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 탈출
피에르 불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언제였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당시로는 상당히 파격적일 수밖에 없었던 영화 혹성탈출을 봤던 기억이 있다. 스토리의 내용으로 보자면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영화였음에도, 상영 도중 내내 가슴을 졸이며 흥분과 스릴을 느꼈던 작품이었는데, 이렇게 원작을 다시 책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새롭게 느껴지는 듯하다. 과학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장점 중 하나는 상상력의 범위를 무한히 넓혀준다는 것이고, 그것을 또한 가능하게끔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향후 우리의 미래 모습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을지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불과 100년 전의 우리의 역사의 과거 사실과 오늘 현재의 그것과 비교해보면 그 변화의 차이를 아마 어렵지 않게 체감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영화로 보았을 법한 SF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혹성탈출 시리즈의 원작이다. 따라서 이미 많은 독자들이 이 영화를 한번쯤은 감상해 본 경험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책으로는 아마 처음 접하지 않을까 한다. 상상하기에 조금은 끔찍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어딘가에 행성이 존재하고 있고, 그 행성에 존재하는 세상은 지금처럼 인간에 의해 주도적으로 다스려지는 것이 아닌, 유인원에 의해 세상 모든 것이 지배되고, 그와 반면에 진화되지 못한 인간들은 그들에 의해 노예처럼 종속되어 마치 미개한 야만인이 되어 비참한 생활을 영위해 간다는 내용을 실감나게 그려간 이 작품은,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는 인간의 모습을 어리석고 아둔한 존재로 희화화시켜, 탐욕적이고 파괴적인 인간의 속성을 냉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재미와 더불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작품 속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주인공 윌리스는 두 명의 과학자와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부터 약 300만 광년 떨어진 베텔게우스라는 새로운 행성을 도착하여 탐사를 벌이게 된다.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그곳에서 그들은, 지구인들과 비슷한 모습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에 놀라움과 신비로움에 가득 차게 되지만, 이러한 감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그곳의 세상은 고릴라와 오랑우탄, 그리고 침팬지가 주축이 되는, 지구인들과 비슷한 그들만의 문명이 확고히 갖추어져 있는 또 다른 세계였으며, 이곳에 존재하는 인간들은 일종의 이성의 힘이 갖추어지지 않은 본능에 지배되어 살아가는 짐승처럼 취급되어, 그들의 노예나 사냥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도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갔던 그의 동료는 한명은 그들에 의해 살해되었고, 또 다른 한명은 동물원 안에 갇혀 그들에 의해 사육을 당하게 되는 비참한 상황을 맞는다. 하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어렵게 살아남은 윌리스는 이곳의 과학자로 있는 유인원에게 자신이 이성적인 존재임을 알리고 이를 인식시키는데 성공함으로서, 마침내는 그의 도움을 받아 이들의 세계로부터 빠져 나오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공상 과학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소설 속 전개과정을 생각해보면 공생할 줄 모르고 살아가는 인간의 이기적인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어, 사회풍자 소설에 더 가깝지 않나 싶은 생각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유인원이 만들어 놓은 소로르의 세계는, 지구의 똑같은 모습의 문명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그곳에서 문명을 이끌어 가는 주체가 인간중심에서가 아닌 유인원중심으로 이를 뒤바꾸어 놓아, 그들의 다양한 행위들을 통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독자의 입장에서 얼핏 생각하면 이 소설은 인간과 유인원의 대결적인 구도로 비춰지는, 그저 단순한 흥미에 그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 작품이 담고 있는 비극적인 상황의 과정은, 결국 인간 스스로가 초래한 극단의 결과라는 점을 은연 중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점은 책 속 내용의 유인원들이 인간의 행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쉽게 드러난다. 사실 무한히 넓은 우주의 공간이라는 세계관에서 보면, 지구는 극히 작은 행성에 지나지 않는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자신들만의 현실적인 이익을 위해 폭력과 파괴를 일삼으며, 부조리한 모습을 보이고 이것이 마치 당연한 것인 양 살아간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과학문명에 의지하여 이러한 오만한 자세를 취하는 인간의 단면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반전의 재미와 과학적 상상력을 즐길 수 있는 이 소설에 독자들의 많은 관심이 있었으면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싱크홀 - 도시를 삼키는 거대한 구멍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까지 자연재해를 소재로 작품화 된 국내외의 영화들이 그동안 많이 등장하긴 해왔던 이유로 간혹 보아오기는 했으나, 책으로 접해보기는 아마 처음 인듯하다. 사실 개인적으로 애초 이 작품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었다. 