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용사전 - 국민과 인민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철학적 인민 실용사전
박남일 지음 / 서해문집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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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용이라는 말은 예전 임금이 쓰는 물건을 가리켰으나, 오늘날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권력자나 권력기관에 영합하여 줏대 없이 행동하는 것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이해된다. 그래서 정부에 아첨하는 언론을 어용언론, 그리고 학자를 가리켜 어용학자라고 하며, 이들을 우리는 정권의 나팔수라고 부르고, 이와 유사한 것으로는 관변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어용이라는 말의 쓰임새의 시작은, 다른 아닌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동조하여 우리의 언어 말살 정책에 앞장선 조선의 엘리트들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의 잔재는 대부분 해소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자본이 곧 권력으로 간주되는 자본주의라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부정하고 싶지만 오늘 우리의 현실을 볼 때, 유전무죄라는 말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정치계와 경제계가 서로의 이익을 위해 밀접한 연관관계를 맺는 정경유착의 행태가 해결되고 있지 않는 것을 보면, 돈이 권력이라는 말을 수긍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런 어용의 행태가 과거 일본 정부관계자와 이에 협력하는 일부 기득권층들의 관계에서 파생되었고 한다면, 지금은 막대한 자본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자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부분과 관련하여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통칭 재벌로 불리는 자본가들의 모임인 전경련 산하의 연구소에서 사회의 혼란과 갈등을 통합한다는 미명하에 획책되고 있는 어용의 또 다른 모습을 예의 주시하고 이를 비판하면서, 우리들이 흔히 사용하는 낱말의 본질적인 의미가 왜곡되지 않는 방향에서 다시금 되새기고자 했다. 따라서 독자들은 일상생활에서 별 생각 없이 쓰게 되는 수많은 말들의 겉과 속을 들여다보면서, 어떤 점에 그 의미의 차이가 있는지 그 이면의 속내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책 속에는 우리들이 평소에 의식적으로 쓰는 말에서부터, 시장경제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가려진 자본주의 실상을 살펴볼 수 있는 단어들과, 정부의 권력행사와 관련한 것, 그리고 사회적 이슈가 떠오를 때마다 등장하는 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특히 책을 읽다보면 독자의 입장에서 각기의 낱말 하나하나가 담고 있는 그 실제적 의미와는 별개로 어떤 의도적인 목적을 담고 있다는 것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데, 마음 한편으로 불편하고 씁쓸하게 다가오면서도, 저자의 설명이 명쾌하고 공감적이어서 새삼 이채롭게 받아들여진다. 저자가 신중하게 고려하여 각 파트별로 소개하고 있는 몇몇의 단어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학교의 교육과 관련하여 요즘 대두되고 있는 교권이란 교사의 인권을 일컫는 말이다. 이에 대하여 저자는 사농공상의 순서로 인격과 신분이 갈리던 봉건시대 이데올로기에 따른 어용의 논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에 이러한 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학생의 인권도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하며, 또한 그러한 교권이 지금처럼 학생에 대한 체벌의 권리로 한정되어야할 것이 아니라, 행정 권력이나 자본의 유혹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신념에 따라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가르치고 배울 권리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국회에서 민생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고 당리당략만을 위해 파행적인 모습을 보이는 정치인들 때문에, 이를 바라보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리의 정치에 대해 냉소적인 시각으로 보는 정치혐오증이란 말이 있다. 