 맛을 떠올리게 한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도 그렇고, <외면일기>도 그렇고
사진과 함께 실은 글 <뒷모습>도 그렇다.
그는 뭐든 아무렇지도 않게 툭, 외투를 벗어 옷걸이가 아닌 의자 등받침에 던져놓듯 말하는데,
읽다 보면 탁월한 통찰력과 섬세한 표현력으로 읽는 이를 이끄는 것. 그것이 매력적이다.
이 책에는 '너무 많은' 내용이 실려 있다. 그래서 그의 생각과 감탄의 속도를 따라가기 쉽지 않았다.
글을 '소화'해내는 데는,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그 중의 몇몇은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다 알 필요는 없지만, 알면 알수록 신비로운 세계의 모든 이야기가 들어 있다.
자연에 대한 이야기, 몸과 재산, 계절과 성자들, 이미지, 인물들..
이를테면, 그는 세 가지 기술혁명으로 인해 끝장날 뻔했던 라디오가 다시 성행했던 사실을 언급한다.
휴대용 녹음기와 라디오 수신기, 휴대용 트랜지스터 수신기의 등장 말이다. 이것이 얼마나 구체적인지, 마지막에 언급한 '휴대용 트랜지스터 수신기'는 램프가 엄청난 양의 전기를 소모하는 까닭에 두 시간마다 전지를 바꾸어야 했다는 기술적 지식까지 총동원된다.
폴 발레리에 대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요한 세바스찬 바흐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그리고 태양광선 아래서 피부를 태우는 일에서 종교적 고행과 시련을 연상하고, 윤리의 문제까지 연관성을 찾아가고, 해변이란 전형적인 일광욕의 장소라는 생각까지 도달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미셸 투르니에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곧잘 상상하게 되는데,
이런 식이다.
'저 일광욕하는 여자들은 뜨겁지 않을까요?'라고 한 마디만 시작해도,
그 뒤엔 미셸 투르니에가 이야기를 받아서, 몇 날 몇 일 동안 그에 대한 이야기를 줄줄줄 풀어놓는 장면 말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그의 생각은 날개를 달 테고, 하늘을 나는 자유로운 상상에 동행하지 못한다면, 나무 위에 걸터 앉아, 그가 하늘 위에 그려놓는 궤적을 눈으로 따라 가며 감상이라도 해야하는 것 말이다. 그리고 나면, 분명 그의 뇌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대화가 끝나면,
세상의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더 자세하게.
좀더 집중하고, 좀더 관심을 기울이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 다음엔?
좋다고 말하면 된다. 이러이러 해서 좋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