왜냐하면 재난을 테마로 다룬 것이라면, 이를 바라보는 독자의 입장에서 재난의 과정을 통해 느끼게 되는 공포와 스릴의 시각적인 요소들을, 아무래도 소설 속에 나타내기에는 여러 제약적인 부분이 많지 않을까 싶었고, 또한 대부분의 독자들이 기존의 다양하고 흥미로운 좋은 재난 영화들에 의해 이미 상당부분 익숙해져있어서, 이를 뛰어 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책으로 보는 그 재미가 얼마나 될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소설을 완독하고 나서 느꼈던 것은, 책으로도 영화에 못지않은 재미와 감동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자연 재해의 종류 중에서도 조금은 생소해 보이는 싱크홀(갑자기 땅이 꺼지면서 다양한 크기의 거대한 구멍이 생기는 현상)이라는 급박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바탕으로, 그 과정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가미되어, 독자들에게 훈훈하고 벅찬 감동의 여운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따라서 이런 주제를 다룬 작품을 그동안 영화로만 보아왔던 독자들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관심을 가지고 볼만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어느 날 서울의 한 곳에 한국의 바벨탑이라 불리는 123층 높이의 초고층 빌딩이 완공 된다. 지상높이로 562미터를 자랑하며 시저스타워로 명명된 이 건물은, 그동안 많은 환경론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조가 넘는 돈을 들여 국내외 귀빈을 초청하여 마침내 성대한 개장식을 치루고 감격에 겨운 첫날밤을 맞고 있었다. 그러나 국내 최고 최대라고 불리던 이 빌딩은 건물의 기반암이 무너지는 싱크홀 현상에 의해 직경 180미터 깊이 700미터의 아래로 갑자기 추락해버리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건물 안에는 아직 퇴근을 하지 못한 일부 사무실 직원들과 호텔 투숙객, 그리고 지층에 있는 상가 사람들을 포함해 700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주인공 ‘혁’은 갑작스런 사고 소식과 함께 추락한 건물 안에 자신의 부인과 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또한 정형외과 의사로 있다가 이 건물의 최고층에서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게 된 ‘동호’ 역시, 그의 첫 사랑이 된 여자 친구가 그곳에 갇혀 있음을 알게 된다.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정부는 혼란스런 와중에도 사고 대책반을 구성해 생존자 구출에 나서지만, 구출과정에서 구조대원들이 건물의 추가붕괴로 많은 사상자를 내었고, 기후변화에 의해 예기치 않았던 비가내리면서 더 이상의 구조는 위험하다는 판단 하에 돌연 중단 결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한때 산악등반가로 세계최고봉을 등반했던 경험이 있는 ‘혁’과 건물 투자자로 책임을 가지고 있던 ‘동호’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생존자를 구출하기 위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게 된다.

이 작품은 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초고층 건물의 추락 사고를 중심으로, 그 안에서 사랑하는 자신의 가족과 연인을 구하기 위해 처절하고 안타까운 사투의 과정이 잘 묘사되어 있는 재난 소설이다. 특히 등장인물들을 통해 비정하리만큼 냉혹한 도시의 일상에 순수한 인간애를 구현해가는 과정은 독자들에게 애잔하고 가슴 따뜻한 감동의 여운을 깊게 각인 시키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아쉬움이 남았던 것은, 작품의 전반부에서 각 인물들과의 인과 관계를 나타내는 과정이 길어짐으로서, 상대적으로 건물이 붕괴되는 공포를 동반한 혼돈스런 과정이 단순하고 짧게 그려져 있어, 긴박하고 역동적인 느낌을 길게 유지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독자의 입장에서 긴장감이 한층 고조되기도 전에 금방 해소되어 버리고 있어서, 사건을 조금 디테일 하게 그려내어 작품을 길게 가져갈 필요가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대중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이 작품은 거대한 쓰나미를 배경으로 한 해운대라는 영화가 생각날 만큼, 의외로 기대 이상의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작품을 보는 독자들의 느낌이 저마다 다를 수는 있을 것이고, 흥미를 느끼게 되는 요소도 모두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의 대재앙 속에 아름답고 따뜻한 인간미가 흥미롭게 펼쳐지는 이 작품은, 분명 독자들의 충분한 공감을 불러 일으켜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쁜 뇌를 써라 - 뇌의 부정성조차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뜻밖의 지혜
강동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고, 또한 그 원리대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밤이 있으면 낮이 있고, 좋은 것이 있는 반면에 싫은 것도 있으며, 또한 행복한 기쁨의 이면에는 불행한 고통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양면성에 비추어 보면, 사랑이라는 것도 어떤 사람에게는 언제나 달콤하고 아름답게 보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랑으로 인해 아픈 상처를 경험한 이들에게는 그것이 반드시 그렇게 보이지 만은 않는 법이다. 따라서 어느 한쪽 부분만을 보고 그것이 항상 옳고 그르다거나, 좋고 나쁘다고 단정 짓는 것은 가급적 피해야 하는 일이고, 결국 이러한 양면성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의 삶은 분명 지금보다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러한 양면성을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극히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며 살아가고 있음에도, 그러한 자신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그것은 아마도 그동안 수없이 반복되어 온 일종의 습관 같은 편협적인 사고에 쉽게 길들여져서 일지 모른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양면성이라는 관점에서, 인간의 뇌와 관련한 다양한 임상실험과 연구, 그리고 실제 뇌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로부터 얻은 새로운 사실을 통해, 때로 산만하거나, 왜곡 혹은 망각하는 뇌의 부정적인 기능들이, 항상 우리에게 해로움을 끼치는 것이 아닌, 그 이면에 숨겨진 긍정적인 부분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이 책에서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마치 나쁜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뇌의 기능을, 그저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기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가꾸어 가야함을 말하고 있다.

