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물만두 > 플레져님께 알려드리는 추리소설!

우선 저는 시리즈 작가를 제일로 치고요. 그 다음 작가 순으로 봅니다.

기리노 나츠오의 작품은 모두 좋지만 이 작품도 좋습니다만 과도한 잔인함이 싫다시면 페미니즘 관점에서 보시길 바랍니다.

기시 유스케의 작품도 좋습니다. 이 작품 무섭다시는 분이 많은데 무서우시면 <푸른 불꽃>을 보세요.

김성종의 작품 가운데 좋은 작품입니다. 이 작품 외에도 <피아노 살인>도 좋습니다.

딕 프랜시스를 워낙 좋아합니다만 이 작품은 진짜 좋습니다.

필립 말로를 싫어하지만 이 작품은 좋아합니다.

렉스 스타우트의 작품 가운데 이 작품을 고른 것은 < 마술사가 너무 많다>가 이 작품의 오마쥬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말이 필요없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와 탐정이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로렌스 블록과 매트 스커더 다음으로 좋아하는 로스 맥도널드의 루 아처 시리즈입니다.

미넷 월터스도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사라 파레츠키의 워쇼스키 시리즈중 최신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트릭면에서라도 꼭 보셔야 하는 작품입니다. 스포일러 만땅 썼다가 혼난 작품입니다 ㅠ.ㅠ

아이라 레빈의 이 작품을 좋아합니다만 이 작가가 이런 작품을 다시는 안 쓰더군요 ㅠ.ㅠ

앤서니 버클리의 작품 가운데 한 작품입니다. 마치 동서미스터리북스는 모두 읽어라 같습니다^^;;;

이 작품 읽으셨던가요? 좋습니다. 무조건...

절판이라 뺐더니 다시 출판되었어요 ㅠ.ㅠ

 

죠르쥬 심농의 메그레 경감 시리즈는 무조건 읽어야 하는 작품입니다.

  

콜린 덱스터의 작품도요. <사라진 소녀>가 없다는게 아쉽습니다. 그게 제일 좋은 작품이거든요.

<낯선 승객>보다 단편집을 골랐습니다. 하이스미스의 단편은 늪과 같습니다. 보기에 따라서는요.

뒤렌마트는 읽으셨을 것 같습니다만 아주 좋은 작품이 많죠.

크로프츠의 통은 그 시대 이런 트릭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추리소설이 모두 잔인하고 심각한 건 아닙니다.

특이한 탐정이 등장하죠. 단편집입니다.

이 작품도 좋지만 단편 <두 병의 소오스>가 진짜 좋은 작품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입니다.

어떻게 탐정은 추리를 하는가를 알 수 있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도 좋습니다. 비트겐스타인 작품 아닙니다.

번역이 이상하다고 하던데 구판은 구하실 수 없을테니 그냥 보세요.

중편 두작품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영화도 좋고 작품도 좋습니다.

영원의 아이를 구할 수 없으니 텐도 아라타의 이 작품을 읽으시면 좋을 듯하지만 거부감이 든다면 패스하세요.

우리나라 작가가 쓴 중세 이슬람 세계의 이야깁니다. 

이 작품을 추리소설로 보기가 좀 그렇겠지만 좋은 작품이라 알려드립니다.

티투스는 정말 너무 많이 얘기를 했네요.

이 작품도 읽으시면 재미있습니다.

빠트릴 뻔한 작품입니다. <화차>가 더 좋지만 이 작품으로 미야베 미유키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마술사가 너무 많다도 SF 추리소설입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 작품입니다. 재미있으니 꼭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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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라고 말하기보다는 제가 지금 있는 책 목록 중에서 생각나는데로 뽑았습니다.

한글 파일을 이용해서 소장하고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리고 최대한 절판이나 품절도서는 포함시키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사이 어찌됐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그냥 추리소설이면 다 좋아라하기 때문에 왠만하면 다 좋다고 하는 편입니다.

무엇보다 몇 권 읽어나가시면서 스스로 좋아하는 추리소설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읽다보면 누구는 최고라고 해도 본인은 아닌 경우도 있고 누구는 별로라고 했지만 자신에게는 좋은 작품인 경우가 있으니까요.