책에 따르면 정치혐오증을 낳는 건 정치의존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러한 현상은 점차 살기가 팍팍해지는 현실에 정치가 속 시원한 해결책을 주리라는 기대감에서 기인하는데, 이는 1980년대 유럽 언론에서 만들어진 말로 경제혐오증을 방어하기 위한 방어하는 허위의식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외에도 지식기반사회, 근로자, 진보, 지식인 등과 같이 우리가 그동안 깊이 인식하지 못했던 다양한 어휘의 설명이 논리적으로 펼쳐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정당성이나 도덕적인 면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권력자들은, 그러한 부분을 은폐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사용해 교묘하게 미화시키거나 왜곡하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권력이라는 자리를 유지하는 기간 동안, 그 권한을 부정하거나 거스르려 하는 국민들의 지속적인 저항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속마음은 아닐지라도 겉으로는 유화적인 자세를 보이는 경향이 종종 있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문화라는 허울 좋은 이름을 내세워 이를 포장하고, 내부적으로는 치밀한 계획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민심을 향하게 하여 효율적으로 통치하려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은 사실 오래전 영국이 식민지를 자국에 예속시키는 과정에서 등장했던 수법이다. 문제는 그러한 통치행태가 지금에도 여전이 그 모습을 달리하여 이용되고 있고, 이 점은 우리의 과거역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일본은 한일합방 이후 군사와 경찰을 동원해 무력통치를 실시했지만, 3.1 운동을 기점으로 거센 반발에 부딪치면서 위기감을 느끼게 되자, 통치 앞에 문화라는 말로 그럴듯하게 겉모양을 부드러운 이미지로 꾸며내어, 실질적으로는 더욱 강력하고 악랄한 방법으로 지배를 이어갔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당시의 치욕적인 일본 통치의 잔재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하면서, 군부독재시절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치경제사에 적잖은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그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인 목적아래 만들어졌을지도 모를, 혹은 애초 의미와는 다르게 사용되는 낱말의 깊은 속내를 들여다봄으로써, 독자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의 확립과 현실을 직시하는 냉철한 가치관의 재정립을 강조하고 있는듯하다. 따라서 이 책 내용이 의미하는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로 하는 것은, 그동안의 쓰라린 굴종의 삶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가 희망을 만들어 가는 개념적이고 자주적인 삶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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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북로드 세계문학 컬렉션
프란츠 카프카 지음, 북트랜스 옮김 / 북로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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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변신이라는 작품을 오래전에 읽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줄거리를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번에 다시 접하면서 그 분위기가 또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 문학을 바라보는 나의 안목이 조금은 달라진 것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아무래도 이 작품이 담고 있는 그 이면의 의미가 예사롭게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작품은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대부분 읽어봤거나, 혹은 읽지는 않았더라도 한번 쯤 들어봤으리라 여겨진다. 그것은 그만큼 이 소설의 내용이 작품의 완성도 측면에 있어서나 대중적인 면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대개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익히 알려진 몇몇의 유명작품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를 살펴보면, 그 내용이 작가의 생애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경우가 종종 있게 마련인데, 이 작품 역시도 카프카의 지나온 삶의 일부분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혹시 독자들이 이 작품을 읽게 된다면, 그의 인생사를 먼저 들여다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듯싶다. 세계의 불확실성과 인간의 불안한 내면을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그려낸 그의 작품은, 사실 살아생전에 대중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행히도 그가 타계하기 전에 자신의 작품을 파기해 달라는 유언에도 불구하고, 그의 친구이자 문학적 유산 관리 집행인인 막스 브로트가 이를 어기고 출간을 하게 되었는데, 그의 작품이 소개되자마자 당시 문단 평론가들에게 상당한 호평을 받게 되면서, 그의 작품이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대변해주는 여러 작품 중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을 만큼 명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따라서 행여 이 작품을 아직 접하지 않은 독자들이 있다면 지나치지 말고 한번 읽어보기를 권해본다.


