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 - 제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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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흔히 사용하는 말들 중에 만약에 라는 말이 있다. 이랬다면 혹은 저랬다면 하는 식의 가상적인 구성과 전개를 통해 실제와는 다른 결과를 예상해보는 식의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상당히 의미 없는 말처럼 보이기는 해도, 다양한 상상의 가능성을 유추해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또 그로 인해 색다른 결론과 결과물을 얻어낼 수도 있어서 그저 마냥 쓸데없다고 치부하기에는 조금 애매모호함이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이 부분과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져 있을지 괜한 호기심과 함께 흥미롭고 관심 있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역사 팩션에 관한 것이다. 물론 과도한 역사왜곡이 의심되는 경우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그동안 많은 역사 팩션을 읽어온 것은 아니지만, 이와 같은 부류의 책을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 중 하나를 꼽는다면, 전반적인 줄거리 전개에 따른 상당한 흡인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번 제3회 혼불 문학상을 수상한 이 작품을 읽으면서, 책을 읽는 내내 다음 페이지는 과연 어떤 내용이 펼쳐져 있을까 하는 기대감과, 팩션이 주는 색다른 묘미를 한껏 즐길 수 있었던 좋은 작품으로 기억 된다. 따라서 문학에 관심을 두고 있는 독자들이 있다면, 관심을 가지고 한번 주목해볼만 하지 않나 싶다.


이 작품은 비행기 안에서 우연한 만남을 하게 되는 두 남녀의 이야기로 시작 된다. 그리고 이들의 만남을 바탕으로 하여, 이야기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 붕당정치가 시작 되었던, 조선 선조 때의 정여립의 모반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폭 넓은 서사구조로 이루면서 흥미롭게 전개되어 진다. 작품 속 내용을 보면, 정여립의 외손녀 홍도라는 가상적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워, 그녀의 지나온 과거사를 회고하는 형식의 흐름으로 전개되는데, 그 범위가 상당히 확대되어 있음에도 매끄러운 구성과 놀라운 흡입력으로, 독자로 하여금 눈을 떼게 하지 못하는 매혹적인 끌림이 있다. 현실과 과거를 교차하며 흥미롭게 펼쳐지는 이 작품에서 우선 눈길을 끌었던 것은, 정여립이란 인물을 등장시켜 이를 모티프로 삼았다는 점이다. 정여립은 당시 황해감사였던 한준이 올린 비밀 장계를 빌미로 역모를 꾸몄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죽임을 당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정말 역성혁명을 일으켜 권력을 획책하려 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사료의 실제적인 내용이 없어, 아직까지도 그의 죽음에 대해 풀리지 않는 의문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이러한 점을 미루어 볼 때, 정여립은 어찌 보면 당시 당리당략에 따른 모함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인물로 추측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전체적인 줄거리를 읽다보면 이 작품의 이면에, 한 가지 깊게 베여 있는 뚜렷한 정서 하나를 발견할 수 있는데, 우리만의 고유한 민족의 애환이라 할 수 있는 ‘한’이 바로 그것이다. 작품 속에서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모함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끓게 되는 정여립의 가슴에 맺힌 ‘한’은 고스란히 주인공 홍도에게로 옮겨지고, 또한 그녀가 걸어왔던 고단한 삶의 여정에 닮긴 ‘한’의 모습은 은연중 또다시 독자의 마음속으로 전해지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눈에 띠는 몇 가지를 살펴보자면, 먼저 겉으로 확연히 드러나는 아름다운 우리 한글의 표현력을 들 수 있겠다. 이 작품에는 미디어를 통한 영상물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섬세하면서도 독자의 가슴을 절절하게 만드는 독특하고 수려한 문장들을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데, 이 점은 우리의 정서와도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어서 작품 내용의 이해와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크게 한 몫을 하고 있지 않나 싶다. 또 한 가지는 전개되는 줄거리 속으로 독자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굉장한 흡입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연유로 독자로 하여금 책을 읽는 즐거움을 맛보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하겠다.