그건 님께서 잘 아실테죠.

많은 작품들이 서로 겹칩니다.

아가사 크리스티, 모리스 르블랑, 코넌 도일, 엘러리 퀸의 작품은 뺐습니다. 이건 기본이거든요.

그리고 저 작품 중에 포함 되지 않았지만 좋은 작품들도 많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어디에서는 좋다고 했는데 빠진 작품도 혹 있을 겁니다.

제 기억력의 한계입니다.

에드 맥베인의 작품은 뺐습니다. 경찰소설은 아마 대부분 안 넣었을 겁니다.

관심있으시면 헤닝 만켈이나 에드 맥베인의 작품들을 보세요.

작가의 작품 가운데 한 작품씩만을 넣었고 시리즈는 몽땅 넣었습니다.

그 점 감안하시고요.

최근 작품 가운데 안 넣은 작품도 많습니다. 아시리라 생각해서 뺐습니다.

좋은 많은 작품들이 볼 수 없다는 점이 좀 안타깝습니다만 더 좋은 작품이 나오겠지요.

저는 베스트 작품이 그때그때 달라서요 ㅠ.ㅠ

개념없이 추리소설이라면 헤벌쭉이라는 걸 감안하셔서 꼼꼼히 살피시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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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에 나온 책들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뽑아봤습니다.
기준은 읽은 책들 중에서 아하! 소리를 많이 냈거나 짜릿했고 울컥했거나 하는 것들입니다. 네. 한마디로 제 마음대로입니다^^

분야를 다양하게 생각해봤는데, 어쨌든 여기에 있는 책들은 적극 추천합니다.


 


※ 나비와 전사 (고미숙/휴머니스트)
우리의 ‘근대’는 무엇이었을까? 경제개발 논리에 치여 억지로 신화화되고 있는 것이 근대였다. 하지만 칼날 같은 비판이 똘똘 뭉친 고미숙의 <나비와 전사>는 꺼풀은 베껴지고 진실은 드러났다. 아! <나비와 전사>, 이보다 명쾌하게 근대를 말해준 것은 없었다.


 


※ 돌원숭이 (제프리 디버/노블하우스)
설명이 필요 없는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 네 번째 이야기! 화려한 반전에 몸을 가누지 못한다. 반전은 기본, 법의학도 기본, 로맨스도 기본, 찡한 감동이 보너스로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기막히게 재밌는 추리소설’은 <돌원숭이>를 위해 준비된 수식어다!


 


※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 (조현설/한겨레출판)
외국의 신화가 유행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더욱 빛난다. ‘바리데기’등 우리의 귀중하고도 아름다운 신화들을 모아둔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 이 책을 읽고나면 뿌듯해진다. 우리의 신화를 마구마구 알아버렸으니까!


 


※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선언 (강유원/뿌리와이파리)
<공산당선언>은 혁명의 필요성만 말하지 않았다. 자본주의에 대한 냉철한 비판이 담겨 있다! 그러니 읽을 수밖에. 더욱이 비정규직 철학자 강유원과 함께 읽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공산당선언>이 오늘날 어떤 의미인지, ‘나’에게 무슨 의미인지를 확실히 알려준다!


 


※ 흑사병 시대의 재구성 (존 켈리/소소)
미시사로 역사를 살펴보는 맛을 만끽하게 해주는 책! 흑사병이 횡횡하던 그때 유럽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유럽 중세를 폭넓게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기행문처럼, 혹은 소설처럼 구성된 탓에 역사책답지 않게 흥미진진하다!


