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 250년 만에 쓰는 사도세자의 묘지명, 개정판
이덕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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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역사의 사실을 통해서, 그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는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보다 진일보한 새로운 교훈을 배우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보다 중시해야 할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축적되었을 수도 있는 편협하고 주관적인 선입관에서 벗어나, 당시 역사의 내용을 시대상황에 맞추어 이를 다각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까지 교과서를 통해 배워왔던 많은 역사의 내용들에 대해, 그것이 과연 사실에 근거한 객관적인 자세에서 이를 바라보고 판단하려는 노력들은 생각만큼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일부 내용이 잘못 부풀려지거나 왜곡되어있음에도, 그것이 마치 진실인 것인 양 그릇된 인식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끔은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선왕조의 역사 중에서 비운의 삶을 살아간 많은 사람 가운데 한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사도세자가 아닐까 싶다.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하여, 당시 역사사료가 부족한 것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도 명확히 풀리지 않은 여러 의문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그러한 관점에서 그동안 사도세자의 죽음의 배경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에 대해, 그것이 여러 다각적인 차원에서 객관적으로 다루어지지 못하고, 사도세자의 어머니였던 혜경궁 홍씨가 지었다는 한중록에 주로 의존해왔던 형태에서 벗어나, 당시 시대상황의 흐름과 여러 역사자료를 토대로 하여, 사도세자의 죽음의 이면에 가려진 그 진실이 무엇인지를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보고자 했다. 따라서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은 사도세자의 탄생에서부터 뒤주에 갇혀 비참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항들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이 책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두고 영조실록을 비롯한 여러 역사서와 한중록에 기록된 내용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영조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고 신뢰했던 아들을 왜 죽음으로 몰고 갈 수밖에 없었는지, 또한 사도세자가 당시 기득권층과 맞서며 정작 자신은 권력과 연관하여 무엇을 이루려고 했는지를 독자들이 나름대로 가늠해볼 수 있는 유용한 역사서라는 생각이다.

 