이 책에는 뇌가 가진 양면성의 내용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는데, 때로 뇌는 우리에게 집중력을 발휘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산만함을 주기도 하고, 또한 어떤 사실과 사물을 기억하는 능력이 있는 반면에 망각하는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가 요구하고 가르치는 것은 대체로 뇌의 긍정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새가 한쪽의 날개로는 날아갈 수 없듯이, 우리의 뇌 역시 좋은 뇌의 기능과 나쁜 뇌 기능이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최적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무한한 뇌의 능력에 의존하여 어떤 일을 생각하고 판단할 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자신의 사고의 과정에 문제가 없었을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정확하게 관찰했고 그리고 이를 기억했으며 그래서 그에 맞는 이성적인 판단했을 거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의 이러한 안일한 생각이 얼마나 잘못 되어 있는지, 여러 가지 실험과 실제 우리의 행동의 예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우리들은 보통 일상생활에서 실수를 자주 범하게 된다. 물론 이는 사소하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뇌 과학에 따르면 이는 우리의 뇌의 기능 중 하나인 산만함에 따른 우리의 주의력 결핍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집중력을 떨어트리는 산만함이 과연 나쁘기만 한 것일까. 저자는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느끼고 이에 관심을 가지려는 잠제억제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와 같은 산만함은 우리를 더러 혼란에 빠트리긴 해도, 창의성을 키우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산만함을 애써 없애려는데 노력하기보다 이를 창의적인 방향으로 발전시켜가는 것이 자신을 위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인지 부조화에 따른 문제로 자기 자신을 합리화 하려는 우리의 뇌기능 역시 마찬 가지다. 우리는 잘못되고 그릇된 판단이었음에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합리화는 정당하지 못한 것을 정당화함으로서 비논리적이고 편협한 사고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때로 지양되어야 한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우리 생각과 뜻대로 이루지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좌절과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할 때가 있다. 그래서 합리화는 이런 불안의 요소를 없애는 방향에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무언가를 오래 기억 하지 못하는 망각의 기능, 담배나 마약, 도박과 같은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중독 기능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이를 긍정적면을 것으로 바꾸어 자신의 능력을 향상 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균형적인 것을 원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들 중 대부분은 뇌가 지닌 여러 기능에서 좋게 보이는 면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반대쪽의 나쁜 기능처럼 생각되는 부분은 무시하거나 혹은 축소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의 뇌의 기능 중 나쁘게 보이는 측면은, 어떻게 인식하고 전환시키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자신의 능력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급속히 변해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우리에게서 더 많은 능력들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뿐만이 아닌,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사람들은 대개 말하기를 자신에게는 타고난 능력이 주어져 있지 않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먼저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를 발견하지 못한 스스로를 되돌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은 우리가 몰랐던 뇌의 여러 기능들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책을 통해 이제는 경직된 시선에서 뇌의 기능을 생각해볼 것이 아닌, 보다 유연한 자세로 그동안의 편협적인 생각과 태도에서 벗어나, 이를 발전적인 방향으로 바꾸어 보려는 노력들이 있었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랑 - 왕을 움직인 소녀
이수광 지음 / 네오픽션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이 작품은 조선 숙종 시대 때의 박문랑, 박차랑의 두 자매가, 사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박팽년의 후손들과 산소 문제로 처절한 싸움을 벌이게 된, 당시의 상세한 내용을 담은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산송>의 기록과, 또한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이었던 이항복이 지었던, 재산을 차지하기 위하여 형을 죽였다는 무고한 누명을 쓴 동생이 죽게 되자, 그의 부인이 남편의 억울한 죽음 밝혔다는 <유연전>의 내용을 빌려와, 이를 바탕으로 또 하나의 매력 있는 이야기가 꾸며져 있어, 독자들에게 많은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역사 팩션 소설이다. 간결한 문체와 치밀한 구성, 그리고 다양하고 개성적인 등장인물을 통해, 마치 한편의 역사 사극을 보는듯한 느낌을 주는 이 소설은, 당시 탐욕과 위선으로 가득 찬 양반들의 가식적인 모습과, 그리고 무능하고 나태했던 관료들의 부패한 일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음은 물론, 더 나아가서 작품의 내용을 통해 인간이 품게 되는 한 순간의 과도한 욕망이, 때로 얼마나 무모하고 잔인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우리에게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더불어 집안의 억울한 누명을 벗어내기 위해 의연함과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한 여인의 기구한 운명의 이야기는, 불의를 보고도 외면하는 오늘의 세태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지 않나 싶다.