이 책에는 프란츠 카프카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중편소설 변신을 중심으로, 3개의 단편이 더 추가되어 소개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독자들은 그의 문학세계를 음미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각 작품마다 한번 쯤 곰곰이 생각해볼만한 의미 있는 내용을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을 듯하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변신’이라는 소설은 보험회사의 외판원으로 일하던 주인공 그레고르가, 어지러운 꿈속을 헤매다가 깨어나게 후에 자신이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부터 시작한다. 이후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게 된 그는 결국 회사에서 해고를 당한다. 자신이 흉물스럽게 바뀌기 전까지만 해도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부지런히 일을 하며 돈을 벌었지만, 이제는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것은 물론이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집안의 가족에게 조차 외면과 냉대를 받게 되면서, 마침내 비참한 죽음 앞에 놓이게 된다. 이 소설은 가족의 구성원임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제 구실을 못하게 될 때, 그것이 실질적 이해관계에 얽히면서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보여주고 있는데, 가족이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그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생각해볼 것이 많은 작품이다. 이어지는 단편 작품 ‘판결’은 사업에 성공한 게오르게라는 인물을 통해,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극복하려 하지만, 오히려 아들을 비난하는 힐책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펼쳐져 있는데, 이 단편은 카프카의 삶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어 눈길을 이끈다. 마지막 단편 ‘굴’이라는 작품에서는 굴을 집이라는 공간 개념에 비유한 것으로 타인으로부터 사생활을 침해받지 않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또 다른 이유로 인해 자신의 삶이 옥죄이게 되는 숙명적인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카프카는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라고 불리기도 하며, 한편에서는 20세기 독일의 문학에서 가장 문제적인 작가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문단에서는 그의 문학적 특성에 대해 사실적인 묘사와 상징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는 문장의 구성으로,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통해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자각하게 한다는 것과, 또한 혹독하고 극한상황이나 불가사의한 환경에 인간이라는 존재를 놓아둠으로서, 독자들로 하여금 직면한 자신의 현재 위치를 일깨우게 만드는 작품의 이면에 보이지 않는 힘이 내포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관점에서 그의 여러 작품들 중에서 ‘변신’이라는 소설의 내용을 살펴보면, 주인공 그레고르는 한때 가족의 부양을 위해 헌신했지만, 이후 아무런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리자 그의 가족은 하나같이 그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쳐버리고자 하는데 주저함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생계를 위해 꾸려가기 위해 행해졌던 고려시대의 고려장을 보는 것 같은 이러한 전개의 내용은, 어쩌면 오늘 우리의 부조리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그동안 우리가 인식해왔던 애초 가족이라는 말이 지니는 의미와, 실제 일어나는 현실과는 다르다는 것을 상기시켜줌으로써 인간에 실존의 문제를 새삼 의식하게 만들고 있다. 아울러 이 책 속에 나와 있는 각 단편들은,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가족 혹은 사회라는 구조 안에서, 인간이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욕망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한층 깊이 있게 다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부분에서 독자들은 그의 작품을 다각적인 시각에서 해석하고 이해하며, 결국에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런 이유로 아직까지도 그의 작품을 접하지 못한 독자들이 있다면, 그가 전해주는 소설 속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간 실존의 문제를 한번 쯤 깊이 생각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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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명 - 전 세계 100억 인류가 만들어낼 위협과 가능성