조선왕조의 역사기록에 따르면 사도세자는, 1735년(영조 11)에 태어나서 1762년(영조 39), 28세를 끝으로 뒤주에 갇히면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안타까운 삶을 마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조는 자신의 장남이자 숙종의 첫 손자였던 효장세자가 불과 10세이 어린나이에 갑자기 병으로 죽고 난 뒤, 자신의 뒤를 이을 권력승계의 문제를 두고 깊은 시름에 빠져 있다가, 뒤늦게 사도세자의 얻음으로서 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기를 바래왔다. 그렇지만 그는 당시 노론과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자유롭지 못하면서, 결국 자신의 아들을 끝내 믿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으로 남아있다. 그렇다면 영조는 왜 자신의 아들 사도세자를 죽여야만 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일들이 있었을까. 이 책에 의하면 우선 저자는 혜경궁 홍씨가 자필로 기록했다는 한중록의 내용을 빌어 사도세자의 직접적인 죽음의 원인이, 영조가 자식들을 병적으로 편애하면서 그 결과로 사도세자의 정신병이 심화되었다는 것에 깊은 의구심을 나타낸다. 그러면서 저자는 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게 원인에 대해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단초는 영조가 왕으로 등극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무수리 출신의 천한 신분이었다는 것과,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위해 그가 본의 아니게 경종 독살설에 자유롭지 못하면서 왕으로서 그 태생적 한계와, 영조가 사도세자를 대리청정 하는 가운데 세자가 노론을 멀리하고 소론을 가까이하면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노론의 심한 견제가, 결국 그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 이 책에서 사도세자의 죽음과 연관하여 한중록의 내용이 당시 여러 역사자료와 비교하여, 실제 사실과는 다른 상당히 편협하고 주관적인 견해에서 기록되었음이 명확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마치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을 반박하면서, 사도세자의 직접적인 죽음을 몰고 갔던 당시의 주동 세력이 노론이었고, 그 중심에 혜경궁 홍씨 자신은 물론이고 그녀의 아버지 홍봉한과 그 일가친척이 깊이 관여되어 있음을 자료에 근거해 이를 논리적으로 밝혀내고 있다. 결국 영조는 탕평책이라는 정책을 고수하면서 다양하고 폭넓은 인재등용을 위한 노력을 했지만, 자신의 왕조 등극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던 노론의 입김에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으며, 사도세자가 죽기 전까지 자신의 주변에 가까이 했던 인물들이 주로 소론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세자를 죽음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져가면서까지 변호했던 것을 감안할 때, 한중록의 내용은 이러한 사실들을 빠트리거나 왜곡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같은 사안을 두고 기록된 일부의 내용에서 보면 한중록과 영조실록과도 상이한 부분이 있는데다가, 특히 혜경궁 홍씨가 한중록을 통해 사도세자의 죽음을 정치적인 배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줄곧 정신병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점도 수긍할 수 없는 부분임을 지적한다. 또한 사도세자가 죽기 전에 그가 행했던 다소 이해하기 힘든 비행의 내용도 단지 정신병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시시각각으로 죄어 오는 노론의 압력과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사도세자가 자구책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의 서두에서 역사학의 기초는 사료의 비판에 있다고 말하면서,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도 바로 이런 바탕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의 내용이 모두 거짓이라고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독자들이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하지 못하고, 마치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인식하는 시각도 결코 역사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은 아니라고 본다. 사도세자의 죽음에 직간접적인 원인은 당시 여러 정황상으로 볼 때, 당시 권력의 실세였던 노론과 상당부분 연관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한중록을 지은 혜경궁 홍씨가 다름 아닌 노론이었다는 점은, 저자의 주장에서 보듯 한중록의 내용은 가해자의 기록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은, 독자의 입장에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따라서 가해자의 생각이나 의견을 가지고 다른 의견은 모두 배제한 채, 그것을 진실이라고 주장한다면 당연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밖에 볼 수 없으며 더구나 공감을 얻기에는 불충분해 보이지 않을까 싶다. 조선시대는 왕권보다는 신권이 강했던 시대다. 그래서 조선 왕조의 600년 역사는 수많은 당파싸움이 진행되어 왔고, 그 과정에서 사도세자와 같은 억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역사의 내용에 대한 그 진위가 무엇인지 제대로 밝히려는 노력이 없다면 앞으로도 이러한 과정은 계속될 것으로 본다. 고작 28세의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했던 사도세자는, 왕세자로서 자신의 정치적인 꿈을 채 이루지도 못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지금에까지 이르러 그의 죽음이 한낮 의혹에 머무르게 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책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그의 죽음에 원인이 과연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좋은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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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의 초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양억관 옮김 / 이상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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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범죄들이 저질러진다. 대형사건인 경우에는 대개 언론보도를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져, 그 사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면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지만, 그 외의 대부분의 사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히 과거 속으로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우리 사회 내부에 현재 어떤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어느 나라든 간에 사법적인 제도가 아무리 잘 갖추어져 있고, 사회 안전망에 대한 것이 잘 구축되어 있다하더라도,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도덕적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다면, 혹은 불합리하거나 불평등적인 사회 제도적 요소들이 제거되지 않고 존치되어 있을 때, 그 사회가 정상적으로 유지되기는 아마 힘들 것이다. 따라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발생되는 많은 범죄들에 대해, 우리가 단지 가십거리로만 생각하고 단순하게 넘겨버릴 것만이 아니라, 그런 문제들의 원인이 과연 어디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 문제는 없는지를 한 번쯤은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이 작품은 일본이 세계대전 중 연합군에 의해 패하고, 미군 점령기에 접어들면서 그 과정에서의 복잡한 사회 변화 과정을 거쳐야 했던, 1950년대 후반의 북쪽지방 설국의 아름다운 배경을 삼아, 사건의 중심인물이 어느 날 감촉같이 사라지는 실종사태가 벌어지고, 이후 이와 관련한 주변 인물들의 연이은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 미스터리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작품을 통해, 당시 패전 국가로서 일본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점령군의 이질적인 문화가 유입되면서, 자국의 전통적인 가치관이 무너지고 새롭게 변화해가는 당시 일본 사회상의 단면을 잠깐이나마 엿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이 작품과 관련하여 일본의 사회가 그러했던 것과 같이,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 역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유사한 경험을 했던 것으로 볼 때, 독자들이 작품의 내용에서 어느 정도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0대 중반의 여성인 주인공 데이코는, 가까운 인척의 중매로 자신보다 10살이 넘는 광고회사의 중견 간부로 있는 남자를 만나 오랜 교제 없이 서둘러 결혼을 하게 된다. 그녀의 남편은 원래 결혼 전 북쪽지방에 있는 지점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결혼을 기점으로 도쿄의 본사로 새로이 발령을 받은 상태였고, 신혼여행을 갔다 온 이후로 지점의 후임을 위해 회사의 업무 인수인계를 이유로 잠시 일주일 정도의 출장을 떠난다. 그러나 돌아온다는 예정기일이 지났음에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고, 데이코 자신은 물론 회사에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무런 연락을 취해오지 않는다. 그녀는 결혼에서 신혼여행기간 동안, 자신을 향한 남편의 여러 행동에서 부부로서의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확신하고 있었기에, 남편의 묘연한 행방불명 소식에 의문을 안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직접 찾아 나서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남편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한편 남편의 행방불명 소식을 듣고 함께 찾아 나섰던 남편의 친형과, 남편의 후임자였던 직원이 누군가에 의해 연쇄적으로 타살되었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주변 인물들의 여러 증언으로 볼 때, 그가 누군가로부터 원한을 살만한 일을 하지 않았고, 회사의 업무에 충실하며 성실한 생활 자세로 임했던 것으로 보아, 남편의 급작스런 실종의 원인이 무엇일지를 두고 점점 혼란스러움에 빠지기 시작한다. 남편이 남긴 특별한 흔적이 없는 상태에서, 주변 인물들이 하나 둘씩 의문의 죽음으로 사라져 가는 가운데, 실종 사건에 대한 해결에 대한 실마리를 그녀는 과연 어디에서부터 강구해야 하는 것일까.

