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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홀 - 도시를 삼키는 거대한 구멍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7월
평점 :
지금까지 자연재해를 소재로 작품화 된 국내외의 영화들이 그동안 많이 등장하긴 해왔던 이유로 간혹 보아오기는 했으나, 책으로 접해보기는 아마 처음 인듯하다. 사실 개인적으로 애초 이 작품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었다. 왜냐하면 재난을 테마로 다룬 것이라면, 이를 바라보는 독자의 입장에서 재난의 과정을 통해 느끼게 되는 공포와 스릴의 시각적인 요소들을, 아무래도 소설 속에 나타내기에는 여러 제약적인 부분이 많지 않을까 싶었고, 또한 대부분의 독자들이 기존의 다양하고 흥미로운 좋은 재난 영화들에 의해 이미 상당부분 익숙해져있어서, 이를 뛰어 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책으로 보는 그 재미가 얼마나 될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소설을 완독하고 나서 느꼈던 것은, 책으로도 영화에 못지않은 재미와 감동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자연 재해의 종류 중에서도 조금은 생소해 보이는 싱크홀(갑자기 땅이 꺼지면서 다양한 크기의 거대한 구멍이 생기는 현상)이라는 급박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바탕으로, 그 과정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가미되어, 독자들에게 훈훈하고 벅찬 감동의 여운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따라서 이런 주제를 다룬 작품을 그동안 영화로만 보아왔던 독자들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관심을 가지고 볼만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어느 날 서울의 한 곳에 한국의 바벨탑이라 불리는 123층 높이의 초고층 빌딩이 완공 된다. 지상높이로 562미터를 자랑하며 시저스타워로 명명된 이 건물은, 그동안 많은 환경론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조가 넘는 돈을 들여 국내외 귀빈을 초청하여 마침내 성대한 개장식을 치루고 감격에 겨운 첫날밤을 맞고 있었다. 그러나 국내 최고 최대라고 불리던 이 빌딩은 건물의 기반암이 무너지는 싱크홀 현상에 의해 직경 180미터 깊이 700미터의 아래로 갑자기 추락해버리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건물 안에는 아직 퇴근을 하지 못한 일부 사무실 직원들과 호텔 투숙객, 그리고 지층에 있는 상가 사람들을 포함해 700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주인공 ‘혁’은 갑작스런 사고 소식과 함께 추락한 건물 안에 자신의 부인과 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또한 정형외과 의사로 있다가 이 건물의 최고층에서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게 된 ‘동호’ 역시, 그의 첫 사랑이 된 여자 친구가 그곳에 갇혀 있음을 알게 된다.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정부는 혼란스런 와중에도 사고 대책반을 구성해 생존자 구출에 나서지만, 구출과정에서 구조대원들이 건물의 추가붕괴로 많은 사상자를 내었고, 기후변화에 의해 예기치 않았던 비가내리면서 더 이상의 구조는 위험하다는 판단 하에 돌연 중단 결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한때 산악등반가로 세계최고봉을 등반했던 경험이 있는 ‘혁’과 건물 투자자로 책임을 가지고 있던 ‘동호’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생존자를 구출하기 위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게 된다.
이 작품은 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초고층 건물의 추락 사고를 중심으로, 그 안에서 사랑하는 자신의 가족과 연인을 구하기 위해 처절하고 안타까운 사투의 과정이 잘 묘사되어 있는 재난 소설이다. 특히 등장인물들을 통해 비정하리만큼 냉혹한 도시의 일상에 순수한 인간애를 구현해가는 과정은 독자들에게 애잔하고 가슴 따뜻한 감동의 여운을 깊게 각인 시키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아쉬움이 남았던 것은, 작품의 전반부에서 각 인물들과의 인과 관계를 나타내는 과정이 길어짐으로서, 상대적으로 건물이 붕괴되는 공포를 동반한 혼돈스런 과정이 단순하고 짧게 그려져 있어, 긴박하고 역동적인 느낌을 길게 유지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독자의 입장에서 긴장감이 한층 고조되기도 전에 금방 해소되어 버리고 있어서, 사건을 조금 디테일 하게 그려내어 작품을 길게 가져갈 필요가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대중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이 작품은 거대한 쓰나미를 배경으로 한 해운대라는 영화가 생각날 만큼, 의외로 기대 이상의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작품을 보는 독자들의 느낌이 저마다 다를 수는 있을 것이고, 흥미를 느끼게 되는 요소도 모두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의 대재앙 속에 아름답고 따뜻한 인간미가 흥미롭게 펼쳐지는 이 작품은, 분명 독자들의 충분한 공감을 불러 일으켜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