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백과사전 - 고대부터 인간 세계에 머물렀던 2,800여 신들 보누스 백과사전 시리즈
마이클 조던 지음, 강창헌 옮김 / 보누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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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존재는 인류의 역사와 그 맥을 같이해왔고 할 수 있다. 인류사의 지나온 과정을 살펴보면 인간은 스스로의 특유한 상상력을 통해 신비로운 세계를 구상하고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만들며 표현하기를 즐겨왔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로서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성장하여 사회적 가치와 규범에 의거해 살아가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적 제약이나 관습을 뛰어 넘는 이상적인 사회로의 갈망을 꿈꾸기도 한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인간의 그러한 일면을 두고, 사회를 초월하는 보다 완벽한 사회와 그에 상응하는 인간의 존재를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종교적 행위로 보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종교란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보는 사람마다 그 시각의 차이가 있게 마련이어서 한마디로 규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대개 궁극적인 실재자 개념을 중심으로 형성된, 개인적이면서도 집단적인 믿음의 행위에서 축적된 경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500년 동안 종교철학자들의 주된 관심사 중에서 한 가지는 유신론의 신 개념이었다. 그리고 유신론에서의 신은 전지전능하고 선한 초월적인 영적 존재자로서 이해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종교적 차원에서의 신에 대한 정의라고 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다양한 신의 형태는 그러한 설명과는 거리가 있는 신들도 상당히 많다. 또한 오래전 과거에는 주로 신비한 자연의 산물이나 현상과 관련한 것에 어떤 영적 주체를 귀속시키는 식의 신의 모체에 대한 범위가 확대되어 있다고 한다면, 점차 시대가 발전하면서부터는 인간적인 특성을 가지면서 구체적이고 명확한 형태로 변모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마다 존재했던 거의 모든 신들에 대한 세부적인 기록을 담아내고 있어서, 독자들이 그동안 잘 모르고 있었던 여러 신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책 속에는 고대문화에서부터 시작하여 전 세계 200여개의 다양한 문명권에 걸쳐, 인간에게 숭배의 대상이자 절대적인 존재로 여겨졌던 2,800여 신들에 대한 인류문명사의 실질적인 내용이 흥미롭게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규정하는 신의 모습은, 인간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도 인간과 구별되는 하늘이라는 관념적인 바탕에서 생성된 우상적 인물들을 말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예언자 무함마드와 같이 반신반인으로 여겨지는, 즉 사멸할 운명이었다가 천상의 지위를 얻게 된 인물이라든지, 악마나 신화적 영웅으로 여겨지는 인물에 관한 것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저자에 따르면 모든 신들은 거의 예외 없이 어느 날 문득 홀연히 출현한 것이 아니며, 그들의 존재 배경을 들여다보면 이들은 천천히 진화하기도 하고 더 오래된 기존의 신이나 여신의 특성에서 유래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한 서로 다른 이질적 문화들이 부딪쳐 한쪽 방향으로 흡수되거나 병합될 때, 비슷한 역할을 보였던 신들은 대개 대체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책의 서문에도 나와 있듯이, 신들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구체적인 역사자료가 부족한 탓에, 어떤 인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신으로 숭배를 받게 되었는지 그 정확한 시기를 규정하기는 힘들다는 점이다. 저자는 지난 10년 동안 흩어진 자료들을 근거로 하여 각 시대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존재로 고려되는 신들에 대하여, 그 기원과 시기 그리고 별칭과 이들의 역할까지를 상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일례로 삼국지를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알 수 있는 관우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면, 그는 중국의 토착종교인 도교 판테온의 가장 강력한 신으로, 서기 300년 무렵부터 중국 전역에 걸친 숭배의 대상으로 꼽힌다. 엄격하고 충성스러우며 성실한 이미지 때문에 홍콩에서는 지금까지도 경찰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한편으로 많은 중국 사람들에게는 나쁜 기운을 쫓아내는 경외적인 인물로 간주되고 있음을 찾아 볼 수 있다.