 

이 작품은 한 사람의 실종을 토대로 연이은 살해의 과정을, 당시 사회의 부조리 문제와 연관시킴으로서 당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깊이 들여다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작품의 전개를 통해 치밀한 설정으로, 독자들에게 사건의 핵심이 무엇인지 분간하기 힘든 미스터리의 요소를 극대화하고 있는 점은 이채롭게 느껴지지 않나 싶다. 그러나 특이할만한 스릴이나 공포의 요소가 거의 없는데다가, 주인공에 의해 사건에 대한 다양한 가설적 논리들이 중첩되고 있어서, 중반 이후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독자들이 이 작품을 통해 주목해 볼만한 것은, 사건의 내용을 통해 우리가 은연 중 놓치고 있는 불합리한 사회 현상의 일부분을 곰곰이 상기시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매년 많은 추리소설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 사회파 추리소설은 우리사회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여러 사회 부조리한 문제들에 대해, 편향적이고 왜곡된 인식에서 벗어나 폭넓은 시각으로 그 본질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사안들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어, 고질적인 우리 사회 병폐의 문제점들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이 관심을 두어볼 만하다. 물론 이러한 추리장르가 본격적인 추리의 요소를 중시하기보다는, 작품을 통해 작가가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에 중점을 두고 있어서 일부 독자들에게는 다소 거부감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가끔은 이런 작품을 통해 범죄라는 것을 어느 특정인의 문제로 다가서기 보다는,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 들여다보고 이를 계기로 우리 자신 스스로를 성찰해보는 좋은 기회로 삼아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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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악마가 여기에 있다 자음과모음 인문경영 총서 2
베서니 맥린 & 조 노세라 지음, 윤태경.이종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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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금융시장을 순식간에 뒤흔들며 금융시장을 낭떠러지로 수직강하 하게 만들었던,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관한 내용들은, 그동안 언론의 보도나 여러 경제 전문가들에 의해 다양한 시각에서의 접근을 통해 많은 분석들이 있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당시의 금융위기로 수많은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파산되었으며, 투자자들 역시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고 한동안 금융시장은 패닉의 상태를 벗어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금융위기가 쓸어버리고 간 냉담한 현실은, 총성만 없다뿐이지 전쟁이 끝난 후 폐허가 된 도시를 보는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뒤늦게 심각성을 깨달은 미국정부를 비롯한 세계 각국은, 경기위축을 우려한 나머지 그 파급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경기부양책을 서둘렀지만, 이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며 원치 않는 엉뚱한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그 여파로 미국의 신용등급이 하락되면서 미국은 기축 통화국으로의 지위는 땅에 떨어졌고, 더불어 그리스를 시작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채무증가와 재정적자라는 깊은 늪에 빠지면서, 이제는 행여 국가 파산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심스런 예측들이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당시의 사태가 마치 치유될 수 없는 악성적인 암처럼 확대되기까지, 그 과정에 과연 어떤 움직임들이 있었는지에 대한 상세한 내막들은 우리에게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이 엄청난 파국의 시작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으며 어떻게 진행되어 왔던 것일까.

