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평민열전 - 평민의 눈으로 바라본 또다른 조선
허경진 지음 / 알마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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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공간의 한 단면을 잘라내어 들여다보면, 사실 일부 주역이라고 일컬어지는 몇몇의 인물만이 등장하는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그들만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 빛을 낸 장본인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일부 역량 있고 걸출한 누군가가 있어 어려운 시기에 용기 있게 앞장서서 새로운 시대를 이끌었던 결단의 행동은 주목을 받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 있어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모든 역사의 진보에 기본적인 동력이 되었던 이들은 다름 아닌 대개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일반인들 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실질적인 역사의 주춧돌이 되었던 이들의 존재에 대한 의미가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와 관련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시대 역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주로 왕이나 양반들에 관한 것으로 대부분 채워져 있음을 본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당시의 일반 평민들의 삶의 궤적을 찾아 볼 수 있는 사료는 극히 드물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조선초기부터 이어져 온 지배계층의 권위가 임란시기의 과정에 그들의 무능력함이 표면화 되면서 크게 약화되거나 몰락하고, 반면에 평민들의 문학이 조금씩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그러한 측면에서 후대에 길이 빛날 크나큰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남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어 낸 일반 평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들은 조선시대의 여러 분야에서 실무적인 일들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남다른 능력을 갖추었음에도 신분제약에 따른 이유로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했던 그들의 다양한 부분을 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 속에 평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시대적 배경은 19세기 즈음이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평민열전이 문집의 형태로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도 평민들 스스로가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되면서 자신들의 삶을 글을 통해 표출하려는 개인적 의지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책의 먼저 구성적인 면을 보면 소개되는 인물은 모두 110여명으로 편의상 주로 직업을 위주로 세분화시켜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평민 출신의 화가 조희룡이 지은 호산외기, 아전 출신의 유재건이 엮은 이향견문록, 시인 이경민이 엮은 희조질사에 나오는 내용을 중심으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기록을 토대로, 내용적인 면에서도 단순히 흥미위주가 아닌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으며 주목할 만한 이야기들을 선별했음을 볼 수 있다. 책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아무래도 무인보다는 문신이 우대를 받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기인한 것인지는 몰라도, 여러 직업 중에서도 특히 글을 짓는 시인들이 많은데, 이들의 태생적 신분을 보면 같은 평민이라도 양반의 피를 이어받은 경우가 많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의외로 노비, 나무꾼, 건달 등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눈에 뛴다. 더군다나 이들의 글 가운데는 나중에 왕에게까지 알려질 만큼 필력이 보통이 아니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 외에도 화가, 의원, 역관, 서예와 같은 개인적 능력을 지닌 직업군에 속한 이들의 활약상이 드러나 있으며, 우리들이 흔히 역사책에서 보았던 인물과 관련한 일화도 엿볼 수 있을듯하다. 더불어 책의 말미에는 효녀, 열녀, 공녀, 기생과 같은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들도 수록되어 있어서, 독자들이 당시의 사회상이나 평민들의 생활모습을 참고해볼 수 있도록 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전기란 원칙적으로 인물의 생애를 처음부터 끝까지 비교적 상세히 기록해야 하지만, 열전은 어디까지나 역사 기록상의 전기인 까닭에 평범한 사적은 싣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열전은 전해야할 사건만 추려내어 간결한 문체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사관이 왕명에 의해 서술된 열전의 경우에는 정치적인 이유, 즉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를 통해 백성을 교화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보면, 문인이나 평민들에 의해 사사롭게 지은 것은 열전역사서에 실리지 못했기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후세에 본받을 만한 가치 있는 덕목을 전해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특정인물에 대한 전기를 많이 보아오면서 그들에게서 삶의 지침이 되는 교훈을 배워왔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사회가 지배계층인 왕과 양반이 중심이 되는 불평등적인 사회인 까닭에 평민에 대한 실질적인 부분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책은 그러한 측면에서 독자들에게 조선시대 역사의 내용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제공해줌은 물론, 일반 평민들의 실질적이고도 다양한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듯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일부 등장인물들의 관한 내용이 생각보다 너무 짧게 기술되어 그 전후 맥락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고, 때로 그 실체가 모호하기도 해서 열전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빈약해 보이지 않나 싶다는 것이다. 