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 이기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희망의 실천윤리
피터 싱어 지음, 노승영 옮김 / 시대의창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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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의 사회가 근대를 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에서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리는 혜택을 주었는지는 몰라도, 그에 따른 여러 부작용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우리의 사회를 돌아보면 소득불균형에 따른 양극화나,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같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점과 더불어 황금만능주의나 극단적 이기주의가 점차 만연되어가고 있어,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들이 제법 커져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러한 지적에 대해 공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있을지언정, 이를 극복하기 위한 우리 개개인의 노력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어떤 이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우리의 정치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처럼 가볍게 넘겨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부분과 관련하여 우리가 생각해봐야할 것은, 현재와 같은 부정적이고 암울한 사회 분위기가 지속될수록, 우리 개개인의 삶은 너나 할 것 없이 더욱더 피폐해질 것이며, 아무런 희망도 찾아보기 힘든 고통스러운 미래로 치닫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종교의 역할이나 정치이념, 혹은 사상을 통해,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여러 수단이나 방법들이 동원됐지만, 오늘 우리의 현실로 보아 그것만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듯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의 사회가 서로 협력하며 공동체를 이루는 건강한 상태로 유지되기를 진정으로 바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바람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개개인마다 그저 단순한 생각에만 머무르기보다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타적인 자세에서 그 실천적 방법의 대안을 찾아보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실천적이고 윤리적인 삶이 자기 자신과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며, 무엇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그 구체적인 방법을 다양한 측면에서 깊이 모색해 보고자 했다. 우선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중에 누군가는 자신의 이익을 져버리면서까지 정의를 부르짖거나 윤리적인 삶에 충실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보다, 불법적이고 비양심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아무런 가책이나 수치심도 느끼지 않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때,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비용이나 불이익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자신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오늘날처럼 점점 삭막해져가는 우리의 이기주의적인 사회풍토를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의 인생관을 돈이나 명예, 권력과 같은 좁은 곳에서 찾기보다, 그 시야를 확대하여 넓은 세계관에서 발견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 속에는 그동안 우리의 윤리적인 삶을 저해하는 여러 부정적인 요소들이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음을 예의주시하고, 또한 우리의 삶을 질적으로 향상시켜주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실천적 윤리에 대한 시각이 때로 곡해되어 우리의 가치관을 혼란시키고 있음에 우려를 표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반박적인 논증을 통해 그 과정에 어떤 오해와 그릇됨이 있는지를 여러 실제 사례와, 종교적, 철학적 이론에 근거한 다양한 내용을 바탕으로 독자로 하여금 충분한 공감을 일으키게 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설명으로 새로운 깨달음을 주고 있어, 유익한 교양도서로서의 무게감을 더해준다. 특히 우리들이 윤리적인 인생관에 비로소 눈을 뜨게 될 때, 자기중심의 이기적인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보다 더 깊은 만족과 더불어 긍정적인 생활의 활력소를 제공한다는 그의 논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 꼭 한번 짚고 넘어가야할 내용으로 여겨진다.