 


※ 강산무진 (김훈/문학동네)
‘허무’ 속에서 ‘감동’을 이끌어낸 김훈의 소설집! 감동의 여운이 어찌나 깊은지 뼛속까지 부르르 떨리는 듯 하다. 2006년 상반기 한국이 낳은 최고의 소설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 생일 (장영희/비채)
장영희가 쓰고 김점선이 그린 <생일>은 영시의 세계를 알려주는데 내용 하나하나가 보석 같다. 시에 관해서는 젬병이라고? 문제없다. 이 세계에 참석하는데 그건 중요하지 않다. 사랑할 줄 아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2 (김남희/미래M&B)
아, 김남희가 있어 ‘걷기’ 여행의 아름다움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 남쪽 땅을 이야기했던 1편에 이어 2편에서는 스페인 ‘순례자의 길’을 말하고 있는데 역시나 ‘로망’은 풍족하다. 그러니 조심하시라. 김남희를 따라 떠나고 싶어질지 모른다.


 


※ 시간 여행자의 아내 (오드리 니페네거/미토스북스)
시간을 거스르는 여행을 하는 남편, 그리고 조마조마하게 그를 지켜봐야 하는 아내의 슬프면서도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 ‘이런 것이 소설이구나’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 디아스포라 기행 (서경식/돌베개)
모두가 ‘대한민국!’을 외칠 때 외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이가 있다. 바로 재일교포.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디아스포라 기행>에서 그 족적을 따라가 보자. 아름다운 기행은 아닐 테지만 후회하지 않을, 두고두고 기억하게 될 기행이 될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 짜장면 불어요! (이현/창비)
동화하면 어린이들의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여기 따뜻하고도 슬픈 동화집 <짜장면 불어요!>를 본다면 편견은 ‘확!’깨지고 만다.


 


※ 미래 (수전 그린필드/지호)
미래에 관한 책들은 다들 미래를 예측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미래>는 다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미래를 준비하는 이에게 반드시 필요한 미래책!


 


※ 인생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이레)
죽음 직전의 사람들을 인터뷰한 <인생수업>에는 성공의 비결은 없다. 하지만 인생을 보람차게 하는 비결은 가득하다. 죽기 직전에 삶을 만족했노라고 말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인생수업>을 들어보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 에코토이, 지구를 인터뷰하다 (리오넬 오귀스트 외 2명/효형출판)
환경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세 청년이 해냈다. 그들은 친환경 자동차 에코토이를 타고 지구를 돌면서 ‘지구’를 인터뷰해낸 것이다. 독특하고도 환상적인 환경 인터뷰, 기대치를 한껏 높여도 무방하다.


 


※ 블랙 아테나 (마틴 버낼/소나무)
아테나 여신이 원래 흑인이라는 주장이 있다면 믿겠는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상식과 진실이 언제나 일치하지 않는 법! 서양문명의 근본을 흔드는 거대한 책 <블랙 아테나>, 놀랍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 옥루몽 (남영로/그린비)
조선 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옥루몽! 그 재미가 어찌나 쏠쏠한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저 빠져들라고 말할 수 있을 뿐!


 


※ 팔란티어 (김민영/황금가지)
이렇게 흡인력 강한 소설은 참 드물다. 게다가 재미까지 가득 담고 있다. 그러니 두말하면 잔소리! 게임으로 빚어진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팔란티어>, 거대한 즐거움의 해일을 마주선 것 같은 착각을 선사한다.


 


※ 사신치바 (이사카 코타로/웅진)
그의 이름은 치바, 직업은 사신. 이 남자가 접근하면 ‘거의 죽는다’고 봐야한다. 그런데 그걸 보는 게 왜 이리 재밌고도 유쾌할까? 쿨하면서 진지한 이사카 코타로의 <사신차바>, 만족할만한 일본소설이다.


 


※ 고전문학사의 라이벌 (정출헌 외 3명/한겨레출판)
역사는 그냥 보면 지루하다. 하지만 라이벌로 본다면? 문제없다. 고전 문학계의 쟁쟁한 라이벌들을 통해 그 시대를 엿보는 <고전문학사의 라이벌>, 이처럼 흥미로운 역사책도 드물다고 할만하다!