성주 마을의 대부분의 땅을 소유한 거부 박수하는 문랑과 차랑이라는 두 딸과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아들은 아버지와 다툼으로 집을 나간 뒤 현재까지 10년 동안 소식 두절인 상태다. 그로인해 이 집안의 며느리였던 숙영은 남편이 집을 나간 뒤로 홀로 생과부의 팔자로 지내오다가, 이 집안의 재산을 탐내는 오라버니의 꾐에 빠져 재산을 상속 받으려는 음모에 적극 가담하게 된다. 한편 박수하의 둘째 딸인 차랑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불공을 하러 가던 중, 화적을 만나 겁탈의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사대부 가문의 자제 박원규의 도움으로 간신히 모면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급속하게 두 사람은 연민의 정을 느끼며 마침내 양가의 허락을 받아 정혼까지를 기약하게 된다. 하지만 숙영의 오라버니였던 이창래는 사돈의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기 위해, 박원규의 조부를 위한 산소 이장 문제에 개입하여 두 집안 간에 커다란 싸움의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그리고 이윽고 두 집안은 산소 이장 문제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걷잡을 수 없는 혈투를 벌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차랑은 아버지와 언니를 잃고 또한 송사에서도 억울한 패소 판결을 받게 되자, 주위의 만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이 사건의 옳고 그름을 가리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가 왕에게 호소하기를 결심한다.

이 작품은 한 인물의 교묘한 계략아래 산소를 둘러싸고 두 가문간의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면서, 그 양상이 상당히 급박하게 변함에 따라 앞으로의 흐름이 어떻게 진행될지 독자들의 관심과 주목을 이끌게 한다. 또한 두 집안의 싸움으로 정혼을 약속하고도 졸지에 소원한 관계가 되어버린 차랑과 원규와의 애틋한 사랑과, 아녀자의 몸으로 서슬이 퍼런 사대부의 권력에 과감하게 맞서는 차랑의 초연하고도 결의에 찬 모습 역시, 이 책을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요소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관심을 이끌었던 것은, 두 가문 간에 벌어지는 산송의 문제였는데, 저자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는 특이하게도 산소와 관련하여 재판을 벌이는 소송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정치사회 이념의 중심은 예를 중시하는 유교였다. 유교는 형벌보다는 덕과 예를 다스리는 것을 그 목적으로 삼았었다. 따라서 그 시대에 그와 같은 소송들이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 간의 반목과 다툼이 많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며, 당시의 사회가 민심이 무너진 무척 혼란스러웠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보면 소설 속의 내용은, 당시 조선의 일반사회현실을 대변해주는 생활 모습의 일면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듯해 보인다. 또한 소송의 과정에서도 뇌물을 바라는 관료들의 부조리한 모습이나 특히 숙영의 오라버니로 등장하는 양반에서 몰락하여 잔반이 되어버린 이창래가 서민들을 향해 벌이는 파렴치한 행위들이 오늘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를 시사하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따라서 팩션 소설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역사의 사실을 토대로 새롭게 각색된 이 작품을 한번 읽어 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령 - 2011년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강희진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한 주민들이 그들의 이념체제를 버리고 새로운 삶을 찾으려는 국경탈출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 급속히 증가해 현재 2만 여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듯하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하나의 민족으로 살다가 강대국의 이익에 의해 강제적인 분단을 겪은 뒤, 서로가 다른 체제 속에 익숙해지면서, 한편에서는 우리의 남북의 관계를 포용관계가 아닌, 배타적이고 냉소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듯해서 먼저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사실 탈북자들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님에도, 남북 간의 정치적인 이유로 우리들의 시선에서는 상당히 멀어져 있는듯해 보인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요즈음 동남아의 외국인들이 국내로의 유입이 많아졌음에도, 그들에게는 어느 정도 유연한 자세를 보이면서 유독 탈북자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인식의 변화는 더욱 경직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다. 이 작품은 북한에서의 삶을 버리고 남한으로 이주해 온 탈북자들의 불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펼쳐내면서, 그들이 우리 사회에 한 구성원으로서 편입되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아픈 단면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어, 분단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지 않나 싶다. 더불어 작품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추리적인 요소와, 가상적인 사이버의 세계를 끌어 들여 기존의 분단 문학과는 다른 차별성을 보이고 있어, 독자의 입장에서 한편 신선하게 여겨지면서도 흥미를 돋우었던 작품으로 여겨진다.

