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 250년 만에 쓰는 사도세자의 묘지명, 개정판
이덕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나온 역사의 사실을 통해서, 그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는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보다 진일보한 새로운 교훈을 배우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보다 중시해야 할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축적되었을 수도 있는 편협하고 주관적인 선입관에서 벗어나, 당시 역사의 내용을 시대상황에 맞추어 이를 다각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까지 교과서를 통해 배워왔던 많은 역사의 내용들에 대해, 그것이 과연 사실에 근거한 객관적인 자세에서 이를 바라보고 판단하려는 노력들은 생각만큼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일부 내용이 잘못 부풀려지거나 왜곡되어있음에도, 그것이 마치 진실인 것인 양 그릇된 인식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끔은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선왕조의 역사 중에서 비운의 삶을 살아간 많은 사람 가운데 한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사도세자가 아닐까 싶다.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하여, 당시 역사사료가 부족한 것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도 명확히 풀리지 않은 여러 의문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그러한 관점에서 그동안 사도세자의 죽음의 배경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에 대해, 그것이 여러 다각적인 차원에서 객관적으로 다루어지지 못하고, 사도세자의 어머니였던 혜경궁 홍씨가 지었다는 한중록에 주로 의존해왔던 형태에서 벗어나, 당시 시대상황의 흐름과 여러 역사자료를 토대로 하여, 사도세자의 죽음의 이면에 가려진 그 진실이 무엇인지를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보고자 했다. 따라서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은 사도세자의 탄생에서부터 뒤주에 갇혀 비참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항들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이 책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두고 영조실록을 비롯한 여러 역사서와 한중록에 기록된 내용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영조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고 신뢰했던 아들을 왜 죽음으로 몰고 갈 수밖에 없었는지, 또한 사도세자가 당시 기득권층과 맞서며 정작 자신은 권력과 연관하여 무엇을 이루려고 했는지를 독자들이 나름대로 가늠해볼 수 있는 유용한 역사서라는 생각이다.

 

조선왕조의 역사기록에 따르면 사도세자는, 1735년(영조 11)에 태어나서 1762년(영조 39), 28세를 끝으로 뒤주에 갇히면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안타까운 삶을 마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조는 자신의 장남이자 숙종의 첫 손자였던 효장세자가 불과 10세이 어린나이에 갑자기 병으로 죽고 난 뒤, 자신의 뒤를 이을 권력승계의 문제를 두고 깊은 시름에 빠져 있다가, 뒤늦게 사도세자의 얻음으로서 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기를 바래왔다. 그렇지만 그는 당시 노론과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자유롭지 못하면서, 결국 자신의 아들을 끝내 믿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으로 남아있다. 그렇다면 영조는 왜 자신의 아들 사도세자를 죽여야만 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일들이 있었을까. 이 책에 의하면 우선 저자는 혜경궁 홍씨가 자필로 기록했다는 한중록의 내용을 빌어 사도세자의 직접적인 죽음의 원인이, 영조가 자식들을 병적으로 편애하면서 그 결과로 사도세자의 정신병이 심화되었다는 것에 깊은 의구심을 나타낸다. 그러면서 저자는 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게 원인에 대해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단초는 영조가 왕으로 등극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무수리 출신의 천한 신분이었다는 것과,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위해 그가 본의 아니게 경종 독살설에 자유롭지 못하면서 왕으로서 그 태생적 한계와, 영조가 사도세자를 대리청정 하는 가운데 세자가 노론을 멀리하고 소론을 가까이하면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노론의 심한 견제가, 결국 그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 이 책에서 사도세자의 죽음과 연관하여 한중록의 내용이 당시 여러 역사자료와 비교하여, 실제 사실과는 다른 상당히 편협하고 주관적인 견해에서 기록되었음이 명확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마치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을 반박하면서, 사도세자의 직접적인 죽음을 몰고 갔던 당시의 주동 세력이 노론이었고, 그 중심에 혜경궁 홍씨 자신은 물론이고 그녀의 아버지 홍봉한과 그 일가친척이 깊이 관여되어 있음을 자료에 근거해 이를 논리적으로 밝혀내고 있다. 결국 영조는 탕평책이라는 정책을 고수하면서 다양하고 폭넓은 인재등용을 위한 노력을 했지만, 자신의 왕조 등극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던 노론의 입김에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으며, 사도세자가 죽기 전까지 자신의 주변에 가까이 했던 인물들이 주로 소론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세자를 죽음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져가면서까지 변호했던 것을 감안할 때, 한중록의 내용은 이러한 사실들을 빠트리거나 왜곡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같은 사안을 두고 기록된 일부의 내용에서 보면 한중록과 영조실록과도 상이한 부분이 있는데다가, 특히 혜경궁 홍씨가 한중록을 통해 사도세자의 죽음을 정치적인 배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줄곧 정신병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점도 수긍할 수 없는 부분임을 지적한다. 또한 사도세자가 죽기 전에 그가 행했던 다소 이해하기 힘든 비행의 내용도 단지 정신병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시시각각으로 죄어 오는 노론의 압력과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사도세자가 자구책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의 서두에서 역사학의 기초는 사료의 비판에 있다고 말하면서,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도 바로 이런 바탕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의 내용이 모두 거짓이라고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독자들이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하지 못하고, 마치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인식하는 시각도 결코 역사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은 아니라고 본다. 사도세자의 죽음에 직간접적인 원인은 당시 여러 정황상으로 볼 때, 당시 권력의 실세였던 노론과 상당부분 연관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한중록을 지은 혜경궁 홍씨가 다름 아닌 노론이었다는 점은, 저자의 주장에서 보듯 한중록의 내용은 가해자의 기록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은, 독자의 입장에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따라서 가해자의 생각이나 의견을 가지고 다른 의견은 모두 배제한 채, 그것을 진실이라고 주장한다면 당연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밖에 볼 수 없으며 더구나 공감을 얻기에는 불충분해 보이지 않을까 싶다. 조선시대는 왕권보다는 신권이 강했던 시대다. 그래서 조선 왕조의 600년 역사는 수많은 당파싸움이 진행되어 왔고, 그 과정에서 사도세자와 같은 억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역사의 내용에 대한 그 진위가 무엇인지 제대로 밝히려는 노력이 없다면 앞으로도 이러한 과정은 계속될 것으로 본다. 고작 28세의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했던 사도세자는, 왕세자로서 자신의 정치적인 꿈을 채 이루지도 못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지금에까지 이르러 그의 죽음이 한낮 의혹에 머무르게 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책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그의 죽음에 원인이 과연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좋은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