불과 몇 년 전에 발생했던 미국의 금융위기로 인해 대부분의 나라들이 심한 몸살을 앓아왔고, 그러한 근본적 원인은 개인의 탐욕에서 비롯되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다시는 그러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스스로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으로 심기일전해야 함에도, 여전이 과거와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데 주저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그러한 삶의 가치나 목적보다는, 이심전심의 마음으로 더불어 살기 위한 윤리적 삶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하며 중요한지를, 그리고 그러한 실천적 삶이 우리의 사회를 어떻게 풍요롭게 만드는지를 새로이 인식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마음을 한결 편안하게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한다. 자본주의 병폐와 연관하여, 최근 우리 사회에 하나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일이 있었다. 그것은 국내 모 대학 대자보에 실린 안녕들 하십니까? 라는 글이 주목을 받으면서, 그 내용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감을 표하며, 그동안 가슴속에 담아왔지만 차마 표현하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내며 여전히 이슈화 되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열풍에 대해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그러한 행위의 진의가 어떻든 간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그 자체로, 우리의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고, 그나마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상당한 사람들이 그러한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 사회의 미래가 그리 절망적으로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윤리적 삶을 실천하는 가치 있는 인생은 우리들 모두에게 분명 존경받고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의 눈에는 굳이 그렇게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조롱 섞인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이점은 어쩌다가 우리의 사회가 이렇게까지 변한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이익을 얻어 볼까하는, 개인적 이기심이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은 결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한 세상은 자기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연민의 손을 먼저 내미는 아주 작은 행위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의 내용을 통해 자신의 삶의 궁극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음과 동시에, 이제부터라도 세상을 바꾸는 일에 함께 참여했으면 싶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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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자격 - 내가 제대로 키우고 있는 건가
최효찬.이미미 지음 / 와이즈베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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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흔히 알고 있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많은 세계 유명 인물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배경에 언제나 훌륭한 부모들이 존재해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들이 세계적인 위치에 오르기까지 그 과정에 부모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우리가 간접적으로나마 체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녀를 둔 부모의 입장이라면, 적어도 그들처럼은 아니더라도, 거의 예외 없이 자신의 아이들이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애초 부모들이 생각하고 기대했던 만큼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는, 어떤 좋지 않은 조짐이 보일 때에 그 당시의 문제점에 대해 바로 고치려고 하기보다 그럭저럭 대충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막상 큰 문제가 생기게 되면 그때서야 뒤늦은 후회를 한다. 하지만 엎어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듯이, 이를 원래대로 돌려놓기는 힘든 노릇이다. 그런데 이것은 자녀교육의 문제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정작 그때는 이런 저런 이유로 방치하다가, 부모의 기대나 혹은 일반적인 상식에 어긋나는 아이로 성장했을 때, 나중에서야 비로소 후회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아이가 부모의 바람대로 성장하지 못한 이유에는, 나름대로의 여러 가지들이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개선되지 않고 있는 현 공교육의 문제점이나 주변의 그릇된 친구들과의 교제, 그리고 TV나 게임 같은 외부적인 환경이 하나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다른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부모가 자녀를 향한 양육의 온당한 마음가짐이나 자세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고들 말한다. 그렇다면 어렵다고 하는 그 문제점의 원인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책은 바로 그러한 문제에 대한 것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대책을 강구할 있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주목을 이끈다. 이 책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대개 많은 부모들이 자녀교육에 대해 흔히 저지르게 되는 다양한 형태의 문제를 낱낱이 지적하고 언급하면서, 이를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조금 더 현명한 자녀의 양육이 될 것인가를 두고, 실제의 여러 사례들을 토대로 문제점을 깊이 생각해보고자 했다. 자녀를 둔 부모의 입장에서 이 책이 유익하게 느껴지는 것은, 저자의 자녀의 양육에 대한 솔직 담백한 경험담과 더불어,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아이들과 관련한 실질적인 내용을 다루면서, 이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 속에는 우선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적인 문제점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비판함과 동시에, 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많은 부모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띤다. 명문대 위주의 학벌주의가 마치 당연한 것처럼 횡행하다보니, 어쩌면 사교육의 열풍은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이로 인해 강남 8학군, 과열된 특목고의 입시경쟁, 그리고 조기유학이라는 결코 긍정적이지 못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이제는 점차 고착화되어 가고 있다는 점은 심히 우려할 만 일로 여겨진다. 결국 이러한 불편한 시대적 유행은 때로 학교폭력의 원인이 되기도 하며, 공부를 못하는 아이를 바보 취급하여 일찍이 패배주의자로 낙인을 찍어버리는 악영향을 낳고 있기에 부모들은 이 부분에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저자의 이러한 지적에 대해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이러한 문제를 두고 획기적인 교육개혁은 고사하고 수수방관하고 있는 교육과 관련한 정부기관의 안일한 정책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점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도 어찌 보면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교육관에 대한 인식의 문제도 한몫을 하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다.