물론 이 작품을 읽다보면 논리적 비약이라든지 작위적으로 보이는 우연의 일치가 너무 자주 등장한다는 것, 그리고 한편으로 통속적인 느낌이 들게 하는 아쉬운 부분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대중적인 흥미의 요소들을 작품 속에 적절하게 구성하고 녹여내어, 독자들이 즐겨 읽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대단한 역사팩션을 품어낸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더불어 그 기저에 우리의 민족적 정서중 하나인 ‘한’의 이미지를, 작품 속 주인공 홍도의 고단한 삶에 견주어 비장하면서도 애절하게 담아내어, 치유되지 못한 과거 우리 선조들의 아픔의 상처들을, 오늘날 다시금 되살펴 보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 작품이 애초 가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라는 것을 인식했음에도, 왠지 주인공이 겪었던 일들이 마치 실제 일이었던 것처럼 생생하게 읽혀지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감정이 메말라 있던 탓은 아니었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또 한 페이지가 남아 있기를 바랐을 정도로, 오랜만에 강한 흡인력을 지닌 작품을 감상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따라서 앞으로도 이러한 문학작품들이 종종 나왔으면 싶고, 이와 같은 작품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즐거운 독서의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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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식탁 - 우리는 식탁 앞에서 하루 세 번 배신당한다
마이클 모스 지음, 최가영 옮김 / 명진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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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경제성장에 따른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지면서, 여러 부분에서 과거와 달리 양보다 질을 더 중요시 하는 시대로 변모되었다. 그 중에서도 우리의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의식주의 경우는, 생존의 문제와 맞닿아 있어서, 다른 무엇보다 우선하여 고려될 사항이다. 그런데 이 안에서도 우선순위는 있다. 사실 옷이나 주택은 사실 조금 허름하고 초라해도 살아가는데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먹는 문제의 경우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부족하게 섭취하면 영양결핍에 시달리게 되고, 그렇다고 많이 먹게 되면 비만이 되어 건강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언제나 신경 써야 하는 중요한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음식이 풍부하지 못했던 과거의 시절에는 영양결핍의 문제가 심각했었다. 그래서 그때는 비만은 고사하고 충분한 음식을 먹지 못해 굶어 죽는 일들이 종종 있었지만, 오늘날처럼 경제가 뒷받침 되는 현실은, 그와는 반대로 많이 섭취함으로서 생기는 과식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우리사회에 불기 시작한 다이어트의 열풍은 최근까지도 쉽게 꺼질 줄을 모르고, 심지어 그로 인해 적잖은 폐해를 낳고 있어 사회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는듯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과식의 문제는 어디에서부터 기인하는 것일까. 스스로의 의지로 음식물을 먹었으니, 물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직접 짊어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문제는 누군가가 우리로 하여금 과식을 고의로 부추기고 있다면, 이점은 분명 지적되어야 마땅할 것이며, 또한 과식으로 인해 생기는 사회적 비용의 책임에 이들도 적극 동참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오늘날 과식의 증가는 물론이고 이것이 성인병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사회적 문제의 중심에, 식품가공업자들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밝히면서, 3년 반 동안의 세밀한 조사를 거쳐 사실에 근거한 심층적인 내용을 토대로, 그들의 비도덕적이고 비양심적인 행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함으로서, 우리 사회에 커다란 경종을 울리고자 했다. 최근 미국의 연구 조사 자료에 의하면, 미국 성인의 절반 이상이 과체중이며 전체 인구의 4분의 1 가량이 비만으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할까.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30%는 현재 이미 비만인 상태이며, 이는 해를 거듭할수록 점차 증가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특히 그 영양섭취의 세부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소금은 권장섭취량에 비해 실제 섭취량이 상당히 높게 나타나고 있어서, 우려할만한 것으로 시급한 대책이 있어야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문제가 비단 이것뿐이겠는가. 매일 먹는 세끼의 식사 외에, 우리들이 흔히 간식으로 먹게 되는 스낵류와, 탄산음료, 그리고 패스트푸드의 경우, 단 한 끼의 음식 안에 소금뿐만 아니라 하루의 권장 섭취량에 가까운 다량의 설탕과 지방이 포함되어 있음을 감안하면, 우리의 신체 영양 상태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만큼,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과식의 문제를 단순히 비만의 문제로만 한정해서 보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 중 누군가는 몸이 조금 뚱뚱해졌다고 해서 이것이 무슨 대수냐며 운동량을 조금 늘리면 되지, 하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과식으로 인해 음식물 속에 들어 있는 설탕, 지방, 소금의 대량 섭취의 문제를 너무 쉽게 간과해서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최근 성인들은 물론이고 청소년들에게까지 부쩍 늘어나고 있는 당뇨나, 심장질환, 고혈압과 같은 성인병 증가의 원인에, 바로 이러한 재료들과 직접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의학적으로 밝혀졌다. 