 

이 책은 미국 최고의 경제 기자 출신의 칼럼니스트이자 비즈니스 분야 베스트셀러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두 명의 저자에 의해, 그동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중심에 있었던 수많은 경제 정책입안자와 정부 기관 그리고 기업들의 지나온 행적들을 집중적으로 파헤침으로서, 그 사실의 관계를 명확하고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무엇보다 이 책이 독자의 입장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우리가 흔히 사건 사고와 관계하여 TV에서 보는 사회 고발적 프로그램을 보는 것처럼, 당시 사태의 흐름을 시작에서부터 결과에 이르기까지 이해하기 쉽게 독자들로 하여금 체감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당시 금융위기와 관련한 건조하고 딱딱한 분위기가 풍기는 여러 분석적인 보고서들과는 달리, 사실에 근거한 그 생생한 내막의 과정을 여과 없이 상세하게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에서의 일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국제금융재앙의 주범중 하나로 꼽히던 MBS(주택저당채권 담보부증권)는 이미 30여 년 전에 만들어졌으며, 이 증권의 원래 목적은 금융사의 수익증진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집 없는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이라는 복지적인 차원에서 시도되었다는 근원적 배경에서부터 시작한다. 1970년 말 당시의 미국의 사회적 환경은 베이비붐 세대가 사회로 진출하는 시기였고, 그런 이유로 주택의 수요는 급증하고 있었지만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물론 주택구입자를 위한 저축대부조합이라는 기관이 있긴 했지만, 대출여력이 미미했고 무엇보다 금리가 높아 돈을 빌리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비효율적인 구조적 문제를 간파한 라니에리를 비롯한 세 명의 남자들은, 이를 증권화 하여 자본의 유통이 효율적으로 전환되기를 바라며 MBS라는 새로운 상품을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상품은 투자자의 입장에서 금리 변동과 채무 불이행, 그리고 조기상환 리스크라는 몇 가지 위험 때문에 처음에는 그리 환영을 받지 못하다가, 월스트리트가 획기적인 금융기법이 더해져 투자자로부터 서서히 각광을 받기 시작한다. 그 결과 이 상품은 패니매이와 프레디맥과 같은 미국 국책 모기지 업체와 은행을 등에 업고 한해에 무려 수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안겨주는 상품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리고 이 상품은 묘하게도 미국 정부의 포퓰리즘적인 주택공급정책과 맞물리면서 엄청난 성장을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이 계기를 발판으로 이후 기존 은행 시스템에 속하지 않은 새로운 대출기관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금융기관들은 저마다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부를 쌓는 기회로 삼았다. 파산을 앞둔 금융기업은 이러한 파생상품 취급함으로서 하나의 거대한 기업으로 부활했고, 심지어 채권의 안전도를 측정하고 그에 따라 신용등급을 매기던 무디스와 같은 신용평가사들도, 성실한 신용평가 기관으로서의 지켜야 할 의무를 등지고 파생상품이 가져다주는 이익에 눈이 멀어 트리플 A라는 등급을 남발하면서 금융시장에서의 광기를 부추키는데 크게 한 몫을 해왔음을 이 책은 밝히고 있다. 또한 이러한 막대한 자금의 일부는 정치적 로비스트의 과정에 이용되면서, 파생상품이 주는 위험성을 인식하고 감독을 강화하려던 일부의 의견들이 전혀 정책에 반영되지 못하게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더욱이 심각했던 것은 파생상품들이 위험을 막을 수 있었던 규제 법안들이 이미 만들어져 있었음에도, 채권시장을 활성화시킨다는 명목으로 일부 폐기되거나 다른 법안으로 대체되었다는 점이다. 기업은 장부를 조작하고, 이를 감독해야 할 기관은 눈감아주었으며, 정부는 그 과정에서 그저 안일하게 대처함으로서 결과적으로 국제금융대란이라는 대악재를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1990년 이후 신흥 경제국들의 성장에 의해 거두어진 막대한 자금들이 미국의 금융시장으로 다시 흘러 들어간 뒤에, 그러한 자금들이 파생상품이라는 매개를 통해 결국 탐욕에 눈이 먼 미국의 기업들과 개인 그리고 정부 담당자들의 실체들을 여과 없이 보여줌으로 독자들에게 충격을 더해준다. 한편의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는 이 책의 내용에서처럼, 지금 전 세계가 겪고 있는 금융위기의 원인은, 결국 인문학적 성찰이 없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할 때, 향후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재앙으로 다가오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아 싶다. 미국에서 촉발된 금융위기의 그 여파는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현재까지 맹위를 떨치고 있는듯하며, 앞으로 어떤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것인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기반이 취약하고 해외의존도가 높은데다가, 물가불안과 정부와 가계부채 증가, 그리고 부동산 거품의 문제 등 시급히 해결해야할 경제적 현안에 대한 문제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심각한 경제상황을 두고 개개인의 이익만을 위한, 혹은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식의 이기주의적인 시각을 고집한다면, 지금까지 이루어 온 우리의 경제는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고 말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처럼 정부와 기업은 물론이고 개인 역시, 미국 금융위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이타적인 정신으로 오늘을 임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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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재구성 - 글로벌 경제위기 제2막의 도래