국가와 사회의 구성원으로 건강한 하나의 인격체를 완성한다는 점에서, 부모의 자녀양육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다른 나라들의 부모들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자녀양육은 조금의 차이점이 있는듯하다. 오랜 유교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몰라도, 아이들에 대한 집착이 여타의 나라들에 비해 유독 강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녀들의 사소한 문제들까지를 간섭하려들며, 아이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기보다 부모의 의중이 더 많이 반영되는 경향을 나타낸다. 문제는 이러한 부모의 과잉보호와 강제적이고 편향적인 양육으로 인해, 자녀가 자그마한 일에 직면했을 때에도 이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부모에 의존하는 의지박약한 상태의 좋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어떤 아이들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자신의 부모라 여기며 당당하게 말하지만, 반면에 다른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를 결코 닮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꼽기도 한다. 이것은 아이가 부모를 생각하는데 있어 그 편차의 정도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저자가 책의 내용에서 강조했듯이 아이의 양육에 있어 진정 부모다운 자격을 얻기 위해 무엇보다 강조되어야 할 것은, 아이를 향한 일방적인 사랑은 절제된 사랑으로 대체되어야 하며, 부모의 이기적인 욕심은 조금 내려놓고 아이를 신뢰하며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공감을 넘어 부모들이 깊이 음미해봐야 할 내용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교육함에 있어 아이의 꿈이 무엇인지, 아이의 적성은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올바른 하나의 건강한 인격체로 성장시키기 위해, 현재 무엇을 급선무로 삼아야 하는가를 면밀하게 검토한 후, 자녀와 함께 자유로운 소통을 이어가는 부모의 실천적 행동역시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기본적인 덕목으로 중시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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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배심원
아시베 다쿠 지음, 김수현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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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책들이 출간되는 가운데에서도, 어떤 유행이나 트렌드에 관계없이 독자들에게 꾸준히 선보이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추리나 스릴러의 요소를 흥미롭게 다룬 장르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런 경향에도 불구하고, 이를 대하는 독자의 마음을 충분히 흡족하게 만드는 작품들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일부 몇몇 작품들의 경우를 보면, 독자들로 하여금 애초 가졌던 호기심과 기대감을 무참히 뭉그러트려 생각지 못했던 반감을 가지게 만들기도 한다. 장르작품을 대하는 독자들마다 그 선호도가 각기 다르고, 같은 작품을 두고도 이에 따른 평가 역시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좋은 작품들은 어떤 예외도 두지 않고 으레 독자의 관심과 주목을 받게 마련인 것 같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작품도 그런 범주에 넣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사실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큰 기대를 가지고 접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 이유는 장르작품을 선택하게 될 때, 유명 작가의 작품을 먼저 살펴보게 되는 일종의 습관 같은 선입관이 있어서, 이 작품의 작가 이름이 우선 낯설기도 했고, 또한 최근 일본 추리물들을 접하면서 예전만큼의 기대와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도 또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그런 나의 부정적인 예상을 단번에 뒤집어 버릴 만큼, 흥미롭고 즐거운 독서의 시간을 제공해 주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다. 물론 나의 이런 생각과 견해가 지극히 주관적이고 편협한 시각일 것이라는 우려감이 없지는 않다. 그래서 이 작품을 접하는 여타의 독자들 중에는 나의 생각과는 다른 상반된 의견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격추리와 관련한 스릴러물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대체적으로 이 작품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들이 많지 않을까 싶기에, 이 작품을 아직 읽지 못한 독자들이 있다면 한번 관심을 가지고 주목해 보면 어떨까 싶다.