책에 따르면 식품가공업자들은 소비자의 미각을 자극하는 새로운 맛을 개발하는데, 엄청난 돈을 투자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맛은 다름 아닌, 한 개의 제품에 하루 권장량에 가까운 다량의 설탕과 소금을 이용한 적절한 배합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의학적인 측면에서 많은 전문가들은 인간은 설탕이나 소금의 섭취로 희열을 느낄 만큼 식욕을 증진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지방 역시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중독현상을 일으킬 만큼, 가공할만한 위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기에 식품가공업자들은 그들의 제품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소비자의 식욕을 자극하는, 다량의 설탕과 소금 그리고 지방을 투입하게 되는 것이며, 그러한 배경을 모르는 소비자는 그러한 제품의 맛에 길들여져 적극적인 소비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흔히 TV를 통해서 보게 되는 가공식품의 광고 중, 최근 들어 저 지방, 저 설탕이 들어간 식품광고들을 우리들은 한번쯤 보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제품들을 모두 신뢰할 수는 없지만, 여하튼 그나마 우리의 건강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려는 이런 종류의 제품들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 가공식품의 위험성을 인지했던 일부소비자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담배와 마약이 우리 몸에 해가 된다는 점은 알면서도, 가공식품이 주는 위해성을 알고 있는 소비자들은 여전히 미미한 실정이다. 또한 식품의 판매 이전에 영양을 먼저 고려해야 할 식품가공업자들이, 단지 그들의 수익만을 우선하여, 소비자의 건강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이것 역시 사회적으로 지탄받아야 할 일이 아니까 싶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 가공식품의 발달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가공식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그 세밀한 부분을 알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 책은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가공식품의 본질을 여과 없이 밝혀내어, 무심코 이를 구입하여 섭취하는 소비자의 행태에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그래서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봐야 할 유익한 도서로 생각된다. 건강을 잃고 난 뒤의 후회는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다. 그리고 건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따라서 만약 지금 이 순간 당신이 무언가를 먹고 있다면, 그것을 먹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살펴봄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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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이 예쁜 코리안 - 독일인 한국학자의 50년 한국 문화 탐색
베르너 사세 지음, 김현경 옮김 / 학고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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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선 외국인이 우리 중 누군가에게 문득 ‘가장 한국적인 것이 어떤 것이냐’ 라고 질문을 한다면 당신은 과연 무엇이라고 답을 말해줄 것인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몇 가지를 적어 본다면, 한글, 한복, 김치 등과 같은 내용이 될듯하다. 그렇다면 왜 우리의 많고 많은 전통문화유산 중에 이러한 문화들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며, 외국인들에게 떳떳하게 소개할 만큼의, 우리들은 과연 이러한 문화들을 소중하게 아끼며 사랑하고 있는 그 대상이 되는 것일까. 통상적으로 문화란, 어느 특정한 사회나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정신적 가치 체계의 표현이며 생활방식을 말한다. 그리고 문화는 그 자체로 고정불변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시대의 흐름에 따른 당시 사회 상황에 의해, 지속적으로 변화해가게 마련이다. 따라서 한 국가의 사회가 발전해가고 있다는 의미는, 단순히 경제적인 성장을 말하는 것이 아닌, 구체화 된 다양한 문화가 서로 공존하면서 각 구성원들에 의해 활성화 되어간다는 것을 뜻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외부와 차단된 채 고립된 상태에서, 다방면적인 문화의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 그 사회의 향후 미래를 결코 전망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내가 혹은 바로 당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전반적으로 대변해주고 있는 우리만의 고유문화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그 내용에 있어 다른 나라들이 보유한 문화들 이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장점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근대사를 넘어 현대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많은 전통문화들 중의 일부는 왜곡되거나 폄훼되어 이제는 거의 사장되다시피 한 문화도 있으며, 어떤 것들은 심하게 변질되어 이상한 형태의 것으로 탈바꿈되어버린 것도 있다. 이를테면 편리성만을 강조함에 따라 전통한옥이 사라진 우리의 아파트 문화가 그러하고, 어른을 공경하고 개인을 존중하는 만큼이나 타인을 생각하는 이웃문화, 한글의 우수함을 말하면서도 정작 그 사용에 있어 소홀해지는 행태들에서,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아도 이러한 예는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면 오늘날 이러한 우리의 훌륭하고 아름다운 고유문화의 변화과정을 외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독일인으로 태어나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관심으로, 이제는 남은여생을 한국에서 보내고 있는 어느 이방인 학자의 시각으로 본, 우리 문화의 과거와 현재를 다양한 관점에서 폭넓게 다루고 있어서 독자의 관심을 이끈다.


