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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 류시화의 하이쿠 읽기
류시화 지음 / 연금술사 / 2014년 6월
평점 :
우리의 문학에서 대표적인 정형시를 시조라고 한다면, 일본을 대표하는 그것은 바로 하이쿠다. 알다시피 시조는 고려 중기에 형성되어 조선 초기에 완성되었으며, 글을 쓰거나 읽을 줄 알았던 시대적 배경 때문에 주로 귀족이나 양반의 전유물로 간주되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을 계기로 일반 평민에게까지 널리 알려지면서, 엄격하던 형식의 변화와 소재에서의 다양성을 보이며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반면에 지리적인 위치의 관계에서 오는 이유때문인지는 몰라도, 일본의 하이쿠의 형성과정이나 문학적인 것에서 살펴보면 우리의 시조와 여러 면에서 유사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중적인 측면에서 이 두 개의 문학을 비교해보면 상당한 차이점을 보인다. 먼저 우리의 시조는 근대로 넘어와 한때 시조부흥운동이 있기는 했으나, 그 기반이 상당히 취약해서 시인이나 일부 애호가들에 의해서 다루어지고 있지만, 하이쿠는 28개의 나라가 가입이 된 국제 하이쿠 협회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현재 세계 50여 개의 대학에서 하이쿠 강좌가 개설되어 있을 정도로 그 인기가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되는 것은, 하이쿠가 전 세계의 유명한 시인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사랑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우리나라에서 만큼은 그리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과거 한일합방으로 인한 일제치하에서의 반일적인 감정과, 최근 날로 악화되어 가고 있는 일본과의 관계에서 오는 불편한 점 때문에 아무래도 꺼려지는 부분이 없지는 않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적으로 해결할 문제일 뿐이고, 문학적인 것은 또 다른 시각에서 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우리의 시조와 관련해서, 그동안 손쉽게 접할 수 없었던 일본 하이쿠에 대한 거의 모든 내용을 알아보고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듯하다.

책 속에는 지금까지 일본에서 발표된 거의 모든 하이쿠를 볼 수 있을 만큼 방대한 분량을 담고 있다. 조금이라도 하이쿠를 접해본 독자들은 알겠지만, 우리의 대표적인 정형시로 언급되는 시조가 그렇듯이, 일본의 하이쿠 역시도 첫 행에 다섯 글자, 두 번째 행은 일곱 글자, 끝으로 세 번째 행은 다시 다섯 글자라는 엄격한 글자 수의 제한을 받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 외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으로는 하이쿠는 그 내용 안에 차가운 봄바람, 가을의 보름달과 같이 계절을 의미하는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과,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규칙은 작품의 내용을 통해 어떤 대상을 설명하거나 무엇에 대해 주장하는 의미를 담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하이쿠를 감상하다보면 자연과 어우러진 목가적 풍경에 도취되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미학적인 세계 속에 놓이게 됨을 느낄 수 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하이쿠는 형식적인 제약이 많은 관계로, 그 내용이 다분히 함축적일 수밖에 없고 생략된 부분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점은 작품을 보는 이로 하여금 순간 작품 속으로 쉽게 몰입될 수 있도록 할뿐만 아니라, 어느 시선에서 작품을 바라보고 이해하는가에 따라 저마다 각기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어서, 자유롭고 한층 확대된 감상의 포인트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된다. 그래서 아마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도 해외의 많은 문인들과 일반 사람들이 일본의 하이쿠를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하이쿠는 원래 폐쇄적인 집단문학으로 출발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오늘날 하이쿠의 대표작가로 알려진 바쇼라는 인물에 의해서 17세기 무렵부터 대중적인 모습을 띠기 시작했으며, 메이지시대 이후 하나의 독립된 문학 장르로서 자리 잡기 시작했고, 현재는 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하이쿠문학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하이쿠는 한 줄의 시속에 여러 의미를 함축하는 문학이라고 말하면서,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그 숨은 의미를 끌어내어 누구나 자신의 마음속에 상상하고 완성된 하나의 이미지를 창조해낼 수 있다는 것에 그 의의를 찾을 있다고 한다. 또한 시라는 것은 시인에게서 독자에게로 건너가는 단지 수동적인 의미로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상상력과 시를 통해 독자 자신이 그려보는 심상이 더해져, 또 하나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하이쿠가 일본의 전통적인 문화유산으로 여겨지는 탓에, 지난 우리의 과거 역사와 관련하여 어쩌면 일부 사람들에게는 그리 달갑게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부분과 연관하여 저자는 하이쿠를 일본문학으로 분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으로 문학적 경계선을 긋는 일은 언어와 국경을 초월해 모든 예술작품이 공통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는데, 이는 독자의 입장에서 한번 깊이 음미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는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물질적인 혜택을 누리는 풍요로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호소할 만큼 생활의 여유로움은 찾기 힘들어졌다. 아울러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깊이 있는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우리의 감성마저 점차 메말라져 가는 건조하고 인위적인 삶의 흐름으로 매몰되어가고 있는듯하다. 그러한 시각에서 시라는 것은 그러한 우리의 공허한 마음을 채워주기에 적합한 수단임에는 틀림없다. 일본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널리 보급되어 하이쿠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음에도, 그동안 일본의 하이쿠에 관한 내용을 다룬 책은 국내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저자의 상세한 설명과 함께 하이쿠가 주는 문학적 풍미의 시간을 잠시나마 맘껏 누려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