이 작품은 전체적인 구성면에서 볼 때, 본격적인 추리의 부분과 흥미로운 법정스릴러라는 크게 두 가지의 틀을 동시에 갖춘 조금은 색다른 장르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듯하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 두 가지 흐름에 따른 구성상의 요소를 바탕으로, 기대이상의 재미와 즐거움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작품 속 이야기의 시작은, 작가로서의 성공적인 삶을 꿈꾸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획기적인 방법을 통해 유명한 작가로 거듭날 수 있다는 누군가의 의도적이고 달콤한 유혹이 제시되면서부터 출발한다. 사실 주인공은 오래전부터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작가로서의 화려한 생활과 명성을 늘 가슴속에 품고 살아왔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삼류작가의 불과하다. 그런 자신에게 어느 날 누군가에게 제안된 획기적인 방법은, 그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그 방법의 내용은 무모하고 실행하기 힘든 일이어서 그를 잠시 주저하게 만드는데, 유명작가가 되기 위해 하나의 시련일 수도 있다는 자기 합리화로 결국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에 순순히 응하게 된다. 그러나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순간의 그릇된 주인공의 선택은, 이후 그로 하여금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혹독한 낭패에 빠트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고 만다. 마침내 빠져나갈 퇴로가 없는 누군가에 의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각본에 의해, 주인공은 최소한 무기징역이라는 형벌을 결코 피할 수 없는 곤란한 처지에 직면하게 되는 암담한 상황까지로 치닫는다. 하지만 그런 그의 앞에 우연하게도 한명의 변호사가 등장하면서, 사건은 다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게 되고, 그 과정에서 베일에 감추어졌던 놀라운 일들이 하나 둘씩 밝혀지면서 사건의 실체가 수면 위로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 작품을 읽다보면 독자들은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증이 더해지면서도, 여러 측면에서 의외의 흥미로운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선 대개의 경우 기존의 많은 추리작품들이, 그 추리의 장치과정을 보통 결말부분에서 다루고 있다고 보면,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사건의 그 상세한 내막을 시작부터 모두 공개하면서도, 시종일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할 정도의 긴장감과 흡입력 있는 가독성을 갖추고 있다. 또 하나는 독자의 입장에서 이 작품을 법정스릴러물로 봐야 할지 아니면 본격추리의 작품으로 봐야할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하나의 작품 안에 독자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풍부하게 담았다는 점도 특이할 만하다. 더욱이 이 작품은 사건을 토대로 이야기 전개과정에서, 우리의 법제도는 물론이고 경찰의 수사과정 그리고 언론보도와 관련한 잘못된 문제점을 날카로운 시각으로 비판하면서, 이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을 은연 중 드러내어 오늘 우리 사회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유의미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이 역시도 눈여겨 볼만한 긍정적인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다른 독자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개인적인 생각은 오랜만에 보기 드문 괜찮은 소설을 읽은 것 같다는 흡족함이 있다. 이 작품은 본격추리의 요소와 법정스릴이라는 요소의 부분을 조화롭게 결합시켜, 독자로 하여금 장르를 읽는 그 본연의 재미와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 단순하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 없는 의미심장한 작가의 메시지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감상의 포인트가 될듯하다. 따라서 추리장르나 법정스릴을 즐기는 독자들이 있다면 한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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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명강 서양고전 - 대한민국 최고 지성들의 위대한 인생수업 인문학 명강 시리즈 2
강대진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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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대학시절에 나는 내 삶에 대한 진지한 열정이랄까, 혹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두고 고민다운 고민의 자세를 취해본적은 별로 없는듯하다.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겠으나 그때는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좋은 직장을 찾기 위한 취업경쟁에 매몰되어 있기도 했고, 그저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주어진 모든 것을 열심히 그리고 묵묵히 해나가면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 하는 단순한 생각에 머물러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나이를 한 살 먹어갈 때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하는 생각과 행동 그리고 선택이, 정말 나 자신을 위한 현명한 처사일까, 혹은 그것이 나의 삶에 어떤 의미로 남을 것인가와 같은 물음에, 문득 내 자신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일들이 점차 많아짐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그러한 질문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하여 시작하게 된 것이 바로 고전읽기다. 물론 고전을 처음 접해본 사람이라면 느꼈을 테지만, 고전은 그 내용이 때로 복잡하고 난해하여 쉽게 다가서기가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수학의 공식처럼 그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이나 해답을 알기 쉽게 정의해놓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고전을 찾아 읽어보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심지어 최근 들어 CEO들 사이에서까지 고전을 통한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아마도 고전을 통해 정체된 우리의 자아를 일깨우고, 보다 나은 성숙한 인격형성에 도움을 얻으며, 삶에 지혜를 깨우치는데 고전만 한 것이 없고, 또한 인생에 값지고 의미 있는 무언가를 고전으로부터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고전에 다가서기를 주저하는 독자들을 위해, 그리고 고전을 통해 인문학적 배움을 얻기 위한 독자들에게 있어 참고할만한 유용한 도서라고 여겨진다.


