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랑 - 왕을 움직인 소녀
이수광 지음 / 네오픽션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이 작품은 조선 숙종 시대 때의 박문랑, 박차랑의 두 자매가, 사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박팽년의 후손들과 산소 문제로 처절한 싸움을 벌이게 된, 당시의 상세한 내용을 담은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산송>의 기록과, 또한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이었던 이항복이 지었던, 재산을 차지하기 위하여 형을 죽였다는 무고한 누명을 쓴 동생이 죽게 되자, 그의 부인이 남편의 억울한 죽음 밝혔다는 <유연전>의 내용을 빌려와, 이를 바탕으로 또 하나의 매력 있는 이야기가 꾸며져 있어, 독자들에게 많은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역사 팩션 소설이다. 간결한 문체와 치밀한 구성, 그리고 다양하고 개성적인 등장인물을 통해, 마치 한편의 역사 사극을 보는듯한 느낌을 주는 이 소설은, 당시 탐욕과 위선으로 가득 찬 양반들의 가식적인 모습과, 그리고 무능하고 나태했던 관료들의 부패한 일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음은 물론, 더 나아가서 작품의 내용을 통해 인간이 품게 되는 한 순간의 과도한 욕망이, 때로 얼마나 무모하고 잔인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우리에게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더불어 집안의 억울한 누명을 벗어내기 위해 의연함과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한 여인의 기구한 운명의 이야기는, 불의를 보고도 외면하는 오늘의 세태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지 않나 싶다.

성주 마을의 대부분의 땅을 소유한 거부 박수하는 문랑과 차랑이라는 두 딸과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아들은 아버지와 다툼으로 집을 나간 뒤 현재까지 10년 동안 소식 두절인 상태다. 그로인해 이 집안의 며느리였던 숙영은 남편이 집을 나간 뒤로 홀로 생과부의 팔자로 지내오다가, 이 집안의 재산을 탐내는 오라버니의 꾐에 빠져 재산을 상속 받으려는 음모에 적극 가담하게 된다. 한편 박수하의 둘째 딸인 차랑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불공을 하러 가던 중, 화적을 만나 겁탈의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사대부 가문의 자제 박원규의 도움으로 간신히 모면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급속하게 두 사람은 연민의 정을 느끼며 마침내 양가의 허락을 받아 정혼까지를 기약하게 된다. 하지만 숙영의 오라버니였던 이창래는 사돈의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기 위해, 박원규의 조부를 위한 산소 이장 문제에 개입하여 두 집안 간에 커다란 싸움의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그리고 이윽고 두 집안은 산소 이장 문제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걷잡을 수 없는 혈투를 벌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차랑은 아버지와 언니를 잃고 또한 송사에서도 억울한 패소 판결을 받게 되자, 주위의 만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이 사건의 옳고 그름을 가리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가 왕에게 호소하기를 결심한다.

이 작품은 한 인물의 교묘한 계략아래 산소를 둘러싸고 두 가문간의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면서, 그 양상이 상당히 급박하게 변함에 따라 앞으로의 흐름이 어떻게 진행될지 독자들의 관심과 주목을 이끌게 한다. 또한 두 집안의 싸움으로 정혼을 약속하고도 졸지에 소원한 관계가 되어버린 차랑과 원규와의 애틋한 사랑과, 아녀자의 몸으로 서슬이 퍼런 사대부의 권력에 과감하게 맞서는 차랑의 초연하고도 결의에 찬 모습 역시, 이 책을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요소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관심을 이끌었던 것은, 두 가문 간에 벌어지는 산송의 문제였는데, 저자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는 특이하게도 산소와 관련하여 재판을 벌이는 소송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정치사회 이념의 중심은 예를 중시하는 유교였다. 유교는 형벌보다는 덕과 예를 다스리는 것을 그 목적으로 삼았었다. 따라서 그 시대에 그와 같은 소송들이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 간의 반목과 다툼이 많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며, 당시의 사회가 민심이 무너진 무척 혼란스러웠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보면 소설 속의 내용은, 당시 조선의 일반사회현실을 대변해주는 생활 모습의 일면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듯해 보인다. 또한 소송의 과정에서도 뇌물을 바라는 관료들의 부조리한 모습이나 특히 숙영의 오라버니로 등장하는 양반에서 몰락하여 잔반이 되어버린 이창래가 서민들을 향해 벌이는 파렴치한 행위들이 오늘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를 시사하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따라서 팩션 소설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역사의 사실을 토대로 새롭게 각색된 이 작품을 한번 읽어 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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