이 책에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대부분의 신들이 총망라되어 있어서 독자들이 그 내용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전 세계의 문명권에 존재했던 저마다의 특성을 지닌 신의 실체를 접할 수 있다. 물론 획기적인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과거 신들에 의지하던 숭배와 믿음의 영역은 오늘날 점차 감소해가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일부 독자들은 비과학적이고 현실과 괴리된다는 이유로 관심을 뒤로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여러 문명 속에는 비슷한 유형의 신들이 동일하게 때로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부분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은 자신들을 위협하는 모든 두려움에 대한 공포를 신이라는 하나의 매개체를 통해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해왔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 책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신들의 모습에서 당시의 종교나 사회문화의 흐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적잖은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의 흔적이 담긴 거의 모든 문화의 그 밑바탕에는 언제나 숭배의 대상이 되는 많은 신들이 있었고, 이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신의 존재를 믿을 것인가 아니면 부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들 각자 선택의 몫이다. 다만 인류의 문화 안에 이처럼 많은 신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볼 때, 우리가 단지 경전이나 신학을 통한 종교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할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의 삶에 위안과 지침이 되는 신들의 모습을 바로 찾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새롭게 발견하는 작업이자 인류의 역사에서 잃어버린 부분을 되살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종교적 차원에서 신의 모습을 접근하는 것이 아닌, 문화인류학적인 시각에서 신의 존재를 고찰해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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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안녕하세요, 교황입니다
슈테판 폰 캠피스 지음, 전진만 옮김 / 더난출판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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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에 새로이 교황으로 선출된 프란치스코 1세가 오는 8월 우리나라를 방문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종교계는 물론 일반시민들까지 감사와 환영의 뜻을 표하고 있다. 아울러 전국적으로 교황을 위한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 요즘 이에 대한 기대감이 날로 커져가고 있는듯하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자신사퇴로 교황청은 추기경단 회의를 소집해 차기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비밀회의 콘클라베에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를(프란치스코) 가톨릭교회의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했다. 프란치스코 1세는 교회 역사상 최초의 아메리카 대륙 출신 교황이면서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이라는 것 외에 크게 알려진 것이 없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 책은 전임 배네딕토 교황과 새롭게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나온 삶의 행적을 사진집의 형태로 그 전반적인 것을 상세하게 담아냈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동안 언론이나 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교황을 포함해 교황청의 내부의 실로 다양한 모습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교황청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에 방한하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출은 원래 예정에 없었던 일이었다. 교황청은 1년 전 이제는 전임교황이 된 베네딕토 16세가 건강상의 문제로 더 이상 교황직의 임무를 계속해서 수행할 수 없을 거라면서 교황의 퇴임을 공식발표했었다. 하지만 교황 재위 역사상 딱 한번 밖에 없었던 과거 전례에 비추어 보면, 교황 스스로가 자진사퇴하는 이러한 경우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간주되었다. 왜냐하면 통상적으로 추기경단 투표에 의해 누군가가 교황 자리에 오르고 나면 선종할 때까지 그 직위에 머무는 것이 그동안 가톨릭의 전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급작스런 베네틱토 전임 교황의 사임은 뜻밖의 일이었고 한편으로는 교황청 내부 세력 간의 알력다툼이 표출된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가에 대한 소문들이 무성했다. 그러나 교황청 내부의 모든 일은 비밀을 유지해야하는 규칙에 따라, 그 정확한 내용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그런 배경의 흐름을 간접으로나마 읽을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임 교황들과 비교해 부각되는 몇 가지의 사실들이 있다. 지금까지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으로는 공식석상이나 개인적인 생활에서 검소함과 겸손함이 두드러진다는 점인데, 일례로 전임자들이 사도 궁전에 거주했던 데 반해 프란치스코는 성녀 마르타 호텔을 자신의 거주지로 삼은 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가난한 사람들이나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은 소수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물론, 사상이나 신념 혹은 타종교에 대한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까지도 먼저 가까이 다가가서 대화를 나누는 소통의 폭을 넓혀가고 있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조국 아르헨티나가 독재정치라는 암울한 정치상황에 신음할 때, 비판적인 시선을 보여 왔으며 자신을 인신공격하던 사람들까지도 포용하려는 가톨릭 신앙의 기본정신인 사랑을 실천해가고 있다. 