책 속에 나오는 이들 대부분의 삶은 경제적으로나 신분적으로 극히 열악한 상황에서도, 인간된 도리를 지키며 맡은바 책임을 다하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단편적인 그들의 모습이기에 더 많은 사실을 알지 못하는 제한적인 면이 없진 않지만, 그럼에도 조선 사회를 묵묵히 지탱해왔던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독자들이 또 다른 관점에서의 역사를 바라보는 유익한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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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 선비들의 생활사 인간사랑 중국사 3
쑨리췬 지음, 이기흥 옮김 / 인간사랑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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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선비라 함은 조선시대의 지식인들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원류는 중국고대에서 비롯한다. 이들이 자신의 삶에 궁극적 목표로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책을 통해 지식을 공고히 하면서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원칙을 지키는 일과, 옳은 일에는 죽음도 불사한다는 굳은 신념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이러한 시대적 선비정신은 오로지 자신의 입신양명만을 위한 일부 벼슬아치들에 의해 점차 퇴색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선비라는 원래의 정신이 변질 혹은 왜곡되면서 뭇사람들에 의해 조롱의 대상으로까지 폄훼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어느 나라의 어떤 사회를 둘러보아도 권력을 쥐고 통치하는 핵심세력이 부패하고 타락의 구덩이로 빠져버리면 아무리 굳건한 토대와 융성한 발전을 이루어왔다고 하더라도 몰락해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며, 미래는 가히 희망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나라가 어렵고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마다 그 중심의 축을 이루는 지식인들의 행동은, 자멸할 것인가 아니면 극복할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될 수 있을 것이며, 그동안의 역사의 사실이 이를 증명해준다. 최근 우리 사회의 단면을 들여다보면, 과도한 경쟁이 일상화 되어서 일지는 몰라도 자신만 잘되면 아무런 상관없다는 인식이 날로 팽창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날로 혼탁해지고 있는 우리사회에 시급히 필요로 하는 것은, 고대 선비들이 자신의 목숨처럼 지켜온 그들의 혼이 담긴 일관된 정신이 아닐까 싶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옛 중국 선비들의 생활 모습을 통해 오늘날 우리들이 본 받아야 할 교훈적인 내용을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이 책 그들의 삶을 통해 자신을 지탱하는 정신적 지표로 삼았으면 싶다.


책의 간략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고대 중국에서의 선비라는 단어의 의미는 당시의 지식인을 전부 포괄하는 것으로 유생이나 문인으로도 불리기도 했다. 이들에게는 몇 가지의 특징적인 것을 살펴볼 수 있는데, 한때는 귀족의 부녀자도 선비라는 범주에 넣긴 했지만, 공자의 저서 시경에서 정의했던 것처럼 선비는 오로지 청년 남자만을 가리켰다. 또한 선비는 보통 글을 읽고 시를 짓는 문신들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 선비가 종사했던 직업으로는 무사가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귀족으로 분류되긴 했으나 이후 선비들이 점차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상사, 중사, 하사라는 세 등급으로 나누어졌다. 그런데 이처럼 선비의 계급이 분화되었던 그 주된 원인은 사회발전과 변혁으로 지식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강했고, 한편으로 전통적인 관학의 교육 방식 보다는 상대적으로 사학의 성장에 따른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고대 선비들은 다른 무엇보다 선비라는 자부심에 대한 품격을 상당히 중시했는데, 품격은 곧 인격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어서 역사에 대한 사명감과 우환의식, 그리고 유가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상적 인격, 즉 자신의 가치관을 사회에서 실현하고 백성들에게 헌신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도덕적인 면모를 유지하는데 역점을 두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더불어 중국 고대 선비들은 사회적 신분으로 보면 그들 나름대로의 특수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책에 의하면 그들은 관과 민 사이에서 독립적인 계급의식을 갖지 않았으며, 오직 왕권에만 의지하고 따르며 국가 관리에 참여하는 것을 자아실현의 과정으로 보았다고 한다. 선비가 되는 방법은 자격시험이라고 할 수 있는 과거에 응시하는 것이 그 하나였고, 다른 것으로는 과거시험을 세속적인 출세라고 여긴 이들이 초야에 묻혀 학문을 연구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것으로, 이들의 학문적인 능력은 지인들을 통해 정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선비의 생활상을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그들이 의식주를 비롯해서 풍류를 벗을 삼아 유람을 하고, 그들만의 자치적 모임을 만들어 정치 현안과 사회의 문제점을 논하는 등의 역사사료를 바탕으로 그동안 우리들이 잘 모르고 있던 다양한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 선비들의 모습에서 독자들이 깊이 새겨볼만한 것은, 그들은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한 행동을 보이는 일관된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개인의 호화와 사치는 금기로 여겼을 만큼, 청빈하고 검약하는 생활을 철칙으로 삼는 마음가짐으로 지행합일을 실천하는데 몸소 힘을 써왔다는 점이다. 