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의 초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양억관 옮김 / 이상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범죄들이 저질러진다. 대형사건인 경우에는 대개 언론보도를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져, 그 사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면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지만, 그 외의 대부분의 사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히 과거 속으로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우리 사회 내부에 현재 어떤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어느 나라든 간에 사법적인 제도가 아무리 잘 갖추어져 있고, 사회 안전망에 대한 것이 잘 구축되어 있다하더라도,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도덕적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다면, 혹은 불합리하거나 불평등적인 사회 제도적 요소들이 제거되지 않고 존치되어 있을 때, 그 사회가 정상적으로 유지되기는 아마 힘들 것이다. 따라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발생되는 많은 범죄들에 대해, 우리가 단지 가십거리로만 생각하고 단순하게 넘겨버릴 것만이 아니라, 그런 문제들의 원인이 과연 어디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 문제는 없는지를 한 번쯤은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이 작품은 일본이 세계대전 중 연합군에 의해 패하고, 미군 점령기에 접어들면서 그 과정에서의 복잡한 사회 변화 과정을 거쳐야 했던, 1950년대 후반의 북쪽지방 설국의 아름다운 배경을 삼아, 사건의 중심인물이 어느 날 감촉같이 사라지는 실종사태가 벌어지고, 이후 이와 관련한 주변 인물들의 연이은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 미스터리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작품을 통해, 당시 패전 국가로서 일본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점령군의 이질적인 문화가 유입되면서, 자국의 전통적인 가치관이 무너지고 새롭게 변화해가는 당시 일본 사회상의 단면을 잠깐이나마 엿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이 작품과 관련하여 일본의 사회가 그러했던 것과 같이,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 역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유사한 경험을 했던 것으로 볼 때, 독자들이 작품의 내용에서 어느 정도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0대 중반의 여성인 주인공 데이코는, 가까운 인척의 중매로 자신보다 10살이 넘는 광고회사의 중견 간부로 있는 남자를 만나 오랜 교제 없이 서둘러 결혼을 하게 된다. 그녀의 남편은 원래 결혼 전 북쪽지방에 있는 지점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결혼을 기점으로 도쿄의 본사로 새로이 발령을 받은 상태였고, 신혼여행을 갔다 온 이후로 지점의 후임을 위해 회사의 업무 인수인계를 이유로 잠시 일주일 정도의 출장을 떠난다. 그러나 돌아온다는 예정기일이 지났음에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고, 데이코 자신은 물론 회사에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무런 연락을 취해오지 않는다. 그녀는 결혼에서 신혼여행기간 동안, 자신을 향한 남편의 여러 행동에서 부부로서의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확신하고 있었기에, 남편의 묘연한 행방불명 소식에 의문을 안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직접 찾아 나서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남편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한편 남편의 행방불명 소식을 듣고 함께 찾아 나섰던 남편의 친형과, 남편의 후임자였던 직원이 누군가에 의해 연쇄적으로 타살되었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주변 인물들의 여러 증언으로 볼 때, 그가 누군가로부터 원한을 살만한 일을 하지 않았고, 회사의 업무에 충실하며 성실한 생활 자세로 임했던 것으로 보아, 남편의 급작스런 실종의 원인이 무엇일지를 두고 점점 혼란스러움에 빠지기 시작한다. 남편이 남긴 특별한 흔적이 없는 상태에서, 주변 인물들이 하나 둘씩 의문의 죽음으로 사라져 가는 가운데, 실종 사건에 대한 해결에 대한 실마리를 그녀는 과연 어디에서부터 강구해야 하는 것일까.

 

이 작품은 한 사람의 실종을 토대로 연이은 살해의 과정을, 당시 사회의 부조리 문제와 연관시킴으로서 당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깊이 들여다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작품의 전개를 통해 치밀한 설정으로, 독자들에게 사건의 핵심이 무엇인지 분간하기 힘든 미스터리의 요소를 극대화하고 있는 점은 이채롭게 느껴지지 않나 싶다. 그러나 특이할만한 스릴이나 공포의 요소가 거의 없는데다가, 주인공에 의해 사건에 대한 다양한 가설적 논리들이 중첩되고 있어서, 중반 이후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독자들이 이 작품을 통해 주목해 볼만한 것은, 사건의 내용을 통해 우리가 은연 중 놓치고 있는 불합리한 사회 현상의 일부분을 곰곰이 상기시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매년 많은 추리소설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 사회파 추리소설은 우리사회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여러 사회 부조리한 문제들에 대해, 편향적이고 왜곡된 인식에서 벗어나 폭넓은 시각으로 그 본질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사안들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어, 고질적인 우리 사회 병폐의 문제점들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이 관심을 두어볼 만하다. 물론 이러한 추리장르가 본격적인 추리의 요소를 중시하기보다는, 작품을 통해 작가가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에 중점을 두고 있어서 일부 독자들에게는 다소 거부감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가끔은 이런 작품을 통해 범죄라는 것을 어느 특정인의 문제로 다가서기 보다는,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 들여다보고 이를 계기로 우리 자신 스스로를 성찰해보는 좋은 기회로 삼아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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