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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 무문관, 나와 마주 서는 48개의 질문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4년 6월
평점 :
요즘 언론과 방송 그리고 강연에 이르기까지 대중에게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철학가이자 인문학자 강신주가 아닐까 싶다. 사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거리의 철학자로서 어떻게 혹은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 하는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적잖은 호응을 얻어왔다. 강신주의 저서나 강연을 봐왔던 독자들은 알겠지만, 그의 이야기가 비중 있게 여겨지는 것은 어떤 주제를 논하거나 설명하더라도 에둘러 표현하는 식의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것이 없고, 핵심적인 부분을 직설적이면서도 비유를 들어 명쾌하게 전달해준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그의 저서나 강연을 보다보면 가끔은 무언가에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이 너무 강한 나머지 충격의 여운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기도 한다. 물론 일부의 사람들은 그의 생각지 못한 독설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거나 불편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러한 반응자체가 성숙한 삶을 위한 하나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그동안 철학적 사유나 인문학적 접근의 문제에 어려움을 느끼던 독자들에게 한층 용이한 시각을 제공해왔던 그가, 이번에 출간한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라는 새로운 책을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독자들에게 무언가 심상치 않은 화두를 던지고 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선불교의 사상과 관련하여 주체적인 삶을 영유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어 눈길을 이끈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 책의 내용을 통해 선불교의 사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과 동시에, 이를 기반으로 마주한 현실의 세계에 당당하게 맞서 자유로운 삶을 구가할 수 있는 긍정적인 동기부여의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 책은 중국 남송 중기의 시기에 임제종의 거장 무문혜개 선사가 역대 조사들의 화두 중에서, 핵심이 되는 48개를 가려 뽑아 알기 쉽게 풀이한 선입문서인 무문관의 내용을 토대로, 저자의 이해하기 쉬운 설명과 함께 그 이면에 담긴 깊은 의미를 살펴보고자 했다. 무문관은 말 그대로 나가고 들어갈 수 없는 문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스스로의 힘으로 주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누군가가 통과하여 남겨놓은 흔적에 의지하지 않고서 말이다. 저자는 이 책의 서두에서 말하기를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가 주인의식을 지니지 않고서는 결코 자유로운 자신만의 삶을 향유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책 속에 나와 있는 48가지의 화두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유하고 접근할 때, 전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문이 어느새 자신의 눈에 보일 것이며, 마침내 그 문을 모두 통과하게 되면 이전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당당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설 수 있다고 말한다. 일례로 48개의 화두 중에서 한 가지를 언급해 본다면, 이 책 무문관의 12칙 암환주인 이라는 내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삶에서 주인공이 되어 거칠 것 없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이 화두에 대해 철학자 니체가 말했던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 것과 연계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통상 신이라는 존재는 인간에게 절대적인 모방과 숭배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만약 신이 인간에게 모방의 대상이라고 간주해야한다면, 결코 인간은 자신만의 가능성을 현실화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는 결국 내 삶에 주인은 내가 아닌 바로 신이 되는 것이며, 또한 우리는 신의 뜻대로 행동해야 하는 노예의 삶과 다름없는 것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그렇다면 우리는 왜 주인으로 살아야 하는 것일까 하는 문제인데, 이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포함하는 사랑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을 사랑할 수 없을 것이고, 이는 불교의 자비정신에서 그 연관성을 찾을 수 있음을 독자들은 살펴볼 수 있다.
사실 책에 등장하는 모든 화두의 내용을 읽어보면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싶을 정도로 그 해석이 쉽지 않으며, 거기서 무슨 깨달음을 얻을 것인 하는 막막함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해를 돕기 위한 저자의 비유적인 설명을 함께하다보면, 그 안에 담긴 심오한 의미의 실체를 들여다 볼 수 있고, 어느 순간 우리 자신이 외부적인 것에 상당히 의존하여 완전한 주체로서의 삶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게 한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에서 누구나 자신이 주인공임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모습을 제 3자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바라보면, 과연 스스로가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대한 의문이 생길 정도로 괴리된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은 그렇다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확신을 하기 이전에, 자신의 의지가 아닌 누군가에 현혹되어 이끌려져가고 있거나 행여 무언가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한 번 조심스럽게 되돌아 볼일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물리면서 그동안 우리의 사회가 경제성장이라는 이슈에 너무 집중되어 있다 보니 승자독식의 과도한 경쟁이 촉발되었고, 이에 뒤질세라 너도나도 뛰어들어 그리 바람직하지 못한 경향을 보여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 국제금융의 위기로 인간의 탐욕에 대한 반성으로, 상대적으로 등한시됐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 가고 있는데 이는 그 와중에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독자들에게 철학에 대한 깊은 사유로의 도움과, 자신의 인생에 주인공이 되기 위한 그 해결점을 찾게 만드는 유익한 도서가 될듯하다. 따라서 자신의 몸이 아프고 병들었을 때라야 비로소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되듯이, 노예로서의 삶을 뒤늦게 깨닫기보다 이러한 책을 통해 자신의 삶에 진정한 주인으로서 거듭나는 기회를 하루빨리 가졌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