저자는 우선 오늘날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불거지고 있는 전통문화의 위기현상에 대해, 이는 불과 반세기라는 짧은 기간 동안, 근대로부터 현대사회로의 급격하게 이루어진 과정에서 으레 발생하는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 문화와 관련해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가고 있는 점은 유의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국의 가치 있는 문화를 보존하고, 또한 문화강국으로서의 면모를 해외에 널리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점은, 당면한 문화의 현실과 더불어 문화의 개념을 우리가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 문화의 얼굴로 대표할 수 있는 것으로, 자연친화적이면서도 실용적인 한옥이나 정자와 같은 건축물 외에 김치와 한복 등을 꼽았으며, 부수적으로 독창적이며 획기적인 우수함을 자랑하는 한글을 포함해, 한국의 보헤미안이라고 할 수 있는 선비사상, 그리고 민중과 함께하며 국가의 안위를 우선으로 했던 불교의 문화 등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우리의 훌륭한 전통문화유산들이, 오늘날 자국민들에 의해 제대로 된 평가와 관심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다분히 외부에 보여주기 위해 형식적으로 취급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지구촌의 각 나라마다 제각기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들이 존재한다. 이중 일부의 문화들은 교류를 통해 근접한 이웃의 여러 나라로 전파되고, 문화를 유입한 나라들은 다시 그들만의 정서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로 다시 재창조된다. 우리의 문화들 역시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은, 이렇게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전해 내려온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해 홀대하거나 무관심한 모습을 보여서는 결코 안 된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 한편으로 심히 부끄러웠던 점도, 바로 그와 같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국의 문화를 우월하게만 생각하는 배타주의나 국수주의도 경계해야겠지만, 반대로 스스로가 자국의 전통문화에 대해 너무 안일한 생각으로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외부 문화유입에 몰입하여 자신도 모르게 문화 사대주의에 휩쓸려 지금 갈팡질팡 하고 있는지를, 어쩌면 우리는 이쯤에서 한번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최근 한류 열풍이 동남아를 넘어 유럽에까지 번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를 마냥 기뻐해야 할 일만도 아닌 것은, 한복의 아름다움과 실용적인 면을 강조하며 해외에 알리는 노력을 하면서도, 정작 우리 스스로는 한복을 애용하지 않는 오늘 우리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고, 과연 외국인들이 우호적인 평가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따라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남을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먼저 우리의 문화에 대한 애착과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외국인들 역시 이와 마찬가지 일 것이라는 점을, 우리가 깊이 인식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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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둥이 야만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프랑수아 가르드 지음, 성귀수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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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리얼 프로그램 중, 문명의 혜택이 없는 상당히 동떨어진 오지의 장소를 선택하여, 그곳에서 눈물겨운 생존의 현장을 보여주는, 예능형식의 방송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한때는 설정에 의한 조작이니 하는 문제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그것이야 어찌됐던 이 프로그램이 많은 사람들의 눈에 강하게 어필되었던 주된 이유는, 자연의 상태에 가장 가까운 야만적인 환경에서, 과연 문명인이 살아간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에 관한, 궁금함과 호기심이 비롯된 때문은 아닐까 싶다. 또한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모험 항해를 떠나, 난파로 인해 표류하다 우연하게 무인도에서 생활을 하게 되는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가, 여전히 지금까지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것도 아마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이런 이야기들은 어디까지나 방송이나 소설적인 이야기에 불과하지,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간주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우리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이와 같이 믿기지 않는 일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어보기를 선택했던 가장 큰 이유도, 이 작품이 비록 겉으로는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리기는 했으나, 작품 속에 전개된 전반적인 줄거리의 내용이, 상상 속의 허구적인 것이 아닌, 한 남자가 실제로 경험했던 실화가 그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이 작품은 오늘날 호주가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던 19세기 중반 무렵을 배경으로, 발견될 당시 흰둥이 야만인으로 명명된 나르시스 펠티에라는 한남자의 이야기를 사실감 있고도 흥미롭게 담아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주인공은 불과 15살의 어린 나이에 견습생 선원이 되어 일하게 되면서, 어느 날 항해도중 심한 풍랑을 만나 동료 선원들과 부족한 식수를 구하기 위해 잠시 머물게 되었던, 지금의 호주 북부 퀸즈랜드 부근에 홀로 남겨지고 만다. 이후 그는 실종 처리되어진 상태로 18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그곳의 원주민이었던 이름 모를 부족사람들과 함께 기거하며 생활하게 되면서, 그 동안 익숙했던 자신의 지난 문명의 흔적을 서서히 지워가며, 야만인으로서의 새로운 탈바꿈을 하기에 이른다.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바뀌어 버린 그곳에서, 그는 생존의 몸부림을 치며 마침내는 자신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과거 자신의 기억까지도 송두리 채 빼앗기면서 원시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다가, 그가 실종되었던 그때 그 장소에 우연히 정박하게 되었던 영국 선박에 의해 구조된다. 그리고 숙명처럼 그가 태어나고 자랐던 프랑스로 돌아오게 되면서 이제는 거꾸로 야만의 모습을 벗어야 하는 낮선 문명의 세상에 다시 맞닥트리게 된다.