 


※ 김영갑 1957~2005 (김영갑/다빈치)
루게릭 병으로 세상을 떠났던, 제주를 사랑했던 사진가 김영갑의 사진집은 놀랍기만 하다. 사진에 바람을 집어넣은 것이 놀랍고, 나비가 날아올 만큼 꽃을 생생히 집어넣은 것이 놀랍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제주를 사랑하고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다. <김영갑 1957~2005>, 사진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련해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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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이매지 > 단호박 떡케잌

 

재료(대나무 찜기 22cm기준) : 멥쌀가루(7컵), 단호박(1/4개), 고구마(1/2개), 설탕(4)

 

 

1. 속을 파낸 단호박과 고구마를 쿠첸에 찌고,(전자렌지에 익혀도 무방)

(단호박 1/4개와 고구마1/2개만 필요하지만, 남은건 먹으려고 모두 쪘음..ㅋㅋ

단, 나중에 장식할 단호박과 고구마는 남겨두기.)




 
 
 
2. 쪄진 단호박과 고구마를 체에내리고,



 
 
 
3. 한 번 체에내려서 준비한 쌀가루에 2와 설탕을 넣어서 고루 섞이도록 손바닥으로 비벼주고,
(마하의 속도로 비비고 있는 현란한 손동작.^^v)



 
 
 
 
4. 3을 고운 체에 다시 한 번 내려주고,



 
 
 
5. 손으로 가볍게 뭉쳐봐서 3~4번정도 톡톡~쳤을 때도 부서지지 않을 정도가 되면 o.k
** 단호박에 수분이 많기 때문에 따로 물을 넣지 않아도 저 상태가 되지만,
만약 물기가 없었던 단호박이었다면 상황에 따라 물을 약간 첨가.



 
 
 
6. 찜기 옆면에 2*3cm로 썬 단호박, 고구마를 번갈아 세워주고,
만들어놓은 5를 찜기에 채워서 김오른 찜통에서 25분 쪄주고, 5분 뜸 들이고
(** 쌀가루를 찜기에 넣을 때 손으로 꽉꽉 눌러주면 잘 익지도 않고, 식감이 좋지않으니까
손으로 살살 뿌려가며 포실포실한 느낌을 유지.  그리고 반드시 김오른 찜통에서 찌기.
대나무 찜기 아래는 A4지나 노루지, 면보를 재단해서 깔아주기.)



 
 
 
7. 이제는 장식하기~^^
(그러므로 여기부터는 자기 마음대로~~자기가 장식하고 싶은대로~~^^)
익히지 않은 단호박을 필러로 얇게 저미고,



 
 
 
8. 물(50g), 설탕(50g)을 넣고 끓이다가 단호박을 넣고 센불에서 가열.
끓기시작하면 물엿(20g)을 넣고 약한불에서 단호박이 투명한 색이 날 때까지 서서히 조려주고,
완성된 단호박 케이크 위에 장식하면~~~



 
 
 
 
완성~^0^



 
시식평가 : 이번에도 맛이 궁금했기에, 
완성된 쌀가루를 조금 덜어서  종이컵에 따로 쪄서 시식해봤다.
 
우와아아~~~폭신폭신!!! 보들보들~~~!!! >.<
지난번 녹차케이크는 청량한 맛이 일품이었다면,
이번 단호박 케이크는 부드러운 맛이 단연코 돋보였다.
마치 카스테라같은 폭신폭신한 질감. 게다가 쫄깃쫄깃~~^^
 



 
그냥 쌀가루만 찌면 먹을 때 심심할 것 같아서 옆면엔 단호박과 고구마를 넣고,
위엔 캬라멜 느낌이 나는 단호박 조림을 올려봤는데, 모양은 그런대로 만족.
드시는 분들이 좋아하셨으면 좋겠다.
 
 
출처 카페 > 쿠첸의 건강한 밥맛 행복한 .. / 쿠체니
원본 http://cafe.naver.com/cuchen/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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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물만두 > 부뤼겔의 그림의 사계 자세히 보기!

The Hunters in the Snow (January). 1565. Oil on panel.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Austria. 

The Hunters in the Snow (January). Detail. 1565. Oil on panel.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Austria.

* 겨울 *

The Gloomy Day (February). 1565. Oil on panel.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Austria.

The Gloomy Day (February). Detail. 1565. Oil on panel.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Austria.