교황 즉위식이 있던 날, 로마 유대 공동체의 수장과 콘스탄티노플 동방정교회의 총대주교가 참석했는데, 이것은 1054년 교회대분열 이후 처음 있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교황과 이들의 만남을 두고 교회일치라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심의 촉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책의 내용을 보면 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때, 자신을 선택한 추기경들을 향해 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비록 죄인이지만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교회의 사명은 조직과 힘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명을 신뢰하고 이를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전임교황들처럼 교황이 되기까지의 화려한 경력도 없으며, 신부가 되기 전 여자 친구를 사귀었으며 취미로 탱고를 즐겼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교황이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교황으로서 그가 처음부터 관심을 가졌던 주제는 자비라고 한다. 그는 교구를 이끌 때, 누구나 완벽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는 것, 약하다고 해서 불안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해왔었다. 그래서 많은 신자들과 비신자들은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그리스도 정신을 전파하려는 그의 행보를 두고,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교황의 재임 시절에는 몇 가지의 불미스러운 일로 따가운 비판의 시선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에 대한 부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결과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모든 가톨릭교회가 그리스도의 정신에 입각해 정도를 걸을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말처럼, 향후 그의 과업이 인류의 평화를 향한 하나의 크나큰 축복으로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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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 무문관, 나와 마주 서는 48개의 질문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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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언론과 방송 그리고 강연에 이르기까지 대중에게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철학가이자 인문학자 강신주가 아닐까 싶다. 사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거리의 철학자로서 어떻게 혹은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 하는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적잖은 호응을 얻어왔다. 강신주의 저서나 강연을 봐왔던 독자들은 알겠지만, 그의 이야기가 비중 있게 여겨지는 것은 어떤 주제를 논하거나 설명하더라도 에둘러 표현하는 식의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것이 없고, 핵심적인 부분을 직설적이면서도 비유를 들어 명쾌하게 전달해준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그의 저서나 강연을 보다보면 가끔은 무언가에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이 너무 강한 나머지 충격의 여운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기도 한다. 물론 일부의 사람들은 그의 생각지 못한 독설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거나 불편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러한 반응자체가 성숙한 삶을 위한 하나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그동안 철학적 사유나 인문학적 접근의 문제에 어려움을 느끼던 독자들에게 한층 용이한 시각을 제공해왔던 그가, 이번에 출간한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라는 새로운 책을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독자들에게 무언가 심상치 않은 화두를 던지고 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선불교의 사상과 관련하여 주체적인 삶을 영유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어 눈길을 이끈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 책의 내용을 통해 선불교의 사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과 동시에, 이를 기반으로 마주한 현실의 세계에 당당하게 맞서 자유로운 삶을 구가할 수 있는 긍정적인 동기부여의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 책은 중국 남송 중기의 시기에 임제종의 거장 무문혜개 선사가 역대 조사들의 화두 중에서, 핵심이 되는 48개를 가려 뽑아 알기 쉽게 풀이한 선입문서인 무문관의 내용을 토대로, 저자의 이해하기 쉬운 설명과 함께 그 이면에 담긴 깊은 의미를 살펴보고자 했다. 무문관은 말 그대로 나가고 들어갈 수 없는 문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스스로의 힘으로 주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누군가가 통과하여 남겨놓은 흔적에 의지하지 않고서 말이다. 저자는 이 책의 서두에서 말하기를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가 주인의식을 지니지 않고서는 결코 자유로운 자신만의 삶을 향유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책 속에 나와 있는 48가지의 화두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유하고 접근할 때, 전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문이 어느새 자신의 눈에 보일 것이며, 마침내 그 문을 모두 통과하게 되면 이전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당당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설 수 있다고 말한다. 일례로 48개의 화두 중에서 한 가지를 언급해 본다면, 이 책 무문관의 12칙 암환주인 이라는 내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삶에서 주인공이 되어 거칠 것 없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이 화두에 대해 철학자 니체가 말했던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 것과 연계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통상 신이라는 존재는 인간에게 절대적인 모방과 숭배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만약 신이 인간에게 모방의 대상이라고 간주해야한다면, 결코 인간은 자신만의 가능성을 현실화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는 결국 내 삶에 주인은 내가 아닌 바로 신이 되는 것이며, 또한 우리는 신의 뜻대로 행동해야 하는 노예의 삶과 다름없는 것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그렇다면 우리는 왜 주인으로 살아야 하는 것일까 하는 문제인데, 이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포함하는 사랑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을 사랑할 수 없을 것이고, 이는 불교의 자비정신에서 그 연관성을 찾을 수 있음을 독자들은 살펴볼 수 있다.