작품은 어느 신문 기사의 엽기적인 사건 보도에서부터 시작 한다. 보도내용은 서울 강북에 위치한 백석 공원에서 인체의 일부분에서 적출한 것으로 보이는 안구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이 발생하고 얼마 되지 않아 같은 시체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두 개의 손목이 발견된다. 경찰의 조사 결과 시체의 신원은 이북에서 탈북 하여 공원 근처에 살았던 회령아저씨라는 인물로 밝혀지는데, 소설 속 주인공인 ‘나’는 그와 함께 살았다는 이유로 주요 용의자로 지목되어 경찰의 조사를 받지만 정확한 알리바이가 증명되면서 풀려난다. 그러나 경찰은 나의 정상적이지 못한 생활모습과 행동을 수상히 여기면서, 나의 주변을 맴돌며 범인을 잡기 위한 암암리의 수사를 펼친다. 작품에서 ‘나’라는 인물은 오래 전에 이북에서의 삶을 버리고 남한에 정착하여 살아가지만, 목숨을 건 탈북 과정과 남한에서의 정착생활에서 적응하지 못해, 극도의 심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우연하게 리니지라는 온라인 게임을 알게 되면서, 그곳에 새로운 세상이 전개되어 가고 있음을 발견하고 현실과 괴리된 비정상적인 삶을 영위 하는 이방인이다. 나의 주변에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남한에서의 생활에 정착하지 못하고 소외되어 비참하고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는 많은 탈북자들이 함께한다. 그들은 저마다의 다양한 아픈 사연과 기억을 소유하면서도, 자유와 기회가 보장된 남한에서의 희망적인 인생을 품고 살아가고자 한다. 하지만 그들의 이런 마음을 그대로 받아주는 곳은 없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냉혹한 현실에 좌절하며, 또 다른 고통의 신음 속에 고단한 하루하루의 삶을 이어간다. 그로부터 어느 날 나는 월세를 들어 살던 주인집 여자로부터 한통이 편지를 건네받으면서, 미궁에 빠졌던 살인사건의 범인을 알게 된다. 그러나 나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다시 게임의 세계로 와있는 내 자신을 문득 발견하게 된다.

소설 속 내용은 탈북자들의 비참하고 비루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사회의 어두운 곳에 그들이 침잠해 있음을 부각시켜 이들을 외면하는 오늘 우리의 이기적인 현실을 고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고, 또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 소외 된 채, 이방인으로 전락한 사람들의 암울한 단면을 통해 비극적인 삶을 고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작품으로 여겨진다. 주인공은 자구적인 노력에도 결코 넘을 수 없는 높은 장벽에 가로막힌 현실의 세계에, 이를 대신해 리니지라는 사이버 게임에 몰두하며 피폐한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작품의 내용처럼 굳이 탈북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열심히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긴 해도, 이런 저런 이유로 패배의 굴레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의외로 적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결국 작품을 통해 현실에 살고 있으면서도, 정작 현실에서는 거부되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탈북자를 중심으로 우리의 사회의 이면에 가려진 그런 부류에 있는 애달픈 삶들을 집중 조명해보고 싶었던 듯하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에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사는 것만큼 비참한 일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그런 관점에서 실존의 의미와 그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중요성을 갖는지를 깊이 일깨워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