* 봄 *



Haymaking(July). 1565. Oil on panel. Narodni Gallery, Prague, Czechia.

Haymaking (July). Detail. 1565. Oil on panel. Narodni Gallery, Prague, Czechia.

* 여름 1 *



The Corn Harvest (August). 1565. Oil on panel.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USA. 





The Corn Harvest (August). Detail. 1565. Oil on panel.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USA.

* 여름 2 *



The Return of the Herd (November). 1565. Oil on panel.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Austria.



The Return of the Herd (November). Detail. 1565. Oil on panel.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Austria.

* 겨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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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슬라보예 지젝의 잘 알려진 텍스트를 새삼 자료정리 차원에서 옮겨놓는다. 출처는 창비웹진이지만(보다 구체적인 출처가 밝혀져 있지 않다) <비평>(2001년 겨울호)에도 같은 제목(하지만 다른 번역)의 글이 게재된 바 있고(영어 원문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알다시피 지젝의 단행본 'Welcome to the desert of the real!'도 번역 출간된 바 있다(지젝의 문외한이 아니라면, 제목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가져왔다는 사실은 군말이겠다).  

 

 

 

 

하지만, '번역의 사막'을 보여주는 국역본을 완독한 독자는 많지 않을 듯하므로, 하지만 지젝의 텍스트는 한번쯤 음미해볼 만한 의미있는 텍스트이므로, 이제라도(혹은 한번 더) 일독해 보시길 권한다. 그것이 사적인 자료 스크랩이 갖는 잉여적 의의이다. 참고로 붙여넣은 이미지들은 강조와 함께 웹진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다.    

미국인들이 궁극적으로 꿈꾸는 편집증적 환상은 작고 평화로운 캘리포니아주의 도시, 즉 소비를 위한 파라다이스에서 한가로이 개인적 삶을 즐기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진짜 세계처럼 꾸며진 허구의 세계는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한다. 자기 둘레의 모든 사람들이 이 거대한 쇼에 동원된 뛰어난 배우와 엑스트라들일지도 모르다고. 이에 대한 가장 최근의 예가 피터 위어(Peter Weir)의 <트루먼 쇼(The Truman Show)>(1998)일 것이다.

짐 캐리(Jim Carrey)는 이 영화에서 자신이 24시간 방영되는 텔레비전 쇼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 작은 마을의 사무원 역을 맡았다. 짐 캐리가 살고 있는 마을 전체가 이 쇼를 위해 설치된 거대한 무대장치인 셈인데 곳곳에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촬영하는 카메라들이 작동되고 있다.

Time Out of Joint

<트루먼 쇼>보다 먼저 나온 작품으로는 필립 딕(Phillip K. Dick)의 <타임 아웃 오브 조인트(Time out of Joint)>(1959)를 들어볼 수 있다. 이 영화 역시 50년대 후반 캘리포니아의 평화로운 한 소도시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점차 그가 살고 있는 마을 전체가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꾸며진 무대장치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는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타임 아웃 오브 조인트>나 <트루먼 쇼>가 암시하고 있는 경험은 이 후기 자본주의적 소비 천국, 캘리포니아라는 공간이 그것의 초현실(hyper-reality) 속에서 어떤 의미로는 비현실적이고 실체 없는 것이며 물질적인 관성을 박탈당한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단지 할리우드가 물질성과 질량을 박탈당한 실재 삶을 무대에서 모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후기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는 '실재의 사회적 삶' 그 자체가 이미 어느 정도는 무대화된 허구로서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실재"의 삶 속에서 마치 무대의 배우나 엑스트라처럼 행동하는 이웃들을 포함해서. 반복하자면 정신성이 박탈된 실용주의적 자본주의의 우주에서 궁극적인 진실은 "실재 삶" 자체의 물질성이 박탈된다는 것, 실재 삶 자체가 일종의 스펙터클한 쇼로 전환되어버린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이셔우드(Christopher Isherwood)는 모텔 방을 예로 들어 미국적 일상의 비현실성을 표현한 바 있다.