사실 책에 등장하는 모든 화두의 내용을 읽어보면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싶을 정도로 그 해석이 쉽지 않으며, 거기서 무슨 깨달음을 얻을 것인 하는 막막함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해를 돕기 위한 저자의 비유적인 설명을 함께하다보면, 그 안에 담긴 심오한 의미의 실체를 들여다 볼 수 있고, 어느 순간 우리 자신이 외부적인 것에 상당히 의존하여 완전한 주체로서의 삶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게 한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에서 누구나 자신이 주인공임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모습을 제 3자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바라보면, 과연 스스로가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대한 의문이 생길 정도로 괴리된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은 그렇다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확신을 하기 이전에, 자신의 의지가 아닌 누군가에 현혹되어 이끌려져가고 있거나 행여 무언가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한 번 조심스럽게 되돌아 볼일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물리면서 그동안 우리의 사회가 경제성장이라는 이슈에 너무 집중되어 있다 보니 승자독식의 과도한 경쟁이 촉발되었고, 이에 뒤질세라 너도나도 뛰어들어 그리 바람직하지 못한 경향을 보여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 국제금융의 위기로 인간의 탐욕에 대한 반성으로, 상대적으로 등한시됐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 가고 있는데 이는 그 와중에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독자들에게 철학에 대한 깊은 사유로의 도움과, 자신의 인생에 주인공이 되기 위한 그 해결점을 찾게 만드는 유익한 도서가 될듯하다. 따라서 자신의 몸이 아프고 병들었을 때라야 비로소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되듯이, 노예로서의 삶을 뒤늦게 깨닫기보다 이러한 책을 통해 자신의 삶에 진정한 주인으로서 거듭나는 기회를 하루빨리 가졌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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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 류시화의 하이쿠 읽기
류시화 지음 / 연금술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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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문학에서 대표적인 정형시를 시조라고 한다면, 일본을 대표하는 그것은 바로 하이쿠다. 알다시피 시조는 고려 중기에 형성되어 조선 초기에 완성되었으며, 글을 쓰거나 읽을 줄 알았던 시대적 배경 때문에 주로 귀족이나 양반의 전유물로 간주되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을 계기로 일반 평민에게까지 널리 알려지면서, 엄격하던 형식의 변화와 소재에서의 다양성을 보이며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반면에 지리적인 위치의 관계에서 오는 이유때문인지는 몰라도, 일본의 하이쿠의 형성과정이나 문학적인 것에서 살펴보면 우리의 시조와 여러 면에서 유사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중적인 측면에서 이 두 개의 문학을 비교해보면 상당한 차이점을 보인다. 먼저 우리의 시조는 근대로 넘어와 한때 시조부흥운동이 있기는 했으나, 그 기반이 상당히 취약해서 시인이나 일부 애호가들에 의해서 다루어지고 있지만, 하이쿠는 28개의 나라가 가입이 된 국제 하이쿠 협회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현재 세계 50여 개의 대학에서 하이쿠 강좌가 개설되어 있을 정도로 그 인기가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되는 것은, 하이쿠가 전 세계의 유명한 시인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사랑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우리나라에서 만큼은 그리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과거 한일합방으로 인한 일제치하에서의 반일적인 감정과, 최근 날로 악화되어 가고 있는 일본과의 관계에서 오는 불편한 점 때문에 아무래도 꺼려지는 부분이 없지는 않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적으로 해결할 문제일 뿐이고, 문학적인 것은 또 다른 시각에서 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우리의 시조와 관련해서, 그동안 손쉽게 접할 수 없었던 일본 하이쿠에 대한 거의 모든 내용을 알아보고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듯하다.