김광수경제연구소 지음 / 더팩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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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경제를 위축시키고 난 뒤, 이에 대해 세계 각국이 발 빠르게 경기부양책으로 대응하면서, 겉으로는 경제안정이라는 모습을 되찾은듯해 보이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이 현재 서서히 부각되면서 다시금 경기 침체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는듯해 보인다. 미국의 경우 경기부양을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지만, 이에 따른 재정적자와 부채의 증가로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등급이 하락되는 수모를 겪으며, 그나마 되살아나던 경기가 위축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유럽의 경우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각국은 과다한 부채의 규모와 재정적자가 주는 무게를 견뎌내지 못하고, 이제는 파산을 막기 위한 대응책에 골몰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현재의 불안한 경제상황을 두고, 일각에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이제 막장으로 치달으며 붕괴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심스런 예측들이 흘러나오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금 이를 해결할만한 대책은 과연 무엇이고 또한, 앞으로의 경제흐름이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 독자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특히 해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이 문제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관점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전후 상황을, 다시 한 번 심도 있게 되새겨 분석해보고, 이후 진행되어 왔던 세계 각국의 경제 동향들을 여러 지표들을 통해 면밀하게 검토하여, 이러한 경제위기를 자초한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더불어 현재의 시장경제가 어떠한 한계와 위기에 봉착해 있는지, 그리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떠한 대책들이 모색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향후 경제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는 유용한 도서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을 두고 여러 가지 분석과 주장들이 속속히 등장하고 있지만, 이 책은 그 중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주요 원인으로 들고 있다. 우선 미국 가계의 과다차입과 과소비 및 부동산 투기, 두 번째로 자유방임적 금융 자유화를 배경으로 한 증권화와 파생상품의 남발, 끝으로 달러 기축통화 유지를 위한 무리한 달러 강세정책의 으로 인한 대외 불균형의 심화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은 당면한 급박한 위기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막대한 공적자금의 투여해 기업의 도미노 파산을 막으면서, 한편으로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자 급속하게 냉각되는 실물 경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경기부양책을 실시해왔다. 그리고 이에 발맞추어 G20 정상회의를 통해 국제공조차원에서, 중국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 역시 대규모의 경기부양을 위한 엄청난 자금들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공적자금 투여와 부양책들은 그 효과를 크게 발휘하지 못하고, 각국 정부의 심각한 재정적자를 불러옴으로서, 미국은 물론이고 그리스를 중심으로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의 여러 나라가 파산의 위험에 몰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미국이 채무 급증으로 인한 유동성 문제가 불거지자 달러를 마구 찍어내면서, 세계적인 인플레를 유발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미국이 점점 늘어나는 공적채무와 대규모 실업과 연관한 적자재정으로 다른 어떤 대책이 없다고 판단하고, 달러의 약세를 유지하면서 내수를 통한 경기성장보다는 수출증대를 위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했던 정책의 방향성이 바뀐 것에 기인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세계 각국은 자국의 화폐가 절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저마다 환율 시장에 개입함으로서 이제는 국가 재정의 위기와 더불어 통화위기로까지 그 양상이 확대되는 추세를 보였고, 그러한 측면에서 달러의 약세로 인해 한편에서는 기축통화에 대한 신뢰도가 무너지면서, 새로운 기축통화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기도 하다. 결국 이 책은 2008년 시작된 금융위기가 부동산의 급격한 하락으로 실물 경제의 위기로 전이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실시했던 경기부양책이 재정위기와 통화 위기를 불러왔으며, 이러한 위기는 다시 악성적인 인플레 위기를 초래되고 있는 그 과정을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신용등급이 한 단계 내려가긴 했지만, 현재 미국의 경제 상황으로 볼 때, 여전히 고평가 되어 있다고 말하며, 앞으로도 특별한 대책이 있지 않는 한, 이와 같은 등급하락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한 독자들이 현재 불거지고 있는 유럽의 각국의 경제문제가, 어떠한 과정에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상세하게 확인해 볼 수 있어, 이에 대한 궁금증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 된다.