편지 형식의 이야기로 구성된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뚜렷한 두 가지의 특징을 볼 수 있다. 그 한 가지는 주인공 외에 또 한명의 중요한 인물이 되는 발롬브룅이라는 지리학자를 등장시켜,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해 야만의 굴레 속에 남겨져야 했고, 어렵게 문명의 세계로 돌아오게 된 펠티에를 위해 새로운 삶을 위한 헌신적인 노력을 보여줌으로서, 작품 속 휴머니즘의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도록 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감동의 묘미를 느낄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야만과 문명의 세계를 넘나든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문명의 이기주의에 익숙해져 무덤덤해진 오늘 우리의 비인간적인 행태의 현실을 은연 중 꼬집어 냄과 동시에, 윤리의식과 도덕적 가치관의 부재를 새삼 다시 깨닫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내용의 전개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혀졌던 부분은, 주인공이 겪게 되는 이질적인 환경과 맞물려 점차 변화 되어가는 그의 심리적 묘사 부분이다. 이는 독백과 방백을 통해 현장감 있는 서술을 통해, 마치 독자가 주인공이 되어버린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들 정도로 섬세하고 치밀하게 그려져 있어, 한편 공감이 가면서도 이채롭게 느껴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 사람의 내면에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해야 하는 상황, 이러한 경험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간혹 생기는 일이다. 이 두 개의 세상은 거의 모든 것이 이질적이며 결코 어느 한쪽으로 흡수되어 온전한 하나의 객체가 될 수 없는 불가피한 영역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숙명처럼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고 그에 알맞게 적응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과정에서, 어느 날 문득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반대쪽의 삶을 강요받거나 강제되어 살아가야 한다면, 우리는 과연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 것인가. 물론 다양한 선택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독하게 걸린 트라우마의 증상이 평생을 두고 쉽게 극복되지 않는 것처럼, 작품 속에 그려지는 주인공의 모습과 우리의 그것은 별 차이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가 문명인이라고 해서 혹시 야만인과는 모든 것이 우월하고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지나친 착각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러한 생각은 문명의 혜택에 힘입은 우리의 오만과 만용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따라서 이 작품이 독자들에게 단순한 소설적 흥미이외에, 인문학적 가치의 소중함과 필요성을 담은 관점에서 읽혀진다면, 기대 이상의 충분한 만족도를 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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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 강의 - 중국 최초 통일제국을 건설한 진시황과 그의 제국 이야기
왕리췬 지음, 홍순도 외 옮김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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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초의 황제로 알려지고 있는 진시황은, 중국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죽은 이래로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에 관한 이야기는 영화나 오페라를 포함하여 각종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진시황의 정치 생애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말하기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혹세무민의 대표적인 군주로 간주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그가 이루어 낸 긍정적인 정치의 성과들이 점차 후대로 내려오면서, 다소 왜곡되거나 축소되어 있다고 보고, 이제는 재평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시황이 황제로 등극을 한 후, 30년이 넘는 재임기간 동안 수 없이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그 중에는 물론 긍정적인 일들이 있을 것이고 반대로 부정적인 일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 속 사건이든 인물이든 이를 평가함에 있어 분명이 해야 할 것은, 역사적 실제 사료에 근거한 사실을 위주로, 깊이 있고 객관적인 방향에서 이를 살펴봐야 한다는 점이다. 이 책은 진시황을 중심으로, 그 전후 시대 상황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아냈다. 