책 속에는 지금까지 일본에서 발표된 거의 모든 하이쿠를 볼 수 있을 만큼 방대한 분량을 담고 있다. 조금이라도 하이쿠를 접해본 독자들은 알겠지만, 우리의 대표적인 정형시로 언급되는 시조가 그렇듯이, 일본의 하이쿠 역시도 첫 행에 다섯 글자, 두 번째 행은 일곱 글자, 끝으로 세 번째 행은 다시 다섯 글자라는 엄격한 글자 수의 제한을 받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 외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으로는 하이쿠는 그 내용 안에 차가운 봄바람, 가을의 보름달과 같이 계절을 의미하는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과,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규칙은 작품의 내용을 통해 어떤 대상을 설명하거나 무엇에 대해 주장하는 의미를 담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하이쿠를 감상하다보면 자연과 어우러진 목가적 풍경에 도취되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미학적인 세계 속에 놓이게 됨을 느낄 수 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하이쿠는 형식적인 제약이 많은 관계로, 그 내용이 다분히 함축적일 수밖에 없고 생략된 부분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점은 작품을 보는 이로 하여금 순간 작품 속으로 쉽게 몰입될 수 있도록 할뿐만 아니라, 어느 시선에서 작품을 바라보고 이해하는가에 따라 저마다 각기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어서, 자유롭고 한층 확대된 감상의 포인트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된다. 그래서 아마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도 해외의 많은 문인들과 일반 사람들이 일본의 하이쿠를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하이쿠는 원래 폐쇄적인 집단문학으로 출발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오늘날 하이쿠의 대표작가로 알려진 바쇼라는 인물에 의해서 17세기 무렵부터 대중적인 모습을 띠기 시작했으며, 메이지시대 이후 하나의 독립된 문학 장르로서 자리 잡기 시작했고, 현재는 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하이쿠문학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하이쿠는 한 줄의 시속에 여러 의미를 함축하는 문학이라고 말하면서,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그 숨은 의미를 끌어내어 누구나 자신의 마음속에 상상하고 완성된 하나의 이미지를 창조해낼 수 있다는 것에 그 의의를 찾을 있다고 한다. 또한 시라는 것은 시인에게서 독자에게로 건너가는 단지 수동적인 의미로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상상력과 시를 통해 독자 자신이 그려보는 심상이 더해져, 또 하나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하이쿠가 일본의 전통적인 문화유산으로 여겨지는 탓에, 지난 우리의 과거 역사와 관련하여 어쩌면 일부 사람들에게는 그리 달갑게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부분과 연관하여 저자는 하이쿠를 일본문학으로 분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으로 문학적 경계선을 긋는 일은 언어와 국경을 초월해 모든 예술작품이 공통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는데, 이는 독자의 입장에서 한번 깊이 음미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는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물질적인 혜택을 누리는 풍요로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호소할 만큼 생활의 여유로움은 찾기 힘들어졌다. 아울러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깊이 있는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우리의 감성마저 점차 메말라져 가는 건조하고 인위적인 삶의 흐름으로 매몰되어가고 있는듯하다. 그러한 시각에서 시라는 것은 그러한 우리의 공허한 마음을 채워주기에 적합한 수단임에는 틀림없다. 일본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널리 보급되어 하이쿠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음에도, 그동안 일본의 하이쿠에 관한 내용을 다룬 책은 국내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저자의 상세한 설명과 함께 하이쿠가 주는 문학적 풍미의 시간을 잠시나마 맘껏 누려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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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 제너레이션 - 스마트 세대와 창조 지능
하워드 가드너 & 케이티 데이비스 지음, 이수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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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출근길 지하철 내부의 풍경이 어떤 모습일까를 물어 본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한 대답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디지털 혁명의 세계를 거의 접할 수 없었던 노년층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 같이 스마트폰에 눈을 맞추고 있는 광경들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중에서도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인터넷 사용이 생활에 일부분으로 자리 잡게 된 시기에 태어난 젊은 세대들의 경우는, 집착에 가까울 만큼 상당히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래서 최근 사회학자들은 이들을 가리켜 앱세대라고 칭하기도 한다. 