 

이 책은 서두에서 보듯 결론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앞으로도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하여 각국의 심각한 구조적인 대외 불균형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다각적인 노력들이 있어야 하며, 더불어 기축통화제의 모순이 해결되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더불어 금융시장을 포함한 자신경제 부분에 대한 규제가 적절한 수준으로 강화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세계 경제의 위기가 금융 시스템에 근본적인 문제점 외에, 시장경제의 원리를 무시한 잘못된 정책의 남발이나 정치권의 도덕적 해이와 같은, 이기주의와 탐욕을 버리지 못한 일부 사람들의 책임의식의 부족을 비판하고 있는 점은, 지금까지 진행되어 왔던 오늘 우리의 경제 정책들에 비추어 볼 때, 충분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다. 지금 세계경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여러 현안의 문제로 인해 벼랑 끝에 와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장기적인 침체가 예상되는 가운데 여러 대안들이 모색되고 있지만, 이를 해결할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다급하게 몰렸다고 하여 임기응변식의 대응은 지금까지의 변화 상황을 보아 더욱더 좋지 않은 상황만을 야기할 뿐이다. 따라서 현실을 직시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칙과 민주주의 기본 원리에 위배되지 않으면서, 근본적인 것부터 개선을 위한 자구적인 노력들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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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의 도시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신규호 지음 / 청어람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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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은 자신의 삶의 과정을 누군가가 대신할 수 없는 것이며, 오로지 자신 스스로가 만들어 가야하는 것이기에 인간은 고독한 존재라고 했다. 또한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은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표현에서, 인간은 자신만이 힘들고 외롭다는 느끼는 본능적인 심리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인간은 그러한 고통스런 고독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누군가와의 소통하기를 원하며, 가능하다면 기댈 수 있을 만큼의 지속적이기를 바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러나 고독은 우리가 회피한다고 회피되는 것이 아니며, 거부한다고 해서 그것이 가능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고독을 느낄 틈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독은 우리의 마음 한구석에 이미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우리가 체감하지 못하는 것일 뿐, 고독은 자기 자신의 성장을 위해 지금도 우리 마음의 일부를 조금씩 갉아 먹으며, 언젠가 불현듯 나타나 우리를 심연의 시간 속으로 빠트릴 기회를 엿보고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고독이 두려운 것은 그것이 언제나 외로움과 함께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독의 시간이 가능한 짧아지기를 원하며, 세상의 존재들과 친밀한 관계로 하루빨리 다시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우리는 고독과 친해질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고독이 주는 상념의 시간 동안 자신을 조금 더 성숙하게 하기 만들 수 있기에, 그리고 내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이 세상에 의미 있는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이유에서다.

