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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 - 오래된 사물들을 보며 예술을 생각한다
민병일 지음 / 아우라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대학 시절 시간이 날 때면 가끔 들렸던 곳 중 하나가 청계천에 위치한 황학동 벼룩시장이라는 곳이다. 그곳은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오래된 고서나 어릴 적 기억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다양한 우리의 옛 생활용품들 그리고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잘 알 수 없는 이런 저런 잡동사니들까지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물건이란 모두 한곳에 모아 놓아서 나에겐 아주 특별한 의미를 주는 장소였다고나 할까 아무튼, 아무런 부담 없이 휭 하니 한번 둘러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기도 했고 가격도 그리 비싼 편이 아니어서, 때로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마치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물건을 발견하게 될 경우 호기심에 의해 구입을 하기도 했던 아름다운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지금은 도시개발에 밀려 그곳이 사라지면서 조금 떨어진 새로운 곳에 다시 터를 잡았다고 해서, 2년 전인가 옛 정취를 느껴볼까 싶어 우연하게 들렸던 그곳이 이제는 예전만큼의 정감을 내게 전해주지는 않았지만, 매일 같이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이 시대에 그것도 도시 한복판에 그런 장소가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내겐 아직까지 충분히 흥미 있는 곳으로 남아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저자가 말한 대로 오래된 사물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인지는 몰라도 나 역시도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그래서 이제는 먼지만이 수북하게 쌓인 지난날의 물건들을 어쩌다 마주치게 되어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불현듯 지나간 과거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에 떠올라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할 때가 있었던듯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런 일종의 무의식적인 나의 행위가 이제와 돌이켜 보건데 나도 서서히 나이가 먹어가는 것일까 하는 마음 한편에 쓸쓸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 보다는 날로 빠르게 변해가는 오늘날의 현상에 반하여 지나간 향수에 대한 그리움이 어느새 나의 가슴 한편에 깊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한때 독일 유학 생활을 하면서 고국을 떠나 멀리 타국에 홀로 있다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는지, 아니면 지나간 사물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었는지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그곳 벼룩시장이나 엔티크 시장을 다니면서 오래된 고화나 고서, LP음반, 찻잔, 진공관라디오, 심지어는 단추나 몽당연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물에 관심을 가지고 구입하여 소장하게 되는데, 귀국 후 대학에 교편을 잡으면서 그 동안 자신이 수집해왔던 물건들에 대한 작은 소고와 함께 사물을 관찰함에 있어 단순한 하나의 물건이 아닌 그 나름대로 예술적인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사물을 바라보는데 예술적인 시각의 확대를 일러주고 있는듯하다. 다시 말해 저자는 하나의 사물을 무심한 마음으로 보면 오래된 고물에 지나지 않지만 오랜 시간을 거쳐 오면서 사물이 지니고 있는 그 내면의 세계를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예술적 아름다움이 존재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우리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여러 오랜 사물들을 바라봄에 있어 사물 스스로 내포하고 있는 예술적인 면을 놓치지 않도록 책을 통해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 개중에는 저마다 나름대로의 애틋한 사연을 담은 특별한 사물들이 더러 있을 것이고 그래서 다른 물건에 비해 조금은 더 애착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자주 들여다보지는 않아도 어느 날 문득 그런 물건을 꺼내어 보게 될 때, 비록 지금은 손때 묻어서 그것이 아주 볼품없고 낡아버렸지만 우리는 그 안에는 지난날에 대한 정겹고 구수한 그래서 새로운 물건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짙은 오묘한 매력의 감흥을 느끼곤 한다. 나는 예술 작품의 진정한 가치란 것이 단지 눈요기 감에 지나는 것이 아닌, 우리의 눈을 통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짜릿한 그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자극을 불러일으켜 줄 때야 비로소 매겨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의 시대를 일컬어 우리는 디지털 시대라고 말한다. 얼마 전 모 벤처회사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소개팅을 주선해 준다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개발기사를 보고 우리의 인간관계도 점점 기계화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 아무리 시대에 맞추어 사는 세상이라 하더라도 이런 부분까지 그렇게 했어야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현실에 적응하며 사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마는 단지 오래되고 아날로그적이라는 그 이유하나만으로 멀리하고 쉽게 버려져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용납하기 힘들다. 이 책에서처럼 오늘 당신의 마음을 한때 충족시켜주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던 그래서 그대의 체취가 이미 깊이 베어 씻고 씻어도 없어지지 않는 당신만의 소중한 사물이 있다면 한번 꺼내어 서로 무언의 대화의 장을 만들어 아름다운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