과거 아날로그시대와는 달리 디지털의 혁명이 가져다 준 생활의 편리함은, 우리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인터넷을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고, 가상공간을 통해 전 세계인들과 자유로운 인간관계의 형성을 가능케 했으며, 심지어는 최근 사용자를 만족시켜주는 스마트폰의 다양한 앱들이 개발되고 활성화 되면서, 그 범위가 점차 확대되어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거의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된 사회 환경의 변화로, 우리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디지털 기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젊은 세대들에게 있어서 그러한 부분은 더욱 더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라는 디지털 기술에 의존하여 살아가야 하는 앱세대들이 마주하고 있는 오늘의 시대적 흐름과 관련하여, 그로 인해 불가피하게 파생되는 여러 문제점을 다각적인 측면에서 깊이 살펴보고자 했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현재 어떤 문제점들이 대두되고 있으며, 어떻게 하면 이를 최소화 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인지, 그 핵심사항을 구체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오늘날 스마트 폰이 우리의 생활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도구로 자리 잡았다고 보고, 이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서 어떤 변화의 양상이 태동되고 있는지를 집중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이를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실제 사례와 젊은 층에 대한 심층적인 인터뷰를 거쳐 그 세부적인 것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분석해 놓았는데, 개인적으로 대부분 공감이 가면서도, 한편으로 부정적인 면을 고려해본다면 적잖이 우려되는 점도 없지 않아 보인다는 생각이다. 이 책에는 스마트 폰 앱세들에게서 보이는 많은 변화들 가운데,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세가지 측면이 면밀하게 다루어져 있어 주목된다. 제일 먼저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는 디지털 기술 발전의 영향에 따른 개인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활동하는 많은 청소년들은 대개 그곳에서 대중들을 의식한 연출된 행위를 습관처럼 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외적 페르소나는 결국 자신의 가치관, 신념, 감정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두 번째로는 대인관계의 문제인데, 디지털 미디어가 급부상하면서 새로운 방식의 사회적 관계가 빈번히 이루어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이 부분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저자가 이 책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다소 왜곡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쉽게 간과하고 넘어갈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끝으로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점은 창의성에 관한 것으로, 인간은 그동안 자신이 소유한 정신적 육체적 자원을 바탕으로 다양한 상상력을 동원해 의미 있고 생산적인 삶을 영위해 왔다. 그런데 현재 이용되고 있는 다양한 앱들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에 적응하며 단순히 즐기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창의성이 점점 퇴보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학계에서는 오늘날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래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이를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접하며 자라났던 젊은 세대들의 모습에서, 이전 세대들이 성장하면서 겪었던 것과 비교해 여러 부분에서 명확한 차이점이 있음을 한 목소리로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그 점과 관련해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세 가지의 문제점을 이 책에서 충분히 설명한바 있다. 그런데 그 부분에 있어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현재까지 나타나고 있는 여러 징후들을 볼 때, 그러한 사실이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보아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을 읽다보면 디지털 도구가 일상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함으로서, 리스크 회피나 앱에 대한 일방적인 의존적 태도 그리고 사물이나 대상을 피상적으로 접근하는 등의 부작용 때문에 조금은 비판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자가 정작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점은, 그런 비판의 이면에 앱이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여러 장점을 살려 자신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 역시도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앱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앱개발자들의 신중하고 책임감 있는 자세와, 또한 앱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앱을 주도할 수 있도록 환경조성을 위한 부모나 교사들의 의지가 뒤따라야 할 것을 전제하고 있다. 스마트 폰은 휴대전화의 기능은 물론이고 누구나 손쉽게 인터넷으로 접속할 수 있으며, 아울러 다양한 앱을 통해 예전에는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많은 것을 소화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도 더욱 광범위하게 진행될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여러 독자들이 앱에 종속되는 것이 아닌 선도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의미 있는 지렛대로 작용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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