아울러 나라가 위급할 때는 초개와 같이 몸을 던져 국태민안에 기여를 해왔음은 유의해 볼만한 내용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오랜 역사과정에도 국가적 위기 때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분연히 일어서서 바람직한 사회를 형성하는데 그 밑거름이 되었던 선비정신을 지닌 많은 이들이 있었다. 물론 일부 지식인들의 경우에는 과거 선조들이 지켜온 그러한 정신을 망각하고 변절의 길을 걸었던 인물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중국 고대시기에 발현되었던 선비의 정신은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조선기대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유지되어왔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근대를 거쳐 오늘날처럼 컴퓨터의 보급으로 흘러넘치는 정보로 인해 과거와 달리 지식의 양은 현격하게 늘어났지만, 상대적으로 보고 배웠던 학문의 이치를 사회에 실현하려는 선비정신은 극히 찾아보기 힘든 시대로 변모해 버린 지 오래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불법이나 탈법적인 것도 서슴지 않으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으려는 우리의 이기적인 모습은 하루빨리 탈피해야 할 것으로 본다. 이 책은 단순히 역사의 사실을 나열한 것에 그치고자함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었던 지식인이 지녀야 할 그 기본적인 정신을 다시금 고취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이 책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중국 고대 선비들의 소중히 여겨왔던 정신적 덕목을 배우고 익혀 실천하는데 하나의 동기부여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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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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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칼 구스타프 융의 무의식의 분석이란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생소한 전문용어들이 많은데다 이해가 쉽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인간의 내면세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우리의 정신적 문제점에 대한 다양한 것을 배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던 책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읽으면서 문득 떠올랐던 것은, 바로 융이 말했던 무의식에 관한 것이다. 인간이 무언가를 생각하고 이렇다 저렇다고 표현하는 의식적인 부분은,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의 크기에 비해 빙산의 일부처럼 여겨질 만큼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스스로 의식하고 있는 것만이 자신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듯 무지의 상태로 살아간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무의식은 우리의 감각적 경험에서 얻어진 수 없이 많은 파편들로 나열된 기억의 모음과, 그로 인해 파생된 감정의 에너지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점에 있어 우리가 가볍게 넘기지 말고 깊이 생각해 봐야할 것은, 사람들은 저마다 아픔이나 상처, 죄의식, 원망과 같은 가급적 기억하고 싶지 않는 부정적인 것들을 자신의 내면에 차곡차곡 쌓아 가두어 놓는 반면에, 이를 해소하지 않고 억압함으로써 스스로를 행복하지 않다고 여기게 된다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 작품은 미스터리에 근접한 추리물이라는 외적인 장르에서 오는 흥미로운 부분도 인상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전개되는 줄거리의 내용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인생을 향유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적인 문제와 관련하여, 인간의 내면에 의식적인 부분을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기도 해서 주목할 만하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아울러 독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 장르와 순문학이 결합된 신선하면서도 색다른 묘미를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작품 속 이야기는 주요등장인물이 되는 신견이라는 남자가 어린 시절 자신의 내면에 굳게 자리를 잡고 있던 R이라는 새로운 자아가 돌출되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는 과거를 회상하면서부터 시작한다. 이후 그는 어엿한 성인이 되었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던 중에, 한때 중학교 동창이기도 했던 사나에라는 여자를 우연히 만나 호기심에 이끌려 뜻하지 않은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그녀의 학교생활이 너무 짧았던 탓에 형식상 동창생일 뿐이기도 했고 특별한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그는 더 이상의 만남을 지속할 생각은 갖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날 자신의 사무실을 찾아온 어느 사설탐정으로부터 그녀가 살고 있는 베란다를 잠시 조사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녀가 오래전 도심에서 발생한 미궁에 빠진 밀실살인사건의 직접적인 당사자였다는 사실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리고는 그녀가 겪었던 과거의 사건에 대해 그 세부적인 내용을 조사하기에 이른다. 그 사건으로 그가 알게 된 것은, 사나에를 제외하고 그녀의 가족 모두가 의문의 살인을 당한 것이었으며, 외부의 어떤 침입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뚜렷한 증거나 목격자가 없는 관계로 지금까지도 미제의 사건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한편 그녀는 그가 당시의 사건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베일에 가려진 충격적인 사건의 전모를 상세히 알려주게 된다. 결국 이들 두 사람은 자신들이 경험했던 과거의 아픈 상처로 인해 현실에서 극히 부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서로가 이해하고 공유하면서 새로운 변화의 계기를 모색하게 된다.