이 책은 인문학 부흥을 위해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에서 주최한, 국내 최고 석학들이 강연하고 토론하는 독서프로그램 “서양고전 인간을 말하다”의 내용을 고스란히 담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어서 주목을 이끈다. 그래서 책을 통해 독자들은 서양의 여러 고전들 중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필수적인 명저들을 두루 살펴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이 책이 독자의 입장에서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소개된 서양고전에 대한 세부내용과 설명을 국내 대표 학자들의 입을 통해서 생생하게 그리고 이해하기 쉽게 전해들을 수 있음은 물론이고, 그 안에서 핵심적이고 가치 있는 인문적 소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 속에는 고전을 통한 인문학의 방향을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분류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는데, 우선 그 하나는 바로 인간의 본질은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이다. 책은 이에 대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통해, 인생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삶을 찬미하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고 있으며, 숙고하지 않는 삶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하는 소크라테스의 말의 진정한 의미를 독자들은 음미해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명저를 남긴 니체의 능동적인 허무주의사상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진정한 의미를 창조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의 자세를 배울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을 어떠한 방향으로 개척할 것이며 이를 위한 무엇을 추구하고 노력할 것인가이다. 현대인의 삶은 어떻게 보면 어쩌면 이방인의 삶과도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런 관점에서 카프카의 변신은 우리들이 흔히 겪게 되는 자신의 정체성과 소외된 삶으로부터 탈출구를 발견할 수 있고, 셰익스피어 햄릿의 비극적인 삶을 통해 인간은 언젠가 죽게 되는 유한한 존재이지만 이를 회피하지 않는, 실존적 삶의 중요성을 일깨울 수 있기도 하다.


그동안 우리사회를 돌아보면, 주로 모든 것이 경제적인 논리에 의해서 작동되고 해석되었음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보니 인문에 대한 중요성은 어느덧 사라지고 결국 알맹이가 없는 허울적인 존재로만 남게 되었다. 물론 효율과 효용을 우선으로 하는 경제의 논리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으로 인해 우리의 물질적 생활이 풍요로워진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을 우선시하는 인문학을 소외시킴으로서 오늘 우리의 사회에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 대학은 학문의 탐구하는 곳이 아닌 직업양성소가 되어가고 있고, 우리의 인간관계는 다분히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것으로 바뀌었으며, 그로인해 더불어 살아가려는 공동체 의식이 없는 삭막한 현실을 맞이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요즘 일부에서 인문학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움직임들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고전은 분명 인문학을 이해하고 접하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수단이자 도구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많은 독자들이 고전을 읽고 싶어 하면서도, 그 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적잖은 어려움을 호소하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서양의 고전 중에서 고전을 소개하면서도, 무엇보다 누구나 어렵지 않게 접근해볼 수 있으며, 더불어 그 속에서 인문적 소양을 배우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맛볼 수 있는 훌륭한 교양서가 아닐까 싶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은 남이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개척하고 만들어 가야 한다. 이것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하여 인간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해야만 한다. 따라서 고전으로의 접근을 시도해보고 싶은 독자들이나, 혹은 인문학에 관심을 두고 있는 독자들이 있다면, 한번쯤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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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붓다의 십자가 - 전2권
김종록 지음 / 김영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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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책을 통해 독서의 시간을 즐기면서도, 사실 팩션이라는 장르를 접하게 된 작품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러나 팩션과 관련한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점은, 그동안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역사의 사실에 대해 다시 한 번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게 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역사를 통한 다양한 상상력을 일깨워준다는 것에 있다. 우리나라에 팩션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간은 그리 오래지 않다. 그럼에도 많은 팩션 작품들이 영화나 드라마 혹은 소설의 형식을 빌려 등장해왔다. 그래서 이제는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심과 기대가 조금은 식어갈 법도 한데, 현실은 그것과 정반대의 경향을 보이는듯하다. 그것은 아마도 팩션이라는 장르가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고 반복만을 거듭하는 정통 사극이나 역사소설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새로운 흥미의 요소를 아낌없이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사실 우리들이 흔히 보아왔던 기존의 역사소설들은, 역사의 사실을 토대로 당시의 시대상을 되새겨보고 그 안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을 오늘의 시각에서 재조명해본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을 기대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팩션의 경우 어느 특정한 역사의 내용을 두고, 작가의 상상력에 따른 새로운 관점에서 가능성 있는 여러 상황들을 적용해보고 재해석함은 물론, 한층 확대된 역사의 세계를 음미해볼 수 있다는 그 자체만 보아도, 나름대로의 큰 의미가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이 작품의 경우에도 그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눈여겨볼만한 작품이라 여겨진다.


