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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의 도시 ㅣ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신규호 지음 / 청어람 / 2011년 11월
평점 :
법정스님은 자신의 삶의 과정을 누군가가 대신할 수 없는 것이며, 오로지 자신 스스로가 만들어 가야하는 것이기에 인간은 고독한 존재라고 했다. 또한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은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표현에서, 인간은 자신만이 힘들고 외롭다는 느끼는 본능적인 심리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인간은 그러한 고통스런 고독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누군가와의 소통하기를 원하며, 가능하다면 기댈 수 있을 만큼의 지속적이기를 바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러나 고독은 우리가 회피한다고 회피되는 것이 아니며, 거부한다고 해서 그것이 가능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고독을 느낄 틈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독은 우리의 마음 한구석에 이미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우리가 체감하지 못하는 것일 뿐, 고독은 자기 자신의 성장을 위해 지금도 우리 마음의 일부를 조금씩 갉아 먹으며, 언젠가 불현듯 나타나 우리를 심연의 시간 속으로 빠트릴 기회를 엿보고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고독이 두려운 것은 그것이 언제나 외로움과 함께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독의 시간이 가능한 짧아지기를 원하며, 세상의 존재들과 친밀한 관계로 하루빨리 다시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우리는 고독과 친해질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고독이 주는 상념의 시간 동안 자신을 조금 더 성숙하게 하기 만들 수 있기에, 그리고 내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이 세상에 의미 있는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이유에서다.
작품 속 주인공은 사랑하는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그동안 미뤄왔던 청혼의 시간을 갖기 위해 반지와 케이크를 준비해놓고 기다리다 무심결에 잠이 들고 만다. 그리고 어느새 문득 깨어 자신이 홀로 세상에 남아 있음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눈에 익은 거리와 상점의 모습들 그리고 자신의 주변에 존재하던 모든 것은 예전 그대로 인데, 그 공간의 일부가 되었던 사람들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도, 그동안 자신을 키워준 자신의 부모도 그가 잠깐 잠이든 사이에 모두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당황스러워 말문을 잃었던 주인공은,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둘러보지만 사람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온데간데없다.
세상이 자신을 져버리고 다른 곳으로 옮겨간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가 세상을 외면하고 혼자 다른 곳에 와있는 것인지, 주인공은 이런 혼란을 차단하기 위해 행여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를 찾아 며칠 동안 외로운 방황 길에 나선다. 결국 자신 외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주인공은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불안감과 외로움에 좌절하고 과거의 추억들을 잠시 회상하며 자신을 달랜다. 그로부터 며칠 후 무료하고 허탈한 시간을 보내던 주인공은, 우연히 어둠을 걷는 누군가의 오묘한 발걸음 소리를 듣게 되고, 이를 찾아 추적에 나선다. 그리고 마주친 상대방의 얼굴이 다름 아닌 자신의 얼굴과 똑같다는 것을 알고, 왜 그 사람이 자신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인지를 두고 다시 정신적 혼란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에게서 뜻밖에 놀라운 사실을 전해 듣는다. 세상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당신이 세상 밖으로 나와 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지금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은 거짓된 자아에 의해 형성된 것이며, 그 틀에 현혹되어 머물지 말고 그러한 환상에서 깨어나 원래의 세상 속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이제 원래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문이 어디 있는지를 찾아 나선다.
이 작품은 주인공을 통해 현실과 과거 그리고 몽환적인 공간을 넘나들며, 우리가 어떻게 고독 속으로 침잠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에 때로 갈등하면서도 이에 안주하며 위로 받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미스터리적 요소를 곁들여 흥미 있게 그려내고 있어서 이채롭다. 물론 중반 이후의 내용에서 다소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있기는 해도, 가식적인 인간의 내면의 모습을 직시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나름 괜찮은 작품으로 여겨진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읽으면서 문득 느꼈던 것은,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찾아온 고독과 외로움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그 내면에 누구도 침범할 수 없고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자신만의 성을 굳게 쌓아 놓고 현실과 괴리된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리고는 그것이 마치 현실인 것처럼 착각하고 스스로를 합리화 하면서, 거짓된 자아가 만들어낸 가상에 잠시나마 의지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시대가 급속도로 변화되면서 현대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왜 세상에 존재하는지에 대해 스스로를 향한 성찰의 부족이다. 아무리 강한 척을 해도 자그마한 것 한 가지에 쉽게 무너지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따라서 물질의 편리와 풍요를 쫒는 것만큼이나, 자신의 정신적인 부분이 빈곤하지 않도록, 나름대로 의미 있는 무언가를 조금씩 채워가는 것에도 관심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