"미국의 모텔은 비현실적이다! (...) 그 방들은 의도적으로 비현실적으로 디자인되어져 있다. (...) 명상을 위해 동굴로 들어간 은자처럼 우리가 점점 더 광고의 세계에서만 살고 있기 때문에 유럽인들은 우리를 경멸한다." 피터 슬로테르지크(Peter Sloterdijk *슬로터다이크)의 "영역sphere"이란 개념이 이곳에서 문자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 거대한 금속의 구체(球體)가 도시 전체를 감싸면서 그것을 고립시키고 있기 때문이다.(sphere란 단어는 영역, 범위 등의 뜻과 함께 구체球體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수년 전에 <자도즈(Zardoz)>나 <로건즈 런(Logan's Run)> 같은 일련의 공상과학 영화들은 격리된 무균지역에서 살면서 이제 물질적으로 부패해버린 실재 세계의 경험을 갈망하는 집단의 삶을 그려냄으로써 이미 이런 포스트모던한 상황의 곤경을 예견한 바 있기도 하다.

 


워쇼스키(Wachowski) 형제의 히트작 <매트릭스Matrix>(1999)는 이런 논리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매트릭스>에서는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주위의 모든 물질 세계가 가상적인 것인 것으로 그려지는데 그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조정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그것에 연결되어 있는 메가 컴퓨터(mega-computer)의 일이다. 영웅의 역을 맡은 키아누 리브스(Keanu Charls Reeves)는 "진짜 현실"에 눈을 뜨게 되는데 그곳에서 그가 보는 것은 세계전쟁 이후 불에 탄 잔해들만이 남아 있는 시카고의 황량한 풍경이다. 저항군 지도자 모페스는 아이러니컬한 인사로 키아누 리브스를 맞이한다.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런 구도는 9월 11일 뉴욕에서 일어난 사건에도 적용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닐까? 뉴욕의 시민들은 그 날 "실재의 사막"으로 인도되었던 것이다. 할리우드에 길들여진 우리는 무너지는 타워의 광경과 그 장면들을 보면서도 대규모 제작사의 재난영화에서 보았던 어마어마한 광경들을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 폭탄테러가 얼마나 예기치 않은 충격적 사건이었는지, 어떻게 그런 상상할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지에 관해 들으면서 우리가 기억해봐야 할 또다른 참사는 20세기초에 일어났던 타이타닉 호 침몰사건이다. 타이타닉 호 침몰사건 역시 굉장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타이타닉 호가 19세기 산업문명의 힘의 상징이 된 이후로 그 배의 침몰을 위한 공간은 이미 이데올로기적 환상의 공간에 마련되어 있었다.

 

 

이번 폭탄 테러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미디어들은 테러리스트들의 위협에 관해 끊임없이 떠들어대고 <뉴욕 탈출(Escape from New York)>에서 <인디펜던스 데이(Independence Day)>에 이르기까지, 각종 영화들은 이런 테러 위협에 대한 우리의 아낌없는 리비도적 투자를 유도하지 않았던가. 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러나 발생해버린 사건은 그러므로 사실 판타지의 대상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미국인들은 그들이 상상해오던 것을 실제로 경험한 것이다. 물론 굉장히 경악하면서.


이데올로기적이고 상상적인 것들의 조합이 우리의 지각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에 주지해야만 하는 때는 바로 지금, 이 생생한 참사의 '실재'를 다루는 순간이다. WTC 타워의 붕괴에 어떤 상징이 있다면 그건 "자본주의의 재정적 심장"이라는 낡아빠진 비유에 관련된 것이 아니다. 그 두 개의 쌍둥이 빌딩은 물질적인 실재 생산의 영역에서 분리되어 온갖 재정적 지침들이 '사고'되는 '가상적' 자본주의의 중심을 상징하고 있었다고 보는 편이 적당하다. 그 건물에 대한 폭탄 테러가 던진 굉장한 충격은 디지털화된 제1세계와 "실재의 사막" 자체인 제3세계를 가르고 있는 경계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악의적인 대리인들이 모든 것을 파괴하기 위해 끊임없이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생각을 주입하는 격리된 가상의 우주 속에 살고 있다는 자각에 다름아니다.