이 작품은 작가가 후기에서 밝혔듯이 장르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미스터리적인 재미와, 한편으로 예술적 가치와 인간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순문학이 조화롭게 어울린 실험적인 성격이 강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대개 이와 같은 형식의 작품들은 독자들의 관심을 이끌기는 하지만 그 내용적인 면에서 볼 때, 생각 외로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음을 본다. 그러나 이 작품은 대중적인 측면이나 작품성과 관련해서도 호감적인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지 않나 싶다. 특히 이 소설은 미궁에 빠진 밀실사건을 중심으로 사건의 중요인물이 되는 당사자와 우연한 인연으로 그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되는 두 남녀를 매치시키면서 장르가 주는 흥미의 요소를 바탕으로, 중반 이후 인간의 내면적인 부분을 깊이 파헤쳐가는 대단원의 결말을 보여주고 있는데, 독자의 입장에서 작가가 구성적인 면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과거 한두 가지의 잊지 못할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결국에는 훗날 타인과의 관계에 왠지 모를 두려움에 사로잡히거나 혹은 기피하게 되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며, 심지어는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독자들이 이 작품을 읽다보면 주인공의 심리적 상태를 통해, 인간이 때로 이해하기 힘든 불가피한 선택을 하게 되는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공감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작품 속의 제목처럼 우리의 내면에는 분명 존재하지만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정신의 세계는 어쩌면 미궁과도 같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풀릴 것 같으면서도 도저히 풀리지 않는, 그래서 마치 해답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현상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진실이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인간의 의식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많은 일들이 있음에도 우리는 이를 무덤덤하게 넘겨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따라서 이 작품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작품 속 주인공들이 그랬듯이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를 한번쯤 재정비 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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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연습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김혜진 옮김 / 더난출판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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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다양한 정보로의 접근이 보편화되면서 그에 따라 개인에 대한 기대 능력치도 예전에 비해 점점 높아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에게 있어 지적수준을 높여줌과 동시에 자기계발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반면에 우리의 사회현실은 기대이상의 것을 요구하게 마련이어서 결국에는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고통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이를 기꺼이 수용하는 이유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보려는 본연의 욕망과 또한 타인에게서 능력을 인정받으려는 일종의 자존감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물론 자신이 원했던 어떤 목표에 도달했을 때, 그에 대한 개인적 성취나 보람을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거기서 얻게 되는 행복에 대한 체감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더 큰 목표를 향해야 하고 그 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만약에 행여 도달하지 못하면 하는 불안감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불편하고 피곤한 생활이 반복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한 삶을 바라고 살아간다. 그런데 많은 연구학자들은 물질적인 것을 남보다 많이 소유하고 있고, 능력과 외모가 뛰어나다고 해서 그 사람이 느끼는 행복의 정도가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아이러니 한 것은 그 점을 인식하면서도 우리는 그런 것들에서 행복과 만족감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의 모습에서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는 그러한 질문에 대하여 우리의 생각과 시각을 조금만 달리한다면 얼마든지 만족한 삶을 구가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현대인들은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는 것에 이미 익숙해져 있고, 남들보다 우월해지려는 욕구가 만연되어 있기에, 그것이 설령 성공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불만족과 환멸에 빠지게 됨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근거로 우리는 언제나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상황을 맞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남들에게서 좋게 평가나 인정받으려는 마음에 쉽게 이끌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의 