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용사전 - 국민과 인민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철학적 인민 실용사전
박남일 지음 / 서해문집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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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용이라는 말은 예전 임금이 쓰는 물건을 가리켰으나, 오늘날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권력자나 권력기관에 영합하여 줏대 없이 행동하는 것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이해된다. 그래서 정부에 아첨하는 언론을 어용언론, 그리고 학자를 가리켜 어용학자라고 하며, 이들을 우리는 정권의 나팔수라고 부르고, 이와 유사한 것으로는 관변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어용이라는 말의 쓰임새의 시작은, 다른 아닌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동조하여 우리의 언어 말살 정책에 앞장선 조선의 엘리트들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의 잔재는 대부분 해소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자본이 곧 권력으로 간주되는 자본주의라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부정하고 싶지만 오늘 우리의 현실을 볼 때, 유전무죄라는 말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정치계와 경제계가 서로의 이익을 위해 밀접한 연관관계를 맺는 정경유착의 행태가 해결되고 있지 않는 것을 보면, 돈이 권력이라는 말을 수긍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런 어용의 행태가 과거 일본 정부관계자와 이에 협력하는 일부 기득권층들의 관계에서 파생되었고 한다면, 지금은 막대한 자본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자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부분과 관련하여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통칭 재벌로 불리는 자본가들의 모임인 전경련 산하의 연구소에서 사회의 혼란과 갈등을 통합한다는 미명하에 획책되고 있는 어용의 또 다른 모습을 예의 주시하고 이를 비판하면서, 우리들이 흔히 사용하는 낱말의 본질적인 의미가 왜곡되지 않는 방향에서 다시금 되새기고자 했다. 따라서 독자들은 일상생활에서 별 생각 없이 쓰게 되는 수많은 말들의 겉과 속을 들여다보면서, 어떤 점에 그 의미의 차이가 있는지 그 이면의 속내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책 속에는 우리들이 평소에 의식적으로 쓰는 말에서부터, 시장경제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가려진 자본주의 실상을 살펴볼 수 있는 단어들과, 정부의 권력행사와 관련한 것, 그리고 사회적 이슈가 떠오를 때마다 등장하는 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특히 책을 읽다보면 독자의 입장에서 각기의 낱말 하나하나가 담고 있는 그 실제적 의미와는 별개로 어떤 의도적인 목적을 담고 있다는 것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데, 마음 한편으로 불편하고 씁쓸하게 다가오면서도, 저자의 설명이 명쾌하고 공감적이어서 새삼 이채롭게 받아들여진다. 저자가 신중하게 고려하여 각 파트별로 소개하고 있는 몇몇의 단어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학교의 교육과 관련하여 요즘 대두되고 있는 교권이란 교사의 인권을 일컫는 말이다. 이에 대하여 저자는 사농공상의 순서로 인격과 신분이 갈리던 봉건시대 이데올로기에 따른 어용의 논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에 이러한 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학생의 인권도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하며, 또한 그러한 교권이 지금처럼 학생에 대한 체벌의 권리로 한정되어야할 것이 아니라, 행정 권력이나 자본의 유혹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신념에 따라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가르치고 배울 권리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국회에서 민생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고 당리당략만을 위해 파행적인 모습을 보이는 정치인들 때문에, 이를 바라보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리의 정치에 대해 냉소적인 시각으로 보는 정치혐오증이란 말이 있다. 책에 따르면 정치혐오증을 낳는 건 정치의존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러한 현상은 점차 살기가 팍팍해지는 현실에 정치가 속 시원한 해결책을 주리라는 기대감에서 기인하는데, 이는 1980년대 유럽 언론에서 만들어진 말로 경제혐오증을 방어하기 위한 방어하는 허위의식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외에도 지식기반사회, 근로자, 진보, 지식인 등과 같이 우리가 그동안 깊이 인식하지 못했던 다양한 어휘의 설명이 논리적으로 펼쳐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정당성이나 도덕적인 면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권력자들은, 그러한 부분을 은폐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사용해 교묘하게 미화시키거나 왜곡하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권력이라는 자리를 유지하는 기간 동안, 그 권한을 부정하거나 거스르려 하는 국민들의 지속적인 저항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속마음은 아닐지라도 겉으로는 유화적인 자세를 보이는 경향이 종종 있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문화라는 허울 좋은 이름을 내세워 이를 포장하고, 내부적으로는 치밀한 계획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민심을 향하게 하여 효율적으로 통치하려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은 사실 오래전 영국이 식민지를 자국에 예속시키는 과정에서 등장했던 수법이다. 문제는 그러한 통치행태가 지금에도 여전이 그 모습을 달리하여 이용되고 있고, 이 점은 우리의 과거역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일본은 한일합방 이후 군사와 경찰을 동원해 무력통치를 실시했지만, 3.1 운동을 기점으로 거센 반발에 부딪치면서 위기감을 느끼게 되자, 통치 앞에 문화라는 말로 그럴듯하게 겉모양을 부드러운 이미지로 꾸며내어, 실질적으로는 더욱 강력하고 악랄한 방법으로 지배를 이어갔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당시의 치욕적인 일본 통치의 잔재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하면서, 군부독재시절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치경제사에 적잖은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그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인 목적아래 만들어졌을지도 모를, 혹은 애초 의미와는 다르게 사용되는 낱말의 깊은 속내를 들여다봄으로써, 독자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의 확립과 현실을 직시하는 냉철한 가치관의 재정립을 강조하고 있는듯하다. 따라서 이 책 내용이 의미하는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로 하는 것은, 그동안의 쓰라린 굴종의 삶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가 희망을 만들어 가는 개념적이고 자주적인 삶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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