대니 돌링 지음, 안세민 옮김 / 알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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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의 증가와 관련하여 문득 떠오르는 인물을 생각해보면, 아마도 영국의 경제학자 맬서스가 아닐까 싶다. 그는 자신의 저서 인구론을 통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면서, 인구증가가 빈곤, 악덕 등과 같은 사회악의 원인이 되므로 식량에 맞도록 인구를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인구가 20억 명 이상이 되면 인간의 삶 자체가 거의 불가능 했을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만약 그가 예견한 일이 현실에 그대로 적중되었다면 지금의 우리 사회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의 주장은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고, 그가 말했던 몇 배가 더 많은 인구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지구촌의 세상은, 그 시대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발전된 사회의 모습을 보이며 커다란 문제없이 온전히 유지되어가고 있음을 본다. 그런데 그의 주장이 지금까지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단언할 수 있을 만큼 별 의미 없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음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씩 늘어나는 인구의 증가현상을 대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부정적인 측면에서의 고민과 염려를 하고 있는듯하다. 최근 UN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의 인구는 대략 72억 정도이며, 지금의 추세로 볼 때, 2025년경에는 80억 명을 돌파할 것이고 2100년이 되면 마침내 100억이 넘는 거대한 인구가 지구상에 존재할 것이라고 한다. 이를 두고 비관론자들은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되는 우리의 사회에 다양한 문제들을 언급하며 심각한 경고를 하고 있는 반면에, 낙관론자들은 인간이 이성을 지녔다는 논리로 현재 불거지고 있는 문제들은 결국 긍정적인 방향에서 해결될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주장하는 논리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러는 애매모호한 부분도 있고, 한편으로 반박의 여지도 충분해서 기정사실화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저자는 그러한 관점에서 이 책을 통해 인구증가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소들을 토대로, 이를 가급적 객관적인 시각에서 심도 있는 세밀한 분석을 해보고자 했다. 책의 내용은 세계인구가 10억 명 증가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몇 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러한 분류의 이유는 그 시대의 인구 수준에 맞는 적절한 이슈를 논함으로서 주요쟁점의 문제가 분산되지 않도록 하려는 세심한 저자의 배려로 판단된다. 먼저 이 책의 전반부에 소개되고 있는 부분은, 과거에서부터 2011년의 시기까지 인구가 70억 명으로 증가하는 과정을 집중 분석하고 있는데, 이 내용에서 독자들은 각 시대에 따른 산업발전과 경제성장을 통한 소비 정점의 문제와,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놓고 당시 전문가들이 어떠한 요소에 관심을 가지고 논의를 이루어 왔는지, 또한 점차 고갈되는 자원에 대해 미래 에너지의 수급문제에 관한 세부적인 것을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책의 전반부가 지금까지의 인구 증가의 원인과 이를 통해 부수적으로 연관되는 요점들을 살펴보았다면, 후반부는 향후 인구증가 추세에 관한 것이 심층적으로 다루어져 있다. 그래서 2025년 80억을 넘어 이후 결국 인구가 100억 이상의 인구가 지구촌에 존재하게 될 때, 식량이나 식수의 문제 그리고 출산율이 낮은 국가에서 생기는 노동과 관련한 이주민의 문제 등을 짚어보고, 결론적으로 오늘날 인구증가의 문제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는 사람들의 주장하는 내용처럼, 과연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아니면 낙관론자들의 말처럼 많은 문제점을 극복하면서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지를 예측해보고 있다. 물론 여기에 따르는 인구통계의 구체적인 수치는 UN에서 발표한 내용을 따른다. 다만 후반부에서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해서 신뢰성에 문제가 있을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 근거의 내용을 볼 때, 나름대로의 명확성이 담보되어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다.


이 책은 인구증가와 그로 인해 인간의 과도한 욕망으로 빚어지는 수 없이 많은 문제점들, 이를테면 동식물 멸종의 위기,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의 문제, 경제 위기, 문화의 충돌과 같은 핵심적인 부분들을 주도면밀하게 살펴보면서, 그에 따라 우리가 무엇을 인식하고 어떤 대안을 마련할 것인가 하는 전반적인 문제를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어 내고 있어서 흥미롭게 읽혀진다. 특히 다른 무엇보다 지금까지 인구증가와 관련하여 논의되는 많은 예측들 가운데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경고성 징후들에 관하여, 이러한 주장을 우리가 어디까지를 수용해야 하며, 만약 UN의 발표대로 인구가 향후 100억 명이라는 수치에 다다랐을 때에라도,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춰 이에 대응 할 것인지를 책 속에서 밝히고 있는데, 그 내용이 상당부분 수긍할 만한 것이어서 주목되기도 한다. 인구증가의 문제점은 지구 존망의 위기와 결부되어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에 의해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그런 지적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계속 진행되어 왔다. 저자는 그런 측면에서 결과적으로 인구의 수는 매년 조금씩 증가될 것으로 예측되지만, 어느 시점에서부터 감소되는 경향을 나타낼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듯하다. 또한 그 과정에서 야기되는 부정적인 요소들도 인류가 지나온 시간동안 반복적인 학습의 효과로 이성적으로 대처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의견을 내놓는다. 개인적으로 생각 할 때, 이 책은 겉으로 보면 단순한 인구증가의 문제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보다는 인구와 관련하여 우리가 미처 예상치 못했던 다양한 사회적 요소들을 연관관계를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일목요연하게 파악해 놓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다. 따라서 독자들의 입장에서 이 책의 내용은, 당면한 인구문제의 현안에 관한 것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에 중요 이슈가 되는 시사상식을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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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별안간 아씨 - 전2권 별안간 아씨