근원을 찾아가다보면 최종적으로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불신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에 처한 상황에 따라 나약하고 비겁하기도하며 한심하게 여겨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의 그러한 모습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애써 외면하거나 감추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로부터 자꾸만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돌이켜보면 스스로를 부족하다거나 추하다고 자인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약점을 부정하거나 합리화내지는 정당화 하려하기보다는, 그런 존재라는 것을 마음 깊이 솔직하게 받아들이려고 하는 행위가 곧 행복한 삶을 위한 새로운 깨달음의 시발점이며, 이를 발판으로 자신을 강하게 만들 수 있음을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저자는 책 속에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칫 범하기 쉬운 행위들과 관련하여, 그러한 원인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이를 무리 없이 억제할 수 있으면서도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삶을 이어갈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핵심적인 내용에는 불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정신적 사상이 뒷받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간결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이야기가 많다는 점에서 독자들은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오늘 하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 많은 것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는 본래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하거나,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억지로 해야만 했던 일들도 있었을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남과 비교당하기 싫어서 그럴듯한 가면을 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더불어 그러는 과정에서 극히 작은 것을 얻기 위해 너무도 큰 희생을 치른 것은 아닌지도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평온하며 행복한 인생과는 한참 거리가 먼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가 정신적으로 날로 피폐해지고 타락해지는 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를 못하고 남들에게서 인정받으려는 욕구에 의해 무언가를 자꾸만 갈구하고 이를 얻기 위함 때문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우리는 더러 어떤 대상에 집착하기도 하고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증오에 빠지기도 한다. 사람은 살아생전에는 잘 모르다가 죽음이 임박해서야 자신이 왜 그렇게 살았는지에 대해 뒤늦은 후회를 한다고 한다. 남들에 비해 여러 가지 면에서 성공적인 인생을 사람들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아울러서 스스로를 다그칠 필요가 없다면 우리가 짊어진 삶의 무게는 훨씬 가벼워 질 것이며, 나중에 후회하게 될 일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으로부터의 책임에 자유로워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자신도 모르게 타성에 젖은 관계로 한 순간에 전부를 바꿀 수는 없는 일이며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마음이 풍요로운 삶을 위해 이 책의 내용은 때와 상황에 따라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에 대한 최선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을 토대로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타인에게 우월함을 내보이겠다는 자신의 욕구를 내려놓음으로써, 정신적 안정을 찾고 세상에 순응하는 이치와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실천적인 자세를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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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역사
폴 존슨 지음, 김한성 옮김 / 포이에마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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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유대인이란 오직 하나의 신인 여호와를 의지하고 메시아가 지상 천국을 건설할 것을 믿는 유대교의 교리를 따르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리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구분지어 이야기 한다면 약속의 땅을 점령한 12지파 중의 하나였던 유다지파의 구성원을 지칭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유대인을 규정지어 정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를테면 태생적으로는 분명 유대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자신의 신념에 따라 종교적 행위를 거부하는 종교문제가 있기도 하며, 개혁 유대교에서는 부모 중 한사람의 유대인 혈통을 이어받았다 하더라도 유대인으로 인정하고 있기도 해서 사실상 이를 명확하게 구별하기가 점차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지구상의 모든 민족을 통틀어 유대인만큼 박해를 받고 정착지에 머물지 못하고 유랑을 해야 했던 경우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다양한 사회 속에 스며들어 필적할만한 자신들의 족적을 뚜렷하게 