 

작품 속 주인공은 사랑하는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그동안 미뤄왔던 청혼의 시간을 갖기 위해 반지와 케이크를 준비해놓고 기다리다 무심결에 잠이 들고 만다. 그리고 어느새 문득 깨어 자신이 홀로 세상에 남아 있음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눈에 익은 거리와 상점의 모습들 그리고 자신의 주변에 존재하던 모든 것은 예전 그대로 인데, 그 공간의 일부가 되었던 사람들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도, 그동안 자신을 키워준 자신의 부모도 그가 잠깐 잠이든 사이에 모두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당황스러워 말문을 잃었던 주인공은,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둘러보지만 사람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온데간데없다.

 

세상이 자신을 져버리고 다른 곳으로 옮겨간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가 세상을 외면하고 혼자 다른 곳에 와있는 것인지, 주인공은 이런 혼란을 차단하기 위해 행여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를 찾아 며칠 동안 외로운 방황 길에 나선다. 결국 자신 외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주인공은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불안감과 외로움에 좌절하고 과거의 추억들을 잠시 회상하며 자신을 달랜다. 그로부터 며칠 후 무료하고 허탈한 시간을 보내던 주인공은, 우연히 어둠을 걷는 누군가의 오묘한 발걸음 소리를 듣게 되고, 이를 찾아 추적에 나선다. 그리고 마주친 상대방의 얼굴이 다름 아닌 자신의 얼굴과 똑같다는 것을 알고, 왜 그 사람이 자신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인지를 두고 다시 정신적 혼란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에게서 뜻밖에 놀라운 사실을 전해 듣는다. 세상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당신이 세상 밖으로 나와 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지금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은 거짓된 자아에 의해 형성된 것이며, 그 틀에 현혹되어 머물지 말고 그러한 환상에서 깨어나 원래의 세상 속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이제 원래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문이 어디 있는지를 찾아 나선다.

 

이 작품은 주인공을 통해 현실과 과거 그리고 몽환적인 공간을 넘나들며, 우리가 어떻게 고독 속으로 침잠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에 때로 갈등하면서도 이에 안주하며 위로 받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미스터리적 요소를 곁들여 흥미 있게 그려내고 있어서 이채롭다. 물론 중반 이후의 내용에서 다소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있기는 해도, 가식적인 인간의 내면의 모습을 직시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나름 괜찮은 작품으로 여겨진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읽으면서 문득 느꼈던 것은,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찾아온 고독과 외로움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그 내면에 누구도 침범할 수 없고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자신만의 성을 굳게 쌓아 놓고 현실과 괴리된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리고는 그것이 마치 현실인 것처럼 착각하고 스스로를 합리화 하면서, 거짓된 자아가 만들어낸 가상에 잠시나마 의지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시대가 급속도로 변화되면서 현대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왜 세상에 존재하는지에 대해 스스로를 향한 성찰의 부족이다. 아무리 강한 척을 해도 자그마한 것 한 가지에 쉽게 무너지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따라서 물질의 편리와 풍요를 쫒는 것만큼이나, 자신의 정신적인 부분이 빈곤하지 않도록, 나름대로 의미 있는 무언가를 조금씩 채워가는 것에도 관심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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