우선 이 소설은 그동안 기존의 많은 팩션작품들이 대부분 대중적 흥미의 요소에 맞춰져 있다고 본다면,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 조금 더 무게가 느껴지는 작품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팩션만이 가지는 신선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줄거리의 전개는 물론이고, 작품 전반에 종교와 철학 그리고 역사를 아우르는 폭넓은 내용을 심도 있게 펼쳐내고 있어서 팩션의 또 다른 면을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주목할 만한 작품이라 여겨진다. 이 작품은 고려 중기에 들어서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켜 강력한 독점적 권력을 잡은 이후, 최충헌이 죽고 그의 아들 최우가 고려를 이끌어 가던 시기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보면 고려 고종의 시기에 몽골의 침입을 시작되었고, 고려는 이에 굴복하지 않고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면서 본격적인 대몽항쟁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고려 현종이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조판한 대장경 판목이 몽고군에 의해 소실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에 최우는 전란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부처의 힘을 빌고자 15년에 걸쳐 팔만대장경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이 작품은 그 역사적 사실을 중심으로 하여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독자의 입장에서 이 작품이 한편 특이하면서도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내용에 불교와 기독교의 결합이라든지, 대장경의 소실의 문제와 관련하여 펼쳐지는 드라마틱한 이야기 흐름의 전개과정도 놀랍지만, 그 바탕의 이면에 독자들로 하여금 종교의 본질을 위시한 철학과 인문학적 사고의 깊이를 한층 더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의 눈길을 이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작가의 세밀한 역사고증을 거쳐 펼쳐지는 놀라운 서사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 눈에 띤다. 그래서 독자들은 기존의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관점에서의 감상 포인트를 맛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무엇보다 작품의 내용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의미 있게 채워갈 것인지 혹은 가치 있는 인생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철학적 물음에 그 해답을 명쾌하게 제시하듯, 이야기의 곳곳에 곰곰이 생각해볼만한 의미 깊은 문장들이 자주 접할 수 있다는 점은, 여타의 작품에서 볼 수 없는 장점이자 특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또한 작품의 성격으로 볼 때, 다루고 있는 주제가 독자의 입장에서 다소 무겁고 접근하기가 쉽지 않음에도,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도록 돋보이는 구성에 따른 이야기 전개 과정 역시 이 작품이 지니는 두드러진 부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그중 먼저 고려되는 것은, 대개의 팩션작품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이 작품 역시도 내용의 따른 실제 역사의 사실문제와 관련하여 적잖은 논란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불교와 기독교에 연관한 부분에 있어서도, 작가가 사전에 충분하고 치밀한 고증을 거쳤다는 것이 확연하게 다가오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어느 특정 부분에 관해 확실치 않은 추측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상당히 파격적이면서도 억지스럽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밑바탕에 짙게 깔려있는 작가의 진정성 있는 메시지와, 기존의 어느 작품에서도 다루지 못했던 과감하고 거침없는 이야기의 설정,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작품의 테두리 안에,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인문학적인 요소를 적절하게 담아내어, 문학으로서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런 부분을 상쇄하고도 남는 좋은 작품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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