서자영 지음 / 고즈넉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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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속담 중에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다면, 세계사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 물론 지나간 역사에 대해 만약이라는 가정을 한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과연 그러한 일이 실제로 가능했다면, 당시 역사의 내용은 어떠한 방향으로든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지나간 오랜 역사 속에 그 세부적인 부분을 들여다보면, 더러는 어느 특정한 사건과 관련해서, 이랬다면 하거나 저랬다면 어떠했을까 싶은 경우가 있게 마련이다. 그럴 경우 그때의 일들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질 만큼 안타까운 상황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게 받아들여지곤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조선 세종의 시기에 한글을 창제되지 않았거나, 선조 때 이순신이라는 훌륭한 장군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또는 효종이 북벌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여 그것이 실제로 실현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랬다면 아마도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지금과는 다른 상황에 처해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그런 이유로 독자들이 역사팩션을 읽음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역사의 단면을 잘라내어 그것을 여러 측면에서 바라보고, 한때 우리의 과거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반성하는 과정에서, 향후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되었을 때, 조금은 더 나은 결과를 모색하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조선 정조의 시기에 한 여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희대의 사기극을 연출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아내 독자의 눈길을 이끌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이 작품 속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와 연관하여 당시의 시대상황을 면밀하게 살펴보면서 그 시기의 사회상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문학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역사팩션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는데 긍정적인 동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관심을 가지고 한번 일독해보기를 권해본다.


조선 후기의 시대에 여러 부분에서 개혁에 기치를 내걸었던 정조의 시기를 배경으로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펼쳐져 있는 이 작품의 시작은, 한 여인의 기막힌 운명에서부터 기인한다. 청렴하고 강직한 선비로 소문이 자자한 어느 사대부 집안의 노비로 살아가던 작품 속 주인공 덕이는, 시집을 가라는 부모님의 성화를 참지 못하고, 자신과 같은 노비의 운명을 더 이상 후대에 물려주기 싫다는 단호한 결심과 함께 우물에 몸을 던지는 자살을 결심한다. 하지만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영특한 두뇌와 학식을 가졌지만, 서얼이라는 신분제도의 한계로 좌절해 한량으로 전락하여, 자신의 기구한 삶에 회의를 느끼며 하루하루를 무의미 하게 살아가던 형수는, 덕이가 막 우물에 빠지려는 순간을 우연히 목격하고 그녀를 구하게 되면서 이들은 뜻하지 않은 인연을 맺기에 이른다. 한편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는 자신을 가까이에서 적극 지원해주는 세력을 모으기 위해 세자라는 신분을 속이고 인재를 물색하기 위해 수시로 잠행을 시도 했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만나게 된 형수의 인물 됨됨이를 보고 흡족해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각기 다른 상황에서 기묘한 인연의 끈으로 연결된 이 세 사람은, 훗날 엄청난 일대의 사건에 직접적인 당사자가 되기에 이른다. 서얼허통법을 통해 능력 있는 서자들을 관직에 등용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정조에 의해 치밀하게 계획되어 비밀리에 진행되는 이 거대한 음모는, 다름 아닌 노비신분이었던 덕이를 요조숙녀로 만들어, 좌의정의 아들에게로 시집을 보내는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사실이 세상에 드러나게 될 때, 생각지 못한 혼란스러운 상황을 맞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작품 속 이야기는 이 무모한 계획을 기반으로 작품 전반에 팽팽한 긴장감을 드리운 채, 결코 독자들이 쉽게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는다.