남겨놓았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이들을 가리켜 다른 어떤 민족보다 독특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만들어 낸 유일한 민족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유대인의 역사는 대략 4,000년을 이어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기간이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이후 전체의 역사과정에 무려 반 이상에 해당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다른 어떤 민족에 비해 유구한 역사를 지녀왔다고 자부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그와 같이 유대인의 역사가 지구상에서 오랜 시간을 거쳐 왔으며, 더불어 세계의 여러 지역을 포괄하고 있는 만큼 유대인의 역할과 그들 존재의 의미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하여 그동안 유대인이 걸어왔던 발자취의 거의 모든 내용을 깊이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의 내용은 먼저 유대인들이 국가적인 체제를 이루어냈던 고대의 시기를 지나, 이후 수 세기 동안 자신들만의 둥지를 틀지 못했던 사실과 연관하여, 유대인들은 어떻게 다른 민족과 구별 짓고 동질성을 유지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그들의 사상과 힘에 대한 그 근원지를 찾아보고자 했다. 그래서 초창기 유대민족을 이끌어 왔던 주요 선지자들에 대한 인물들의 여러 활동 내역과, 그들을 통해서 바라본 유대인의 정신적 지주의 그 상세한 배경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또한 중세시기에 이르러서는 이슬람 세력과 반유대주의가 확산되어가는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그들만의 새로운 사회구조체계의 생성과정을 들여다 볼 수 있는데, 이는 당시의 역사적 사건과 비교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기도 하다. 그 다음으로는 유대인의 장구한 역사의 기간과 비례해서 그들이 국가라는 구심점 없이 개개인의 일원으로 수많은 시간 동안 그들이 겪어야만 했던 핍박과 압제 그리고 모욕을 당한 그 과정에서의 인과관계 문제가 면밀하게 설명되어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유대인이 모여 살도록 법으로 규정해 놓은 도시의 거리나 구역을 가리키는 게토에 관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게토 안에서 종교나 사법, 자선과 휴양기관들을 꾸려가는 등의 공동체 의식이 면밀하게 나타나 있어 그들만의 생활상을 가까이에서 엿볼 수 있다. 이 책에서 또 하나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 중 한 가지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나치 독일이 저지른 유대인 대학살로 점철되어지는 홀로코스트다. 그런데 저자는 이 책에서 당시 대학살의 사건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라 거기서 한층 확대하여, 그 시기 전후로 국제적 이해관계가 모색되던 분위기 속에 유대인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심층 분석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이 책 끝부분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시온, 즉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영토분쟁에 관한 여러 국제적 시각들을 심도 있게 담아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유대인의 모든 것을 담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초창기 유대인의 실질적인 모습을 유추해볼 수 있는 성경의 내용과 성경을 통해 새로이 밝혀진 역사적 사실들, 그리고 그와 연관된 수많은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흥미로우면서도 의미 있는 이야기를 총 망라하고 있다. 그런 이유에서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부분적이고 단편적으로만 소개되어 왔던 유대역사의 과정을 한 눈에 모두 들여다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그동안 유대인이 이룩해왔던 다양한 역사의 산물들을 고려해볼 때, 유대민족이 지구상에 없었더라면 세상은 전혀 달라졌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그는 유대인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법과 인간의 법 앞의 평등사상을 얻었으며,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 사상, 공동체의 양심과 사회적 책임, 평화와 정의를 기반으로 한 사랑, 그리고 인류의 기본적인 윤리 내용을 구성하는 다양한 정신적 신념에 대한 그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만약에 그들이 유일신으로 섬기는 하나님에 대한 그 사랑의 의미를 인류애로서 인식하려는 실천적인 부분이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주목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고, 아울러 우리의 현실도 그 만큼의 문제점을 떠안게 되지 않았었을까 싶다. 유대인들은 그동안 걸어왔고 또 그렇게 해야만 했던 고단한 여정 속에서 버림받고 상처를 입어야 하는 시간들이 지속되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끊임없는 이상주의 실현의 가능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며 이를 목숨처럼 지켜내면서 스스로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기를 자처했다. 그런 이유에서 어쩌면 이들의 역사를 살펴본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차원에서가 아닌, 인류문명사의 내용을 또 다른 시각에서 관찰해볼 수 있다는 것에 그 의미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그동안 잘 알지 못했거나 혹여 있을지도 모를 왜곡된 유대역사에 관하여 사실에 근거한 세부적인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며, 아울러 유대인의 진면목을 관찰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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