결론적으로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은 대부분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악당 두목 역으로 나왔던 에른스트 스타브로 블로펠드(Ernst Stavro Blofeld)의 실재적 현현이 아니라 지구적 파괴 행위에 연루된 폭탄 테러의 배후 세력 용의자일 뿐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우리가 생산과정을 아주 강도 높게 볼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바로 제임스 본드가 집약적 노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악당의 소굴(마약을 증류하거나 포장하고 뉴욕을 통째로 날려버릴 폭탄을 제조하기도 하는)을 찾아내는 경우뿐이라는 사실이다.

 

본드를 생포한 후에 악당의 두목은 흔히 본드에게 그 자신의 불법 공장을 구경시켜준다. 이런 부분이야말로 할리우드가 공장에서의 생산과정을 자랑스럽게 과시하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미학에 가장 근접하고 있는 부분은 아닐까? 여기서 본드가 해내야 할 임무는 물론 그 생산라인을 폭파시켜서 우리가 다시 "노동계급이 증발"된 세계 속, 우리의 표면적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WTC 타워의 폭발은 사실 위협적인 외부세계를 겨냥한 폭력이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왔던 것은 아니었던가?


미국인들이 살고 있는 안전한 '영역'은 '외부' 세계 테러리스트들의 위협 아래에 놓여진 것으로 드러났다. '외부'의 테러리스트들은 무자비한 자기 희생자인 동시에 겁쟁이이며, 교활하게 머리가 좋은 동시에 원시적인 야만인들이기도 하다. 우리가 그런 '외부의' 순수한 악에 대면할 때 우리는 언제나 헤겔이 던지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마음으로부터 인정할 용기를 가져야만 한다. 이 순전한 '외부' 속에서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순수하게 증류된 본질을 찾아야만 한다는.

 

지난 5세기 동안 지속된 '문명화'된 서구의 (상대적) 평화와 번영은 '야만적'인 '외부세계'에 무자비한 폭력과 파괴를 수출함으로써 얻어진 것이다. 미국 대륙의 정복과 콩고에서의 살육을 기억해보자. 잔인하고 인정머리 없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 폭탄 테러 사건이 실재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것이라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마음 깊이 명심해야 한다.  미국은 이제야말로 사라예보로부터 그로쯔니(Groznyi, 체첸공화국의 수도), 르완다와 콩고에서부터 씨에라리온(Sierra Leone, 서아프리카 남쪽에 있는 나라)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매일매일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아주 조금 맛보았을 뿐이다. 이 상황에 뉴욕에서 일어나는 총질들과 갱단의 강간사건들을 좀 덧붙이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10년 전 사라예보의 모습을 재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텔레비전 속의 "실재"가 허구라는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된 때는 바로 우리가 텔레비전 스크린을 통해 WTC 타워가 붕괴되는 것을 목격했던 순간이었다. 텔레비전의 쇼들이 '실재'를 보여줄 때조차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 프로그램 안에서 연기하고 있다. 그들은 그저 자기 자신을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이 흔히 주장하곤 하는 "이 글 안의 인물들은 허구적인 인물들입니다. 그들이 실재의 어떤 인물들과 비슷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순한 우연일 뿐입니다"라는 명제는 실재라는 드라마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문구이다. 그들이 실재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조차도 우리는 허구적 캐릭터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실재로의 귀환"은 다른 방향으로 주어질 수도 있다. 조지 윌(George Will) 같은 우파 보수주의자 논객 역시 즉시 미국의 "역사로부터의 휴가"가 종료되었다고 선언했다. 텍스트성에 초점을 맞춘 문화이론들과 자유주의적이고 관용적인 태도의 고립된 성벽을 뒤흔든 '실재'의 충격으로 인해서. 이 진짜 세계에서의 적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이제 우리는 반격을 개시해야만 한다…… 그러나 누구에게 반격해야 할까? 우리가 어떤 반격을 개시하건 그 반격의 목표는 결코 우리에게 온전한 만족감을 가져다줄 수 있는 '제대로 된' 목표일 리가 없다.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는 미국의 아둔한 행위는 자기 자신의 눈을 찌르는 행위나 다름없다. 세계 최강대국이 불모의 땅위에서 가까스로 생존을 유지하고 있는 가장 가난한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아무런 효과도 없고 무기력한 연기 행위의 극단적 예가 아니라면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이 사건에서 자주 언급되는 "문명의 충돌"이란 개념에는 분명 부분적 진실이 있다. 어떻게 자기 자신의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가에 대해 경악하고 있는 미국인들을 주시해보자. 이 놀라움 뒤에는 정작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희생할 공동체적이고 보편적인 이유를 상상하는 것이 점점 더 불가능해지는 제1세계 시민들의 비애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폭탄 테러 사건 이후, 심지어 탈레반의 외무장관이 미국 어린이들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라는 발언을 했을 때 그는 빌 클린턴의 트레이드 마크인 그 문장의 헤게모니와 이데올로기적인 역할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고 있었던 셈이 아닌가?