전개되는 작품 속의 이야기는 사실 어찌 보면 조금 의아스럽고 황당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독자들로 하여금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할 만큼의 흥미로운 상황이 펼쳐져 있는 이 작품은, 그 내용에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적인 요소를 통한 재미도 재미지만, 다른 무엇보다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여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각별하게 다가오지 않나 싶다. 그래서 그와 관련하여 작품 속의 사건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이 작품이 조선의 여러 왕들 중에서도 정조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당시의 시대상황을 고려해보면 정조는 자신에 아버지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것과 연관지어, 왕권을 회복하기 위해 노론 세력들의 권력 집중 형태를 견제하기위해 서얼출신을 대거 등용했었다는 것은 인지의 사실이다. 결국 이러한 사회적 배경이 신분제도라는 봉건주의 시대의 악습에 따른 남녀차별의 문제와 그리고 양반으로 통칭되는 기득권 세력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은 그러한 내용들을 소설 전반에 걸쳐 이를 부각시키면서 독자들에게 공감을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는 생각이다.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작품의 내용 중에, 주인공 덕이가 자신의 위태로운 목숨에 아랑곳하지 않고, 신분세습에서 오는 불합리와 불평등을 토로하는 장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 작품은 남녀의 애틋한 사랑을 감미롭게 펼쳐낸 로맨스 소설처럼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정조 시대의 있었음직한 정치적인 일면을 다룬 역사소설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작품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두 가지 관점에서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다. 따라서 비루하고 천박한 노비의 삶을 살아야가야만 했던 한 여인의 운명이 파격적으로 다루어지는 이 작품을 통해, 역사팩션의 묘미를 한껏 즐겨보는 좋은 기회를 가졌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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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권력 - 자기-경영적 주체의 탄생과 소수자-되기
사토 요시유키 지음, 김상운 옮김 / 후마니타스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국민으로부터 위임을 받아 누군가의 손에 쥐어진 권력은, 법에 의해 정당하게 행사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떤 이유로든 간에 함부로 남용되어지거나 불합리하게 다루어진다면 그것은 곧 저항에 부딪치게 될 것이고, 결국 그 권력은 오래 지속되기 힘들다. 우리는 한때 군사독재라는 무소불위의 통치 권력을 경험한바가 있기에, 사실 권력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물론 과거에서처럼 그와 같은 무지막지한 권력을 이용한 통치 방법의 이게 거의 실현이 불가능해졌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지만, 권력의 속성을 생각해보면 또 언제 그런 일이 터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과거 권력의 형태와 관련하여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푸코는 감시와 처벌이라는 그의 책을 통해 권력의 미시적 분석이라는 방법에 의거해 규율권력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바 있다. 그가 말하는 규율권력이란 사회 속에 편재하는 학교, 공장, 감옥, 병원과 같은 규율장치들이, 개인들에게 규범을 내면화시킴으로서 순종적 주체들을 계속해서 재생산하는 과정을 통해, 규범화에 기초한 복종한 매카니즘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 각국은 1970년대 후반 2차 오일쇼크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극심한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저마다 공공부문의 축소와 규제완화, 그리고 시장원리가 중시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함에 따라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게 되었고, 이러한 사조는 아직까지도 꾸준히 진행 중에 있다. 이에 따라 우리를 지배하던 권력의 모습도 이러한 세계기조에 맞추어 이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럼에도 이러한 현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 책은 오늘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통치의 결과가 현재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 있으며, 또한 이에 대응하는 우리의 저항의 방법을 신중하게 모색해보고자 했기에, 독자들이 한번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면 좋을듯하다.


