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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팔천 - 나도 사람이 되고 싶다
이상각 지음 / 서해문집 / 2011년 3월
평점 :
성리학을 바탕으로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내세운 조선왕조는 인과 덕에 의한 윤리도덕을 실천하는 왕도정치를 표방했지만 500년 동안의 그 역사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의미에 맞게 조선의 사회가 정의롭게 구현되었다고 말하기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상당한 의구심이 든다. 왜냐하면 일례로 사농공상의 관념에 따른 변하지 않고 지속되어 온 차별적인 시각들이 그렇고, 양반과 상놈이 엄연히 구별되는 그릇된 신분제도의 장치를 두고 무엇이 문제냐며 마치 당연한 것처럼 말하는 당시 기득권층의 논리가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것이 자유와 평등을 기치로 삼아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여전히 그 병폐들의 속성이 잔재하여 겉모양만 바뀌어있을 뿐 완전히 청산되지 못하여 우리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 동안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우리는 의무적으로 역사를 배워왔지만 일부 내용은 상당부분 미화되어 있어 은연 중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고, 또한 정작 우리가 알아야 할 많은 내용들은 상세히 다루어져 있지 않아 무지의 상태로 남게 하는 듯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조선의 역사에 수없는 핍박을 받으며 비굴한 삶을 살아야 했던 천민들의 파란만장한 운명을 역사의 사료를 통해 그 근거를 우리에게 제공함으로서 우리의 사회에 모순된 부분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과연 우리가 주장하고 강조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념에 걸 맞는 건전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지에 대한 깊은 반성의 기회를 주는 것 같아 나름대로 음미해 볼만한 좋은 책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다.
역사적으로 생각할 때 우리가 보통 악습 중에 악습으로 생각하는 것 중 하나로 문득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미국의 흑인을 대상으로 노예제도를 더러 생각하게 되거나, 아직도 불필요한 인습이 전통으로 남아 아직까지도 인도 사회에 문제로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카스트 제도를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우리나라 노예역사의 그 뿌리를 올라가면 고조선의 팔조법금에서부터 유래한다. 이것이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로 내려오면서 그 수는 무려 150만여 명으로 확대되기에 이르는데, 이는 전체 인구의 3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 우리의 사회가 얼마나 권위적이고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지니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닐 수 없다 하겠다. 애초 지배계층의 정치사회적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이 제도는 중간에 약간의 변화과정을 겪다가 조선시대 통치의 기준이 된 경국대전이 완성되면서 더욱 확고히 자리 잡게 되는데, 이러한 결과로 이전보다 신분제도가 훨씬 강화되었으며 이에 따라 많은 천민이 양산되기도 했다. 당시 천민들은 대개 8개의 계층, 즉 사노비, 승려, 백정, 무당, 광대, 상여꾼, 기생, 공장 등으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이 책은 그 팔천의 내용을 역사 자료를 토대로 조선의 위정자들에 의해 때로는 매매나 증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저당이나 상속될 정도로 그들의 삶이 얼마나 비천하고 가혹하게 다루어져 있는지, 그리고 유교의 가장 기본적인 핵심인 도덕을 말하던 그 당시 양반 계급사회가 어느 정도로 심각하게 부패되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간접적으로나마 조선 사회제도의 일부분을 이해하고 한층 가까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고 있지 않나 싶다.
저자가 이 책의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노예란 태어나면서부터 스스로 지니게 되는 인권을 자유롭게 누리지 못하고 타인에 의해 강제적으로 박탈된 사람들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것은, 우리 중 누가 무슨 근거로 그러한 강압적인 권리를 부여 할 것이며 그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하는 논리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배계층의 편리한 삶을 위하여 때와 상황에 맞추어 그들 임의대로 가증스런 법을 만들어 사람을 짐승처럼 부리며 개인의 노리개 정도로 취급해버린 실제 행위와 비교하여, 당시 양반 계급들이 겉으로 내세운 유교의 근본적 이념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아이러니 하게 생각된다. 한번 천민이 되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대손손 그 굴레를 벗을 수 없는 그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다룬 이 책을 보면서 오늘 우리 사회의 한 모퉁이에 이런 잔재들이 여전히 존재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한 저자의 말대로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를 철저히 반성하지 않고 지난 한때의 과오로만 여기고 단순히 넘어간다면, 우리가 아무리 훌륭한 문화의 족적을 남긴다 해도 그 빛을 쉽게 잃고 말지 않겠는가 싶다. 고려시대 천민인 만적이 말한 것처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일부분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 사실들을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듯하다. 어떤 목표를 두고 성취해야 할 것이 있다면 누구나 공평한 원칙에 따라 경쟁의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 것이며 조금의 차별도 결코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책은 조선의 비천한 삶을 살아간 천민들의 삶을 다룬 이야기지만, 여기에 나와 있는 내용을 통해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은 자신의 추한 면을 보지 못하고 남의 약점을 잡아 멸시와 차별을 말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우리의 그릇된 사고방식을 바로 잡아가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고, 이런 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정의구현을 위한 작은 실천의 한 부분은 아니겠는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