 

안전한 피난처 미국이라는 인식은 물론 환상이다. 그러나 뉴욕 시민들이 폭탄 테러 이후 이제 뉴욕 거리를 더 이상 안전하게 걸어다닐 수 없다고 이야기할 때,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정작 각종 공격과 강도 행위로 이미 충분히 유명했던 이 도시에서 이 사건이 묘한 연대의 감정을 일으켰다는 사실이다. 젊은 흑인이 늙은 유태인 신사가 길을 건너는 것을 도와주는 광경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풍경인 것이다.


폭탄 테러 이후의 며칠 동안 우리는 마치 외상적인(traumatic) 사건과 그것의 상징적 결과 사이에 존재하는 특이한 시간 속에 거주하고 있는 것만 같다. 상처가 깊게 밴 순간과 그 아픔이 온전하게 우리에게 전달되기 이전에 존재하는 그 짧은 순간과도 같은. 이 사건이 어떻게 상징화될 것인지, 그것의 상징적 효과가 무엇이 될 것인지, 그 효과를 정당화하기 위해 취해질 행동은 무엇인지는 모두 미정의 상태이다. 지금 이곳, 이 극단적인 긴장의 순간에조차도 이 상처와 그 상처의 상징적 결과 사이의 관계는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우연적인 것이다.

 

 

불길한 조짐들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폭탄 테러 다음날 나는 레닌에 대한 나의 다소 긴 글을 출판할 계획이었던 출판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들은 아무래도 폭탄 테러 이후에 레닌에 관한 글을 출판하는 것은 시기가 좋지 않다면서 그 책의 출판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이야기해왔다. 혹시 이게 앞으로 이어질 불길한 이데올로기적 작용의 시작점은 아닐까?


우리는 아직 이 사건이 경제, 이데올로기, 정치, 전쟁 등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한데, 지금까지 스스로를 이런 종류의 폭력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이런 폭력은 텔레비전 스크린을 통해 안전한 거리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미국이 이제 직접적으로 이런 폭력에 개입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 선택은 다음과 같다. 미국이 결국 그들의 "영역"을 더 공고히 하기로 결정할 것인가 아니면 그 영역 밖으로 걸어나올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우리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지? 이런 일은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야!"라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위협적인 '외부' 세계에 대해 더욱 공격적으로 대응하기로, 다른 말로 하자면 분열증적 연기를 계속하기로 결심하든지 아니면 마침내 그들을 '외부' 세계로부터 분리하는 허구적 스크린으로부터 걸어나와서 '실재' 세계에 개입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런 일은 '이곳'에서는 일어나면 안돼"라는 태도로부터 "이런 일은 '어디에서도' 일어나면 안돼"라는 태도로 매우 늦어버린 전환을 시도하든지.

 

미국이 즐긴 "역사로부터의 휴가"는 허구다. 미국의 평화는 미국 이외의 곳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참사와 맞바꾼 것이다. 이제 폭탄 테러가 주는 진정한 교훈을 배워보자. 이런 사건이 '이곳'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런 일이 그 밖의 어떤 곳에서도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길뿐이라는 교훈을.(번역: 서정은)

 

 

06. 0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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