저자는 책 속에서 푸코가 주장한 논거에 따라 1970년대의 통치의 본질은, 복지의 영역을 떠받치는 규율장치들이 사회의 거의 모든 곳에 배치함으로서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면, 오늘 우리의 시대가 직면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시대에서는, 모든 방면에 자유로운 경쟁을 통한 시장 원리를 이용한 국가의 개입주의가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그 개입이 경제 과정 자체 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형태가 아니라, 법적 제도적 틀에 대한 개입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권력주체는 개개인 앞에 놓여있는 환경, 또는 이를 작동하게 하는 규칙을 설계하여 권력 행사의 최적화에 그 목적이 있고, 저자는 이를 환경 대입 권력이라 명명한다. 그리고 그러한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모든 국면을 경쟁으로 유도하면서 빈부차이의 확대를 통한 양극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며, 그런 과정에서 우리 개개인들은 자기의 리스크를 스스로 관리해야 하는 자기경영의 주체를 형성하게 되고, 이에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면 가차 없이 사회 바깥으로 내던지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사회 양극화나 사회 불안정성이 한층 확대된 것이, 결국 어떤 순간에 힘으로 메우려 하는 주권 권력의 강화와 폭력적 억압으로 회귀하는 양상으로 점철될 것을 예견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이러한 권력현상에 대한 저항의 기법으로, 권력으로부터의 명령을 거절하고 자신을 다른 방식으로 재창조하는 자기 변용의 실천이 뒤따라야 할 것을 독자들에게 피력한다. 아울러 저자는 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기 위해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천개의 고원을 인용해, 그 안에 제시된 자기 파괴와 공허를 초래하는 자살의 도주선을 피하고, 다양체로서의 고른 판을 창조할 수 있는 기관 없는 신체에 대한 인식의 필요성과, 소수자-되기라는 개념에서의 탐구를 통해 사회적 배제 메커니즘 대한 저항 전략을 구성할 수 있을 것임을 밝히고 있다.


세계경제악화를 극복한다는 명목 하에 1970년대 후기부터 선진 자본주의국가를 중심으로 진행된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흐름은, 그 시작의 취지는 좋았으나 그동안에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었고, 마침내 2008년 미국 발 국제금융위기를 기점으로 그 종말을 예고하고 있지만 작금의 현실로 볼 때, 이는 여전히 지속중인 것으로 보이며 한동안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거의 모든 사회구조가 경쟁원리에 의해 작동되는 신자유주의의 기조는 결국 우리 실생활의 전반을 바꾸어 놓았고, 지금 이 시간에도 그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관련하여 일부에서는 공공부문을 축소하고 민간으로 이양하는 문제와 그리고 규제 완화나 시장원리에 충실하려는 경제정책을 이유로, 신자유주의를 고전적 자유주의로의 회귀현상으로 보는 시각들이 있지만, 이 책은 그러한 관점과는 조금은 그 틀을 달리한다는 것이다. 서두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신자유주의란 시장 논리를 바탕으로 이를 법과 제도를 통해 사회를 철저하게 관철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그러한 사회적 현상과 관련하여 이 책에서 논하고자 한 것은, 신자유주의에 따른 권력통치의 특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한편으로 이를 면밀하게 분석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이러한 권력의 형태에 대한 저항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부분을 독자들은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특히 이 책에는 푸코에서 들뢰즈와 카타리 그리고 주디스 버틀러에 이르기까지 구조주의 이후에 나타난 현대 사상과 접목하여, 저항전략을 위한 견고하고 객관적인 논리를 뒷받침함으로서, 권력 메커니즘의 그 핵심적 내용을 명확하게 들여다보고 이에 저항하기 위한 활로를 찾고자 했기에, 독자들이 신자유주의에 따른 권력의 실질적인 모습을 이해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현대정치철학에 대한 인식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을듯하다. 다만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와 연관하여, 아무래도 이와 관련한 철학의 충분한 이해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저자가 제시한 저항전략에 대한 그 해법을 얻기에는 다소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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