특히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 진나라가 건설되는 과정에서부터, 이후 유방과 항우에 의해 멸망되는 순간까지, 중국 고대 문헌들을 바탕으로, 비교적 상세하고 쉬운 설명을 통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어서, 진시황은 물론이고 혼란스러웠던 중국 초기 역사의 내부를, 객관적으로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우선 진시황과 관련하여 시대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서술되어 있다. 진시황의 선조였던 목공이라는 걸출한 군주의 등장으로, 진나라가 중원의 제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효공 때에 이르러 상앙이 건의한 변법을 강력하게 추진하여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는 초기의 과정, 이어서 한나라를 시작으로 나머지 6개 나라를, 하나 둘씩 점령하여 마침내 통일의 대업을 이루게 되는 시기, 끝으로 통일 후 진시황이 사회제도와 정치개혁을 실시해 나가던 중, 급작스럽게 사망하면서 불안한 정국을 틈타 진승오광의 난을 거친 뒤, 항우와 유방에 의해 대제국이 멸망해 가는 과정이 세밀하게 다루어져 있다. 독자의 눈에 띠는 점은, 이 책은 다른 역사 서술서와 달리 강의방식 형태로 되어 있어서, 마치 독자가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알기 쉬운 해설로 이해도를 한층 높였다는 것과, 당시 발생했던 여러 역사적 사건들을 <사기>,<전국책>,<진시황본기>등과 같은 다양한 역사서의 내용을 통해 그 진위를 알아보고, 이를 어떻게 현대적 시각으로 바라볼 것인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저자의 이력에서 보듯 중국 역사의 권위자에 걸 맞는 통찰력 있는 설명과 함께,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높이 살만하다.


책에 따르면 진시황이 최종적인 통일을 이루게 되었던, 그 근본적인 바탕을 살펴보면 그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이보다는 선조들의 쌓아올린 정치적 역량이 사실상 컸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애초 그가 진나라의 제후가 될 수 있는, 기본적인 자격조건이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결국 황제로 등극할 수 있었던 상황을 생각하면, 권력은 하늘에서 내린다는 말이 결코 틀린 말은 아닌듯해 보인다. 특히 이 책에는 오늘날 국내외적으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는 합종연횡의 형태, 즉 동쪽으로 세력을 확대하려는 진나라에 대항하여, 나머지 6개 약소국들이 벌이게 되는 외교정책의 세부적인 내용의 전말과, 한나라에서 연나라를 끝으로 진나라가 통일의 대업을 이루기까지 각국 간에 등장하는 권모술수의 여러 이야기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지 않나 싶다. 또 하나 이 책의 내용 중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진시황의 출생과 죽음에 관한 것이었는데, 진시황의 진짜 친부는 과연 누구였을까 하는 점과, 그가 행했던 5번째 지방으로의 순행도중 갑작스런 사망의 원인을 타살로 봐야 할 것인지 아니면 지병에 의한 것인지 등, 후대에 이르러 논란의 문제가 되었던 내용까지도 상세하게 다루고 있어서, 누구나 이 책 한권이면 진시황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진시황과 관련한 이야기를 언급한 책들은 이미 많이 출간되어왔다.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서 역사적 고증을 거쳐 현대의 시각으로 알기 쉽게 설명해놓은 책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더구나 진시황에 대한 일부 내용들의 경우, 다소 엇갈리는 견해들이 많이 있어서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때로 난감해 지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진시황은 재임기간 동안 2천년 중국 역사의 정치제도에 기본적인 틀을 마련했고, 언어와 도량형의 통일함으로써 자칫 사분오열 될 수 있었던 중국을 하나로 만드는데 사실상 큰 밑거름의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분서갱유를 일으켜 신하와 백성들의 사상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려했고, 만리장성을 포함한 무리한 건축공사의 남발로 민심을 잃게 되면서, 후대의 사람들로부터 최악의 폭군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역사의 내용을 평가 할 때, 어느 한쪽 부분만을 두고 일방적인 찬양이나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는 이 책의 내용을 통해 진시황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상세하게 다루면서,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서에 근거하여 두루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며, 객관적인 시각에서 진시황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치밀한 고증을 거쳐 현대적인 시각으로 진시황이라는 인물을 재해석한 이 책을 계기로, 독자들이 그 동안 깊이 살펴 볼 수 없었던 진시황의 새로운 모습을 알아가는 좋은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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